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신성한 합창’의 세계
종교를 넘어, 세상을 울리는 교회 합창음악의 모든 것

3월은 교회력을 기준으로 예수의 수난기인 사순절을 거치는 달이자 곧 도래할 부활을 맞이하는 기간으로, 이 시기에 교회 합창음악이 갖는 의미는 더욱 특별하다. 유럽은 물론, 한국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교회 합창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총괄 최성혁 기자
PART 1. 교회 합창음악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1. 교회 합창음악의 이해
2. 합창음악의 판본을 결정하는 요인들
3. 현대로 넘어와 더 다양해진 합창음악
4. 3월, 유럽에서는 어떤 공연들이 오를까?
5. 믿고 보는 교회 합창음악 실황 영상물
PART 2. 국내 교회 합창음악의 발전과 현황
1. 우리 곁의 합창음악을 빚어내는 사람들
2. 국내 공연장을 수놓을 교회 합창음악
PART 1 HISTORY
교회 합창음악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교회 합창음악의 이해
다양한 종류의 교회 합창음악, 어떻게 기원했을까?

슈테판 대성당 모차르트 ‘레퀴엠’ ©Johannes Hloch
교회 합창음악은 서양음악사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 가운데 하나다. 오늘날, 이 음악들은 주로 특정 기간에 공연장에서 큰 레퍼토리로 소개되곤 한다.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이면 헨델의 ‘메시아’가, 그리고 사순절(부활절을 앞두고 약 40일간 경건하게 지내는 기독교의 절기)이 다가오는 3월이면 바흐의 수난곡들이 무대에 오르듯이 말이다. 올해 3월에도 바흐의 ‘b단조 미사’와 모차르트의 ‘c단조 대미사’ ‘레퀴엠’ 등이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이처럼 교회 합창음악은 일반적으로 특정한 날의 예배를 위해 작곡되었다. 그렇기에 교회 합창음악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음악적 표현에 앞서, 어떤 ‘기능’을 가졌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기독교는 1월 1일에 새해가 시작되어 12월 31일에 한 해가 마무리되는 일상적인 달력과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1년 주기로 삼는 ‘교회력’을 사용한다. 교회력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대림절을 시작으로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는 사순절, 그리고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로 나뉘며, 이외에도 수백 개의 다른 축일과 성인들을 기념하는 날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작곡가들은 각 절기의 종교적 의미를 강화하고 교리를 전달하기 위하여 그에 걸맞은 음악을 작곡하였다.
고정된 신앙 고백: 미사와 레퀴엠
특정 절기와 상관없이 항상 동일하게 드리는 예배 의식이 바로 ‘미사’이다. 가톨릭의 가장 중요한 예식인 미사는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가졌던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것에서 발전하였다. 미사곡은 교회력의 절기나 축일과 상관없이 가사가 변하지 않는 ‘미사 통상문’을 기본으로 한다. 통상문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자비송 ‘키리에’로 시작하여 대영광송인 ‘글로리아’, 신앙 고백인 ‘크레도’, 주님의 거룩함을 노래하는 ‘상투스’, 그리고 탄원기도인 ‘하느님의 어린 양’으로 이어지는 5악장 구조이다.
이러한 통상문 전체를 한 세트의 다성음악으로 처음 작곡한 작품은 14세기 작곡가 기욤 드 마쇼(1300년경~1377)의 ‘노트르담 미사’(1364)이다. 이후 미사곡은 기욤 뒤파이(1400년경~1474), 조스캥 데 프레(1440년경~1521), 팔레스트리나(1525년경~1594) 등과 같은 15~16세기 르네상스 작곡가들에 의해 크게 발전하였다. 특히 팔레스트리나의 6성부 미사곡 ‘교황 마르첼리의 미사’를 비롯한 100여 곡이 넘는 그의 미사곡은 부드러운 곡선의 선율과 불협화음의 절제된 사용, 그리고 세심한 가사 붙이기 등으로 교회음악의 전범적인 모델로 간주되었다.
미사곡은 18~19세기에도 바흐 ‘b단조 미사’, 하이든 ‘불안한 시대의 미사’, 모차르트 ‘c단조 대미사’, 베토벤 ‘장엄미사’, 그리고 브루크너의 3개의 미사곡 등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걸작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미사곡은 일반적으로 특정 절기를 위해 작곡된 작품은 아니지만, 예수의 죽음을 통한 구원과 부활이라는 기독교적 메시지를 집약하고 있어 사순절과 부활절의 의미와도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
한편, 레퀴엠은 죽은 사람의 넋을 달래기 위한 미사곡으로, 일반 미사에서 사용되는 ‘글로리아’와 ‘알렐루야’와 같은 기쁨의 표현을 제외하는 대신, 죽음과 관련된 가사를 가진 곡들을 추가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다성 레퀴엠은 요하네스 오케겜(1410경~1497)의 작품이며, 팔레스트리나 페르골레시(1710~1736)·모차르트·베르디·포레·브람스 등의 레퀴엠이 유명하다. 죽은 이를 위한 미사곡인 레퀴엠 역시 특정 절기에 한정된 작품은 아니지만, 인간 존재를 근원적으로 성찰하고 죽음을 묵상하게 한다는 점에서 사순절 기간에 연주되기도 한다.
인간적 감정의 투영: 모테트
모테트는 13세기에 발생한 다성 음악으로,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중요한 음악 장르 중 하나였다. 모테트는 가사가 엄격하게 고정된 미사곡과는 다르게, 가사의 선택이 자유로워 특정 전례나 큰 행사를 위해 작곡되었다. 더욱이 작곡가들은 모테트의 가사에 담긴 다양한 의미와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그 가운데 조스캥 데 프레는 당대 그 어떤 작곡가들보다도 가사와 음악 간의 관계에 보다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인 르네상스 시대의 작곡가로, 50곡 가량의 모테트를 통해 가사의 이미지와 감정을 담아내었다. 특히 5성부 모테트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는 그 시대 작곡가들이 사랑했던 참회의 시편 7개 중 하나로, 다윗의 통렬한 회개가 표현된다. 또한 조스캥과 동시대 작곡가인 피에르 드 라 뤼(1460~1518)의 모테트 ‘압살롬, 나의 아들아’는 다윗 왕이 자신에게 칼을 겨눈 아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피 울며 통곡하는 아버지의 비탄이 묘사되어 있다.
십자가의 고통: 수난곡과 스타바트 마테르

조반니 벨리니 ‘피에타’(1505)
성주간에 연주될 목적으로 작곡된 교회 합창음악으로는 ‘수난곡’과 ‘스타바트 마테르’가 대표적이다. 우선, 수난곡은 성경의 네 복음서인 마태(마태오)·마가(마르코)·누가(루카)·요한 중 하나를 가사로 선택한 것으로,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과 최후의 만찬, 베드로의 부인, 그리고 예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의 이야기를 다룬다.
루터의 종교 개혁 이후 수난곡은 중요한 음악 장르로 자리 잡았다. 특히 하인리히 쉬츠(1585~1672)와 바흐의 작품이 주목할 만하다. 독일 드레스덴의 작센 선제후 궁정의 교회 음악가였던 쉬츠는 1665년 ‘누가 수난곡’을 시작으로 ‘요한 수난곡’과 ‘마태 수난곡’을 연달아 작곡하였다. 이 곡들은 모두 반주 없이 순수하게 독창과 4성부 합창으로 연주된다. 바흐는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교회 내 음악을 총괄하는 음악감독)로 있었을 당시 성금요일에 연주할 목적으로 두 개의 수난곡, ‘요한 수난곡’과 ‘마태 수난곡’을 작곡하였는데, 이 작품들은 레치타티보와 아리아, 앙상블, 합창, 그리고 관현악 반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스타바트 마테르’는 예수의 죽음을 수난곡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바라본 것으로, 예수의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린 아들의 시체를 무릎 위에 놓고 비통해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스타바트 마테르’는 “예수 달리신 십자가 곁에 비통하게 우시며 성모님이 서 계시네”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곡으로, 조스캥에 의해 다성적으로 작곡된 이래 팔레스트리나와 비발디·페르골레시·하이든·슈베르트·로시니·베르디·드보르자크 등에 의해 작곡되었다.
