지휘자 사카리 오라모, 전통의 한가운데서, 변화의 최전방에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3월 16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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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한하는 연주자들 인터뷰

 

지휘자 사카리 오라모

전통의 한가운데서, 변화의 최전방에서

 

13년만의 반가운 내한 앞둔 BBC 심포니와 핀란드 지휘 계보의 대표 주자가 들려줄 음악

 

 

클래식 음악, 특히 오케스트라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핀란드 출신 지휘자’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신뢰의 눈빛을 보내게 된다. 오스모 벤스케(1953~), 에사 페카 살로넨(1958~), 유카 페카 사라스테(1956~), 한누 린투(1967~), 수잔나 멜키(1969~), 미코 프랑크(1979~), 피에타리 잉키넨(1980~), 산투 마티아스 루발리(1985~), 클라우스 메켈레(1996~)에 이르기까지.

핀란드 지휘자들은 현재 세계 주요 오케스트라의 포디엄에서 높은 실력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시벨리우스 음악원에서 핀란드 지휘계의 큰스승인 요르마 파눌라(1930~)에게 지휘를 배웠다. 그중 사카리 오라모는 이들 가운데 세대적으로 ‘중간 지점’에 위치한 인물로, 꾸준히 좋은 지휘를 선보이고 있다.

 

잠깐씩 지휘의 바람을 쐬던 그가…

시벨리우스 음악원 음악이론 교수인 아버지와 피아노 교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라모의 음악적 DNA는 일찌감치 확고했다. 바이올린을 전공한 그는 17세 때 살로넨, 사라스테와 함께 아반티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창설에 참여하며, 앙상블 음악의 현장을 경험했다. 이후 핀란드 방송교향악단의 악장으로 오케스트라 경험을 쌓았고, 1989년부터 3년간 시벨리우스 음악원에서 요르마 파눌라의 클래스에서 지휘를 공부했다. 당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오라모에게 지휘는 잠깐 신선한 바람을 쐬는 ‘취미 활동’ 정도였다.

그랬던 오라모에게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왔다. 1993년 핀란드 방송교향악단의 유카 페카 사라스테가 병환으로 공연 직전 지휘를 취소했다. 급히 대역이 필요했던 이 무대에, 지휘를 공부하던 오라모가 포디엄에 올랐다.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 한 번의 공연을 계기로 그는 핀란드 방송교향악단의 부지휘자로 정식 채용되며 지휘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는 지휘라는 직업을 이렇게 회상한다. “외로운 직업입니다. 80%는 혼자서 악보와 마주하는 일이죠. 혼자 낯선 거리에 있다가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를 거는 또 다른 거리로 들어서는 것과 같달까요.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조금씩 배워나갔습니다.”

 

래틀 이후, 영국에 뿌리 내린 오라모의 10년

영국 버밍엄 시립교향악단(이하 CBSO)은 이미 사이먼 래틀과 눈부신 성장을 이룬 오케스트라였다. 래틀은 1980년에 수석지휘자로, 1990년부터 음악감독으로 악단을 이끌며 말러와 시벨리우스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CBSO를 유럽 대표 앙상블로 확장시켰다. 1998년, 래틀의 임기가 끝나고 후임으로 사카리 오라모가 선택됐다. 오라모는 같은 해 수석지휘자에 올랐고, 이듬해 음악감독으로 취임했다. 이는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잇는 베를린필의 차기 음악감독으로 사이먼 래틀이 선임되며, CBSO를 떠난 직후의 일이었다.

세계적 명성을 쌓아 올린 전임자의 뒤를 잇는 일은 분명 부담이었을 터. 그럼에도 오라모는 CBSO의 위상을 조용히 지켜냈다. “CBSO의 시절인 10년은 지휘자로서 기초를 닦은 시기입니다. 이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바꿨다고 자부합니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혁신을 더해, 보다 높은 목표로 전진하는 소리를 만들어 나가고 싶었습니다.”

오라모는 CBSO 시절, 현대음악 축제인 ‘플루프!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특히 영국 작곡가 존 파울즈(1880~1939)의 음악을 연주회와 음반으로 꾸준히 소개하며 파울즈 음악 해석의 최고 권위자로 일컬어진 것도 이 시기다. 안드리스 넬손스가 차기 CBSO의 음악감독으로 내정된 뒤, 2008년 음악감독직에서 내려온 오라모는 수석객원지휘자로 2009년까지 CBSO의 포디움에 올랐다.

