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레퀴엠
REQUIEM
이 땅을 적시는 애도의 음악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그리고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 레퀴엠, 입당송
파괴적인 포화 소리가 지구 반대편에서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음악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 무력한 음악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망자(亡子)의 넋을 위로하는 것. 그러나 분명한 건 음악은 절망의 형태를 바꿀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여러 시대마다 레퀴엠이 만들어졌고, 울려 퍼진 것이다. 각 시대마다 여러 작곡가들이 레퀴엠을 남겼다. 그것은 아마 생과 사의 엇갈림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사명이었을 테다. 이 시대의 레퀴엠은 엄격한 제식 음악을 넘어 전쟁의 폭력성을 경고하고, 세계의 평화를 노래한다. 첫 장에서는 레퀴엠의 유구한 역사를 살핀다. 이어서 음악가들이 어떠한 음색으로 레퀴엠을 음반에 담아냈는지 분석한다. 오는 6월에도 전국 곳곳에서 애도의 음악이 연주되기에 어떠한 연주를 만날 수 있는지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교향곡 1번을 레퀴엠으로 꾸린 작곡가 류재준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6월은 호국의 달이라는 점도 있지 말자.
기획·총괄 장혜선 기자
PART1 역사 _유선옥 | PART2 음반 _이재준 | PART3 공연 _이의정 | PART4 만남 _장혜선
PART1
HISTORY
레퀴엠의 역사
시대별 작곡가들은
진혼곡에 무엇을 담았을까
레퀴엠은 죽은 사람의 넋을 달래기 위한 미사곡이다. 미사는 최후의 만찬을 상징적으로 재현하고 기념하는 가톨릭교회의 가장 중요한 전례 중 하나로, 엄격한 순서와 형식을 따른다. 미사곡은 일반적으로 교회의 절기나 축일과 상관없이 언제나 동일한 가사로 노래되는 통상문, 즉 ‘키리에(Kyrie)’ ‘글로리아(Gloria)’ ‘크레도(Credo)’ ‘산투스(Santus)’ ‘아누스 데이(Agnus Dei)’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레퀴엠은 글로리아와 크레도를 제외한 통상문에 죽음과 관련된 고유문, 즉 ‘입당송(introit)’ ‘복음 전 노래(Tractus)’ ‘부속가(Sequence)’ ‘봉헌송(Offertorium)’ ‘영성체송(Communio)’ 등이 작곡가에 따라 다양하게 추가된다. ‘레퀴엠’이란 명칭은 첫 번째 노래인 입당송의 첫 가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주여(Requiem aeternam donna eis, Domine)’의 첫 단어인 ‘안식(Requiem)’에서 비롯된 것이다.
초기
다성 레퀴엠의 등장
레퀴엠은 서양음악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초기 레퀴엠은 반주 없는 단선율 음악인 그레고리오 성가로 불렸다. 이후 레퀴엠의 다성화 작업은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최초의 다성 레퀴엠은 기욤 드 파이(1397~1474)가 작곡했다고 전해지지만, 현재까지 이 작품은 발견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다성 레퀴엠은 요하네스 오케겜(?~1497)➊의 작품이다. 오케겜은 프랑스 왕이었던 샤를 7세나 루이 11세의 장례 예배를 위해 레퀴엠을 작곡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당대 시인 크레탱(1460~1525)이 “훌륭하고 매우 완벽하다”라고 평할 정도로, 음악적 형식과 다성적 기교, 그리고 다양한 텍스처로 후대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한편 각 지역의 전통에 따라 다르게 거행되던 레퀴엠은 1517년에 일어난 종교개혁에 맞서기 위해 가톨릭교회에서 소집된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 이후 일정한 형식으로 통일화됐다. 특히 최후 심판 날의 공포를 묘사한 부속가 ‘진노의 날(Dies irae)’이 정식 순서 안에 포함됨에 따라, 긴장감 넘치는 레퀴엠들이 작곡되기 시작했다. 조반니 팔레스트리나(1525~1594)는 가톨릭교회가 추구한 음악적 이상을 가장 잘 실현시킨 작곡가로, 그의 레퀴엠 ‘죽은 이를 위한 미사(Missa Pro defunctis)’는 부드러운 곡선 선율과 더불어 다성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가사가 잘 전달된다.
