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가야금 연주자가 꿈이셨죠. 생활고로 꿈을 이루지 못하셨지만 어머니 덕분에 저는 열 살에 가야금이라는 악기를 만났고, 열두 살에는 판소리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음악은 이제 ‘사는 이유’가 되었네요. 조금 거창한가요? 그렇지만 노래와 소리, 그리고 저를 따로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노래를 하고 있을 때, 제 몸과 마음 구석구석이 살아있다고 느끼거든요. 예술에 대한 확신은 제가 하고 있는 음악에 대한 진정한 아름다움과 신비를 찾는 순간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판소리는 길어도 길어도 끝이 없는 우물과도 같아요. 판소리야말로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감정들을 노래에 담아 표현할 수 있는 장르 가운데 하나죠. 저는 그중에서도 ‘심청가’를 좋아합니다. 눈이 먼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빠져 몸을 바치는 내용의 ‘심청가’는 무척 짙은 색의 감정을 드러내는 음악이거든요. 내용과 감정의 진지함과 판소리 특유의 해학이 담겨 있으니, 멋이 있지요. 판소리에서는 ‘목이 좋다’라는 표현이 있어요. 판소리를 하기에 목소리가 튼튼한지 약한지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저는 ‘목’이 좋은 편은 아니에요. 목소리가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을 때 때로 절망하지만, 약한 제 목은 타고난 사람들을 능가해야 하는 노력을 필수적으로 요구합니다. 그래도 성실하게 소리꾼으로서 걸어가고 싶습니다. 음반을 내고, 그 음반이 여러 사람들에게 힘을 주곤 한다는 소감을 전해들을 때 저는 힘을 얻습니다. 그것은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인 제게 굉장히 큰 의미이니까요. 행복은 온전한 나를 발견했을 때의 성취감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요? 올해는 4월에 북유럽의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로 잠시 공연을 떠납니다. 전통 판소리의 음악 형식을 토대로 그 나라의 문학을 노래로 만드는 작업을 작년에 시작했거든요. 다시 초대를 받아 4개 도시에서 공연을 하게 됩니다. 하반기에는 모노드라마 형식의 판소리극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고요. 판소리를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저도 기대가 됩니다.
박인혜는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와 중앙대학교 국악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전문사과정에 있다. 성창순·안숙선·정회석·한승석을 사사했으며, 2008년 박동진 판소리 명창·명고대회 일반부 장원, 2012년 러시아 국제민속음악콩쿠르 1등, 같은 해 리투아니아 국제연극축제에 참가해 판소리를 소개하고 페스티벌 최고상을 받았다. 2007년에 ‘여성민요그룹 아리수’를 결성해 1·2집 음반 작업에 참여했으며, 2011년 ‘놀애 박인혜 창작음반 청춘은 봄이라’ 음반을 발매했다. 전통음악을 향해 진중하게 발휘하는 정통성과 국악의 대중화에 앞장서는 특유의 감성으로 201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차세대예술가에 선정됐으며,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이수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