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예권 피아노 독주회

어느덧 드러난 우아한 아우라

우수 컨텐츠 잡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7월 1일 9:00 오전

REVIEW

6월 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최근 연주자들의 생활이나 의식구조 등이 다른 사람들과 많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의 눈에 특별하게 보인 내용은 단순했다. 평생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해 산다는 것. 음악가들의 삶이 특별하다면 학교 다니며 공부할 때와 졸업 후의 일이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시험이 끝나도, 콩쿠르가 끝나도 잠시 휴식 후 돌아가야 하는 곳은 연습실이다. 학교를 졸업한 연주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있다면 의무적으로 주어지던 룰과 규범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약간의 자유로움이겠지만, 이 또한 학생시절 이상의 압박과 무거운 책임을 요구하는 새로운 의무감이 아닐 수 없다.

2019년 봄, 선우예권은 자신이 응당 겪어내야 할 새로운 책임에 당당히 맞서고 있었다. 수많은 콩쿠르를 적지 않은 나이에 정복해 가며 얻은 영광 후의 모습이 홀가분함만으로 비춰지지 않는 것은 그의 성실함과 언제 어디서든 흔들리지 않는 ‘모범생’ 기질 때문일 것이다. 수 년 전의 선우예권은 젊지만 많은 경험에서 오는 노련함으로 청중들과의 교감은 원활했으나, 작품의 구성과 텍스트가 짜내는 긴장감을 ‘단단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이 지나쳐 순간순간 만들어지는 아우라의 유연함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시간은 흘러, 20대의 시련을 거쳐 낸 그는 온전한 30대를 맞을 준비를 마쳤다.

클라라 슈만의 이름이 들어간 연주회를 그녀의 작품으로 시작하는 것은 당연하다. 노투르노 F장조는 전체 연주의 워밍업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무엇보다 독일 낭만의 레퍼토리를 엮어내는데 필요한 음색과 페달링에 의한 공간감의 구현, 화사하고 세련된 루바토로 만들어진 로맨틱한 분위기는 슈만의 걸작을 소개하기에 앞선 작품으로 더없이 이상적이었다.

슈만의 환상곡 작품 17의 세 악장에서의 선우예권의 해석은 악장 간의 연결보다는 음향으로 구현된 텍스트가 만들어내는 시적 영감을 여과 없이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음악회 전체를 통해 가장 돋보였던 1악장에서 선우예권은 자신의 내면 밑바닥에 흩어져 있는 꿈과 환상의 규모를 탐험하는 듯했다. 과거 방어막처럼 형성했던 모범생의 틀은 온데간데 없고, 청중들을 바라보던 시각은 좀 더 자신의 무의식으로 향했는데, 거기서 나오는 표현은 지극히 편안하고 신선한 매력을 던져주었다. 세련된 음향과 여유로운 다이내믹이 넉넉한 충족감을 전달한 2악장의 율동감은, 깔끔한 뒷맛과 밝은 뉘앙스로 마무리된 3악장의 여운과 어울려 전곡의 분위기를 사랑스럽게 만드는데 결정적이었다.

변신이 없는 예술가는 그 의미를 상실하지만, 각자가 지닌 자신만의 기질은 평생의 시그너처가 돼야함도 분명하다. 브람스의 초기작 소나타 작품 5에서 그는 어떤 악보를 받아도 멋지고 설득력있게 만들어내는 예의 ‘능력자’의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젊은 브람스가 오케스트라적 이디엄을 피아노로 옮기는 과정에서 나타난 투박한 감성은 그의 손에서 말끔하게 다듬어져 표현됐다. 박진감과 흥분, 장대함을 피아니스틱한 언어로 훌륭히 설명한 1악장, 반짝거리는 음색으로 은밀한 아름다움을 그려낸 2악장, 스케일을 넓혀 관현악적 색채를 드러낸 4악장과 후기낭만의 비르투오시티를 우아함 안에서 구현해 내는데 성공한 피날레 등 대곡이 드러낼 수 있는 성찬의 매력을 포만감있게 전달했다.

김주영(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MOC 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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