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개막하는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에 박찬경이 예술감독으로 나섰다. 미술뿐 아니라 영화로 영역을 확장하며 전방위 예술가로서 자신만의 주제 의식을 선명하게 세워온 그는 “사회와 역사에서 분리된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과 함께 그 불가분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동안 ‘파킹찬스(PARKing CHANce)’로 두 살 터울의 형이자 영화감독인 박찬욱과 함께 예리한 예술적 감수성을 선보여온 현대미술가 박찬경. 지난봄 첫 장편영화 ‘만신’을 통해 그는 독립영화로서는 유례없는 관객몰이에 성공하며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그의 작품을 본 영화평론가 오동진은 “그가 곧 박찬욱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말하며 그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주최하는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의 예술감독을 맡은 그를 만나 장르를 넘나드는 전방위 예술가로서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박찬경과의 일문일답.
영화 ‘만신’이나 파킹찬스의 ‘청출어람’ ‘고진감래’를 보면서 장면마다 시선을 잡아끄는 놀라운 미장센이 인상적이었다. 미술과 사진뿐 아니라 이제 영화까지 당신이 도전하는 장르에는 경계가 없어 보인다.
상업영화로 출발한 사람이 아니고 현대미술을 하기 때문에 훨씬 더 자유롭고, 장르의 규범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편이다. 사진은 정지된 화면 속에서 뭔가를 만들고 구성하는 작업이라 영화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구도와 색감처럼 기본적인 감수성 면에선 당연히 도움이 된다. 내가 특별히 경계를 초월하고, 장르를 섞겠다는 목적을 가졌던 건 아니다. 자연스럽게 영화를 만들다 보니 그렇게 새로운 걸 시도하는 예술가적 태도가 나왔다. 미술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그걸 어떻게 새롭게 할 것인가, 그 새로움 자체가 가장 중요한 가치다. 그것이 곧 우리의 작업이었고, 지속하며 살아왔다. 기존에 있는 방식을 그대로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다. 그렇게는 절대 못한다. ‘뻔’한 것은 예술이 아니라는 걸 일찍 깨달았기에 구태의연한 것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왔다.
미술은 언제 시작했나? 형은 워낙 뛰어난 동생이 있어서 미술 할 엄두를 못 냈다고 하더라.
중학교 3학년쯤이다.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도 늘 상을 받곤 했다. 형은 똑똑한 장남이었다. 어느 집이나 장남이 예술 한다고 하면 다들 반대하지 않나. 나는 둘째니까 원하는 대로 하게 내버려둔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도 부모님이 남자가 미술 해서 어떻게 먹고살려고 하느냐며 염려가 많으셨다.
시나리오 작가뿐 아니라 미술평론가로서도 눈에 띄는 활동을 해왔다. 원래 글재주가 있는 편인가.
글은 형이 더 잘 쓴다. 형은 사람들이 읽기 쉬운 글을 잘 쓴다. 영화평론가로 출발하기도 했고. 돌이켜보면 내가 쓴 미술평론은 너무 어렵게 쓴 것 같다. 스스로 필력이 좋다거나 딱히 잘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쓰려고 한 것이 분명했다. 직업적 평론가로서, 주례사 같은 평론은 쓰지 않았고, 일종의 액티비즘에 가까운, 미술계의 병폐를 개선하기 위한 글들을 써왔다. 현대미술의 쟁점에 대해, 미술계 내부적 문제에 대해 실천적인 목적을 갖고 쓴 것이 대부분이다. 좋아하는 작가들에 관한 제대로 된 평론이 많지 않다 보니 왜 이 작가들을 좋아하는지 말하고 싶었다. 한국은 미술평론이 활발하지 않아서 작가들은 많은데 옥석을 가리기 힘들다. 미술계에도 뜻있는 목소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어릴 때부터 집안에서 형이나 아버지 모두 말 한마디, 문장 하나에 무척 예민했다. 아버지께선 말할 때에도 아무렇게나 이야기하는 걸 그냥 넘어가지 않으셨다. 완성된 형태의 적확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도록 말투와 문장을 직접 교정해주셨다. 형은 내가 글을 쓰면 가장 먼저 읽고 논술 첨삭하듯 문장을 손봐주는 사람이었다. 형은 지금도 시나리오의 피드백을 가장 먼저 해준다.