마리아의 노래: 마니피캇
‘성무일도’는 미사와 더불어 중세 시대의 중요한 예배의식으로, 하루 동안 매일 정해진 시간에 행하는 여덟 차례의 전례를 가리킨다. 그중에서도 해 질 무렵에 드리는 저녁기도인 ‘베스펄스’가 특히 중요했다. 베스펄스의 중심 찬송은 ‘마리아의 노래’로 불리는 ‘마니피캇’다. 이 노래는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가 세례 요한을 임신한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의 성경 장면에 근거한다.
뱃속의 아이가 기쁨에 뛰노는 것을 느낀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여인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라고 말하자, 마리아가 엎드려 “위대하신 하느님, 저같이 비천한 종을 사용하시여”라는 가사를 노래한다. 마리아의 첫 가사에서 유래한 ‘마니피캇’는 몬테베르디를 비롯해, 바흐 등 많은 작곡가에 의해 작곡되었다. 특히 예수의 탄생을 예고하는 내용으로 성탄절과 깊이 연관된다.
극적인 합창: 칸타타와 오라토리오
17세기 바로크 시대에는 오페라의 탄생과 함께 ‘칸타타’와 ‘오라토리오’라는 새로운 성악 장르가 등장하였다. 칸타타는 이탈리아어로 ‘노래하다’를 뜻하는 ‘칸타레’(Cantare)에서 유래한 용어로, 초기에는 단순히 성악음악을 가리켰다. 오늘날은 칸타타에 교회 합창음악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17세기 이탈리아에서의 칸타타는 주로 목가적 사랑을 노래하는 세속적인 내용으로, 바소 콘티누오(베이스 성부에 하프시코드 등의 악기로 음을 채우는 것)의 반주 위에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와 같은 독창 성부가 교대로 나오는 형태였다.
독일에서는 루터의 종교 개혁의 영향으로 칸타타가 중요한 교회 음악 장르로 자리 잡게 되었다. 루터의 교회 칸타타에서 회중이 함께 부르는 루터 음악의 핵심 요소인 ‘코랄’이 중요한 역할을 하여, ‘코랄 칸타타’라고 불리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교회력의 각 축제일을 위한 예배용 음악으로 작곡된 코랄 칸타타는 절기에 어울리는 하나의 코랄 선율을 기초로 여러 악장을 구성하며, 코랄 합창을 비롯해 레치타티보와 아리아, 중창 등으로 이루어진다. 이처럼 교회 칸타타는 독일 지역에서 크게 발전하였으며, 텔레만, 크리스토프 그라우프너(1683~1760), 그리고 바흐 등이 대표적이다.
오라토리오는 종교적 주제를 바탕으로 한 극적 형식의 성악 음악극이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는 사순절 기간에 오페라의 공연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오라토리오는 이 공백을 대체하며 자연스럽게 발전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오라토리오는 대체로 종교적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음악적 측면에서는 오페라와 거의 차이가 없어 오페라의 종교 버전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오라토리오는 오페라와는 다르게 종교적 주제를 가질 뿐만 아니라, 해설자가 있고, 무대장치와 의상, 연기 등이 배제되어 제작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오페라 작곡가로 명성을 얻었던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 비발디 등은 오라토리오 작곡가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오라토리오는 이탈리아뿐 아니라 독일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다. 독일 작곡가들은 합창을 특히 중요하게 사용하였으며, 쉬츠의 ‘십자가 위의 일곱 가지 말씀’과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그리고 바흐의 크리스마스·부활절·승천일을 위한 세 편의 오라토리오는 이러한 특징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한편, 영국 오라토리오는 헨델에 의해 확립되었다.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로서 영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던 헨델은 오페라가 점차 관심을 잃게 되자 오라토리오로 전향하였다. 오라토리오는 음악적으로 오페라와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장르의 전환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헨델의 영국 오라토리오는 일반적으로 성서적 주제에 기초한 3막 구조로, 극장에서 공연되었으며 특히 합창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그의 오라토리오 중 1741년에 작곡된 ‘메시아’는 예수의 탄생·예수의 죽음·부활을 통한 구원을 주제로 하지만, 오늘날에는 특히 성탄절 시즌에 가장 자주 연주되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교회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교회 합창음악은 오늘날 본래적 기능이 다소 희미해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음악이 내포한 본질적인 의미까지 지워진 것은 아니다. 메시아의 탄생, 고난과 죽음, 그리고 이를 극복한 부활의 이야기는 종교를 넘어 우리의 근원적 삶과 회복에 대한 메시지를 건네주고 있기 때문이다.
글 유선옥(음악학자)
PART 1 About EDITION
합창음악의 판본을 결정하는 요인들
지휘자 김선아에게 묻고 듣는 최선의 연주를 위한 고민
역작이란 인류가 대를 이어 향유해 온 위대한 예술이자 어느 세대, 어느 시대에도 유효한 예술성과 음악성을 지닌 작품 아닐까. 당대가 만들어낸 사유와 역학이 현세에도 똑같이 적용되듯, 교회 합창음악 역시 바로크 음악의 정연하고 간결한 화성으로 현대인의 마음에 여전히 경종을 울린다.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과 부천시립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지휘자 김선아(1970~)와 함께, 교회 합창음악이 지닌 가치와 의미를 짚었다.
#1 악단의 규모는 어떻게 되는가?

‘메시아’ 모차르트 판본
판본의 선택은 연주가 어떤 ‘편성’과 어떤 ‘목적’을 갖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헨델의 ‘메시아’로 예를 들어보자. 대규모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함께하는 연주를 전제로 할 경우, 프라우트(1835~1909)의 ‘메시아’ 판본을 택한다.
반면 소규모 앙상블의 편성이라면, 초판본 또는 모차르트 판본으로 ‘메시아’를 연주하는 경향이 흔하다. 시대악기 편성은 1742년 당시 청중의 귀에 이 음악이 어떻게 들렸을지 상상하도록 만들며, 단순한 재현을 넘어 시대의 언어로 다시 읽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 지점에서 주목할 것은, 시대악기 연주의 고유한 가능성이다. 한 시대를 만든 음악사의 현장을 오늘의 무대 위에 불러오는 일은 그 자체로 무한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2 누구를 향한 연주인가?
판본뿐 아니라, 실제 무대 위에서 어떤 ‘목적’을 갖느냐에 따라 구현 방식은 달라진다.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이하 콜레기움)과 부천시립합창단과의 협업은, 이 분명한 차이를 제시하는 좋은 사례다. 콜레기움은 애호층이 대상이 되는 연주로, 작품의 구조와 흐름을 온전히 경험하는 데 초점을 둔다. 실제로 콜레기움과 함께한 ‘메시아’에서는 바로크 판본을 바탕으로, 2시간이 넘는 전곡 연주를 선택했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음악적 서사를 온전히 경험하게 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반면, 약 45명의 단원으로 구성된 부천시립합창단과의 연주는 또 다른 현실을 고려한다. 시민을 주요 청중으로 삼는 이 무대에서는, 한 시간 반 안팎의 분량으로 일부 생략을 감행하는 선택이 오히려 집중도를 유지하는 데 효과적이다. 그렇기에 반드시 시대악기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부천필하모닉과 협업해 현대악기로 연주하되, 관현악 편성을 극도로 축소한다. 플루트나 현 파트를 대폭 줄여, 현대악기이면서도 최대한 가볍고 투명하게 들리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결국 ‘무엇을 쓰느냐’보다, ‘어떻게 들리게 할 것인가’도 중요한 기준이다. 이러한 선택은 연주자가 감당해야 할 책임 있는 통찰이기도 하다.
#3 만약 작곡가였다면?
물론 ‘작곡가의 의도’ 역시 하나의 기준이다. 작곡가가 어떤 판본을 가장 신뢰하고 연주했을까를 추적하다 보면, 결국 그의 의도가 가장 농축된 판본을 상정하게 된다.
