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의 경계를 허무는 클래식 음악
뉴욕대학교의 마이클 베커만 교수는 클래식 음악의 정의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클래식 음악은 숙련된 음악가가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음악이라는 고전적인 관념으로 이해되며, 여전히 계급과 경계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다루는 음악 자체도 유럽 태생의 일부 음악가가 남긴 작품과 장르에 국한되어 이것이 자연스럽게 ‘클래식 음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교육 시스템 역시 클래식 음악 작곡가 위주로 구축되어 있는데, 베토벤이나 쇼팽이 과연 동시대의 인도나 일본의 음악보다 뛰어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준비할 시기가 다가온다는 베커만 교수의 의견에 공감한다. 올해 4월 미국 서부의 한 오케스트라는 카네기홀에서 미국 현대음악 작곡가 필립 글래스의 곡과 인도 작곡가 라비 샹카르의 시타르 협주곡을 함께 선보였다. 시타르는 페르시아의 세타르가 인도식으로 변형된 악기로, 지미 헨드릭스·롤링 스톤스·비틀스 등이 사용하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악단의 지휘자나 단원 중 인도 출신은 없었음에도 가장 인도스러운 시타르 협주곡을 연주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6월 28일 뉴욕 맨해튼 소재 92Y에서 크로노스 콰르텟의 공연이 열렸다. 해금 연주자 여수연과의 공동 공연이었다. 여수연은 그의 대표작 ‘옛소리’를 비롯하여 정통 정악인 ‘영산회상’ 중 마지막 세 곡 ‘하현도드리’ ‘염불’ ‘타령’을 거문고 연주자 박다울과 함께 선보였다. 월드뮤직 인스티튜트와 뉴욕 한국문화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이 음악회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회라기보다는 호기심 많은 현지인과 현대음악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 기획 연주였다. 한 시간 남짓한 음악회가 끝난 후 여수연과 크로노스 콰르텟의 예술감독 데이비드 해링턴이 함께하는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연주된 작품에 대한 이야기부터 한국 전통음악과 악기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에 이르기까지 제법 많은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갔다.
이번 연주에서처럼 크로노스 콰르텟과 같은 주류 아티스트들이 미국이나 유럽 무대에 올릴만한 한국적인 작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뉴욕 필하모닉은 이미 1980년에 시타르 협주곡을 라비 샹카르에게 위촉했고, 오늘날에도 많은 악단이 이 곡을 연주하고 있다. 라비 샹카르를 가리켜 모차르트와 같은 천재라고 말한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은 샹카르와 함께 작업한 음반으로 그래미상을 받았다. 줄리아드 음대 오페라에서 미국 초연한, 피터 맥스웰 데이비스의 오페라 ‘콤밀리토넨(Kommilitonen!)’에는 해금과 비슷한 중국의 전통악기 얼후가 등장한다. ‘와호장룡’ 작곡가로 유명한 중국의 탄둔은 자신의 작품에 중국 전통악기를 사용했고, 일본의 다케미쓰 도루는 일본 전통 관악기인 샤쿠하치와 전통 현악기 비와를 위한 곡을 썼을 뿐 아니라 일본 전통악기만으로 연주되는 오케스트라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최근에는 밀워키 심포니의 공연과 매년 여름 시카고 도심에서 열리는 ‘그랜트파크뮤직페스티벌’에서도 얼후가 등장했다. 얼후는 시타르와 더불어 동양의 대표 악기이자 서구 작곡가들의 호기심을 상징하는 단골 악기로 각인되고 있다.
이번 음악회는 영리하게 계획된 행사라는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덧붙여 여수연의 현주소가 뚜렷하게 조명되었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국악기 연주자로 미국 주류와 섞여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겁 없이 뛰어들어 새로운 리그를 만들어내는 여수연과 같은 용기 있는 연주자들이 계속 나오기를, 그리고 이들을 위해 역량 있는 작곡가들의 수준 높은 작품이 더 많이 탄생하기를 희망해본다.
글 김동민(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