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IND THE STAGE
무대 뒤 사람들의 이야기
공연이 다른 예술과 다른 점은 관객 앞에서 생생하게 움직이는 무대 위 공간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서서 극에 몰두한다. 이를 선두 지휘하는 이들은 무대디자이너로, 사실적이거나 상징적으로 극의 배경을 재현한다. 뮤지컬 ‘레베카’ ‘내 마음의 풍금’ ‘모차르트!’와 연극 ‘리처드 3세’ ‘프랑켄슈타인’ ‘오이디푸스’ 등에서 무한한 공간을 만들어냈고,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무대디자이너 정승호를 만났다.
“공연에서는 퍼포머가 필요로 하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의 시각적인 면을 책임지는 것이 무대디자이너다. 많은 사람이 무대감독과 무대디자이너가 같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상당히 다른 영역이다. 무대감독은 스테이지 매니저 개념으로 보면 된다. 연습 스케줄을 짜는 것에서부터 무대 평면도를 연습실에 테이핑하는 것뿐 아니라 공연 때는 큐 사인을 통해 공연을 진행한다.”
정승호는 박스형 무대를 선보인 것으로 유명하다. 프로시니엄 극장이 본래 가진 박스의 느낌에서 한발 더 나아가 또다른 박스 안에 오브제를 넣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뮤지컬 ‘레베카’에서 다양한 크기로 선보인 박스형 무대는 뛰어난 스토리텔링을 이끌었다. “미국 유학 시절 해럴드 핀터의 ‘배신자’라는 작품에서 처음 박스를 사용했다. 박스라는 도구는 무언가를 한정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순간 상징성을 띤다고 느꼈다. 이번 ‘오이디푸스’ 무대에서는 박스를 사용하지 않았고, 대신 극장에 있는 구조물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다. 극 중 고대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하는 다수의 기둥은 실제 극장의 기둥 사이사이 그것과 똑같은 구조물로 만들어 넣은 것이다. 이 공간이 세트라고 느끼기보다는 극이 일어나고 있는 그때 그곳처럼 느끼길 바랐다.”
같은 무대 디자인이라도 사용하는 소재에 따라 완전하게 다른 느낌을 준다. 그만큼 질감(Texture)을 선정하는 데 고심을 기울인다. “작품을 관통하는 텍스처를 바탕으로 전체를 통일성 있게 끌고 가려고 한다. 예를 들어, ‘남한산성’에서는 비극적인 역사에서도 꿋꿋이 버티는 선조들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모든 세트를 대나무로 구현했다. 한 장면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질감 선택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오이디푸스’에서 그가 자신의 눈을 찌르는 장면에서는 무대 천장에 매달려 있던 붉은 천들이 흐르는 피처럼 하나둘 떨어진다. 천의 소재로는 실크를 사용했는데, 쭈글쭈글해지면서 순식간에 툭 떨어지는 극적인 느낌은 오직 실크로만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승호는 올해 국립극단 ‘스카팽의 간계’, 국립발레단 ‘호이랑’, 뮤지컬 ‘엑스칼리버’, 김동률 콘서트 등 다양한 무대 작업에 참여한다.
“장르별로 무대의 특성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극장에서 이뤄지는 것들이라 디자이너로서 사용할 수 있는 재료는 똑같지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많은 변화가 있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발레는 사람의 움직임을 극대화하여 보여주는 장르이기 때문에 무대 전환이 많을 경우 충돌할 수 있다. 다리막·머리막·배경막 정도를 교체하여 그림을 변화시킨다. 오페라도 막마다 큰 배경이 변하지만, 뮤지컬처럼 장면마다 무대가 변하진 않는다. 뮤지컬 무대에서 가장 많은 것을 시도해볼 수 있다.”
정승호는 실험정신을 기본으로 하되, 협업을 추구하는 열린 마음으로 작품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 공연 시장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다수의 디자이너를 수용할 만큼 크진 않다. 무대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녹록지 않은 직업이라는 점을 각오해야 한다. 경험한 바로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본인이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감사한 마음으로 작업하다 보면,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글 권하영 기자 사진 박진호(studio BoB)·샘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