이번 3월 5일, 콜레기움과 함께할 ‘마태 수난곡’ 역시, 바흐가 여러 차례 수정 끝에 1736년 세 번째로 정서한 자필본을 바탕으로 한다. 이 판본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마태 수난곡’의 전범으로 자리 잡은 텍스트다.
우리는 여전히 바흐 시대에 살고 있다
판본의 선택은 때로 ‘연주할 인력이 있는가, 없는가’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맞닿는다. 예컨대 바로크 오보에 연주자가 국내에 없던 시절, ‘메시아’의 더블린 판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역시 여기에 있었다. 나는 이 점이 바흐 시대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바흐는 짧은 시간 안에 주일 예배를 위한 음악을 작곡해야 했고, 그 주에 가능한 연주자들을 기준으로 편성을 정했다. 호른 연주자가 있다면 호른을 쓰고, 오보에 하나뿐이라면 이에 맞춰 음악을 만들었다. 누군가 아플 경우, 해당 파트는 빠지기도 했다. 이상보다는 현실이, 계획보다는 조건이 먼저였던 셈이다.
지금 한국 고음악 연주자들의 실정은 대체로 비슷하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고음악 연주자의 풀은 여전히 한정돼 있으며, 특정 작품을 온전한 편성으로 구현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장벽이 따른다. 예컨대 바흐 ‘b단조 미사’의 경우, 바로크 호른과 바로크 트럼펫 연주자는 국내에서 구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다음 선택지는 일본 또는 유럽이 되는데, 이러한 선택은 곧 예산의 문제로 이어진다.
콜레기움은 어느덧 19년 가까이 이어져 왔다. 이토록 많은 어려움과 희생을 감수하는 가운데서도 결국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이렇게 어렵고 고된 음악을 왜 계속하는가?’
시립합창단에서 활동하는 많은 단원이 그곳에서는 얻기 어려운 ‘나는 어떤 음악가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이 자리에서 찾고 있다. 위대한 작품과 텍스트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서로를 다잡는다. 그 기쁨과 열매를 함께 음악으로 나누는 것, 그것이 이 합창을 계속하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이 되기에 각자가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을 걸고 이 연주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정리·글 유내리 기자
RECOMMEND
지휘자 김선아가 추천하는 작품별 명반
헨델 ‘메시아’
Harmonia Mundi HAF890149899
윌리엄 크리스티(지휘)/레자르 플로리상(합창)/바바라 슐리크(소프라노)/안드레아 숄(카운트테너)마크 패드모어(테너)/네이선 버그(베이스) 외
하이든 ‘천지창조’
Deutsche HM 88697959522
토마스 헨겔브록(지휘)/발타자르 노이만(합창)/시모네 케르메스(소프라노)/스티브 다비스림(테너)/요하네스 마노브(바리톤)/로키 정(베이스) 외
바흐 ‘마태 수난곡’
BIS BIS2500
스즈키 마사아키(지휘)/바흐 콜레기움 재팬(합창)/아키 마수이(소프라노)/다미엔 기용(카운터테너)/벤자민 브룬스(테너)/토루 카쿠(베이스) 외
바흐 ‘b단조 미사’
Harmonia Mundi HMM90275455
라파엘 피숑(지휘)/피그말리온(합창)/쥘리 로제(소프라노)/루실 리샤르도
(메조소프라노)/에밀리아노 곤잘레스 토로(테너)/크리스티안 임믈러(베이스) 외
멘델스존 ‘사도 바울’
Harmonia Mundi HMC901584/85
필리프 헤레베헤(지휘)/콜레기움 보칼레 겐트(합창)/멜라니 디너(소프라노)/아네트 마커트
(메조소프라노)/제임스 테일러(테너) 외
김선아(1970~) 연세대 음대에서 오르간을 전공한 뒤, 뒤셀도르프 국립음대에서 합창지휘 디플롬을 취득했다. 이후 독일 필리푸스 교회에서 음악감독(칸토린)을 역임했다. 귀국 후 국립합창단 부지휘자를 비롯, 한국합창연구학회 회장·바흐솔리스텐 서울 지휘자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과 부천시립합창단 지휘자로 재직하며 바로크부터 동시대 레퍼토리까지 폭넓은 합창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PART 1 CONTEMPORARY
현대로 넘어와 더 다양해진 합창음악
교회를 벗어나 콘서트 장르로 진화하다

번스타인 ‘미사’(연출 고든 데이비슨) ©Fletcher Drake_John.F.Kennedy Center
아이러니하게도, 동시대의 교회 합창음악은 더 이상 교회를 위한 음악이 아니다. 바로크 시대에 영국에서 오라토리오가 콘서트홀에서 연주된 이후, ‘기도실’이라는 의미의 ‘오라토리오’는 교회보다 콘서트홀에 더 어울리는 이름이 되었다.
오늘날에는 라틴댄스로 흥이 차오르는 골리호프 ‘마가 수난곡’, 옥타비스트(극저음 베이스 성악가)가 심연으로 이끄는 구바이둘리나의 ‘요한 수난곡’, 판소리와 전통악기가 어우러지는 이지은의 ‘마르티레스’ 등 지역의 음악적 특징을 수용하며 확장되고 있다. 그리고 1824년에 베토벤 ‘장엄미사’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콘서트홀에서 연주된 이후, 라틴어 통상문을 사용하는 미사도 콘서트용 합창 레퍼토리가 되었다. 심지어 브람스 ‘독일 레퀴엠’, 브리튼 ‘전쟁 레퀴엠’, 번스타인 ‘미사’, 펜데레츠키 ‘폴란드 레퀴엠’ 등 자국의 언어를 도입하는 일탈도 보였다. 이렇게 교회 합창음악은 교회를 벗어나 콘서트 장르로서 빠르게 진화했다.
새로운 연출이 만든 새로운 고전
그런데 앞서 언급한 곡 중 번스타인 ‘미사’는 독특해 보인다. 자국의 언어뿐만 아니라 대중음악도 포함되었으며, 오라토리오와 같이 배역도 지정되어 있고 심지어 연출도 지시되어 있다. 이에 따라 1971년 워싱턴D.C.에서 있었던 초연 무대에서는 고든 데이비슨(1933~2016)의 연출과 엘빈 에일리(1931~1989)의 안무로 뮤지컬처럼 공연되었다. 이렇게 연출이 설정된 합창 공연을 ‘합창극’이라고 한다. 합창극은 작곡 당시 고려되지 않았더라도 무대화하는 과정에서 구상될 수 있다.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으로 위촉되어 작곡된 오스카 스트라스노이(1970~)의 오라토리오 ‘루터’도 음악 작품 자체에 연출적 요소가 많지는 않지만, 연출가 안드레아스 모렐(1958~)은 독일 할레에서 열린 초연 무대에 루터, 교황, 천사 등의 배역을 공간적으로 배치하여 시각적 드라마를 만들었다.
이렇게 교회 합창음악은 합창극을 통해 예술적 확장을 꾀했고, 기존 작품을 극화하는 시도 또한 큰 흐름이 되었다. 특히 배역이 있고 극적 요소가 풍부한 음악은 비교적 접근하기가 수월한데, 바흐의 수난곡이 그 예다. 이를 간파한 부소니(1866~1924)는 1921년에 이 곡들을 오페라처럼 공연할 것을 제안했고, 이 제안은 피터 셀라스(1957~)의 연출로 2010년에 ‘마태 수난곡’이, 2014년에 ‘요한 수난곡’이 베를린에서 실현되었다. 예수의 고난을 담은 원작의 내용을 따르면서 상징화된 연기를 보여준다. 셀라스는 2016년 LA에서도 오를란도 디 라소(1532~1594) 작 ‘베드로의 눈물’에서 두 팔을 내밀고 천천히 다가가는 단순한 연출로 베드로의 고뇌와 참회, 그리고 위로를 감성적으로 구현하는 합창극을 선보였다.
