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이자람

‘이자람’이라는 장르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8월 1일 12:00 오전

사람들 곁에서, 광대이자 동시대 레퍼런스가 되다

이자람과의 대화를 되새김질하는 동안, 김밥이 떠올랐다. 김밥에는 기억이 있다. 이야기가 있다. 맛도 종류도 다양한 것이 요즘 김밥인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단무지·시금치·달걀지단은 늘 있지만 가장 강한 맛을 내는 속 재료가 김밥의 이름을 결정한다. 어제 먹은 소고기 김밥의 가장 큰 맛은 소고기(희곡)이지만, 그것을 둘러싼 기타 속 재료(연출·조명·음악 등)의 유무는 늘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밥(작창)과 김(소리)이 없으면… 그건 김밥이 아닌 게다.

물론 취향에 따라 쌀과 김의 생산지가 어디인지, 속 재료 역시 수입산인지 국내산인지 살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김밥 속을 두고 이래저래 따져도, 결국 중요한 건 한입에 넣은 김밥의 맛이다. 정말 맛있는 김밥은 다른 말이 필요 없다.

지난 5월에 맛본 ‘이방인의 노래’가 그랬다. 스페인 출신 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이자람이 작·작창을 맡고 소리꾼으로 선 무대에서 나는 소리꾼, 배우, 아마도이자람밴드 보컬로 활동하는 이자람을 만났다. 그리고 저 모습은 인간 이자람이 아닐까 싶은 순간들도 언뜻 발견했다. ‘사천가’ ‘억척가’가 상다리 휘어지게 차린, 어쩌다 한 번 먹을 법한 코스요리 정식이었다면, ‘이방인의 노래’는 처음 보는 재료로 만든, 하지만 부담 없이 편히 먹을 수 있는, 소박한 맛이었다.

“우리나라처럼 사람들이 빨리 좋아하고 잊어버리는 문화생태계에서 어떻게, 올바르게 걸어갈 것인가를 계속 고민하던 중에 나온 작품이에요. 이번에 성숙해졌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어요. 예전엔 모든 걸 다 쏟아 붓는 공연을 했다면, ‘이방인의 노래’를 하면서는 필요한 만큼 힘을 써서 보여주는 걸 처음 경험하게 됐죠. 예전엔 그렇게 사는 법을 몰랐는데, 지금, 서른여섯의 제가 보여줄 수 있는 것에 충실해도 된다는 걸 가르쳐준 작품이에요.”

‘이방인의 노래’를 무대에 올린 뒤 이자람은 생각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찾아내는 안목이 계속 이어지길, 그 이야기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감각도 그러하길, 그래서 열심히 해냈을 때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그래야 스스로 이 시대를 잘 살아가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이방인의 노래’

‘광대’로서의 이자람

이자람은 노래하고, 대사를 치고, 연기를 한다. 때때로 연주도 한다. 이런 그녀가 손수 만든 작품 앞에는 ‘창작 판소리’라는 분류가 붙는다. 두 단어는 그녀가 판소리에 뿌리를 둔 소리꾼이라는 공시적 관점, 동시대 예술가라는 통시적 관점을 함께 품고 있다.

1인이 모든 역할을 다 해내는 판소리는 총체적 개인을 전제로 한다. 소리는 꾼을 만들고, 그를 도구로 삼아왔다. 소리꾼이 풀어놓는 이야기엔 삶이 있다. 익살과 재치가 빛난다. 소리꾼은 시대를 읽는, 공감하는 사람이다. 그 생을 기꺼이 품어낸 명창들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많은 이에게 사랑받았다. 불과 19세기의 일이다.

20세기 초, 판소리를 모태로 시대 상황과 맞물린 창극이 태동했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창작판소리로 분류되는 시도들이 등장한다. 이 맥락에서 이자람은 전통적인 판소리, 그리고 이전의 창작판소리와는 또 다른 실을 뽑아내 그만의 옷을 지어냈다. 그중에서도 익숙한 듯 새롭고 낯선 무늬의 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 ‘억척가’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통했다.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택하는 것이 유럽의 마케터라지만, 프랑스 리옹의 국립민중극장은 ‘억척가’를 두 눈으로 보기도 전에 모셔갔다. 그 사이 국내 공연계에선 이자람에게 보내는 러브콜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이자람을 사랑하는 이들 중엔 소위 ‘센’ 연출가들이 눈에 띈다. 가깝게는 올해 7월, 연출가 이윤택이 ‘문제적 인간 연산’을 위해 그녀를 녹수이자 음악감독으로 호출했고, 이자람을 통해 판소리를 처음 접한 루마니아 출신 연출가 가보 톰파는 프랑스 대혁명 시기를 다룬 연극 ‘당통의 죽음’을 지난해 한국에 올리면서 수십 명의 군중이 등장하는 거리 장면을 이자람 1인에게 맡겼다. 여러 해 전 뮤지컬 연출가 이지나는 ‘서편제’ 캐스팅을 놓고 “이자람 앞길에 해 되는 것이 아닌, 도움이 되는 작품이 되게 하겠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서로 다른 예술가 사이의 주파수는 어떻게 통했을까.

“저라는 도구 자체를 인정해주시고, 어떻게 잘 쓸지 고민하는 분들과 만났을 땐, 후에 제가 마땅히 쓰이겠다는 마음으로 작품에 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세대도, 장르도, 문화도 각기 다르지만 이들이 공통적으로 주목한 것은 ‘광대’로서 이자람이 품은 ‘소리’였다. 그 총체적 개인을 향한 인정과 예의가 있기에 파격적인 캐스팅과 무대가 성립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관객들이, 또 그 스스로 가장 크게 기대하고 만족하는 건 결국 판소리로 풀어놓는 자리일 것이다.