17~18세기
음악적 표현이 확장되다
레퀴엠은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접어들게 되면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바로크 시대에는 오페라의 탄생과 더불어 다양한 음색과 대비가 두드러지는 기악이 발전함에 따라, 새로운 극적 양식이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레퀴엠은 요한 아돌프 하세(1699~1783), 발다사레 갈루피(1706~1785), 조반니 페르골레시(1710~1736), 니콜로 욤멜리(1714-1774), 도메니코 치마로사(1749~1801) 등과 같은 당대 주요 오페라 작곡가들에 의해 작곡됨으로써 극적 특징들이 강조됐다. 이들은 개별 악장을 보다 더 확장시키고 관현악을 도입함으로써 관현악과 독창, 그리고 합창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레퀴엠을 작곡하였으며, 정교한 솔로 서법으로 음악적 표현 범위를 보다 더 확장시켜 나갔다.
18세기에 이르면, 레퀴엠은 전례적 요소와 더불어 음악적 요소가 강조되기 시작한다. 당시 레퀴엠은 왕이나 귀족, 혹은 유명인사의 장례식을 위해 위촉됐으며, 일반적으로 대규모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음악으로 작곡됐다. 모차르트(1756~1791)➋는 일찍이 세상을 떠난 아내를 추모하기 위한 스투파흐(1763~1827) 백작의 의뢰로 관현악과 독창, 그리고 합창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레퀴엠을 작곡했다. 이 작품은 영화 ‘아마데우스’로 인해 오늘날 가장 유명한 레퀴엠 중 하나로 꼽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차르트는 레퀴엠을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후 이 작품은 모차르트의 제자 쥐스마이어(1766~1833)에 의해 완성된다.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넘어가는 시기에 프랑스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펼친 루이지 케루비니(1760~ 1852)는 오페라 못지않게 종교음악에서도 큰 영향력을 미쳤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도 했던 그는 주목할 만한 두 레퀴엠을 남겼는데, 첫 번째는 1817년의 레퀴엠 c단조이고, 두 번째는 1836년 남성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레퀴엠 d단조이다. 이 가운데, 레퀴엠 c단조는 베토벤으로부터 “이 시대에 존경할 만한 음악가가 있다면 그는 단한 사람 케루비니일 것이다. 내가 레퀴엠을 작곡한다면 케루비니를 모델로 할 것이다”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훗날 베토벤의 장례식에서도 연주된 이 작품은 프랑스 혁명으로 단두대에서 비극적 생애를 마친 루이 16세를 추모하기 위해 루이 18세의 명령으로 작곡됐다. 왕의 비참한 운명을 가까이에서 보았던 케루비니는 권세의 덧없음을 전통적인 교회음악과 오페라 양식으로 담아냈다. 특히 이 곡은 당대 작곡된 여느 레퀴엠들과는 다르게 독창 없이 오롯이 합창과 관현악 반주로만 연주된다.
초기
레퀴엠의 다성화 작업은 15세기에 본격 나타난다.
17~18C
바로크 시대에 오면서 새로운 극적 양식이 나타난다.
19세기
전례에서 벗어나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는 레퀴엠이 전례 형식에서 벗어나, 연주를 위한 목적으로 작곡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베를리오즈(1803~1869)➌와 베르디(1813~ 1901)➍는 대규모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레퀴엠을 작곡하게 되면서 대규모의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사용해 웅장함과 극적 감동을 전달하고자 했다. 우선, 베를리오즈는 프랑스의 내무장관 가스파랑의 의뢰로 1830년에 일어난 7월 혁명과 1835년에 발생한 루이 필립 왕 암살미수사건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식을 위한 레퀴엠 ‘죽은 자들을 위한 대 미사곡’ Op.5를 1837년에 작곡했다. 하지만 이 추모식의 규모가 축소되는 바람에 이 곡은 그해 12월 앵발리드 대성당에서 열린 담레몽 장군과 전사한 병사들을 기리는 추도식에서 연주됐다.
베르디는 당대 최고 작곡가인 로시니(1792~1868)가 세상을 떠나자, 11명의 이탈리아 작곡가들과 함께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1주년 기념 음악회를 위한 ‘레퀴엠’을 공동으로 작업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연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산되고 만다. 이후 베르디는 이 작업을 바탕으로, 이탈리아의 저명한 작가로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친 만초니(1785~1873)의 1주년 추도식에서 연주될 레퀴엠을 작곡하게 된다. 이 곡은 1874년 5월 22일 밀라노의 산 마르코 성당에서 120명의 합창단과 110명의 관현악단과 함께 초연됐다.
