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필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3월 9일~4월 2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3·1운동이 있은 지 100주년이다.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독립된 대한민국이 과거 어느 시절에는 누군가의 희생과 투쟁으로 쟁취해야 했던 대상이었음을 돌이켜보면 절로 숙연해진다.
뮤지컬 ‘영웅’이 다시 막을 올렸다. 지난 2017년, 촛불로 가득했던 광화문 광장 옆 세종문화회관에서 놀라운 흥행을 기록하며 인기를 누리던 모습을 기억한다. 인산인해를 이루던 광장을 뚫고 공연장을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공연장 풍경은 그야말로 멋진 반전이었다. 오랜 세월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온 제작사의 노력이 적지 않겠지만, 세간에는 영웅을 기다리는 대중심리도 흥행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을 자주 내놓았다. 단지동맹으로, 손가락 한 마디가 없는 손도장으로 유명한 선생의 이야기가 대중에게 어떤 의미로 각인돼있는지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이번 무대는 여전히 감동적인 장면들을 완성해낸다. 무대의 디테일은 꽤 흥미로운데, 일곱 발의 총성도 그중 하나다. 거사 당시, 안중근은 일곱 발의 탄환을 사용했다. 이 중 네 발은 이토 히로부미에게, 나머지는 만에 하나 오인했을 때를 대비해 주변의 인물을 겨냥해 발사했다. 일곱 발의 총성이 무대를 가르는 순간, 전후 사정을 알고 무대를 바라보면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관객들로부터 사랑받는 뮤지컬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영웅’의 첫 번째 미덕은 우선 음악이다. 몇 번 반복해 듣다 보면 어느새 입가에 맴도는 선율을 실감할 수 있다. 특히, 거사를 결심하는 1막 후반부의 음악들은 그야말로 중독성이 강하다. ‘장부가’로도 알려진 ‘영웅’과 ‘그날을 기약하며’가 이에 해당한다. 뿔 나팔 소리 같은 연주음이나 규칙적인 템포의 박자감은 마치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음악을 연상케도 한다. 만주 벌판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음악적 완성도가 듣는 재미와 감동을 준다면, 비주얼적인 완성도는 또 다른 즐거움을 주는 두 번째 미덕이다. 흔히 야마카시라 불리는 ‘파쿠르’에서 착안했다는 역동적인 안무와 무대 구성, 철골 구조물을 오르내리며 전개되는 입체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극 전개가 그것이다. 기차 세트의 활용도 인상적인 이미지를 연출해낸다. 영상으로 표현되던 달리는 기차가 삽시간에 세트로 변환되는 무대를 보며, 국내 스태프들의 무대 비주얼에 대한 노하우와 창의력이 어디까지 성장했는지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영웅’은 중국 하얼빈 현지에서 막을 올리기도 했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제는 비행기로 두 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지만, 서슬 퍼런 일제 시절 몇 날 며칠에 걸쳐 얼어붙은 땅을 건너 그곳에 다다랐을 독립투사들을 떠올리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뮤지컬의 노랫말처럼 “타국의 태양, 광활한 대지”에서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큰 뜻을 품었으니 죽어도 그 뜻 잊지 말자고 하늘에 맹세”했던 선열들의 애국심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안중근 의사의 유골은 아직 발견되지 못했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그의 시신을 일제는 연골을 제거해 무릎을 꿇린 채 관에 담아, 후세 사람들이 찾아볼 수 없도록 훼손하고 아무도 모르게 감춰버렸다는 후문만 무성하다. 우경화를 노골적으로 표명하고 있는 일본 아베 정권의 한 관계자는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이자 범죄자로 폄하해 공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뮤지컬로나마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기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글 원종원(뮤지컬 평론가·순천향대 교수)
사진 (주)에이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