▲ ‘억척가’

‘동행’으로서 이자람

이자람이 사랑하는 사람들로 시선을 옮겨보자. 소리판을 이끄는 사람은 소리꾼이다. 판소리의 창자는 홀로 소리를 하고, 아니리에 발림을 곁들이며 관객을 쥐락펴락한다. 하지만 지척에 앉아 그 소리의 틈을 메워주는 고수의 북장단이 없으면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기 어렵다. 아무리 훌륭한 명창도 고수가 받쳐주지 않으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 ‘창작판소리’를 펼치는 소리꾼 이자람의 고수는 ‘판소리만들기자’이다.

현대적 의미의 고수는 단 한 명도 아니거니와, 북채만 드는 것도 아니다. 연출·드라마투르기·무대·조명·음악으로 역할을 나눠 가진 이들은 이자람 옆에서 그를 세워주는 기둥이다. 그 과정 속에서 판소리만들기자는 ‘동네 대장 언니’ 같은 연출가 남인우와 ‘사천가’ ‘억척가’를 내놓았고, ‘깔끔한 완벽주의자’인 연출가 박지혜와 ‘추물/살인’ ‘이방인의 노래’를 함께 꾸렸다.

“제겐 공연의 시작점이 되는 아이디어와 기획력이 있어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죠. 남들은 이자람이 다한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기획 단계의 협업자, 연출 단계의 연출가… 과정마다 혼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시간이에요. 그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판소리만들기자라서 고맙고 또 미안하죠.”

판소리만들기자가 지난해 초연한 판소리 단편선 ‘추물/살인’에서 이자람은 작가이자 작창자, 예술감독으로 참여했다. “그때 ‘소리꾼 이자람’은 파업 중이었다”고 슬며시 웃는 그녀는 “부채 의식에서 비롯된 작품”이라는 고백을 들려줬다.

때는 시간을 거슬러 2009년 ‘사천가’로 올라 간다. 이 작품을 2년 전 초연했던 이자람은 당시 트리플 캐스팅으로 김소진·이승희를 내세웠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작품의 뼈와 살을 만든 사람에 비견하면, 평가절하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미디어와 관객들이 명명한 ‘이자람의 사천가’를 다른 이의 것으로 누가 보려 하겠는가. 결국 각 사람을 위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한 것이 주요섭의 동명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추물’ ‘살인’이었다. 소리꾼 김소진은 ‘추물’에서 언년이로, 이승희는 ‘살인’에서 우뽀로 관객들과 만났다.

“각각 그만의 옷을 입었을 때, 정말 아름답게 춤추는 걸 느꼈어요. ‘사천가’로 인한 스트레스가 벗어지는 걸 볼 수 있었죠. 앞으로도 ‘억척가’나 ‘이방인의 노래’가 제가 살아 있는 동안 다른 사람에게 전수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라는 걸 모두가 느꼈으니까요. 다만 이 열정이 사그라지지 않는 한 저는 계속 대본을 쓰고 그들은 작창을 하고, 계속 옷을 지어 입힐 수 있으면 좋겠어요.”

‘동시대 레퍼런스’로서 이자람

예나 지금이나 판소리를 만드는 이자람의 마음에 걸리고, 손에 잡히는 주재료는 ‘세상의 부조리함’이다. 좀 더 정확히는 ‘부조리한 세상 구조와 그 안에 놓인 인간’이 될 것이다. 그 재료가 ‘국내산’이냐 ‘수입산’이냐를 따지는 것은 장르와 국경의 경계가 이미 허물어진 동시대 예술에선 무의미한 일이 됐다. 다만 그 재료를 어떻게 요리했는지, 어떻게 우리와 저들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있던 것인지를 살피는 것이 그가 내놓은 김밥을 맛보는 이들이 지불할 그 무엇 아닐까.

이쪽과 저쪽, 구분짓는 개념으로 포섭할 수 없는 각각의 아티스트가 존재하는 시대. 이자람은 하나의 장르가 됐다. 동시에 ‘판소리만들기자의 창작판소리’ 레퍼런스가 되고 있다. 지금 그녀는 자신의 원천기술을 정리해 희곡집, 영상과 음반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살아 있는 동안 창작을 지속하되, 죽기 전에 스타니슬랍스키가 그의 노하우를 배우들이 읽고 훈련하게 한 것처럼, 소리꾼들이 대본을 쓰고 작창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을 쓰고 싶은 바람이다.

이런 이야기가 낯선 건 아니다. 한 평론가와의 대화에서 나는 200여 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신재효를 이자람에 대한 레퍼런스로 꺼내 들 수 있었다. 그가 판소리 여섯 마당을 정리·개작하고, 창작자로 활동하며 진채선 같은 여류 판소리 창자를 교육한 것들이 지금 우리에게 그 시대를 이해하는 지표가 됐으니 말이다.

동서양, 시대를 막론하고 예술가들은 서로가 서로의 레퍼런스가 되어 예술을 꽃피웠다. 그리고 머지않아 누군가는 ‘이자람’이라는 장르를 참조해 시대와 통하는 그만의 작품을 꺼내놓을 것이다. 물 건너 셰익스피어와 브레히트, 이 땅의 신재효와 이자람이 그러했던 것처럼.

사진 이규열(라이트하우스 픽처스)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