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2 경기필 예술단장 성시연

건강한 오케스트라의 필요조건, ‘공감’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4월 1일 12:00 오전

음악은 우리에게 필요한가? 예술의 필요성은 누구로부터, 어디에서 시작돼야 하는가.
건강한 오케스트라를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지휘자 성시연과 나눈 물음 그리고 대답



경기필 예술단장 성시연 사진 심규태

지휘자 성시연에게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 중 하나는 ‘여성 최초’다. 게오르그 숄티 지휘 콩쿠르 우승(2006)·구스타프 말러 지휘 콩쿠르 최고상(2007) 외에도 보스턴 심포니 역사상 첫 여성 부지휘자라는 타이틀까지 떠올려보면 성시연이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도 ‘여성 최초’라는 단어와 함께였다. 여기에 올해 1월, 경기필 취임으로 성시연은 국공립교향악단 여성 상임지휘자로서 새로운 기록을 쓰기 시작했다.
LA필·스톡홀름 필·로테르담 필 등 해외 유수 오케스트라 무대에서 쌓아온 경험과 국내 국공립 오케스트라 중 탄탄한 기반을 자랑하는 서울시향 부지휘자 활동을 토대로 경기필 수장 자리에 안착한 성시연을 만나 경기필 취임 소회와 더불어 우리 오케스트라의 발전을 위한 필요조건에 관한 생각을 물었다. 현재 급변하고 있는 해외 사례와 함께 돌아온 그녀의 대답은 음악가와 행정가, 대중 모두 ‘음악’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음악 자체에 기준을 두고 움직여야 한다는 데에 맞춰져 있었다.

지난 1월 취임 후, 2주 만에 가진 프리뷰 콘서트에서 모차르트부터 R. 슈트라우스에 이르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3월 취임연주회에 앞서 이러한 자리를 가진 이유는 무엇인가.
해외에서는 지휘자가 취임한 뒤 연주회를 곧 시작한다. 3월 말에 있는 취임연주회를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재촉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계획에 없던 공연을 마련했다. 지난해 오케스트라에 생긴 일들로 인해 경기필에 마음이 멀어졌거나, 반대로 앞으로 어떻게 변하고 도약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외부에선 우리가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취임연주회(3월 2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는 경기필의 새로운 비상을 알리는 자리다. 개인적으로는 2년 재임 기간을 결정짓는 자리이자 절박한 연주회이다. 절박함 속에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아름다움을 서로 찾아갈 수 있도록 시간을 할애할 생각이고, 그것이 관객에게도 전달됐으면 좋겠다.
취임 연주회 레퍼토리로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택했는데.
지난해 경기필이 같은 레퍼토리를 계획했는데, 결국 불발됐다. 지금까지 이어진 경기필의 가치관과 의의를 이어가되 앞으로 빛을 향해 더 멋지게 나아갈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말러는 본인의 콤플렉스와 싸우던 사람이었고, 그것으로부터 평생에 걸쳐 벗어나려는 열망을 가진 사람이었다. 경기필 단원들의 젊은 사운드로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어디이며, 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지 자문하는 계기를 작품 안에 잘 녹여내고자 한다.