미사와 같이 극적 시나리오가 없는 경우는 무대를 입체적으로 구성하는 방향으로 접근한다. 201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제임스 다라(1984~)의 연출로 무대에 올려진 베토벤 ‘장엄미사’가 그 예다. 멀티미디어와 무대 미술, 합창과 독창자의 공간적 배치, 다이내믹한 조명은 콘서트홀을 역동적이고 환상적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화려한 연출, 우주 배경의 실험 무대도 가능
원작의 내용과 다른 연출을 설정하는 ‘레지테아터’도 주목받고 있다. 연출가 클라우스 구트(1964~)가 2009년에 빈에서 발표한 헨델 ‘메시아’ 연출은 복도·방·파티·장례식장 등 거대한 무대장치가 회전하면서 외도·마약중독·사업 실패·자살 등 삶의 어두운 면을 비춘다. 목사가 등장하여 말씀을 전하지만, 모두가 외면하며 상실 속에 머문다. 메시아를 부르면서도 구원을 외면하는 현실적 아이러니다.
로버트 윌슨(1941~2025)도 ‘메시아’(모차르트 판본)에 새로운 연출을 불어넣어 2020년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선보였다. 하얗게 분장한 가수들, 빙산과 우주인 등 상징적 캐릭터, 빛에 의한 명암의 대비, 특유의 청색 톤 등으로 초현실적 미장센을 만들었다. 윌슨은 2015년에도 아르보 패르트(1935~)의 네 작품을 묶은 연출 작품 ‘아담 수난곡’으로 화제를 모았다. 빛으로 만드는 청색 이미지와 그림자, 그리고 극도로 절제된 슬로 모션은 시간을 왜곡하고 명상의 침잠으로 이끈다.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열린 초연에서는 관현악단과 합창단을 객석 뒤와 측면 높은 곳에 배치하고 소리가 위에서 내려오도록 하여 종교적 숭고함을 느끼도록 한 것도 주목할 점이다.
브람스 ‘독일 레퀴엠’에 붙인 요헨 잔디히(1968~)의 ‘휴먼 레퀴엠’도 화제를 모은 연출 작품으로, 2021년 베를린 초연 후 세계 여러 곳에서 공연 중이다. 피아노 주위에 둘러앉은 관객 사이에 합창단이 걸어 다니기도 하고 하늘에서 내려온 그네를 타면서 합창을 부른다. 정해진 배역도 드라마도 없지만, 죽음과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상징적 행동으로 공유한다. 이러한 레지테아터는 원작과 연출의 의도 차이가 있기에, 이를 수용하는 데 있어서 관객들의 사회적 배경과 문화적 경험이 큰 변수가 된다.
무용이 함께하여 종합 예술로 거듭나다

LA 마스터 합창단 ‘베드로의 눈물’(연출 피터 셀라스) ©Tao Ruspoli_Marie Noorbergen
합창과 독창에 무용이 함께한다면 무대는 더욱 역동적으로 변모한다. 2016년에 발표된 크리스티안 슈푸크(1969~) 연출과 안무의 베르디 ‘레퀴엠’은 그 대표적 작품으로서, 우리 시대의 종합 예술로 큰 찬사를 받았다. 취리히 오페라 발레의 초연 이후 베를린 슈타츠오퍼의 합창단과 발레단,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핀란드 국립발레단 등이 동 작품을 무대에 올렸고, 올해에는 퀸즐랜드 발레단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는 등 합창단과 발레단의 합동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은 2021년에도 암스테르담에서 하이든 ‘전시(戰時) 미사’로 더욱 과감한 시도를 선보였다. 바르보라 호라코바 졸리(1982~)의 연출과 후안호 아르케스(1977~)의 안무는 합창단의 공간적 배치와 독창자의 연기에 발레가 가세하고 역동적 조명으로 무대 위에서 상상 속 판타지를 눈앞에 펼쳐놓았다. 심지어 자니브 오론(1975~)의 전자음악까지 추가하여 우리 시대의 작품으로 전환시켰다. 2018년 프레드릭 웨이크-워커가 연출한 ‘메시아’에서 한 명의 무용수와 독창자들이 함께 연기하는 융화된 무대도 흥미롭다. 이러한 흐름은 영역의 확장과 장르의 융합 등의 창의적 시류를 타고 지속될 전망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융합을 통한 혼종성보다는 각 분야의 특징을 존중하고 강화하는 공존을 지향하고 있다. 실험적 참신함이 부족해질 수 있는 우려는 있지만, 예술가가 오랫동안 닦아 온 기량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물론 예술의 흐름을 하나의 트렌드로 짚을 수는 없다. 교회 합창음악의 참신한 변신을 응원하며, 예상치 못한 무대를 기대한다.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PART 1 INTO THE WORLD
3월, 유럽에서는 어떤 공연들이 오를까?
종교와 예술, 공동체의 이상을 수놓는 시간

맨체스터 대성당 ©2025 Tom Bowles
사순절과 부활절을 전후로 유럽 도시들은 특별한 분위기에 들어선다. 일상의 분주한 흐름과는 분명히 다른, 더 느리고 깊은 호흡. 수난과 죽음, 침묵과 기다림, 그리고 부활과 재탄생이라는 거대한 서사를 음악으로 다시 살아내는 시간이다. 이 시기 펼쳐지는 공연들은 단순 연례행사가 아니다. 종교와 예술, 공동체의 이상을 수놓는 의식이다.
바흐 수난곡, 전통과 확장의 가치를 지키다
수 세기 역사의 유럽 교회와 성당에서 바흐의 수난곡은 하나의 전통으로 간직돼 왔다. 사순절과 성금요일에 맞춰 반복되는 이 음악은 교회력에 속한 일정이며, 예배의 일부로 기능한다. 그 대표적인 장소가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다. 바흐는 삶의 마지막 20여 년을 이곳에서 보내며 수많은 교회음악을 창작했고, ‘마태 수난곡’과 ‘요한 수난곡’ 역시 이곳의 성금요일 예배를 위해 쓰였다.
그가 칸토르로 봉직했던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은 1992년부터 매주 토요일 바흐의 칸타타 전곡을 교회력 순서에 따라 연주하며, 교회음악의 시간을 끊임없이 이어오고 있다. 이들은 사순절의 음악 전통을 오늘날까지 계승하며, 올해 성금요일(4.3)에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함께 ‘요한 수난곡’을 올려 엄숙한 묵상의 시간으로 이끈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3.31)과 맨체스터 대성당(4.3)에서도 사순절(2.18~4.2)마다 바흐 수난곡의 독일어 가사가 울려 퍼진다.
언어는 달라도, 바흐 음악이 지닌 극적인 서사와 정서는 예수의 수난과 부활 이야기를 전하기에 충분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연주는 오랜 전통의 성당 합창단과 더 잉글리시 콘서트, 맨체스터 바로크 같은 시대연주 앙상블이 함께 맡는다. 시대악기와 시대연주라는 선택은 스타일이라기보다, 작품이 태어난 맥락을 존중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예배 음악의 흐름 속에서 수난곡은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는다.
같은 시기, 바흐의 수난곡은 종파와 국경을 넘어 더 넓은 관객을 향해 움직인다. 앙상블들은 마치 순례자처럼 유럽 전역을 횡단하며 이 음악의 보편성을 전한다. 고통과 슬픔, 배신과 두려움 같은 인간적인 감정으로 가득한 수난곡은 이 순례자들의 연주를 통해 종교적 배경과 관계없이 모든 청중에게 닿는다.
