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필자는 이자벨레 파우스트에 대하여 레퍼토리에 따라, 청중의 연령에 따라 찬반으로 갈릴 개연성이 높은 음악가라고 지적한 바 있다. 2007년 한 음악 전문지에 필자는 파우스트가 벨로흘라베크가 지휘하는 프라하 필하모니아와 협연한 베토벤의 협주곡 녹음(HMC 901944)에 대하여 “음악을 지나치게 옥죄는 그녀의 베토벤에 무작정 손을 들어줄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투명한 세련미와 긴박감 넘치는 공격적인 해석을 선호하는 애호가를 위한 베토벤”이라고 쓴 바 있고, 본지 2011년 5월호에서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녹음(HMC 902075)에 대하여 만점에 가까운 평점을 주면서도 “나이 지긋한 중년 애호가라면 작품 전편을 통하여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그녀의 해석을 두고 유연성이 부족하다고 투덜댈 수도 있을 것 같다”라는 사족을 붙여놓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음악으로 오면 그녀에 대한 평가는 천양지판으로 달라진다. 예를 들어 레토냐가 지휘하는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와 협연한 졸리베의 협주곡(1972) 녹음(HMC 901925)에 대하여 필자는 “예리함과 투명함, 미려함과 섬세함 등이 팽팽한 균형을 이룬, 탐미성이 흘러넘치지만, 절제의 미덕을 소홀히 여기지 않는 역동적인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장년층 애호가들도 이제는 그녀에 대한 시각을 수정할 때가 된 듯하다. 아바도와 협연한 베토벤과 베르크의 협주곡(HMC 902105)과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2집(HMC 902124) 이후 올해 초에 등장한 베버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피아노 4중주 녹음에서 그녀는 살풍경한 정교함에 유연한 시각으로 통합한 원숙미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1972년생으로 40대 초반에 들어섰으니 이제 그럴 때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베버 자신이 ‘아마추어’를 위한 작품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 여섯 곡의 소나타에서 파우스트는 ‘베버 선생! 그게 아니야!’라고 야유라도 하는 것처럼 신선하고 대담하며, 생동감 넘치는 해석으로 이들 작품의 진면목을 절묘하게 이끌어내고 있다. 모차르트에 대한 친연성에 베버 특유의 그로테스크를 적당히 버무려놓은 듯한 바이올린 소나타와 피아노 4중주에서 그녀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강온(强穩)과 완급(緩急)의 긴박한 대비 속에서 떠오르는 정연함이다. 이럴 때 정묘함과 우아함, 그리고 강렬함과 반듯함이 팽팽한 균형을 이루면서 원숙미가 살아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영국의 평론가 제프 브라운은 2013년 1월 19일자 ‘더 타임스’ 지에서 “(마치 권투선수처럼) 더킹과 위빙을 하면서… 포켓용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는 모습은 정말 멋지다”라고 쓴 바 있는데, 그의 지적은 파우스트의 해석에 대하여 정곡을 찔렀다는 느낌이 든다. 마지막으로 철저한 계산을 바탕으로 파우스트가 구사하는 변화무쌍한 해석을 유려한 선율선과 질박한 음색으로 뒷받침하는 멜니코프의 피아노 연주 또한 특필할 만하다. 보리스 파우스트(비올라)와 볼프강 에마누엘 슈미트(첼로)가 참여한 피아노 4중주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매력 넘치는 작품이다. 한마디로 이제 장년기에 접어든 신세대 음악가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차원의 세련미의 실체를 보여주는 음반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 박성수(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