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6월 15일~8월 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아더왕과 엑스칼리버의 전설은 소설이나 영화, 애니메이션 등의 소재로 종종 활용되면서 누구나 한 번쯤 접해봤을 이야기다. EMK뮤지컬컴퍼니의 세 번째 창작뮤지컬인 ‘엑스칼리버’에 앞서 지난 3월 프랑스 뮤지컬 ‘킹아더’가 소개되면서 아더왕의 전설이 국내에서 연이어 회자하는 흥미로운 상황이 펼쳐졌으나, 두 작품은 서사를 풀어내는 방식이 확연히 다르다. ‘킹아더’가 화려하고 파워풀한 음악과 군무가 강한 뮤지컬이라면 ‘엑스칼리버’는 캐릭터로 끌어가는 서사에 방점을 찍고 있는 작품이다.
‘엑스칼리버’는 평범한 소년에서 강인한 왕으로 성장하는 아더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5세기에서 6세기 로마제국이 물러난 이후 영토 확장을 모색하는 색슨족에게 대항하며 하나로 통일되는 영국을 시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전쟁의 과정 그 자체보다는 아더와 기네비어·랜슬럿·모르가나·멀린 등 다섯 주인공의 서사가 주축을 이룬다. ‘데스노트’ ‘보니 앤 클라이드’ ‘마타하리’ 등에서 함께 작업한 바 있는 아이반 멘첼과 프랭크 와일드혼이 극과 음악을 담당했으며, ‘마타하리’의 재공연을 이끌었던 스티븐 레인이 연출로 참여했다. 와일드혼의 작품은 한 해에도 여러 편 국내에서 공연될 만큼 유명한 작곡가지만,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작가 박천휘가 번역한 한국어 가사와 좋은 합을 이루며 오래 기억될만한 넘버들을 만들어냈다. 엑스칼리버를 뽑아 든 아더를 향해 랜슬럿과 군중이 함께 부르는 ‘검이 한 사람을’, 아더와 기네비어가 첫 만남에서 부르는 듀엣곡 ‘그가 지금 여기 있다면’, 모르가나의 한과 분노가 담겨있는 ‘아비의 죄’, 모르가나와 멀린의 엇갈린 감정이 교차하는 듀엣곡 ‘욕망’, 기네비어를 향한 랜슬럿의 애틋한 마음을 전하는 ‘없는 사랑’, 왕의 길을 비로소 받아들이는 아더의 솔로곡 ‘왕이 된다는 것’ 등 각 넘버는 캐릭터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내며 서사에 힘을 더한다. 이들과 대비되는 야만적이고 강력한 색슨족을 표현하기 위해 어둡고 묵직한 음악적 색채를 부각한 점도 흥미롭다. 실제 숲을 옮겨놓은 듯한 무대와 캐릭터의 특성을 과하지 않게 부각한 의상도 스토리텔링에 한몫을 톡톡히 한다.
70여 명의 배우가 등장하는 전투신으로 화제를 모았던 만큼 규모만으로도 무대를 압도하지만,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뮤지컬로 풀어내기에 녹록하지 않았을 역사 판타지를 섬세하게 배치된 설정과 뚝심 있는 연출로 끌고 간다는 것이다. 레인은 “실제 세계의 관점에서 보아도 어느 정도 말이 되고 일어날 법한 판타지를 만들어내고자 역사적 사실에 마법과 같은 요소를 추가해 이야기를 창작하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관점은 거대한 무대 위에서 인물들의 성격과 관계를 그려내는 데 주요한 밑그림이 되었다.
여러 명의 배우가 하나의 캐릭터를 나누어 맡는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는 어떤 배우의 공연을 보았는가에 따라 작품의 느낌이 확연히 달라진다. ‘엑스칼리버’도 예외는 아니다. 극 중 18세로 설정된 아더는 김준수·카이·도겸이 연기하는데, 실제 나이 차만큼 이들이 그려내는 아더의 색깔도 조금씩 다르다. 제대 이후 첫 창작뮤지컬에 나선 김준수는 뮤지컬 배우로 한층 더 성장한 모습이다. 용으로 대변되는 내면의 분노를 다스리며 왕으로 성장해가는 아더와 달리 억눌려 온 삶의 욕망에 잠식당하고 마는 모르가나를 통해서는 노련한 신영숙과 날카로운 장은아의 각기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글 지혜원(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EMK뮤지컬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