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뜨거운 ‘격정’과 차가운 ‘걱정’
(영화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다) 뜨겁다고 생각하겠지만, 온기가 없는 차가운 물 속에 갇힌 것 같은 시절이 있었다. 문득 그리워진다. 그날의 날씨, 그날의 냄새, 그날의 피부와 손끝의 촉감, 함께 나눈 소리와 그 공기 속을 유영하던 음악 같은 호흡. 각자의 기억 속에 갇힌 채 그리움으로 남은 과거는 짙은 농도로 현재에 가라앉았다. 그리워지는 기억, 그사이에 숨겼던 감당할 수 없던 진심은 끝끝내 현재의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프랑스 출신의 감독 셀린 시아마(1980~)가 연출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은 뜨거운 격정과 차가운 걱정 사이에서 놓쳐버린 시간을 되짚는 영화다. 뜨거웠지만 또한 차가웠던 사랑의 기억을 낭만적으로 관조하기보다, 아프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이라며 다독인다.
응시와 시선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18세기 말 어느 작은 섬에서 있었던 짧은 사랑과 긴 기억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멜랑)는 결혼을 앞둔 귀족의 딸 엘로이즈(아델 에넬)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작은 배를 타고 외딴섬에 도착한다. 당시에는 결혼 전 신부의 초상화를 신랑에게 보내는 풍속이 있었는데, 엘로이즈의 엄마는 딸이 결혼과 초상화 모델이 되기를 모두 거부하자, 화가에게 산책 친구인 척 위장해 몰래 초상화를 그리게 한다. 영화는 일주일 정도 엘로이즈와 그녀를 몰래 관찰해 그림을 그려야 하는 마리안느 사이에 오가는 교감을 넌지시 바라본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마리안느는 학생들에게 미술 교사인 자신을 보고 그리라고 말한다. 동시에 그녀는 학생들을 응시한다. 일반적으로 미술 교사가 학생들과 피사체를 보면서 지시 내리는 것과 다르다. 이 장면은 피사체는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시선을 가진 주체라는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시선과 정서를 영화에 녹여낸 셀린 시아마 감독은 제71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영화계 성평등을 위한 레드카펫 퍼포먼스에 참여하는 등, 활동가로서의 면모 또한 보였다.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여성에게 불평등한 18세기 계급사회가 시대적 배경이지만, 남성과 여성의 관습적 구분이나 계급 사회를 나누는 차별은 영화에 담기지 않았다. 배경 역할에 그치는 인물을 제외하고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는 남성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롯이 여성들 사이의 교감과 시선을 확보하는 것으로 흔히 ‘뮤즈’라 불리는 피사체와 그녀를 관찰하는 주체로서의 화가의 관계를 전환한다.
몰래 엘로이즈를 관찰하며 그려낸 마리안느의 그림 속 여인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상적인 뮤즈의 형상에 가깝다. 온화하고 발그레한 뺨을 가진 인위적 여성성이 강조된 그림이다. 엘로이즈는 그림이 자신의 온전한 존재를 담지 못했다고 비난하고, 마리안느는 화가 나서 얼굴을 지워버린다. 엘로이즈는 직접 마리안느의 모델이 되겠다고 자처한다. 그러자 수동적인 피사체였던 모델과 응시하는 주체로서의 화가의 관계가 뒤바뀐다. 엘로이즈는 사실 자신도 그림을 그리는 마리안느를 관찰하고 있다며 그녀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관음적 대상이 아닌, 서로를 응시하는 주체로서 두 여인의 모습이 한 화면에 담긴다.
시선만 바뀐 것이 아니다. 영화는 주체적인 여성과 평등을 이야기한다. 영화의 도입부, 화구가 바다에 빠지자 마리안느는 같은 배에 탄 남자들의 도움을 구하는 대신 직접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여성들이 하녀 소피를 대하는 태도도 바르다. 귀족과 화가, 그리고 하녀라는 철저한 계급사회에서도 이들은 서로를 동등하게 대하고 우정을 나눈다. 그저 맡은 일과 하는 일이 다를 뿐 동등한 인격체로서 존재한다. 평등, 공유, 소통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아우르는 정서이다.
보이는 음악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절제를 통해 폭발하는 법을 아는 영화다. 음악을 최대한 배제하고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살랑거리는 청각에 오롯이 집중하면서 사람과 그 사이의 관계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감정을 자극하는 한숨과 바스락거리는 옷감이 만들어내는 소리의 정서는 더욱 내밀하게 오간다. 두 사람 사이를 휘감는 바람과 파도 소리에서 관객은 격정적인 순간 숨소리를 주인공들과 함께 내쉬는 것 같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속 음악은 근래에 보기 드문 청각적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딱 세 번만 화면 속에 음악을 담으며 그 정서적 효과를 폭발시킨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가 처음으로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장면에서 마리안느는 서툴게 비발디의 곡을 연주한다. 심야에 은밀하게 벌어진 축제에서 여성들은 모닥불을 둘러싸고 노래 부르는데, 여성 합창의 화음이 너무나 아름다워 사랑의 주술을 거는 것처럼 느껴진다.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시선을 나누는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사랑이 불붙는 순간이라 음악의 정서가 더욱 큰 울림을 준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연주회장에서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이 연주된다. 이 음악은 마치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며 관객의 감정까지 뒤흔든다.
카메라는 음악을 듣는 엘로이즈의 얼굴을 보여준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과거의 추억으로 들어가 마치 음악을 바라보는 듯한 그녀의 표정에는 격정과 슬픔, 희열과 회한의 감정이 마구 뒤섞인다. 관객은 엘로이즈에게 꺼지지 않은 불씨처럼 남아있는 마리안느에 대한 사랑이 음악을 통해 재현되는 것을 함께 체험한다. 기억과 만난 음악이 추억을 현재로 불러오며 그날의 격정이 다시 불타오르는 것 같다. 예정된 미래처럼 보이는 오늘, 음악은 과거를 재현하는 그림이 되고, 텍스트가 되고, 마음을 뒤흔드는 연애편지가 된다.
날 선 감정과 낯선 떨림, 그리고 관능적 욕망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여인들의 비밀스러운 관계는 시간 속에서 쉽게 시들지 않는다. 더불어 무르익지 않아 떠도는 정체성의 혼란 역시, 자괴감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놓친 사랑의 아련함 속 상처 입기 쉬운 감정을 혀로 핥으며, 미숙한 사랑을 단죄하거나 떠난 사랑을 미워하지 않고, 그 어떤 것으로도 정의되지 않은 미지의 상태여도 괜찮다고 토닥거린다. 자신의 진심이 무엇인지 들여다볼 수 있는 오랜 시간과 그 추억은 차라리 축복에 가까워 보인다.
글 최재훈(영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고 있다.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