지금까지의 작업을 살펴보면 사회와 역사에 대해 민감하게 감응하는 것 같다.
서울대 미대 84학번이다. 세대론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1980년대에 미술을 했으니 억압이 많았고, 중·고등학교 땐 학교에서 맞는 것이 일상인 시절이었다. 대학에 와보니 선생들은 때리지 않지만, 캠퍼스에 경찰이 상주하고 있었다. 거의 매일같이 시위운동을 하고, 수업이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 다니는 4년 동안 완성한 그림이 몇 점 되지 않는다. 예민한 시기에 폭력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 기억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한편으론 벗어나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를 지나치게 망각했고, 진짜 꿈꾸던 변화는 못 이룬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386세대가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아직 멀었다. 사회와 역사에서 분리된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예술가의 작업에 반영되기 마련이다. 반면 예술가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얼마 없다고 생각한다. 피카소나 스트라빈스키와 같이 각각의 예술 분야에서 아무리 대단한 천재라도 그들의 영향이 그렇게 대단했는가? 잘 모르겠다. 예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베토벤이 있는 사회와 없는 사회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한 예술가의 작품이 어떻게 수용될지 예측하기는 더 어려운 것 같다. 바그너는 위대한 작곡가지만 그의 음악이 나치 치하에서 사용된 방향은 그가 원하던 지점이 아니었다. 그리 사용됐다고 해서 그게 바그너의 탓은 아니니 그의 음악이 지닌 가치를 일방적으로 폄하해서도 안 될 것이다. 예술가와 사회의 관계는 긴밀하면서도 떼려야 뗄 수 없다.
9월 개막하는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의 예술감독으로 나선다. 큐레이터 출신이 아닌 작가로서는 이례적이다.
‘만신’을 미술관에서 단편으로 상영할 당시, 서울시립미술관 김홍희 관장이 강의와 함께 ‘아시아 고딕’을 주제로 다루는 것을 보셨다. 이번 비엔날레 주제로 그걸로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으면서 일이 진행됐다. 큐레이터로서의 능력보다 내가 다루는 주제에 관심을 보이셨다. 그동안 꾸준히 글도 쓰고, 전시도 하고, 단편영화 공동 작업들도 했다. 한국 미술계에서는 흔치 않지만 해외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다. 나는 오브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콘셉추얼한 작업을 하는 작가다. 작가란 문화적인 민감도와 책임과 가치를 생각하는 존재이지, 자기 개인의 표현과 숨겨진 자아를 끌어내지 못해 안달하는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현대미술은 자신과 세상이 어떻게 대면하고 있는지를 보여줘야지, 자신의 내면에 뭐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이번 비엔날레 주제가 ‘아시아 고딕’인 이유는, 아시아에 대한 시각이 정작 아시아에서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신’은 물론, 그동안 내 작품에 ‘청출어람’ ‘고진감래’ 등 국악을 비롯해 한국적 모티프를 많이 사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 문화가 서구보다 우수하다? 그런 관점이 아니다. 예술가로서, 우선 세계인으로서 모든 문화를 편견 없이 봐야겠지. 지금까지 급격한 근대화를 통해 우리 문화는 맥이 끊겼고, 우리 것을 천시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범지구적으로 봐도 전 세계 문화는 이렇게 더 발전해나가는 거라고 믿는다. FM 93.1에서 국악 시간이 하루에 두 시간쯤 따로 편성이 되어 있는데 그것도 좀 이상하다. 왜 국악만 나오는 시간이 따로 있어야 하나. 클래식이랑 함께 틀면 안 될까. 편성할 때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더 자유롭게 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토대가 아직 미약하다지만 이러한 문화적인 분리가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우리가 우리의 음악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부분이 아닌가. 우리가 살아온 이 땅 위에서,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음악적 자산이 있는데 그걸 단지 국악을 하는 사람들만 알고 있다는 건 안타까운 현실이다. 서양음악과는 달리 국악에서의 단절과 불균형은 이런 지점인 것 같다. 동구권의 버르토크·무소륵스키를 위시한 러시아 5인조, 풀랑크가 속한 프랑스 6인조를 보면 민속적 선율을 비롯해 그 나라가 가진 음악적 자산이 작곡가들의 작업을 통해 다시 흡수되고 재탄생될 기회가 있었다. 원래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음악을 다시 정교한 작품으로 승화시키지 않았나. 널리 보면 아시아, 좁게는 한국에서도 이런 작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출어람’의 목표는 이동백 선생의 목소리를 어떻게 가장 효율적으로,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거의 잊힌 존재이지만 선생에겐 소름이 끼칠 정도의 경지가 느껴진다. 예전에 이동백 선생 같은 분이 계셨고, 아직 어린 제자가 그 노래를 이어간다는 것, 그렇게 세대를 따라 이어지는 예술을 말하고 싶었다.
