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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5월 26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부산의 아이콘 오충근이 지휘하는 유라시아오션필하모닉(EOPO)이 선을 보였다. 해외에서 활약중인 부산 출신 연주자, 해외 아티스트들과 부산 음악가들이 한데 모인 올스타 오케스트라다. 라디오프랑스 필 악장 박지윤,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제2악장 김재원(바이올린), 이승원(비올라), NHK향 수석 아오야마 사토키(오보에), 도쿄 필 수석 최영진(바순), 오슬로 필 수석 김홍박(호른), 백동훈(클라리넷) 등이 포진해 있었다.
차이콥스키 ‘슬라브 행진곡’은 현의 움직임이 청신하고 앙상블이 투명했다. 오충근 특유의 일사불란한 박력이 몰아치는 가운데에서도 디테일이 살아있었다.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박지윤은 우아한 곡선미로 황홀한 선율을 들려주었다. 그녀는 프랑스의 색채감 위로 유동적이고 피어오르는 듯한 선율을 능란한 프레이징으로 직조했다. 카덴차에서 띄운 고음은 섬세했고, 연주에서 젊음과 패기가 느껴졌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1악장에서 클라리넷의 노래에 깔리는 현이 두터웠다. 뭉근하게 터지는 금관의 사운드가 귓가에 달라붙었다. 확고하고 탄탄한 합주력이 돋보였다. 2악장은 꿈꾸는 듯한 현악 앙상블에 이어 김홍박의 호른 독주가 마음을 꺼내보이듯 탁월했다.
호른에서 오보에로 이행하는 부분에서 견고하고 숭고한 애달픔이 느껴졌다. 3악장은 담담하게 흔들리지 않는 연주였고 4악장 시작부분부터 표정이 좋았다. 견고한 금관, 청신한 현악, 유연한 목관, 우렁찬 금관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EOPO 단원들이 즐기면서 연주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다음날 27일은 EOPO 단원들의 실내악 무대가 열렸다. 김재원과 이승원이 헨델/할보르센 ‘파사칼리아’를 연주하며 막을 열었다. 애절한 바이올린과 선 굵은 비올라가 조화를 이뤘다.
백동훈(클라리넷)과 김재원, 박지윤(바이올린), 이승원(비올라), 김민지(첼로)의 모차르트 클라리넷 5중주도 주목할 만했다. 온화한 현악 4중주의 울림 위로 따스한 클라리넷이 햇살처럼 고개를 들고 풍부한 호흡으로 넉넉함을 안겨줬다. 2악장은 천상의 선율이라 할 만한 클라리넷 위로 바이올린의 고음이 들어왔다. 안정적으로 흐른 3악장 뒤로 4악장은 어둑어둑해지며 침잠했다가 다시 밝아지는 모차르트 특징을 잘 살렸다.
오신정(플루트), 아오야마 사토키(오보에), 백동훈(클라리넷), 최영진(바순), 김홍박(호른)이 함께한 단치 목관 5중주는 고전주의적이었다. 코랄같은 2악장은 천천히 목관악기들에 젖어들었고 3악장은 질주하듯 춤추듯 리듬감이 챔버홀을 휘감았다. 4악장의 앙상블은 기교적이었다.
박지윤·김재원·이승원·김민지·성민제(베이스)가 연주한 드보르자크 현악 5중주 Op.77은 더블베이스의 중후한 선율과 특유의 민요풍으로 구성진 춤곡의 느낌을 만끽할 수 있었다.
실내악 무대는 28일 거제문예회관으로 이어졌다. 단치의 5중주 대신 김민지와 성민제가 로시니 첼로와 더블베이스를 위한 2중주를 연주했다. 당당하고 늠름한 두 악기의 선율과 리듬으로 로시니의 넉넉한 유머를 잘 표현했다.
국제아트센터와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앞두고 있는 부산은 향후 하드웨어에 걸맞는 소프트웨어가 숙제다. 이번 EOPO의 무대는 그에 응답하는 첫 단추로 기억될 것이다.
글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부산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