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나 레베카의 모차르트 아리아집

새파란 대형 신인의 등장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2월 1일 12:00 오전

오페라평론가 이용숙은 한 오페라 동호회 모임에서 지난해 최고의 순간은 8월 중순 페사로의 로시니 페스티벌에서 프랑스어로 공연된 ‘기욤 텔’을 본 것이라고 말했다. 엄청난 난역인 아르놀드의 수많은 고음을 전혀 피곤함 없이 소화한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도 놀라웠지만, 상대역 마틸드를 노래한 젊은 소프라노 마리나 레베카의 발견도 감격스러웠다는 것이다. 마리나 레베카는 10월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콘체르탄토 형식의 ‘라 트라비아타’에 초청되어 한국 팬에게도 소개될 기회가 있었다. 필자는 일정상 관람하지 못했지만 지켜본 지인들에 의하면 커튼콜에서 거의 모든 관객이 기립박수로 환호했는데 그 모든 찬사가 비올레타를 부른 마리나 레베카를 향한 것이었다고 한다. 여기 소개하는 음반이 바로 그녀의 첫 독집이다.
우선 마리나 레베카에 대한 기본 정보를 모아보자. 젊은 여성 가수답게 나이를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1980년경에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 출생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요즘 라트비아 출신 가수들이 얼마나 맹활약하고 있는가. 세계 최정상급 현역가수만 꼽아봐도 메조소프라노의 지존인 엘리나 가랑차, 뛰어난 연기력까지 갖춘 대형 소프라노이자 천재 지휘자로 급부상한 안드리스 넬손스의 아내이기도 한 크리스티네 오폴라이스, 최고의 드라마틱 테너 알렉산드르스 안토넨코, 여기에 마리나 레베카까지 더해진다면 ‘성악계의 강소국’이라는 표현으로는 뭔가 부족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리가에서 성악 공부를 시작한 레베카는 이탈리아로 옮겨 2007년에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을 졸업했고, 이 밖에도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에서 그레이스 범브리를, 페사로 로시니 오페라 페스티벌의 로시니 아카데미에서 로시니 전문 지휘자 알베르토 체다를 사사했다. 국제적 무대에는 2009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로시니의 ‘모세와 파라오’로 데뷔했다. 세계적 명성을 얻으려면 35세 이후에나 가능한 오페라계의 현실에서 젊은 레베카는 현재까지 로시니와 모차르트에 주력하고 있고, ‘라 트라비아타’를 주된 레퍼토리로 삼은 것은 앞으로의 영역 확장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빼어난 프랑스어 실력을 바탕으로 구노·비제·마스네 등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오페라에도 관심이 많다.
로시니의 ‘작은 장엄미사’에 독창자로 참여한 음반(EMI·무티 지휘)이 작년에 먼저 나오기는 했지만 레베카의 첫 독집 음반은 모차르트 아리아만으로 채워졌다. 오페라 세리아 ‘이도메네오’, 오페라 부파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징슈필 ‘마술피리’ ‘후궁으로부터의 도주’에서 열 곡을 발췌했는데, 몇 가지 소리 특징이 쉽게 잡힌다. 풍부한 성량, 당당한 파워, 긴 호흡, 호수의 투명한 수면과 깊은 심연을 동시에 연상시키는 음색, 우아한 기품, 무리 없는 고음 등등 소프라노에게 좋은 표현을 거의 다 갖다 붙여도 좋을 것이니 굉장한 가수가 출현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모든 면에서 최고 수준은 아니어서 2퍼센트씩 부족하게 들리기도 한다. 깊은 내면에서 들려오는 진지한 감정 표현이 아직은 나오지 않고 있으며, 콜로라투라의 기교도 나름 안정적이기는 하나 더욱 빠른 속도감을 붙여주었으면 한다. 아무튼 오페라가 살아남으려면 스타 가수가 계속 출현해야 하고, 그 대열에 합류할 충분한 소질은 마리나 레베카가 보여줬다고 판단된다.

글 유형종(음악 칼럼니스트)


▲ 마리나 레베카(소프라노)/
스페란차 스카푸치(지휘)/
로열 리버풀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Warner Classics 6154972 (DD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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