포레(1845~1924)➎는 이들과는 다르게, 규모가 작고 서정적인 선율이 특징적인 레퀴엠을 1888년에 작곡했다. 이 작품은 1886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기 위해 작곡된 것으로, 심판의 공포가 극적으로 나타나는 ‘진노의 날’이 빠져 있다. 포레는 세속적 요소를 거의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실제 예배 음악에 적합한 종교적 색채가 충만한 레퀴엠을 작곡했다.
브람스(1833~1897)➏는 1868년 기존의 레퀴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독일 레퀴엠’을 작곡했다. 우선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가사가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로 되어 있다. 브람스는 마틴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에서 가사를 발췌하여 사용했다. 이 곡은 19세기 다른 작품과 유사하게 전례용이 아닌 연주회용으로 작곡됐으나, 죽은 자가 아닌 살아 있는 자를 위로해 주는 것이 특징적이다. 실제로 1856년 스승 슈만의 죽음과 1865년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완성된 ‘독일 레퀴엠’은 자신이 존경하고 사랑한 슈만과 어머니의 명복을 기원하는 한편, 남겨진 클라라와 자신의 슬픔을 달래주고 싶은 마음이 투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애도를 넘어 평화를 노래하다
20세기의 레퀴엠은 19세기에 나타난 경향이 보다 더 확대되어, 레퀴엠의 라틴 전례문뿐 아니라 다른 시인의 시를 가사로 사용하는 자유로운 연주회용으로 작곡됐다. 이러한 특징은 파울 힌데미트(1895~1963)와 벤저민 브리튼(1913~1976)➐의 작품에서 잘 나타난다. 우선 힌데미트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앞두고 숨을 거둔 루스벨트(1882~1945) 미 대통령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휘트먼(1819~1892)의 시를 바탕으로 ‘우리가 사랑하는 이을 위한 레퀴엠’을 작곡했다. 힌데미트는 나치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고 피난처가 되어 준 미국에 대한 고마움을 이 레퀴엠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브리튼은 라틴어로 되어 있는 레퀴엠의 전례문에 영어로 된 오웬(1893~1918)의 반전(反戰) 내용의 시를 절묘하게 결합하여 1961년 ‘전쟁 레퀴엠’을 작곡했다. ‘전쟁 레퀴엠’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940년 독일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코벤트리 시에 있는 성 미카엘 대성당의 재건축을 축하하기 위한 1962년 5월 30일 헌당식 때 연주됐다. 이 곡은 죽은 자를 애도하는 의미도 담고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이를 통해 전쟁의 불합리를 노래하고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세계 평화를 기원하고 있다. 테너와 바리톤 솔로는 각각 오웬의 영시에서 나오는 영국 군인과 독일 군인을 맡는 반면, 소프라노 솔로와 합창은 라틴어의 전례문을 담당한다. 특히 브리튼은 이 곡의 연주자로 소프라노는 러시아인, 테너는 영국인, 그리고 바리톤은 독일인을 염두에 둠으로써, 전쟁 당사자국의 화합과 화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글 유선옥(음악학자)
19C
연주를 위한 목적으로 작곡된다.
20C
라틴 전례문뿐 아니라 다른 시인의 시를 가사로 사용한다.
PART2
RECORD
베스트 음반
레퀴엠의 출발점 오케겜부터
20세기 브리튼까지
오케겜 : 고전의 고전
레퀴엠 음반, 무엇부터 추천해야 할까. 작곡 연대순으로, 그리고 리코딩이 많은 순으로 나열해 본다면 그 출발점은 오케겜(?~1497)이 될 것이다. 1461년 작으로 추정되는 그의 레퀴엠은 이 장르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비교적 다양한 음반이 나와 있다.
1973년 브루노 터너/프로 칸티오네 안티쿠아(Archiv 2533145)와 1997년 오케겜 전문가인 에드워드 위컴/클럭스 그룹(ASV GAU 143) 등이 호평받아 왔다. 2012년 나온 스트래튼 불/카펠라 프라텐시스(Challenge CC72541)❶는 그들을 뛰어넘어 가장 정갈하고 세련된 미감을 전달한다. 앙투안 게버/디아볼루스 인 무지카(Bayard 3084752)❷는 낮은 피치와 프랑스식 라틴어 딕션을 차용하고 베이스를 강조하면서 기존과는 다른 미감을 띤다.
