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콘서트홀엔 무슨 일이?

100년 넘은 실황 녹음의 어제와 오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2월 1일 12:00 오전

‘그날 밤의 위대한 순간’을 담고자 하는 열망의 산물, 실황 음반. 그 역사와 개념의 변천사를 살펴본다

음악 녹음의 역사를 살펴보면, 최초의 실황 녹음이 제작된 시기는 저 멀리 188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에디슨이 포노그래프를 발명한 지 11년째 되던 그해 8월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있었던 브리지 교수의 오르간 연주회, 그리고 크리스털 궁전에서 열린 헨델 페스티벌에서 있었던 조지 고로 대령의 연주회를 담은 왁스 실린더가 최초의 실황 녹음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녹음은 어떤 음향을 들려줄까? 당시의 녹음은 인력(人力)만으로 음향을 기록하는 어쿠스틱 방식이었기 때문에 이들 녹음에 담긴 음향은 열악함 그 자체일 것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시대의 애호가들도 어느 정도 용인할 만한 음향이 담긴 실황 녹음이 가능해진 건 언제부터일까? 음향을 전기 신호로 변환·전송·증폭하는 마이크를 녹음에 사용하기 시작한 1925년 이후의 일이다. 마이크가 등장하면서 음향 녹음 기술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했는데, 이 발명품 덕분에 역사상 최초로 음악 연주를 실상 그대로 녹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던 것이다.
마이크에 기반을 둔 전기 녹음 방식의 등장은 녹음 제작 현장에도 혁명에 가까운 변화를 불러왔다. 음악을 연주하는 장소와 녹음 팀이 작업하는 컨트롤 룸을 각각의 독립 공간으로 분리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라디오 중계방송과 실황 녹음을 제작할 수 있는 이동용 녹음 차량이 등장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1926년 6월 코번트 가든에서 있었던 넬리 멜바의 고별 연주회 실황 녹음(HMV)이 이 같은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한 마디로 녹음 장비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칙칙한 분위기의 스튜디오에서만 음악 녹음이 가능했던 시대에서, 녹음 팀이 콘서트홀을 직접 찾아가 공연장의 실제 음향을 수록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 결과 1930~1940년대에 제작된 실황 녹음은 거의 대부분 실제 공연을 담고 있거나 라디오 방송으로 중계하는 실황 연주를 담고 있다. 따라서 이 시기에 나온 실황 녹음은 애호가들이 상상하는 가장 순수한 형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음악 녹음 제작 시스템의 진정한 혁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찾아왔다. 마그네틱 테이프 녹음기가 등장한 것이다. 테이프 녹음이 정착하면서 음악 연주를 담고 있는 테이프를 자르고 붙여서 하나의 완성된 음악 연주를 만들어내는 ‘편집’ 개념이 음악 산업에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이러한 제작 방식은 시대에 따라 녹음 기술의 형식과 내용을 달리하면서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시기 음악 산업에서 주목해야 할 현상은 디스크 한 면의 수록 시간을 30분 전후까지 늘린 LP, 1980년대에는 그보다 더 길어진 CD가 등장하고 하이파이 오디오 산업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녹음·매체·재생의 삼박자가 균형을 이루기 시작한 1950년대에 음반 산업을 규정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했다.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음반은 실황 음악을 보조하는 열등한 매체가 아니라 실황 음악에 대립하는 독립성을 획득한 매체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전 시대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새로운 존재 방식을 음악에 부여하고, 음악의 실상과 진실을 담아내는 데 부족함이 없는 본격 매체이자 진정한 문화상품으로 음반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등장했다.
이러한 새로운 음반 제작 시스템에 실황 녹음이 편입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결과 새로운 방식으로 제작한 실황 녹음이 이 무렵 등장했다. 역사적인 순간을 담은 특별한 이벤트, 방송용으로 제작한 실황 녹음, 음반 제작을 염두에 두지 않고 제작한 공연 녹음 같은 예외를 제외하고 ‘그날 밤의 위대한 음악 진실’이 담긴 순수한 실황 녹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1950년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음반사에서 정식으로 출반하는 거의 모든 실황 녹음은 최소한 2회 이상의 콘서트를 녹음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여기에 수차례에 걸친 리허설까지 모두 녹음한 후(최근에는 연주 과정에서 실수가 빈발하는 지점들을 따로 녹음한 패치 테이크까지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확보한 모든 테이프(디지털 시대에는 음악 녹음 파일)를 가지고 연주를 편집하고 음향을 보정하는 포스트프로덕션 작업을 거쳐 하나의 음반으로 탄생한다. 그리고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의 마스터링 작업에서는 단순 편집뿐만 아니라 관객의 기침 소리를 포함하여 연주 중 발생하는 웬만한 소음 정도는 플러그인을 사용하여 깨끗하게 지울 수 있고, 연주 중에 발생한 사소한 실수까지도 보정할 수 있다. 정말 심한 경우에는 음향 시뮬레이션을 제공하는 기기를 사용하여 콘서트홀 자체의 음향을 프로듀서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도 있다.


▲ 베토벤 삼중 협주곡을 녹음 중인 리흐테르·오이스트라흐·로스트로포비치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살아있는 연주의 흔적
이럴 때 실황 녹음에 대한 새로운 개념 규정이 필요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사실상 스튜디오 녹음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제작 과정을 거쳐 음반으로 나오고 있다면 실황 녹음은 대체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콘서트홀을 빌려서 제작하는 스튜디오 녹음은 실황 녹음과 어떻게 다른 것일까?
최근 유럽 음악계에서는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하여 ‘스튜디오 녹음 대 실황 녹음’ 대신에 ‘프로덕션 녹음 대 실황 녹음’이라는 새로운 분류법을 사용하고 있다. 프로덕션 녹음이란 음반 제작을 전제로 하여 청중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녹음을 말하는데, 이때 녹음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스튜디오이든 연주회장이든 어디든 상관없다. 반면 실황 녹음이란 청중이 입장한 연주회장에서 진행된 실황 연주를 녹음하는 것으로서 이를 음반으로 제작하는 경우, 연주의 완성도가 높은 테이크를 선택·편집하고 연주 중 발생한 실수와 연주회장의 소음을 수정하고 소거하여 만든 음반을 말한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보면 음악 산업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실황 녹음의 개념과 내용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순수한 음악 애호가의 입장에서 보면, ‘단순히’ 청중이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연주를 담은 것이 실황 녹음이라는 정의(定義)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날 밤의 감동을 떠올리거나 추체험할 수 있으리라는 소박한 믿음을 가지고 실황 음반을 구입하는 애호가들의 기대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얄팍한 상술의 결과물로 보일 수도 있고, 때로는 프로덕션 녹음에 들어가는 제작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음반사의 꼼수로 해석할 여지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런 정황은 1960년대 중반에 등장한 실황 녹음에 대한 논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에서도 얼마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 해도 실황 녹음의 가치는 그리 쉽게 부정할 수 없다. 우리가 즐겨 듣는 훌륭한 실황 녹음들을 감상해보면 프로덕션 녹음에서는 여간해서는 느끼기 힘든,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살아있는 연주의 흔적’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 박성수(음악·오디오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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