스즈키 마사아키와 네덜란드 바흐 소사이어티(3. 21~4.4)는 네덜란드 곳곳으로, 몬테베르디 합창단과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는 바르셀로나(3.6), 런던(3.10), 부다페스트(4.3)로 이어지는 여정을 택한다. 독일 합창 전통을 계승한 바흐 아카데미 슈투트가르트(4.4)는 루체른에서, 계몽시대 오케스트라와 암스테르담 카펠라(3.26~4.4)는 네덜란드와 프랑스 각지에서 각자의 수난곡을 선보인다. 이 순례의 무대는 교회일 수도, 콘서트홀일 수도 있지만, 전달되는 메시지는 같다. 수난곡은 예배 음악이면서 동시에, 수 세기가 지나도 변함없이 유효한 인간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가족이 함께 보는 공연들
사순절과 부활절의 음악 전통은 유럽 각지의 아마추어 합창단과 교회 공동체에서도 흐른다. 이는 이 전통이 얼마나 깊이 일상 문화로 안착해 있는지를 보여준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는 지역 기반의 어린이·청소년 합창단과 시대연주 앙상블이 함께 ‘마태 수난곡’(3.22)을 올리며, 공동체와 교회가 음악 전통을 스스로 계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카를스루에에서는 세계 의사 오케스트라가 의료 봉사와 음악을 결합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태 수난곡’(3.6)을 연주하며, 음악이 공동체의 치유와 연대의 언어가 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네덜란드 남부의 아마추어 합창단인 켐펜 합창단은 2005년부터 독자적인 수난곡 공연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부활절을 앞둔 수요일(4.1)에는 외르스호트 바실리카에서 ‘마태 수난곡’ 전곡을 연주하고, 그보다 앞선 월요일에는 합창 중심의 주요 장면만 발췌한 축약 버전을 선보인다. 이 공연에서는 복음사가가 서사를 들려주고, 소프라노가 잘 알려진 아리아를 노래하며,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각자의 악기에 얽힌 이야기를 직접 소개한다. 이러한 구성은 특히 가족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며, 바흐 음악을 교육적이면서도 친근한 경험으로 확장한다.
부활절 페스티벌의 매력

바덴바덴 페스티벌 극장 ©Festspielhaus Baden Baden/Andrea Kremper
부활절은 오케스트라와 페스티벌에게도 특별한 계절이다. 정기 시즌의 일상에서 벗어나, 음악적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활과 재탄생이라는 서사가 더해지며, 음악 세계의 새로운 질서를 제안하고자 하는 움직임에 동력을 제공한다. 부활절 페스티벌의 양대 산맥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독일 바덴바덴 부활절 페스티벌은 올해 각자의 방향성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낸다.
잘츠부르크 부활절 페스티벌(3.27~4.6)은 12년 만에 귀환한 베를린 필하모닉과 새로운 출발을 알린다. 베를린필은 축제 창설 당시 카라얀이 선택했던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사이클로 회귀한다. ‘라인의 황금’ 새 프로덕션을 중심으로, 쇤베르크의 미완성 오페라 ‘모세와 아론’, 그리고 하이든의 ‘천지창조’가 축제의 세 축을 이룬다. 서로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한다는 공통의 서사를 공유한다. 특히 연출가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라인의 황금’을 재난 이후의 세계, 새로운 종교와 공동체의 탄생이라는 현대적 은유로 확장한다. ‘모세와 아론’에서는 12음 기법으로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연 쇤베르크의 창조적 정신을 오늘날에 이입한다.
한편, 베를린필이 떠난 바덴바덴 부활절 페스티벌(3.28~4.6)에는 클라우스 메켈레와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요아나 말비츠와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라는 젊은 에너지가 수혈된다. 신선하고 실험적인 예술의 장을 표방해 온 축제는 ‘다음 세대’라는 키워드를 다시 한 번 전면에 내세운다. 오페라 지휘계의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말비츠는 바그너 ‘로엔그린’과 브리튼 ‘전쟁 레퀴엠’을, 메켈레는 바흐 ‘마태 수난곡’, 말러 교향곡 5번,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을 지휘한다. 독일 국립 청소년 오케스트라, 국립 재즈 오케스트라와의 만남은 전통 레퍼토리를 미래의 언어로 다시 묻는 시도다. 잘츠부르크가 거대한 신화와 전통에 응답한다면, 바덴바덴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선언한다.
글 박찬미(독일 통신원)
PART 1 RECORDINGS
믿고 보는 교회 합창음악 실황 영상물
시대연주부터 다양한 협연까지, 시공간을 초월한 체험
이른바 영상 전성시대이다. 우리는 이제 교회 합창음악을 ‘듣는’ 차원을 넘어 ‘보는’ 예술로 만난다. 연주장소인 성당 내부로 스며드는 빛과 공기, 선명한 화질에 담긴 연주자 간의 호흡을 보며 미사와 레퀴엠 감상은 시공간을 초월한 체험으로 확장된다. 바흐에서 베르디, 젠킨스에 이르기까지, 이 영상물들은 신앙과 역사, 영상과 음질의 기술력이 만나 교회 합창음악 감상의 현주소를 새롭게 증언한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바흐 ‘b단조 미사’
노장의 바흐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지휘)/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드레스덴 실내합창단/크리스티나 란트샤머(소프라노), 엘리자베스 쿨먼(알토) 외
블롬슈테트(1927~)의 기념비 같은 영상물로, 2017년 6월 바흐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독일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에 오른 ‘b단조 미사’ 실황이다. 십수 대의 카메라는 무대와 관객들을 세밀하게 그려내어 현장성을 더한다. 제19대 카펠마이스터로 재직했던 악단과 함께 하는 노장은 넉넉하게 템포를 잡아간다. 이지적이면서도 감정적 고양을 배제하지 않는 해석. 논비브라토를 강조하는 원전연주보다 모던악기에 풍부한 비브라토를 사용하는 방식을 취하면서도 파트간의 밸런스 유지와 다른 파트들의 소리도 명료하게 들리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다. 젊은 성악가들을 통해 음악에 생기를 불어넣는 그의 연주는 현장감을 생생하게 구현하는 악상투스 레이블의 순도 높은 녹음과 화질로 인해 더욱 빛난다.
Accentus Music ACC10415
모차르트 ‘레퀴엠’
승마와 음악의 만남
민코프스키(지휘)/루브르의 음악가들/바르타바스(승마연출)/베르사이유 승마 아카데미/제니아 퀴메이에르(소프라노), 줄리앙 베흐(테너) 외
2017년 1월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주간에 펠젠라이트슐레에 오른 민코프스키와 ‘루브르의 음악가들’의 실황물이다. 승마를 예술로 승화시킨 바르타바스(1957~)가 연출한 이 공연을 위해 펠젠라이트슐레 무대에는 말이 뛰어다닐 수 있게 흙이 깔렸다. ‘레퀴엠’에 맞춰 마상(馬上)의 기수들은 말의 속도와 연기를 감동적으로 선사한다. ‘아뉴스 데이’에서는 섬뜩한 해골이 마상에 올라 ‘레퀴엠’이 죽은 자를 위한 음악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펠젠라이트슐레 특유의 피부로 와 닿는 음향을 고스란히 맛볼 수 있다. 70분 동안 민코프스키와 연주자들의 대열 사이를 말들이 뛰어다녀도 현장의 잡음은 일체 들리지 않는다. 정말 놀라운 영상물이다.
Cmajor 741904
브람스 ‘독일 레퀴엠’
‘화질’과 ‘음질’에서 오는 감동
프란츠 뵐저 뫼스트(지휘)/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빈 악우협회 합창단/킨리 사이드(바리톤) 외
브루크너의 음악적 거점이었던 오스트리아 린츠 성 플로리안 성당의 풍성하고도 투명한 음향 속에 흐르는 ‘독일 레퀴엠’의 ‘듣는 맛’과, 성 플로리안 성당을 이루는 조각과 뵐저 뫼스트와 연주자들의 표정을 잡는 카메라 워크가 선사하는 ‘보는 맛’이 일품인 영상물이다. 2016년 8월 실황. 브루크너(1824~1896)가 생시에 오르간 연주가로 봉직했고 그의 시신이 안장되어 있는 성 플로리안 성당의 투명한 음향공간에 ‘독일 레퀴엠’의 장대한 형식미, 강력한 다이내믹 등을 거의 완벽하게 용해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린츠 브루크너 페스티벌 기간 동안의 실황으로, 린츠 태생의 뵐저 뫼스트는 마치 자신의 고향이라도 온 듯 하다.