빅토리아 : 6성부
빅토리아(1548~1611)의 ‘죽은 자를 위한 성무일도’, 즉 그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레퀴엠은 르네상스 폴리포니의 중요 작품인 만큼 시대 음악 단체의 단골 레퍼토리다. 6성부의 대규모 조형에 초점을 맞추면 폴 매크리시/가브리엘리 콘소트(Archiv 4470952)❸와 필립 케이브/마그니피카트(Linn BKD060)❹가 최상위를 다툰다. 양쪽 모두 풍부하고 정제된 소릿결과 빼어난 사운드가 강점. 전자는 여성을 배제했고 후자는 템포를 느리게 잡아 극적인 효과를 자아낸다는 점에서 차별된다.
비버 : A장조 or f단조
바로크 시대 비버(1644~1704)가 쓴 두 편(A장조·f단조)은 훌륭한 연주 덕분에 진가가 확인되며 빠르게 명작 반열에 오른 사례다. 1999년 조르디 사발/르 콩세르 데 나시옹(Alia Vox AV9825)은 15성부 A장조를 초연 장소인 잘츠부르크 대성당에서 녹음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좌우 8성부와 7성부 합창이 주는 입체감, 중앙 오케스트라의 눈부신 사운드 등 작곡가의 전위적인 매력이 가득하다.
‘잘츠부르크 미사’로 비버를 알렸던 매크리시/가브리엘리 콘소트(Archiv 4791957)❺도 상대적으로 아담한 f단조 녹음에서 정교한 실내악과 합창이 결합한 묘미를 선사했는데, 지난해 발매된 리오넬 뫼니에르/복스 루미니스(Alpha 665)❻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만족감을 준다.
모차르트 : 시대악기 vs. 현대악기
가장 녹음이 많은 모차르트는 편의상 현대악기와 고악기 연주로 나눠보려 한다. 전자의 카테고리에선 카를 뵘/빈 필(DG 4135532), 브루노 발터/컬럼비아 심포니(Sony 88697906832)가 오랫동안 추앙받아 왔다. 하지만 이들이 ‘신파’라고 느낀다면 당대엔 드물게 담백한 콜린 데이비스/BBC 심포니(Philips Duo 4388002)❼를 권한다. 디지털 녹음으로는 그라모폰 상에 빛나는 페터 슈라이어/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Philips 4784824)❽와 쾌적한 전개의 찰스 매케라스/스코티시 체임버 오케스트라(Linn CKD 211), 극적이면서 바이에르 판본의 장점을 잘 살린 번스타인/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DG 4273532) 등이 돋보인다. 시대악기 중엔 존 버트/더니든 콘소트(Linn CKR 449)가 솔리스트와 합창단, 기악합주 모두 톱클래스. 마사아키 스즈키/바흐 콜레기움 재팬(BIS 2091)과 르네 야콥스/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HMM 902291)는 녹음의 투명도가 좀 떨어지지만 해석과 집중력은 발군이다. 아르농쿠르/빈 콘첸투스 무지쿠스(DHM 82876587052)❾의 두 번째 녹음은 풍부한 음량으로 센티멘털한 표현을 아끼지 않으며 호소력을 발휘한다.
베를리오즈 : LP vs. CD
베를리오즈(1803~1869)의 레퀴엠은 ‘베를리오즈의 명장’ 콜린 데이비스/런던 심포니(Decca 464 6892)와 샤를 뮌시/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DG 4777561)의 LP 시절 녹음이 아직 빛이 바래지 않는다. CD 시대엔 실제보다 저평가된 엘리아후 인발/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Brilliant 93946), 파바로티의 솔로를 들을 수 있는 제임스 러바인/베를린 필(DG 4297242)❿이 안전하다.
최근작 중 압권은 안토니오 파파노/로열 콘세르트헤바우(RCO 19006)⓫로서 악곡의 맥시멀리즘을 음장감 뛰어난 사운드에 담았다. 최근 일련의 베를리오즈 리코딩으로 호평받는 존 넬슨/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Erato 9029543060)도 필적할만하지만 테너 솔로가 다소 실망스럽다.
브람스 : 기악+성악
브람스(1833~1897)의 ‘독일 레퀴엠’에선 지휘자 오토 클럼페러와 루돌프 켐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이 참여한 음반이 지금까지 상징적인 명반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클럼페러는 슈바르츠코프의 소프라노 솔로가 악곡에 맞지 않아 과대평가됐고, 켐페와 카라얀 역시 음질 면에서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니엘 바렌보임/런던 필(DG 2707066)⓬이 해석과 사운드 양면에서 우수하다.
