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머리에 단발머리 소녀. 눈을 반짝이며 10여 년 전 어느 작은 홀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던 소녀를 기억한다.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 수상자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비올리스트 이유라가 무대에 데뷔한지도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탁월한 예술성으로 사랑받았던 그녀가 오랜만에 한국에서 연주회를 갖는다. 열두 살 때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가 수여하는 올해의 신예 연주자상을 최연소 나이로 받아 화제가 되었던 그녀. 이제 서른이 훌쩍 넘어 확고한 자기만의 음악세계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이유라는 인디애나 음대와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로 연주자 학위를 받았다. 현재 보스톤과 뉴욕, 독일을 오가며 바쁜 연주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녀는 이날 바흐―코다이의 비올라를 위한 반음계적 환상곡, 왓킨스의 비올라 환상곡, 힌데미트의 비올라 소나타 Op.11-4, 텔레만의 바이올린 환상곡, 쇤베르크의 바이올린 환상곡 Op.47, 슈베르트의 바이올린 환상곡 D934를 연주한다.
오랜만에 서는 한국 무대인데요.
정말 한국에서의 리사이틀이 오랜만이에요. 저도 많이 기대가 됩니다. 그동안 제 삶에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음악은 삶의 표현이기 때문에 제가 경험한 만큼 음악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을 청중과 함께 나누게 되어 기뻐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요즘은 미국에서 반, 유럽에서 반,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웃음) 거의 매주마다 다른 도시에서 연주가 있어요. 또 미국 러트거스 대학에서 바이올린·비올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요. 저는 솔리스트, 실내악, 교수 생활 이 세 가지 밸런스를 무척 좋아해요. 하루 일과는 거의 아침에는 연습, 오전과 오후에는 리허설, 저녁에는 연주를 하며 지내죠. 연주 다음 날은 바로 다른 도시로 이동하고요. 그런 생활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연주회의 주제가 ‘판타지’인데 작품은 어떻게 선곡한 건가요?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판타지’라는 제목의 곡만으로 프로그램을 짰어요. 이 두 악기를 위한 좋은 곡은 너무 많아요. 저는 한 가지를 깊이 파고 들어가기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이번 연주를 준비하는 시간이 무척 즐겁고 흥미로웠어요.
청중이 작품을 들을 때 어떤 면에 초점을 맞춰서 들으면 좋을까요?
저는 몸과 마음의 한계를 뛰어 넘는 걸 좋아하고, 또 즐겨요. 인간의 정신 세계는 정말 무한하죠. 환상곡들은 여러 모로 테크닉과 감정의 기폭이 넓고 큽니다. 음악적으로 변화무쌍한, 흥미로운 과정을 청중도 같이 즐길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비올라와 바이올린을 함께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은가요. 각각의 악기마다 어떤 매력이 있나요?
저는 제 자신을 바이올리니스트나 비올리스트보다는 순수한 음악가로 생각하고 싶어요. 제가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같이 하는 이유는, 그만큼 저에게 표현의 자유가 주어지기 때문이죠. 두 악기를 하기 때문에 두 배로 연습을 해야 하지만 그만큼 저도 음악을 통해 에너지를 돌려받아요.
어린 시절부터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는데, 예전에 비해 음악적 생각의 변화나 가치관의 변화 같은 것이 있나요?
어린 음악가가 어른이 되어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추구하려면 어릴 때 많이 활동했던 만큼 ‘그로잉 업’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또 실수도 많이 하겠지요. 음악은 억지로 그렇게 빨리 성장시킬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살면서, 즐기면서, 느끼면서, 실수하면서, 그렇게 배우고 크는 것이겠죠. 그런 면에서 어릴 때보다 지금 더 삶의 섭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럽게 변하는 것들이야 말로 아름답다는 걸 훨씬 많이 느끼니까요. 성공했다고 성공한 것도, 실패했다고 실패한 것도 아니란 걸 더 깨닫게 되고요.
현재 음악계에선 굉장히 기교적인 연주가 각광받고 있습니다.
기교는 음악의 표현을 위해선 항상 존재해야 겠지요. 하지만 인간의 몸이 아무리 건강하고 테크닉이 완벽해도 아이디어가 없다면 좋은 연주가 나올 수 없겠죠. 저는 테크닉과 내용이 함께 어우러진 연주를 계속 하고 싶어요.
음악가로서 무엇을 추구하나요?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특별한 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무엇인지를 항상 묻고, 추구해나가는 게 가장 중요하죠. 그걸 잊지 않고 싶어요.
어디에서 음악적 영감을 받나요?
자연은 완벽합니다. 저는 산, 바다, 바람, 꽃, 여러 자연의 주는 아름다움에서 영감받기를 좋아해요. 건축·디자인·사진에도 관심이 많고요.
인생의 30대를 어떻게 보내고 싶나요?
30대는 참 소중하고, 또 흥미로운 시기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연주 생활을 23년 해왔지만,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삶이고 또 음악인 것 같아요. 항상 저만의 음악을 추구하는 그런 음악가가 되고 싶습니다.
사진 아트앤아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