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은 꼭 해피엔딩!
배우 박해미
그는 아픔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왔다
인터뷰도 사람과 사람의 대화인지라, 질문이 혹여나 무례가 될까 망설여질 때가 있다. 고백하자면 이번 박해미와의 인터뷰가 그랬다. 힘든 시간을 견뎌내고 다시 세상에 나온 배우에게 대체 무엇을 물어야 할까. 지난 7월, 금발의 박해미가 그 누구보다 밝은 모습으로 ‘객석’ 사무실을 찾았다. 그와 마주 앉아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 이전의 박해미, 지금의 박해미, 그리고 앞으로의 박해미에 관하여.
건강하게 돌아온 모습이 반갑다. 모든 상황을 책임지려는 모습이 감명 깊었다.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았을 텐데 복귀 시기가 이른 것 같다는 걱정도 됐고.
내가 잘못한 건 아니니 계속 숨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책임질 수 있는 건 다 책임지려고 노력했다. 복기 시기는 적당한 것 같다. 주변에 날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다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어느 방송에선 ‘돌아온 긍정 디바’라고 표현하더라. 이처럼 대중에게 배우 박해미는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이러한 시선이 부담되지는 않은가. 전혀. 원래 긍정적인 사람이다. 요즘 대중가수들의 가사를 보면 ‘대중 앞에서의 나’와 ‘자연인의 나’의 자아가 달라서 혼란스러운 심정들을 다루더라. 젊은 배우들 역시 그런 간극에서 오는 고민들이 많다던데.
나는 브라운관에서의 모습과 실제 모습이 똑같다. 오로지 연기할 때만 캐릭터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우울증에 걸린 후배들이 많아서 안타깝다. 왜 자기 자신을 숨기면서까지 방송을 하는지…. 배우라고 다른 세계 사람이 아니다. 다만 행동은 조심해야 된다. 윤리적인 행동은 지키려고 하면서, 편한 마음으로 활동하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이 박해미의 새로운 시작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전까지의 박해미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박해미를 예측하는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었다.
좋다. 지금 이 시기가 내 인생에 터닝포인트는 맞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이들에게 배우 박해미는 커리어적으로 좋은 롤모델이다. 이화여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뒤, 1984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통해 뮤지컬에 데뷔했다. 심지어 TV드라마에서도 좋은 성과를 보였다. 성악을 공부하던 학창 시절에는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가 분명해 배척하는 시선이 있었을 텐데.
그때도 나는 긍정적이었던 것 같다. 성악을 전공했지만 노래와 춤, 연기가 좋았다. 이탈리아 유학을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신문에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히어로를 뽑는다는 오디션 광고를 봤다. 그때가 대학교 3학년이었다.
뮤지컬의 다른 발성과 춤, 연기 같은 새로운 재능은 스스로 소화했나.
춤은 워낙 어릴 때부터 잘 추는 편이었다. 연기도 기질적으로 타고났던 것 같다. 무대 현장에서 끊임없이 부딪히면서 경험을 축적했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성악도가 많아졌다. 이들은 어떤 역량을 먼저 키워야 할까.
성악가는 원래 연기와 춤을 잘 해야 한다. 오페라 가수에게도 이러한 역량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대학에서는 노래와 화성학, 시창청음 같은 수업만 한다. 내가 공부하던 시절에도 연기나 신체 훈련에 대한 과정은 없었다. 이탈리아어나 영어 딕션은 공부해도, 막상 한국어 딕션을 배우진 않았고. 이런 점이 뮤지컬 배우를 결심했을 때 초반에는 좀 부담스러울 것이다. 대부분 학원에서 배우려고 하던데, 무대에 직접 올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아가씨와 건달들’ ‘품바’ ‘맘마미아’ ‘브로드웨이 42번가’ ‘카르멘’ ‘스위니 토드’ ‘캣츠’ 등 참여한 대작이 너무 많다. 이중 가장 영감을 준 작품이 있다면. 2005년에 참여한 창작뮤지컬 ‘카르멘’. 원작의 음악을 워낙 좋아한다. 나에게 카르멘이라는 캐릭터는 여전히 고민되는 인물이다.
반대로 작품이 잘 안 풀렸던 경험도 있었을 텐데.
직접 제작한 ‘키스 앤 메이크업’이 그렇다. 이건 제작자로서의 고민이었다. 평점은 높게 받았는데 흥행이 잘 안 풀렸다. 이상하게 이 작품을 할 때마다 사건 사고가 많았던 것 같다.
박해미의 이름을 빛낸 작품으론 크게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2004년 뮤지컬 ‘맘마미아’의 도나 역, 그리고 2006년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큰며느리 역. 당신에게 엄청난 인기를 주었다.
마흔이 넘어서 일어난 일이라 갑작스러운 인기에도 크게 흔들리진 않았다. 20년의 무명 시기를 거쳤기 때문에 모든 것이 여유로웠다. 사실 젊은 시절에도 이런저런 기회가 있었지만 타협하기 싫어서 가지 않은 길이 많다.
그 시절에는 무엇과 타협하기 싫었는지.
내가 젊었을 때 사람들은 여배우가 꽃으로만 존재하길 원했다. 주체가 되어 무언가를 하려면 거부당하기 일쑤였다.
뮤지컬 제작과 연출을 한 지도 어느덧 10년이다. 보통 창작은 어떤 고민으로부터 시작되나.
시대를 무조건 담고자 한다. 그리고 내가 만든 작품의 끝은 꼭 해피엔딩이어야 한다. 아픔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고 싶다.
TV드라마에선 우울한 역할을 맡기도 하던데.
사실 그런 역할을 싫어하는 편이다. 차라리 센 역할을 맡고 싶다.
앞으로 박해미가 몰두하고 싶은 프로젝트는.
이전까지는 작품에 집중했다면, 이제부터는 작품이 오르는 장(場)에 대해 고민하고 싶다. 천수만 페스티벌도 그 고민의 일환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다양한 형태의 공연이 펼쳐질 듯하다. 그에 맞는 프로젝트를 준비 중에 있다. 작년에는 새로운 형태의 공연인 ‘라비앙로즈’를 올렸다. 뮤지컬도 아니고 콘서트도 아닌 독특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 작품을 더욱 발전시켜 프랑스에서 공연해보고 싶다.
글 장혜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