1080p의 초고화질 영상, LPCM스테레오/DTS -HD 5.1의 오디오 옵션은 성 플로리안 성당에 앉아 있는 듯한 음향 환경을 제공한다.
Belvedere BVE08027
바흐 ‘b단조 미사’
노르트담 대성당의 아름다움
존 넬슨(지휘)/파리 체임버 오케스트라/노트르담 합창단/루스 지이작(소프라노), 다니엘 타일러(알토), 폴 앤뉴(테너), 디트리히 헨첼(바리톤) 외
레이블 ‘이데알 오디앙스’(idealeaudience)에서 바흐 ‘마태 수난곡’, 하이든 ‘천지창조’, 베토벤 ‘장엄미사’ 등을 내놓았던 존 넬슨의 지휘와 해석은 신중하다 싶을 정도로 ‘b단조 미사’ 속의 신앙심과 바로크 양식의 특징의 결합을 매만지고 다듬어 나간다. 2006년 3월, 파리 노트르담 성당 실황물이다. 노트르담 성당에서 음악회를 감상해본 경험이 없는 이에게도 적극 추천하고 싶은 영상물로, 바흐와 어울리는 내부의 광경을 선사할 수작의 영상물이다.
Idealeaudience 2073078
모차르트 ‘c단조 대미사’
모차르트 부자(夫子)의 종교음악
앤드류 맨즈(지휘)/카메라타 잘츠부르크/잘츠부르크 바흐합창단/카롤링 샘슨·마리안느 키엘란트(소프라노), 벤야민 브룬스(테너) 외
모차르트는 빈 시절(1781~1791)에 교회 합창음악을 별로 쓰지 않았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유작인 레퀴엠 K626이고, 그 외 ‘c단조 대미사’, 키리에 K341, 모테트 ‘아베 베룸 코르푸스’ K618 정도다. 그중 대미사는 1782년에서 1783년 사이에 작곡한 것으로, 레퀴엠과 더불어 모차르트 종교음악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영상물에는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성모호칭기도’, 모차르트 ‘c단조 대미사’가 담겼다. 2019년 8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
Belvedere BVE08058
베토벤 ‘장엄미사’
종교음악의 리허설 현장
프리더 베르니우스(지휘)/슈투트가르트 실내합창단/요한나 빙켈(소프라노) 외
합창지휘의 거장 프리더 베르니우스(1947~)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앞둔 2019년에 ‘장엄미사’ 음반을 발표했다. 이 영상물은 그때의 음반 녹음 과정을 담은 기록물로, 녹음 현장(2018년 바덴-뷔르템베르크의 알피르스바흐 성당/71분)과 녹음 준비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약 60분)가 수록되었다. 1968년 창단한 수족 같은 슈투트가르트 실내합창단과 함께 하는 연주는 베토벤의 내면적인 드라마를 최고조로 끌어낸다.
Naxos 2.110669
베르디 ‘레퀴엠’
애도의 음악과 춤
파비오 루이지(지휘)/취리히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합창단·발레단/크리스티안 슈푸크(안무) 외
‘레퀴엠’과 현대 발레가 만났다. 2016년 12월, 스위스 취리히 오페라하우스의 ‘레퀴엠’ 실황물이다. 크리스티안 슈푸크(안무)는 이 작품의 모티프를 베르디의 장례 행렬에서 가져왔다. 1901년 1월 27일, 87세로 일생을 마친 베르디는 20만의 대군중의 행렬과 마지막을 함께 했다. 파비오 루이지의 지휘가 만드는 음악은 슈푹이 빚은 춤만큼이나 대감동의 존재감을 발휘한다.
Accentus Music ACC20392
레비나스 ‘마크에 의한 수난곡’
아우슈비츠의 아픔
마르크 키소치(지휘)/로잔 샐니오케스트라/로잔 보컬 앙상블/마갈리 뢰거·마리오 그랑제(소프라노) 외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1906~ 1995)는 유대인의 입장에서 아우슈비츠와 홀로코스트를 사유한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이 오라토리오는 그의 아들 미쉘 레비나스가 루터의 종교혁명 500주년을 맞은 2017년에 이를 기념하고자 발표한 작품이다. 13세기 마크의 찬송가, 15세기 종교적 텍스트, 폴 셀란의 시 등에서 발췌한 고어·이디시어·아랍어·독일어 등의 다른 언어가 여러 성악진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온다.
BelAir BAC552
칼 젠킨스 ‘평화를 위한 미사’
평화에 대한 염원
칼 젠킨스(작곡·지휘)/평화를 위한 월드오케스트라·합창단/파울린 라만·발렌티노 월리츠크(낭송) 외
‘평화를 위한 미사’는 영국 작곡가 칼 젠킨스(1944~)가 영국 왕립병기창의 위촉을 받고 코소보 사태의 참상에서 모티프를 얻어 작곡한 작품이다. 평화를 바라는 작곡가의 바람을 위해 세상의 위대한 시와 고전 문구들이 노래의 가사가 되었다. 2018년 베를린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 실황물이다. 30개국에서 참석한 2,000명의 합창단은 초대형 첨단 전광판에 들어오는 전쟁 참상의 풍경과 함께 평화를 노래한다.
C Major 707604
PART 2 INTERVIEW
국내 교회 합창음악의 발전과 현황
우리 곁의 합창음악을 빚어내는 사람들
지휘자·성악가·연주자·작곡가에게 듣는 생생한 현장 이야기
관객 입장에서 마주하는 음악은 무대 위에서 연주가 펼쳐지는 그 순간에 한정되지만, 무대 위에 서는 당사자들은 그 한순간 가장 설득력 있는 연주를 선보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없이 많은 연구를 거듭한다. 그렇다면 그 중에서도 교회 합창음악을 빚어내는 과정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 4인의 기자가 지휘자·성악가·연주자·작곡가의 시선으로 무대 바깥의 현장을 들여다보았다
지휘자 민인기
경건성과 텍스트, 그 너머의 합창
합창지휘 전공 이래 20년 이상 국내 유수 합창단의 예술감독을 역임해 온 민인기(1962~)는 언제나 국내 합창음악의 저변 확장을 위해 힘쓰고 있다. 이러한 그의 관심 깊은 행보는 교회 합창음악에도 나타난다. 국립합창단의 단장 겸 예술감독으로서 작년 중에 드보르자크·브루크너·엘가의 ‘테 데움’과 푸치니 ‘영광의 미사’ 연주는 물론, 리스트 ‘미사 솔렘니스’ 국내 초연까지 이끌어 냈다.
교회 합창음악의 핵심적인 요소는 무엇인가?
첫째는 경건성이다. 이는 종교적 신앙의 유무를 넘어, 작품이 요구하는 태도에 연주자가 얼마나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비종교인이라 한들, 연주하는 순간만큼은 작품에 합당한 태도로 임해야 하며, 이는 ‘예술적 경건성’이라 칭할 수 있다. 둘째는 텍스트다. 교회 합창음악의 텍스트는 주로 성경에서 비롯되지만, 경우에 따라 성경 외 텍스트가 쓰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텍스트가 어떤 언어로 주어지든, 연주가 가사의 의미에 충실하게 귀결되느냐는 점이다. 연주자는 텍스트를 이해한 뒤 이를 바탕으로 성악적 소리를 구현해야 한다. 셋째는 교회력이다. 교회 합창음악은 고난주간·부활·성령강림절 등 절기의 흐름과 연결되며, 작품이 어느 기간 안에서 의미를 갖는지 이해하는 일은 선곡과 해석의 중요한 기준이다.
모차르트 ‘레퀴엠’, 헨델 ‘메시아’처럼 여러 판본이 존재하는 작품의 경우, 판본을 선택할 때 어떤 부분을 중시하는가?