디지털 시대 들어 줄리니와 시노폴리(DG), 하이팅크(Philips), 블롬슈테트(Decca) 등의 교향악 성격을 한껏 살린 수작들이 많은데, 이중 앙드레 프레빈/로열 필(Apex 8573890812)⓭이 기악과 성악 밸런스를 가장 훌륭하게 살렸다. 시대악기 연주로는 가장 먼저 나온 존 엘리엇 가디너/혁명과 낭만의 오케스트라(Philips 4321402)의 첫 녹음과 다니엘 로이스/18세기 오케스트라(Glossa GCD921126)가 볼륨감을 크게 희생하지 않으면서 텍스트의 투명도를 높인 수작이다.
포레 : 앙상블 or 오케스트라
포레(1845~1924)의 레퀴엠은 1980년대 후반 출판된 앙상블 반주의 1893년 버전이 인기를 끌면서 이젠 전통적인 풀 오케스트라 1900년 버전과 녹음량이 비등하게 늘었다. 1893년 버전이 공포보다 안식을 추구한 작곡가의 의도에 더 근접해서일까. 이 악보를 처음 편집하고 녹음한 존 루터/캠브리지 싱어스(Collegium CSCD520)의 연주는 그 점에서 권위를 갖는다.
같은 계열로 매튜 베스트/코리돈 싱어스(Hyperion CDA66292)⓮도 순백의 미학을 전하며, 여기에 나이젤 쇼트/태네브래(LSO Live LSO0728)⓯는 다이내믹의 진폭을 확대하며 더 할 나위 없는 완성도를 일궈냈다. 1900년 버전으로는 산뜻함을 잃지 않는 필립 헤레베헤/샹젤리제 오케스트라(HMC901771)⓰와 폴 토르틀리에/BBC 필(Chandos CHAN10113)이 부담스럽지 않은 녹음이다.
베르디 : 오페라+종교음악
오페라에 종교음악을 결합시킨 것 같은 베르디(1813~1901)의 레퀴엠은 그만큼 솔리스트 4명의 역량과 합창단, 악단의 총화가 완성도에 결정적인 요소다.
1950년대 초에 나온 페렌츠 프리차이/베를린 도이치 교향악단(DG 4474422)⓱의 첫 번째 녹음과 아르투로 토스카니니/NBC 심포니(RCA GD60299)는 모노럴 녹음이지만 팽팽한 긴장과 드라마틱한 열기는 지금도 유효한 가치를 지난다.
스테레오 시대 줄리니/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EMI-Warner)와 솔티/빈 필, 라이너/빈 필(Decca)은 뛰어난 녹음을 더해 3파전 구도를 형성했는데, 전자는 최근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발매되어 한층 호감도가 높아졌다.
디지털 연주로는 안토니오 파파노/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Warner Classics 6989362)⓲가 솔로·기악·합창·녹음의 4요소가 가장 잘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솔리스트가 다소 뒤처지지만 필리프 조르당/파리 국립 오페라(Erato 5099993414029)도 주목할 만하다. 시대악기 연주로는 가디너/혁명과 낭만의 오케스트라(Philips 4421422)는 여전히 독보적이다.
브리튼 : 작곡가 연주를 토대로
20세기를 대표하는 브리튼(1913~1976)의 ‘전쟁 레퀴엠’ 시장은 거칠게 표현하면 작곡가 자신의 연주(Decca 4785433)⓳를 정점으로, 그를 롤모델로 한 후발주자들의 경합하는 구도다. 초연 5년 뒤인 1963년 발매된 음반의 연주에서 프로듀서 존 컬쇼는 고도로 계산된 연주자 배치로 런던 킹스웨이 홀의 공간감을 최대한 살렸다. 마치 전장 한복판에서 애도와 탄식, 죄의식과 울부짖음을 듣고 있는 느낌을 갖게 한다.
같은 런던 심포니를 지휘한 히콕스의 연주(Chansdos CHAN8983/4)⓴는 이에 근접한 수준이다. 다소 빠른 템포로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히콕스는 과연 노련한 함창 조련사란 믿음을 준다.
카를로 마리아 줄리/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BBC Legend)의 69년 실황은 음질이 다소 떨어지지만, 브리튼과 유사한 오라의 수연이다. 평소 줄리니를 존경한 브리튼은 이 실황에 실내악 파트 지휘로 참여했다.