그동안 느낀 경기필의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한마디로 열린 오케스트라다. 마음뿐 아니라 레퍼토리, 볼륨 면에서 모두 열려 있다. 작은 볼륨부터 큰 볼륨까지 섭렵할 수 있고, 또 관객에게도 열려 있는 오케스트라이다. 지난해 10월 경기필과 처음 연주를 했을 때 정말 놀랐다. 전임 지휘자가 얼마나 공을 들여 오케스트라를 연습시키고, 음악을 만들어냈는지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경기필이 갖고 있는 음악적 감각과 깊이가 국내 오케스트라의 일반적인 색채나 패턴에서 자유롭게 벗어났다는 걸 느꼈고,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과거 리허설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열정의 결과로 오케스트라가 세련되게 바뀔 수 있었다고 본다. 이것이 경기필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반면 리허설 기간이 상당히 긴 편인데, 좀더 스탠더드한 리허설 타입으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고, 이 부분은 오케스트라의 변화를 위한 장기적인 계획으로 생각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지휘자와 단원 간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할 텐데, 이를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지휘자로서 총괄적인 직책을 맡은 것은 경기필이 처음이다. 그래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신뢰관계가 정말 가능한 것인지, 어떻게 하면 그것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지 나로서도 궁금하다. 세계 어느 오케스트라나 새 지휘자가 오면 처음에는 환영한다. 그러다 1년이 지나면 절반의 갈림길이, 2~3년이 지나면 또 다른 갈림길과 마주하게 된다. 100퍼센트 지지와 사랑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첫 마디를 지휘했을 때 단원들이 좋은 음악을 줄 것이라는 믿음, 그가 지휘봉을 들었을 때 개인의 취향에 맞지 않는 음악이어도 믿고 따라가겠다는 마음이 생기면 신뢰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음악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을 정도로 지휘자 스스로가 깊어지고 고민하고 아파봐야 한다. 또 지휘자는 행정과 그 외 부분을 교차적으로 수행하는데, 거기에서 공명정대하고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을 갖고 있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 부분이 흔들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현재 국내 국공립 교향악단들은 각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따라 운영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날이 발전하는 곳도 있지만, 해외에 비해 전체적인 구조 면에서 상당수 교향악단이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근본적인 문제는 문화 차이라고 생각한다. 시스템 이전에 인식의 차이가 크다. 해외의 경우, 클래식 음악이 그들의 문화이기에 그 필요성을 절실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해외 일부 오케스트라들은 통합과 해체 위기에 처해 있다. 또 예술은 정치적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부분 펀딩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미국을 제쳐두더라도, 독일·프랑스·북유럽 등지에선 어느 정치인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예술을 운영할 수 있는 자금과 지원이 좌우된다. 정치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환경에서 예술의 필요성을 정치인과 국민들이 느끼고, 예술에 돈을 투자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이 무엇일지 음악가 스스로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이 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인식이 대중에게 생긴다면 더 많은 것들을 구체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음악가로서 좋은 연주도 많이 해야겠지만, 필요한 곳에 도움을 주는 연주도 필요하다. 후세를 위해 지금 시대에 살아있는 음악가에게 남겨진 숙제인 셈이다. 동시에 음악가의 자세도 바뀌어야 한다. 대중에게 어려운 음악을 하는 사람들, 멋지지만 다가가기 힘든 사람들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쪽으로 인식이 바뀐다면, 음악가들이 지금보다 좀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높아진 수준만큼 클래식 음악의 필요성 공감되어야

지난해 한국교향악단단원협회가 20개 단체 교향악단 단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고용불안과 부당대우가 빈번한 환경에 놓여 있다고 답한 인원이 상당수에 달한다. 음악에 집중하기 위해선 근로 환경의 안정성이 보장돼야 하는데, 해외에 비해 우리나라는 가야 할 길이 멀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보다 환경이 잘 조성된 국가들이 있지만 해외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경우만 있는 것도 아니다. 잘 알려진 대로 독일은 환경이 잘 되어 있다. 연봉도 높고 보험이나 연금제도도 잘 마련되어 있다. 악기·의복 외 지원받을 수 있는 항목도 다양하다. 한국처럼 출근 도장 찍는 시스템이 아니라 연주가 없을 때는 쉬면서 자신의 일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반면 이탈리아는 그런 제도가 잘 구축되어 있지 않고, 급여도 낮은 편이다. 북유럽은 나라마다 다른데, 노르웨이는 세계 각지에 있는 실력 있는 음악가들이 작은 도시까지 온다. 연봉이 높고 편안하게 살 수 있어서다. 하지만 편한 만큼 음악적 근성은 낮다. 스웨덴은 노르웨이처럼 잘 사는 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음악인에 대한 복지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연봉도 노르웨이보다 낮아서 직업이 있어도 부수적으로 하는 일이 있어야 가족을 먹여살릴 수 있는 수준이다. 어렵기는 영국도 마찬가지다. 한두 번 리허설에 연주 한 번인데, 연봉이 낮으니 음악가들도 먹고살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하지만 애쓰는 만큼 좋은 실력이 나오는 것 같다. 한국은 좋은 방향으로 향하는 과도기라 생각한다. 결과 위주의 분위기 속에 수준은 높아진 반면 제도는 서서히 힘겹게 따라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불만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외국은 수준이 서서히 높아짐에 따라 보장과 제도 역시 함께 맞물려 좋아진 경우다. 절대적인 비교가 불가능하기에 어느 것이 좋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도 어느 순간 좋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위해 클래식 음악의 필요성이 대두되어야 하고, 음악가는 그 필요를 충족시켜줘야 한다.