판본을 선택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기준은 ‘정통성’이다. 같은 작품이라도 편집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원전에 얼마나 충실한 에디션인지에 따라 음악의 성격은 크게 달라진다. 특히 메트로놈 수치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의 ‘아다지오’나 ‘알레그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시대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전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신뢰할 만한 음악학자와 편집진이 참여한 전통 있는 출판사의 에디션을 우선적으로 검토한다. 판본 선택은 결국 ‘누가 어떻게 정리했는가?’를 책임 있게 판단하는 과정이다.
종교 유무가 작품 창작과 연주 몰입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는가?
영향은 분명히 있다고 본다. 다만 종교를 가지고 있든 그렇지 않든, 종교적 작품을 예술적으로 연주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신앙을 지닌 연주자가 자신의 체험과 믿음을 바탕으로 노래할 때 더 큰 감동이 생길 수는 있지만, 신앙이 없다고 해서 그 음악을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예술은 내가 경험한 현실만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와 알지 못했던 맥락을 마치 자신의 현실처럼 이해하고 표현하는 과정이라 본다. 배우가 살아보지 않은 삶을 설득력 있게 연기하듯, 합창 연주자 역시 자신과 다른 종교적 배경의 텍스트를 예술적으로 승화해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종교와 예술을 단순히 대비시키기보다는, 종교를 넘어서는 지점, 즉 ‘이상’의 가능성이 중요하다.
글 유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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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 ‘독일 레퀴엠’에 담긴 의미
레퀴엠이지만 죽은 이를 넘어 ‘이 땅에 남은 자’를 위로하는 음악이라는 점에서 깊은 공감을 이끈다. 7개 악장 중 3악장 ‘나의 끝을 알게 하소서’는 인간이 자신의 유한함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드는 음악으로, 삶과 죽음을 함께 성찰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도 각별하다. 흔히 사랑받는 4악장 ‘주의 장막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지’보다도, 존재론적 질문을 담은 3악장의 메시지에 유독 커다란 애착을 느낀다.
카운터테너 장정권
의미를 오롯이 전달하기 위한 공동체의 음악
카운터테너에게 교회 합창음악은 그 성부의 역사적 뿌리와 깊게 연관된 장르다.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의 교회 음악에 필수적인 성부였으며, 다수의 작품이 카운터테너의 음역을 전제로 작곡됐다. 연세대 교회음악과를 졸업하고 독일과 영국에서의 활동을 거친 장정권(1984~)에게 교회 합창음악과 연관된 특별한 순간이 많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카운터테너에게 교회 합창 음악이란?
카운터테너라는 목소리가 가장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는 음악이다. 많은 원전 연주에서 알토 파트를 카운터테너가 담당한다.
성악가이기에 솔리스트로 참여할 수도 있고, 합창 단원으로 오른 경험도 많겠다.
솔리스트로서는 바흐 ‘마니피캇’ BWV243, ‘마태 수난곡’ ‘요한 수난곡’, 헨델 ‘메시아’, 비발디 ‘글로리아’ 등을 불렀다. 합창단 일원으론 대학생 시절 팔레스트리나·빅토리아·버드의 미사곡부터 바흐·헨델의 수난곡, 모차르트·하이든·브루크너의 작품들까지 많은 작품을 다뤘다. 솔리스트가 내 목소리로 가사를 잘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면 합창, 특히 알토 파트는 화성의 색채를 결정하는 것이라 정확한 음정과 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헨델이 일했던 런던 성 조지 하노버 스퀘어 교회에서 연주한 경험이 있다고.
헨델 페스티벌 콩쿠르에서 청중상을 받으며, 2019년 런던 헨델 페스티벌 무대에 설 기회를 얻었다. 페르골레시의 ‘스타바트 마테르’를 연주했는데, 그 과정에서 세계적인 고음악 전문 소프라노 엠마 커크비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어떻게 노래할지를 깊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헨델의 자취가 남은 아름다운 교회에서의 이 연주는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다.
유럽에서 경험한 인상적인 합창 음악 문화가 있다면?
독일은 전 지역의 교회에서 절기에 맞춰 1년 내내 교회 합창음악이 연주되어 삶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전문 성악가뿐 아니라 오랜 시간 훈련된 아마추어도 함께 섞여 높은 완성도를 만든다. 영국은 소년 합창단을 중심으로 한 성부 구조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대규모 합창음악은 연출된 무대만 없을 뿐 오페라와 유사한 구성 요소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오페라는 목소리 뿐 아니라 ‘몸의 소리’를 통해 역할을 표현하는 반면 합창 음악은 오로지 목소리와 가사의 의미로 모든 것을 전달한다. 때문에 오페라처럼 큰 성량, 감정 전달에 집중하기보단 가사에 맞는 표현을 중요시 한다. 모든 성부가 통일된 자음과 모음, 호흡 처리를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종교 유무가 몰입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는지 궁금하다.
성서로 된 가사는 해석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스스로 기독교인이어서 텍스트의 배경을 조금 더 유연하게 이해한 적도 있는 것 같다. 종교 유무를 떠나 교회 합창 음악에서 가사에 대한 이해는 중요하다. 과장되지 않은 감정, 가사의 의미를 생각하며 단어와 단어의 연결성을 통해 음악이 주는 의미를 해석해야 한다.
출연이 예정된 교회 합창 음악 공연 일정이 있나?
샹떼자듀 합창단 정기연주회(4.2)에 바흐 알토 솔로 칸타타 BWV 170을 부르며 함께 한다. 12월에는 부천시립합창단이 무대에 올리는 헨델 ‘메시아’ 연주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글 허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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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레퀴엠’의 차별화된 악기 구성
푸가와 대위법을 적극 사용해 각각의 곡마다 차별화된 악기 구성을 보이는 작품이다. 익히 알려진 곡이지만, 위 특성에 주목하여 각 부분의 편성에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그리고 그 차이가 가사의 내용을 표현하는데 어떤 효과를 부여하는지에 집중하며 감상한다면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최윤정
감정이 아닌 언어의 전달을 위한 연주
바흐솔리스텐서울은 솔리스트·합창단·바로크 오케스트라를 포함하는 단체이며, 바로크 시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이 중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악장인 최윤정(1977~)은 라이프치히 국립음대에서 바로크 바이올린 최고연주자 과정을 거치며 바흐·헨델·북스테후데 등 풍부한 바로크 교회 합창음악 연주 경험을 토대로 ‘언어’를 위한 악기 소리를 연구해 온 연주자다.
교회 합창음악을 연주할 때 악장으로서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세속 레퍼토리에서는 음악의 구조나 극적인 흐름이 우선되는 경우가 많지만, 교회 합창음악에서는 ‘가사의 방향’이 먼저 정해진다. 악장으로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도 언어에 대한 이해, 그리고 오케스트라와 합창이 ‘같은 문장’을 말하고 있는지의 여부이다. 지휘자 또한 ‘표현’보다는 ‘가사의 전달’을 위한 연주를 주문하곤 한다. 바로크 시대의 교회음악은 기본적으로 설교와 성서 낭독의 연장선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악기는 말을 드러내기 위한 기능적 도구였다. 그 역사적 전제를 음악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유하기 위해 악기의 아티큘레이션, 프레이즈 길이를 합창의 호흡과 맞추는 데 에너지를 쏟는다.
현대 작품과 비교해서 바로크 시대 교회 합창음악이 가지는 매력은?
현대 악기로 연주되는 교회 합창음악 대작들은 강한 지속음과 음향의 밀도로 신앙적 ‘감정’을 고조시키는 반면, 바로크에서는 소리가 비교적 짧게 머물면서 ‘단어와 단어 사이의 의미’를 또렷하게 드러낸다. ‘선언’이라기보다는 ‘낭독’에 가까운 인상이다. 주장을 위한 음악이 아닌, 이미 주어진 말을 조심스럽게 읽어 내리는 미학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바로크 교회음악이 만들어진 시기는 종교개혁 이후로, 신앙의 내용이 더 많은 사람에게 직접 전달돼야 했던 때이다. 결국 그 시대의 음악은 공동체가 같은 내용을 함께 듣고 이해하도록 돕는 역할이었으며, 장식음조차도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는데, 이런 특성들이 고유의 매력을 불러일으킨다.