오라모는 작년까지 시벨리우스 아카데미에서 지휘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소프라노이자 아내인 아누 콤시와 함께 실내악 및 오페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다각적인 예술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BBC 심포니, 공영 오케스트라와의 실험

핀란드 코콜라 오페라의 수석지휘자(2006),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의 수석지휘자(2006),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2013)를 맡는 등 유럽 음악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꾸준한 존재감을 내비쳤다. 오라모는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계약이 현재 2030년까지 연장된 상태다. 그는 BBC 프롬스의 주요 공연은 물론, 프롬스의 꽃인 ‘마지막 밤’(Last Night of the Proms) 지휘자로 자주 나서며 영국 음악계의 상징적인 순간을 책임지고 있다.

“BBC 심포니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고품질 클래식 음악을 접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럼으로써 공영 오케스트라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죠.”

그는 악장 출신답게 현악기의 질감과 오케스트라의 내부 구조를 매우 세밀하게 다룬다. 우아함과 열정적인 추진력을 동시에 갖춘 지휘라는 평가다.

“리허설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먼저 오케스트라에게 자유를 부여하고, 이후 세부를 만들어 갑니다. 악보의 뒤쪽까지 읽어오도록 하고, 각 섹션의 연습도 병행하며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해 가죠.”

오라모는 진취적인 지휘자이기도 하다. 엘가나 시벨리우스 같은 거장의 작품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는 한편, 존 파울즈나 루에드 랑고르(1893~1952) 같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근현대 작곡가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무대에 올리고 있다. 또한 카이야 사리아호(1952~2023), 망누스 린드베리(1958~) 등 동시대 핀란드 작곡가들의 열렬한 지지자이며, 스칸디나비아 현대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사명감을 가지고 활동한다.

 

신뢰를 남기는 지휘의 비밀

“배울 것이 태산 같아서 시간이 부족하다”며 웃는 오라모의 힐링 방법은 피톤치드가 가득한 숲속을 산책하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자율성을 중시하고 독주자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는 이 핀란드의 마에스트로는 무대를 마친 뒤에도 신뢰를 남긴다. 그가 지휘한 오케스트라들이 잇달아 그를 재초청을 하는 이유다.

사카리 오라모와 BBC 심포니가 오는 3월, 부산·서울·대전·성남에서 내한 공연을 갖는다. 협연자는 피아니스트 손열음.

24일 부산콘서트홀과 25일 예술의전당 공연에는 핀란드 작곡가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이 포함돼 있다. 이미 BBC 심포니와 함께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 연주를 마친 오라모에게 작품은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제가 꼭 핀란드인이라서 그런 건 아닙니다. 시벨리우스 음악에 핀란드만의 특성이 가득해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오히려 그의 작품에 오래 노출되면서 음악과 교감하게 된 것 같습니다. 시벨리우스 음악에는 디테일이 풍부합니다. 세부만 떼어내서는 안 되죠. 전체에 녹아들어야 합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하나의 음악적 틀과 흐름 속에 포용하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전체를 부감해야 합니다.”

문을 활짝 열어둔 채, 큰 흐름 속에서 세부를 놓치지 않는 지휘. 오라모가 만들어내는 균형과 투명함의 음악을 이번 내한 무대에서 직접 경험해 보자.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사진 한국경제신문

 

사카리 오라모(1965~) BBC 심포니 수석지휘자로 BBC 프롬스의 무대에 정기적으로 오른다. 비교적 덜 알려진 작곡가들의 작품과 현대음악을 꾸준히 발굴해 왔으며, 유수의 오케스트라들과 세계 초연을 이끌었다.

PERFORMANCE INFORMATION
사카리 오라모/BBC 심포니 오케스트라(협연 손열음)
3월 24일 오후 7시 30분 부산콘서트홀
3월 25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슈트라우스 ‘돈 후안’, 버르토크 피아노 협주곡 3번,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3월 26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3월 27일 오후 7시 30분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멘델스존 ‘핑갈의 동굴 서곡’, 브리튼 피아노 협주곡 D장조, 브람스 교향곡 2번
3월 28일 오후 5시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슈트라우스 ‘돈 후안’, 버르토크 피아노 협주곡 3번, 제럴드 핀지 ‘에클로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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