글 이재준(음악 칼럼니스트)
PART3
CONCERT
추모의 달, 6월
국내 레퀴엠 공연 살펴보기
장엄한 아름다움, 베르디 ‘레퀴엠’
임한귀/천안시립합창단 외
6.23 천안예술의전당 대공연장
마시모 자네티/경기필
7.23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베르디가 남긴 26편의 오페라는 오늘날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베르디의 천재성이 집약된 작품은 단연 레퀴엠일 것이다. 오페라 전문가답게 그의 레퀴엠은 드라마틱한 구성이 큰 특징이다. 존경하던 작곡가 로시니와 만초니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레퀴엠을 썼다. 전체적인 구성은 가톨릭 미사 전례를 따르기에 극적인 내용은 없지만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합창의 웅장한 울림, 호소력 있는 독창 선율이 마음을 울린다. 특히 최후 심판의 공포를 타악기와 트럼펫 울림을 통해 조성했다. 따라서 베르디의 강렬한 레퀴엠은 죽은 자보다도 살아있는 이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준다는 평이 따르기도 한다.
베르디의 레퀴엠을 듣고 싶다면 두 공연을 주목하길. 6월 23일 천안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네 명의 성악가(박미자·양송미·주관균·전승현)와 천안시립합창단, 청주시립합창단, 공주시충남교향악단이 함께해 기대를 모은다.
한편, 경기필은 2018년 9월부터 약 4년간 함께 해온 음악감독 마시모 자네티와의 마지막 공연을 베르디의 레퀴엠으로 정했다. 7월 23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 올라가는 이 공연의 성악가로는 손현경·마리아나 피졸라토·김우경·안토니오 디 마테오가 함께 한다.
종교를 넘어, 브람스 ‘독일 레퀴엠’
박치용/서울모테트합창단
5.28 롯데콘서트홀
제임스 김/수원시립합창단
6.23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
김선아/부천시립합창단
6.23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
레퀴엠은 보통 라틴어로 되어 있지만, 브람스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모국어로 불리기를 원했다. 그래서 루터의 독일어판 성경 구절을 가사로 가져왔다. 어머니를 잃고 지은 레퀴엠이었기에 유족을 위로하는 것에 방점을 두었다. 또한 음악회용 작품이라는 점에서 종교 의례에서 행하던 레퀴엠들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은 세 번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먼저, 5월 28일 롯데콘서트홀에 준비된 서울모테트합창단의 공연 부제는 ‘위로와 평안의 노래’이다. 지휘자 박치용이 이끄는 서울모테트합창단과 서울모테트챔버오케스트라, 서울모테트청소년합창단의 대학부 단원들이 연합하여 세대의 화합을 보여준다. 아울러 오라토리오 분야에서 연주력을 선보여온 소프라노 강혜정과 독일 쾰른 오퍼에서 활약했던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이 출연해 더욱 기대된다.
이어서 6월 23일에는 여러 지역에서 ‘독일 레퀴엠’이 연주될 예정. 수원시립합창단은 예술감독으로 새롭게 취임한 제임스 김과 함께 수원SK아트리움에 공연을 올린다. 주목할 점은 장기화되는 코로나 여파로 침체되어가는 음악계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협연자를 오디션으로 공모했다는 점이다. 같은 날, 지휘자 김선아가 이끄는 부천시립합창단은 부천시민회관에서 ‘독일 레퀴엠’을 부른다. 이 공연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구성이 아니라, 한 대의 피아노로 두 사람이 연주하는 포핸즈(4 Hands) 버전의 ‘독일 레퀴엠’을 선보여 더욱 특별하다. 레퀴엠의 본질에는 희망이 있기에 보다 따스한 음색을 통해 지친 일상을 돌아보자는 의도를 담았다.
평화를 그리는 다양한 음악
김종현/인천시립합창단
5.27 아트센터 인천 콘서트홀
빈프리트 톨/대전시립합창단
6.23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레퀴엠 외에도 죽은 이를 위로하는 여러 연주가 펼쳐진다. 5월 27일 아트센터인천에서 펼쳐지는 인천시립합창단의 ‘다시[RE:]’는 지구촌 인류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라며 기획된 공연이다. 1부에서 선보이는 상임작곡가 조혜영의 ‘애가’는 작곡가 박영근의 ‘6인의 연주자를 위한 애가’의 가사를 바탕으로 새롭게 창작된 합창 작품이다. 가사는 자유를 위해 어두운 밤바다로 월남하는 사람들이 경비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우는 아이를 밤바다에 수장한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혜영은 오늘날 생명의 위협을 받는 어린이들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작품을 완성했다.
