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존 노, 목소리로 쓴 러브레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9월 7일 9:00 오전

목소리로 쓴 러브레터

테너 존 노

‘팬텀싱어 3’의 그 테너, 음반과 리사이틀로 만난다

©Sangwook Lee

지난해 JTBC ‘팬텀싱어 3’에서 크로스오버 보컬계의 새로운 별로 떠오른 존 노(1991~). 그는 피바디 음악원, 줄리아드 음악원을 졸업한 후 카네기홀에 솔리스트로 데뷔하며 오라토리오 가수로 커리어를 쌓아왔다. 존 노는 방송에서 매 경연마다 대중가요·월드뮤직·힙합 등 음악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대중을 열광시켰다.
방송을 통해 결성된 보컬 그룹 라비던스로 활동이 한창이던 여름의 끝자락, 수화기 너머로 울린 그의 목소리는 청명하면서도 따스했다.

9월 솔로 데뷔 앨범(워너뮤직코리아)과 첫 단독 리사이틀(9.18, 예술의전당 콘서트홀)로 관객과 만납니다. 곡목을 보니 바로크 오페라 아리아부터 현대 가곡까지 시대와 장르를 다양하게 아우르고 있는데요.
‘테너 존 노’로서의 정체성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팬텀싱어 3’으로 알려지기 전까지 모차르트를 중심으로 고전시대 작품을 공부했는데 이번에는 제가 가진 장점, ‘다양성’을 클래식 음악 안에서 펼쳐놓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제게 의미 있는 노래들을 시대별로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제 눈에는 이번 레퍼토리들이 마치 ‘사랑 단편선’으로 다가왔어요. 그중에서도 존 노에게 특별한 노래들이 있겠죠?
맞아요. 비제 ‘카르멘’의 ‘꽃노래’는 시련에도 불구하고 여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겼죠. 슈베르트 ‘아베 마리아’가 숭고한 사랑이라면, 김효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위로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제 마음에 깊게 와닿은 곡이기도 해요. 바리톤 김주택의 공연을 통해 처음 제대로 들었던 날 참 많은 위로를 받았거든요. 저 역시 이 노래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택했죠. 헨델 오라토리오 ‘입다’ 중 ‘천사여 그 아이를 하늘에 있게 하라’는 외동딸의 목숨을 자신의 손으로 거둬야 하는 아버지의 노래에요. 헨델이 쓴 바로크 음악 특유의 복잡한 감정을 잘 보여드리고 싶어요. 도니체티 ‘사랑의 묘약’의 아리아 ‘남 몰래 흐르는 눈물’은 제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 네모리노의 노래이고요.

이번 앨범 타이틀로 NSQG(Noble Simplicity & Quiet Grandeur)를 내세웠습니다. ‘고귀하며 소박하고, 고요하며 위엄 있는’라는 뜻으로, 18세기의 미술사가 빙켈만이 내세운 예술 사조인데요. 이러한 미학이 21세기의 젊은 테너에게 어떻게 다가왔나요?
군 전역 후에 피바디 음악원에서 고전시대 예술 미학 수업에서 처음 접한 이후 제 인생의 모토로 줄곧 쓰고 있어요. 유학 생활 동안 누구나 경쟁, 생존,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불안감이 많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때마다 이 글귀가 절 붙잡아줬어요. 내공을 쌓아 깊이 있는 삶을 살자고 생각하며 버텼죠. 환경은 달라졌지만,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며 그렇게 살자고 다짐하고 있어요.

클래식 음악부터 대중음악까지 여러 장르를 오가며 변모하는 현재를 스스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돌이켜보면 인생이 늘 경계와 변화의 연속이었어요. 한 살 때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떠났고, 오래지 않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땐 또래 사이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았어요. 고등학생 무렵 다시 미국으로 가게 됐는데 그곳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주어진 환경에 늘 최선을 다했지만, 저도 자신을 정의하기가 힘들었어요. 음악 면에서 저를 봐도 전통적인 성악가 코스와는 거리가 있어요. 예술중·고등학교를 나오지 않았고 신학을 배우려다가 음대에 진학했으니까요. 어릴 적에는 힙합이나 대중가요를 많이 들었고, 노래방 다니는 것도 좋아했어요. 그 시절의 대중문화 감각이 몸에 남아서 지금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아요. ‘팬텀싱어’에서 크로스오버를 하면서 어디에 중점을 두고, 선택할지 고민하며 관객이 원하는 것을 찾는 것이 숙제였는데, 결국 제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곧 소리가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각 상황에 맞는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여러 인터뷰를 통해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존 노가 생각하는 대중화는 어떤 모습인가요?
많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 존재하는 것이 곧 대중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팬텀싱어’ 이후 클래식 음악가로서의 역할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지금 제 음악을 듣는 팬들 대부분은 클래식 음악이 낯선 경우가 많거든요. 공연장에 오기 전 작품에 대해 미리 공부한다는 분들도 계시고, 제 노래에서 저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공감한다는 이야기도 듣곤 해요. 거기에 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대중이 클래식 음악을 접할 수 있는 다리가 되는 것. 이후 관심이 깊어지면 모두 자연스럽게 대가들의 음악으로 이어지게 되겠죠.

사회에서 커리어를 쌓는 이들의 고민 중 하나는 ‘스페셜리스트(specialist) vs. 제너럴리스트(generalist)’에 대한 것입니다. 본인은 어느 쪽을 향하고 있나요?
저도 상당히 많이 고민했어요. 학교 다닐

때 ‘오페라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결국 그 배역을 잘 하는 사람을 뽑게 되니까요. 저 역시 모차르트, 현대음악 스페셜리스트가 되려고 열심히 공부했고요. 그러다 지금의 자리로 왔는데 점점 제너럴리스트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계속 걷다 보면 이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웃음)

지금의 자리로 존 노를 이끈 것은 무엇인가요. 재능, 노력, 기회의 비중을 따져본다면?
노력이 제일 크다고 생각해요. 위기나 시련이 있을 때마다 주저앉거나, 포기하기보다는 그 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어요. 군 복역으로 인해 학교 생활이 어려워졌을 때, ‘팬텀싱어’를 위해 미국에서 오페라 공연을 마치고 바로 비행기를 타야 할 때도 그랬죠. 어린 시절부터 무엇이든 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최선을 다해서 후회 없이 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이 제게 큰 동력이 되었어요.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음악에는 사랑이 담겨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받은 ‘조건 없는 사랑’을 노래를 통해 전하고 싶어요. 그 사랑은 공감에서 시작하는데 누군가를 향해 서서,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죠. 소리나 테크닉이 뛰어나다는 칭찬 이상으로 팬들에게 제 목소리에 위로를 받고 희망이 생겼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더 큰 감동을 받아요. 제가 음악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기쁨도 슬픔도 노래로 공감하는 아티스트로 남고 싶어요.
김선영(콘텐츠 프로듀서, 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크레디아


국립국악관현악단 ‘천년의 노래, REBIRTH’
9월 1일 오후 7시 30분 국립극장 해오름
우효원 ‘천년의 노래, REBIRTH’(존 노·국립합창단) 외

존 노 리사이틀
9월 18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도니체티 ‘사랑의 묘약’ 중 ‘남 몰래 흐르는 눈물’, 비제 ‘카르멘’ 중 ‘꽃의 노래, 오페라’, 김효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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