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푸라 델스 바우스의 하이든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듣는 음악에서 보는 예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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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4월 1일 9:00 오전

‘객석’ 필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3월 1·2일 아트센터 인천

아트센터 인천의 2019년 개막공연작 하이든 ‘천지창조’가 여러모로 화제다. 우선 국내 초연이자 아트센터 인천에서 3월 1일과 2일 이틀간 단독공연하고 떠났다는 점, 순수하게 듣는 예술이었던 오라토리오를 시각적 효과를 지닌 오페라처럼 해석했다는 점, 무엇보다도 난민이 등장하는 라 푸라 델스 바우스(La Fura dels Baus) 연출진이 보여준 독특한 감성이 세간의 중심에서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아트센터 인천에서 하이든 오라토리오 ‘천지창조’가 상연된다고 했을 때 관객동원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앞섰다. 레치타티보·아리아·합창이 섞인 오라토리오는 가사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해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하이든의 오라토리오는 헨델의 ‘메시아’와 같은 파급력도 적었다. 아트센터 인천은 과감하게 ‘천지창조’를 빛의 예술로 변모시켜, 듣는 음악을 완전히 보는 예술로 전환하는 획기적인 시도를 선보였다. 단순히 시각적 이미지 효과만을 추구한 것이 아닌, 하이든의 음악이 살아있으면서 관객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극대화시켰다는 면에서 성공적인 공연이었다.

스페인 카탈루냐의 시어터그룹 라 푸라 델스 바우스가 오라토리오를 세미 오페라처럼 만든 연출은, 오페라가 오라토리오처럼 혹은 오라토리오가 오페라처럼 펼쳐지는 21세기 장르 융합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화려한 무대장치를 생략하고 가수들의 연기를 간소화한 콘서트 오페라 형식이 현재 거대한 오페라 연출과 구별되는 또 다른 축을 이루듯이 말이다. 이번 오라토리오 공연은 오페라의 옷을 입고도 오히려 음악적 역량은 축소되지 않았고, 서사적 흐름이 섬세하게 전달됐다는 점에서 매우 효과적인 무대였다. 자막이 제공되지 않아 온전히 가사의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아쉬움은 있었지만, 빛과 사물의 형태, 텍스트를 통해 ‘천지창조’가 전달하려는 내용과 연출 의도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예컨대 크레인이 무대 한가운데 자리잡고 수동으로 기계장치를 작동해 가수를 끌어올리고 내렸는데, 천사 역을 맡은 가수는 크레인에 매달리기도 하고 네모난 수조 속에 들어가 헤엄치고 노래하며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별과 우주, 나무와 꽃, 인간이 창조되는 날에는 그 형상이 스크린에 나타나 무엇을 창조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스크린에 휘몰아치는 글자형태와 난민으로 분장한 합창단원은 서구문명의 진보와 위기, 인간의 정체성 상실, 역사와 문명의 가치, 자유 등을 메시지로 전달하며 인류애와 화합을 호소했다. 나아가 유관순 열사의 얼굴이 천사 우리엘의 아리아와 함께 대형스크린에 비친 것에서도 관객은 분명히 ‘천지창조’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뜻깊은 날이었다고 해도 자못 의아한 상황에서, 고귀한 위엄을 지니고 용기를 갖춰 하늘을 향해 서있다는 가사에 비친 얼굴은 생명과 통합과 자유를 강조한 하이든 ‘천지창조’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맞닿아 있었다.

결과적으로 시각과 청각이 결합한 새로운 시도를 훌륭히 소화해낸 가수와 합창단원, 기악연주자들은 관객의 큰 박수를 받았다. 이들은 완성도 높은 음악을 들려줌으로써, 아무리 개성 강한 독창적인 연출도 음악이 받쳐주지 않으면 온전한 작품으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글 오지희(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아트센터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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