6월 23일 대전예술의전당에서는 빈프리트 톨이 이끄는 대전시립합창단이 ‘평화’를 주제로 공연을 올린다. 공연은 브람스 ‘운명의 노래’로 막을 연다. 이 작품은 신들의 행복과 인간의 불안을 대비시켜 인간이 결국 암흑세계로 파멸하는 것을 그린 시인 횔덜린의 작품에 브람스가 곡을 붙인 것이다. 이외에도 아르보 패르트와 멘델스존의 ‘평화를 주소서’가 이어지고, 작곡가 조혜영의 ‘금잔디’ ‘평화를 주소서’ ‘비나리’가 불릴 예정이어서 기대가 된다.
한국의 레퀴엠, 굿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전통과 실험-동해안’
6.25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서울돈화문국악당 ‘염원의 노래, 삶의 노래: 피리와 굿음악’
7.7 서울돈화문국악당
우리의 전통음악에서도 서양 레퀴엠의 특징과 비슷한 것이 있으니, 바로 ‘굿’이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다루는 굿은 민속신앙과 연결돼 제례의 형질을 가졌으나, 오늘날에는 탁월한 예술성을 인정받아 하나의 작품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굿을 다루는 두 공연이 우리를 기다린다. 오는 6월 25일, 한국전쟁을 기리며 펼쳐지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전통과 실험-동해안’에는 다섯 곡의 위촉작품이 오른다. 김대성의 대금과 가야금을 위한 2중 협주곡 ‘만파식적의 꿈’은 인류의 행복을 기원한다. 토머스 오스본은 거문고로 잇는 땅과 하늘을 주제로 곡을 만들었다. 손다혜가 작곡한 ‘국악관현악을 위한 흐르는 바다처럼’은 만선의 꿈을 안고 떠난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내의 이야기 ‘망부송(望夫松)’의 전설을 소재로 한다. 정혁의 산조아쟁을 위한 협주곡 ‘검은 집’은 2010년 천안함 사건의 희생자를 위로하는 마음을 오구굿에 담았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장 김성국은 우리 선조들에 대한 예찬이 담긴 자작곡 ‘국악관현악 춤추는 바다’를 선보인다.
7월 7일, 서울돈화문국악당은 해설이 있는 연주회로 ‘피리와 굿음악’을 선보인다. 경기지방의 ‘서울굿’과 남도지방의 ‘진도 씻김굿’이 피리로 연주되는 이 공연은 굿에 관한 이야기와 음악을 함께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경건한 분위기인 서양 레퀴엠과 달리 망자가 하늘로 잘 올라갔음을 전하며 잔치와 같이 펼쳐지는 굿은 해학적 특징을 잘 드러난다. 그동안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여러 창작국악을 시도해 온 피리연주자 이승헌이 무대를 꾸민다. 이승헌은 전남대 교수이자 월드뮤직그룹 리딩톤 리더로 활약하고 있다. 화려한 고음이 특징인 피리로 즐기는 특별한 굿 공연을 놓치지 말길.
글 이의정 수습기자
PART4
MEET
교향곡 1번 ‘신포니아 다 레퀴엠’
한국을 일군 이전 세대에게 바치다
작곡가 류재준
죽음을 체감한 많은 작곡가들은 감정의 잔여물을 레퀴엠에 담아냈다. 어머니를 잃고 쓴 브람스의 레퀴엠에는 깊은 묵상이 느껴진다. 부인과 아이를 잃고 쓴 베르디의 레퀴엠에는 강렬한 슬픔이 녹아있다. 죽음을 유쾌한 해방이라고 생각했던 포레의 레퀴엠은 자장가처럼 달콤하다. 이처럼 레퀴엠에는 작곡가들이 죽음을 바라보던 세계관이 오롯이 담겨있다. 작곡가들은 대부분 음악성이 농익은 말년에야 레퀴엠을 창작했다.
한편 류재준(1970~)은 활동 초기에 레퀴엠을 썼다. 1791년 모차르트가 익명의 의뢰자에게 레퀴엠을 써달라고 요청받은 것처럼, 류재준 역시 2001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별세 이후 막내아들인 정몽일에게 작곡을 의뢰받았다. 그래서 류재준의 교향곡 1번 ‘신포니아 다 레퀴엠(Sinfonia da Requiem)’은 ‘정주영 레퀴엠’으로도 불리고 있다.
