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하게 기획된 인류학적 유산

‘세계의 자장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3월 1일 12:00 오전


▲ 아르메니아·벨기에·중국·핀란드·프랑스·독일·그리스·인도·이탈리아·일본·한국·라트비아 등 23개국 원어민 가수에 의한 자장가
Carus 83.012 (DDD) ★★★★☆

독일의 카루스 출판사와 산하 음반 레이블인 카루스에서 출반한 세계의 자장가 음반이다. 카루스 출판사는 ‘노래 프로젝트(Liederprojekt)’라는 이름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데, 이 음반을 만들어낸 ‘세계의 자장가 기획’ 또한 ‘노래 프로젝트’의 일부다. 프로젝트의 성과가 담긴 웹페이지(www.liederprojekt.org)와 영문으로 따로 마련된 세계의 자장가 웹페이지(lullabiesoftheworld.org)에 방문해보면 온라인상으로 음반에 수록된 모든 곡의 핵심 부분을 각각 독립된 웹페이지에서 악보와 함께 들을 수 있다. 또한 반주 음원이 제공되는 ‘따라 부르기’, 원어민의 가사 낭독 음원을 들을 수 있는 ‘가사 발음 익히기’ 서비스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독일인들의 치밀한 문화적 기획력과 실천력, 그리고 그 성과를 폭넓게 공유하는 호혜정신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자장가는 산업화된 사회에서 어렵사리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구전가요일지도 모른다. 자장가가 갖는 고유의 기능성이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음악 개념에 저항하기 때문에 사실상 자장가를 개별 작곡가의 독창적 작품으로 써내기란 쉽지 않다. 모차르트나 슈베르트, 브람스, 그리고 한국의 김대현이 나름의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드문 경우며, 그런 곡들조차 자장가로서의 실천적 기능을 발휘하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아이를 낳아 키워본 이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갓난아기를 재울 때는 평소 전통음악에 관심이 없던 이들조차도 “자장자장 우리 아기” 하는 전통적 선율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의 신체에 각인된 모종의 문화적 유전자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자장가가 특히 문화인류학자들의 관심거리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음반 역시 이러한 인류학적 관심을 바탕으로 공익적 차원에서 기획되었다. 자장가야말로 자본주의적 획일화로 빠져드는 이 세계화 시대에 각 지역의 문화 다양성을 지키는 문화적 보루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카루스 출판사의 ‘노래 프로젝트’는 사실상 독일이라는 지역성을 염두에 둔, 말하자면 ‘독일 노래 발굴 프로젝트’이지만, 자장가 프로젝트의 경우는 다문화성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있다. 선곡에 있어서만큼은 여전히 독일이라는 지역성이 드러나는데, 독일과 유럽 지역에 이주하여 살고 있는 다양한 이주민 공동체의 인구학적 비율을 고려한 듯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음반에 채택된 자장가의 국적은 북유럽과 동유럽을 포함한 유럽이 압도적이며 중동과 아시아를 그 다음으로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반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의 풍부한 민요 전통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졌다. 한국의 자장가가 포함된 것 역시 동아시아 국가로서의 대표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독일과 유럽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인구학적 비중 또한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기획의 맥락을 점검해보았으니 이제 따져봐야 할 것은 음반의 완성도다. 하지만 자장가 음반의 완성도를 어떤 미학적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실제로 들으면 잠이 잘 오는 음반이 훌륭한 자장가 음반일까? 이 음반이 ‘세계의 자장가’를 표방한 만큼 각 지역 전통 민요로서의 진정성과 원형 그대로의 성격을 담고 있는지 여부가 평가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전통적 맥락에서 자장가는 대부분 반주 없이 불리며, 다른 지역의 청중(특히 독일과 같은 유럽의 청중)에게는 지나치게 낯설게 들릴 불협화적 선율이 지루하게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자장가들을 원형 그대로 녹음한다는 것은 인류학자들의 관심거리 이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나의 독립된 음반으로서 이 자장가 음반의 가치는 위와 같은 자장가 음반 기획의 딜레마를 독특한 균형감으로 극복해낸다는 데 있다. 노래 익히기의 교육적 가치에 대한 진지한 고려 속에서 기획된 음반인 만큼 각 트랙의 자장가들은 각국 원어민 가수의 목소리로 녹음되었으며, 대부분 트랙에서 각 나라의 전통 악기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각 지역의 전통음악이 갖는 분위기와 음색, 그리고 선율의 시김새가 상당 부분 살아있다. 동시에 외국인(특히 서구인)이라도 듣고 따라 부르기에 부담이 없을 만한 수준으로 낯선 선율이나 리듬은 제한되어 있다. 웹사이트에 제공된 악보에 종종 코드 기호가 부기된 데서 알 수 있듯이, 각 노래의 민족적 정체성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서양음악적 터치가 가미되어 있다. 녹음에도 세심한 공을 들였다.
한 곡의 자장가가 해당 국가 내지는 지역 전체의 자장가를 대표하기란 사실상 어렵겠지만, 18번 트랙의 한국 자장가 선곡(‘달아 달아’)에 대해서는 한국인들이라면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거릴 만하다. 연전에 다른 음반사에서 발매된 ‘세계의 자장가’ 음반에 김대현 작곡의 자장가가 한국의 전래 자장가로 녹음 수록된 것에 비해서는 진일보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다소간 농담을 섞어 말하자면, 세계화 시대를 염두에 둔 서구 선진국의 치밀한 대규모 문화기획에서 허점이 발견될 때 느끼는 비서구인으로서의 안도감도 있다.

글 최유준(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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