제도가 현상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그 간격이 점차 벌어지는 것은 우리 사회 전반적인 현실이지만, 특히 예술 분야에서 더 극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에 관한 이해를 가진 정치가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예술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예술과 사람들의 접점이 더 늘어나야 하고, 그에 대한 이해가 있는 정치인들도 많아져야 한다. 여기에 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작년부터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네덜란드에선 콘세르트헤바우를 제외한 모든 오케스트라를 다 없앨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적도 있다. 대신 현재 점차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부분이 오케스트라 단원의 연봉을 40퍼센트 가량 삭감하는 것이다. 오케스트라만으론 생계 유지가 힘들어 하나 둘 빠져나가거나 다른 직업을 고민하는 단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 지난 1월 18일에 가진 성시연/경기필의 프리뷰 콘서트

해외에 비해 우리나라 교향악단 상임지휘자의 재임 기간은 매우 짧은 편이다. 한 오케스트라의 정체성, 그들만의 사운드가 만들어지기까지 과연 2년이라는 기간이 합당하다고 보는가.
짧다. 지금의 위치를 배제하고 생각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무엇이든 익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보스턴 심포니 부지휘자로 있었을 당시 오케스트라에 제임스 러바인이 있었는데 그전엔 오자와 세이지가 29년간 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좋은 객원 지휘자들이 보스턴 심포니를 거쳐 갔지만, 결국 한 지휘자가 있었기에 그들만의 사운드가 굳어질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제임스 러바인이 그 색채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시향도 정명훈 지휘자로 인해 ‘서울시향 사운드’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최근 코리안심포니 소식을 들으면서 안타까웠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사이가 잘 맞아 좋은 소리가 나고 있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데, 그것을 외부에서 중도에 끊고 다른 스타일과 정책과 방향을 제시하며 움직이게 하는 것이 과연 오케스트라를 건강하게 만드는 일인지 생각해볼 문제다. 비유를 들자면, 내가 옷을 천천히 입고 있는데 누군가 와서 이 옷은 아니라며 벗기고 다른 옷을 계속 갈아입히는 격이다. 정작 내가 옷을 입고, 거울에 비춰보며 자신의 모습을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케스트라가 방향성을 잡으려고 한다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 오케스트라가 지금보다 건강해지기 위한 필요조건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먼저 음악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실력이 향상돼야 하고, 음악 자체에 기준을 맞추고 집단이 움직여야 한다. 해외 오케스트라가 건강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음악이 문화의 뿌리이고, 그들 몸에 젖어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그 속에서 많은 것들이 형성됐기 때문에 다른 장치들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클래식 음악 역사가 짧고 자연스러움보다는 경쟁 구도가 가져오는 문제들이 많다.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고, 결과 중심의 분위기가 만연한 가운데 음악가는 거기에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음악가 스스로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데, 그렇기 힘들다. 또 정책이나 일을 추진할 때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사람과 단원들 사이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 모든 교향악단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비교할 수 없기에 오케스트라 스스로 건강해질 수 있는 방법도 모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열린 마음으로 음악가를 대하고, 그들이 기본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 기울이고, 그것을 관철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좋은 음악, 대중에게 문턱을 낮춘 음악을 하면서 그 모든 것을 조화롭게 이뤄가야 할 것이다. 예술은 단기간 내에 이뤄질 수 없기에 현재는 우리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가고 있는 디딤돌이라 생각한다.

글 김선영 기자(sykim@gaeks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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