이번 ‘미디어시티서울’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미디어라는 장르는 현대미술은 물론 현대인의 일상에서 필수적인 무엇이 되었다. ‘귀신’ ‘간첩’ ‘할머니’라는 세 단어를 주제로 설치미술·사진·회화·조각·미디어아트·영화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전시를 선보일 것이다. 우리 문화의 정체성과 그 기원에 대해 복합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질문을 던지는 전시가 될 것이다. 이번에 ‘미디어시티서울’의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10년 전과 비교해 미술 애호가들이 늘어났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블로그나 각종 SNS에 자신이 다녀온 전시와 갤러리에 대한 감상도 많이 올라오고, 관객 10만 명이 넘는 전시도 있고. ‘미디어시티서울’ 역시 평균 관객 15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미디어는 아직도 대중의 관심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식견을 갖춘 전문 기자의 부재도 아쉽다. 언론에서 문화를 전반적으로 중요하지 않게 다루니까. 미술이 대중화되는 건 걱정이 안 되는데 작가가 대중적인 취향에 맞춰서 예술가적 가치를 포기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포기하고 타협하는 경우가 생기는 게 아쉽다.
오늘날 예술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시간!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그동안 먹고살아야 하니 돈이 있어야 한다. 사실 가장 필요한 건 후원 혹은 예술에 대한 관심이다. 작가는 굶지만 않으면 살 수 있다. 예술에 대한 무관심과 홀대, 경멸과 무지에 기반한 무시, 거기서 비롯되는 수치심과 모멸감, 그런 것이 예술가들을 가장 힘들게 한다. 사실 월 150만 원만 있으면 젊은 작가는 어떻게든 먹고살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 더 힘든 건 전시를 했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고, 관객은 오로지 가족과 친구들밖에 없을 때, 거기서 좌절감이 온다. 연주자나 무용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작은 규모라도 소비를 가능케 하는 탄탄한 관객층이 있고, 사람들이 전문적인 식견을 갖고 작은 형태라도 향유하는 생태계가 없으니까 그게 힘들다. 문화 생태계 안에서 창작자·수용자·평론가·대중 이런 구조가 다 필요하다. 그중 한국에서 가장 미약하고 발전이 더딘 부분은 평론이고. 지금의 경제 규모에 비춰 미술관의 작품 소장을 위한 예산을 보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 적은 액수를 가지고 잘 활용하느냐? 그게 아니라 더 안타깝다. 세월호 참사가 한국 사회의 치부를 고스란히 드러낸 것처럼 겉으로는 얼핏 다 갖춰 있는데 운영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미술관도, 갤러리도, 큐레이터도 다 있는데 질적으로 우수하고 내용적으로 충실하고 잘 운영되고 있는지는 늘 의문이다. 제도적 차원의 새로운 지원을 논하기 전에 이미 갖춘 것이라도 잘 굴러가야 하지 않나. 예술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양적으로는 많이 성장했는데, 내용적인 면에서는 약하다. 젊은 작가들이 자비를 들여 전시하고 자신들만의 잔치로 끝내는 것을 이제는 그만해야 하는데 안타깝다. 더불어 서울의 좋은 전시가 지방까지 공유되지 않고 서울에서만 끝나는 상황도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