현재 고악기를 사용 중인데, 고악기의 음색이 바로크 교회 합창음악에서 어떤 힘을 부여하는가?
고악기는 특정 시대의 언어에 가장 가까운 선택지다. 지속음이 길지 않은 특성이 있는데, 이 특성이 바로크 교회음악에서 텍스트를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다만 고악기가 항상 정답은 아니다. 합창의 성격과 연주공간을 고려하다보면 경우에 따라서는 현대 악기가 더 설득력을 가질 때도 분명히 있다. 중요한 건 도구 자체보다, 그 선택이 ‘음악의 언어와 얼마나 잘 맞아 떨어지는가’이다.
종교의 유무가 교회음악 연주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가?
기술적인 접근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집중의 방향은 확실히 달라진다. 세속음악에서는 청중을 향해 에너지가 확장되는 느낌이라면, 교회음악에서는 늘 텍스트 쪽으로 중심이 돌아온다. 그 텍스트를 이해하고 느끼는 감정의 범위가 다르다보면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
글 최성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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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음악의 대표작, 북스테후데 ‘멤브라 예수 노스트리’
예수의 수난을 그린 7개의 칸타타 연작으로, 내용은 예수의 발·무릎·손·옆구리·가슴·심장·얼굴 순서로 구성된다. 사순절과 성주간의 정서를 내밀하고 절제된 언어로 담고 있으며, 화려하지는 않지만, 바로크 교회음악이 텍스트와 음악의 관계를 어떻게 다뤘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이다.
작곡가 이건용
서양음악의 전통에 불어넣은 우리 언어의 숨결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묵상하는 시기, 오선지 위에 영성의 설계를 그려 넣는 이가 있다. 서울대와 독일 프랑크푸르트 음대에서 체득한 서양음악의 전통 위에 우리네 언어의 숨결을 불어넣어 온 작곡가 이건용(1947~)이다. 40여 년간 대한성공회 전례 현장을 지켜온 그에게 교회 합창음악의 본질을 물었다.
작곡가로서 정의하는 교회음악의 핵심은?
교회음악은 기본적으로 실용 음악이다. 순수 예술적 기교보다 전례와 종교적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 바흐의 걸작들이 교회의 위촉으로 탄생했듯, 나 역시 성가대를 염두에 두고 곡을 만든다. 예술적 흥취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의 고백을 담아내는 장르적 특수성은 작곡가에게 제한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명확한 지향점을 제공하는 강점이 된다.
합창만이 수행할 수 있는 공동체적 기능과 미학적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인간의 목소리는 어떤 악기보다 가사의 메시지를 여실히 전달한다. 합창은 수백,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가장 오래된 장르로, 그 대위법적 전통은 작곡가에게 든든한 자산이자 동시에 극복해야 할 과제가 된다. 합창은 공동체가 한 목소리로 고백하게 함으로써 언어 너머의 영역을 끄집어내는 강력한 영적 도구다.
성서의 신학적 뉘앙스와 한국어의 운율을 선율로 녹여내는 노하우가 있다면?
언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중요하다. 언어는 화성과 전조, 선율의 굴곡까지 결정한다. 작곡가가 텍스트에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하면 음악도 일상 언어 수준에 머물고 만다. 우리말 특유의 정서를 음악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기술을 넘어 언어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체험의 영역이다.
서양음악의 전통을 한국어 정서로 구현할 때 가장 고려하는 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독일어 버전으로 개작할 당시, 언어 순서에 맞춰 곡조를 전부 바꿔야 했다. 그때 ‘자기 언어’로 직접 고백하고 표현하는 것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우리말로 불러야 그 뜻이 온전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텍스트를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 담긴 신학적 의미를 우리만의 정서로 끌어올리는 것에 집중한다.
종교적 서사를 다룰 때 경계해야 할 매너리즘과 지켜야 할 가치는?
실용적 목적이 때로는 매너리즘으로 작용한다. 공동의 방식을 따르는 것은 필요하지만, 거기에만 머물면 예술적 생명력을 잃는다. 자기만의 영적 체험과 예술적 혼이 작품에 투영될 때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 실용성 안에서도 창작자로서 영성을 지키며 예술적 고양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교회음악가가 지켜야 할 핵심 가치다.
사순과 부활의 시기를 지내는 현대인들에게 전통적 문법을 계승한 교회음악은 어떤 의미가 있나?
교회음악의 뼈대는 ‘회중 찬송’에 있다. 절기마다 고통과 환희를 음악으로 체험하며 초대 교회부터 이어온 신앙적 전통과 그리스도의 생애에 직접 참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은 현대인들에게 시대를 초월한 깊은 신앙적 연대감을 제공한다.
글 홍예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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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텍스트의 미학, 이건용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한국어 성서 텍스트의 미학을 극대화한 작품. 2007년 초연 이후 독일 만하임 등 해외에서도 현지어 버전으로 연주되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서양의 수난곡 전통을 따르면서도 한국어의 억양과 정서를 치밀하게 반영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고난의 서사에 깊이 몰입하게 한다.
PART 2 PREVIEW
국내 공연장을 수놓을 교회 합창음악
친숙한 레퍼토리의 3월을 지나 연중으로 확장되는 스펙트럼

서울모테트합창단
교회력에서 3월이 갖는 의미만큼, 3월 한달 내내 무대를 수놓는 다양한 교회 합창음악의 향연이 이어진다. 3월 초 존 엘리엇 가디너가 지휘하는 바흐 ‘b단조 미사’는 그 향연의 시작이며, 이튿날에는 모차르트 ‘c단조 대미사’와 ‘레퀴엠’이 한 자리에 오른다. 이후에는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의 바흐 ‘마태 수난곡’을 통해 사순절의 의미를 되새긴다. 이후 서울오라토리오도 모차르트 ‘레퀴엠’ 연주를 통해 대열에 합류하며, 서울모테트합창단은 모차르트 ‘c단조 대미사’와 모테트 ‘기뻐하라 찬미하라’를 함께 선보인다.
3월이 지나면, 앞서 언급된 작품들처럼 익숙하게 알려진 작품들과 달리,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뒤를 잇는다. 대전시립합창단에서 선보이는 헨델의 오라토리오 ‘사울’은 성경 속 인물인 사울 왕을 다룬 작품이다. 그의 아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이후의 내용이 전개되며, 다윗의 업적으로 인해 민중들의 관심이 그에게만 쏠리자, 아들을 질투한 나머지 그를 죽음으로 몰려고 애쓰던 사울이 파멸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샹떼자듀 합창단이 선보이는 풀랑크의 ‘수난절을 위한 4개의 모테트’도 눈에 띈다. 6주간의 사순절 중 마지막 주에 속한 수난절을 모티프로 쓰인 작품으로 ‘두려움과 공포’로 시작하여 성금요일·토요일·목요일의 아침 기도 응답송인 ‘내가 택한 포도나무’ ‘어둠이 퍼졌다’ ‘내 영혼 슬퍼하며’로 이어진다. 해당 공연에는 바흐의 교회 칸타타 BWV170(‘만족스러운 안식이여’)·106(‘하느님의 시간이 최상의 시간이로다’)·4(‘그리스도는 죽음의 속박에 있었네’)도 함께 오른다.
한편, 성남아트센터의 마티네 콘서트에서는 올해 ‘독일, 음악의 숨’을 주제로 독일 음악가들의 작품을 조명하는 가운데, 교회 합창음악 두 곡이 포함된다. 9월에 오르는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은 라틴어 가사로 된 미사 전례문을 따르는 보통의 ‘레퀴엠’과 달리, 독일어로 번역된 성서에서 작곡가가 직접 애도와 진혼에 어울리는 7개의 구절을 선정한 작품이다. 성탄이 있는 12월에는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가 연주된다. 크리스마스 당일부터, 교회력 상으로 1월 6일인 공현대축일까지 이어지는 6부 구성의 작품이며, 이날은 그 중 1·5·6부를 발췌하여 선보일 예정이다.
글 최성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