2007년 완성된 이 진혼곡은 총 4악장으로 100여 명의 오케스트라, 120명 합창단에 소프라노 독창이 가세하는 대규모 작품이다. 류재준은 “정 명예회장뿐 아니라 한국의 경제 초석을 닦은 산업화 세대 전체에 바치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류재준의 레퀴엠에는 뜨거운 에너지, 찬란한 희망이 빛을 발한다.
30대에 작곡한 이 레퀴엠은 2008년 폴란드에서 초연했다. 교향곡 1번이라고도 불리는데, 작품의 정확한 명칭은 무엇인지.
이 작품은 가톨릭 미사 중 죽은 자들을 위한 진혼미사(Requeim)의 전례 중 일부를 차용하여 작곡됐다. 정확한 명칭은 ‘진혼미사에서 온 교향곡’이다. 레퀴엠과 조금 다른 것은 미사 전례 전체를 다루지 않고, 4악장으로 구성된 정통적인 교향곡 양식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레퀴엠’으로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다. 브리튼도 이런 형식의 음악을 작곡한 바 있다.
무려 6년 동안 이 작품에 매달린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고민이 있었나.
작품의 구성과 길이가 대규모인데 당시 음악어법이 완숙하게 농익은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작품을 썼다. 특히 대위법 양식의 현대적 사용법에 대해 완성도 있는 전개를 얻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작업 기간이 오래 걸린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는 없었지만, 오히려 완성되고 나서는 연주할 곳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드넓은 빈 땅을 바라보는 사진을 보고 스케일에 대한 구성이 잡혔다고.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에서 찍은 황량한 배경 사진이 이 작품을 작곡할 때 중요한 모티브가 됐다. 이런 황무지에서 고생한 한국인들의 노력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지만, 우리가 그들에 대해서 별반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어릴 때 해외에서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없었다. 전쟁 직후 가난한 나라라는 추상적인 이미지만 있었고, 한국이 세계지도 어느 곳에 자리 잡았는지도 모르는 이가 태반이었다. 요즘 우리는 한국의 오늘을 만든 이전 세대들의 피와 땀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듯하다.
죽음을 담았지만, 희망을 노래한
전통적 교향곡처럼 4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졌다. 각 악장에 ‘영원한 안식(Requiem Aeternam)’ ‘진노의 날(Dies Irae)’ ‘봉헌(Offertorio)’ ‘거룩하시도다(Sanctus)’와 같은 레퀴엠 미사를 반영시켰다. 분위기를 압도하는 소프라노 독창 역시 특징이다.
레퀴엠의 텍스트를 쓰려면 당연히 인성(人聲)이 삽입되어야 했다. 대규모 오케스트라에서 합창의 사용은 당연하다. 다만 독창자를 일반적인 4중창이 아니라 소프라노 독창으로 한 이유는, 독창이 전례를 이끄는 사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드라마틱 소프라노의 강력하면서도 기품 있는 소리를 원했으며 다행스럽게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한 인터뷰에서 이 곡을 두고 “추모곡이지만 희망을 노래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전례미사의 일반적인 순서와는 다르게 ‘산투스(거룩하시도다)’와 ‘베네딕투스(찬미받으소서)’로 끝난다. 우리 이전 세대의 영혼을 위로하는 세 개의 악장 뒤에 마지막 악장을 강렬하면서 힘 있는 이 두 개의 텍스트로 장식했다.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다.
폴란드 초연 때가 생각나는지. 전원 기립박수라는 전무후무한 광경이 펼쳐졌다고 들었다.
작품을 완성했지만 한국에서는 연주단체를 구할 수가 없었다. 당시 신인에 불과한 나의 작품을, 더군다나 50분짜리 작품에 관심을 보이는 곳은 전무했다. 다행히 펜데레츠키(1933~2020) 선생이 이 작품에 관심을 가졌다. 그분이 창립한 폴란드의 베토벤 부활절 축제에서 세계 초연을 하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다. 초연 날, 이 작품과 스승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을 같이 연주했다. 연주가 끝나고 리셉션에서 스승은 나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주시고자 뒤에 계셨다. 이날 관객 중 작년에 작고한 소프라노 크리스타 루드비히(1928~2021)가 오셔서 같이 박수를 쳐준 기억이 난다.
낙소스(Naxos) 레이블을 통해 음반으로도 발매가 되어 더욱 뜻깊은 작품일 것 같다.
음원을 남긴다는 것은 앞으로 이 작품이 연주될 때 일종의 표준안을 제시하는 거다. 녹음할 때도 펜데레츠키 스승님이 와주셨던 것이 생각난다.
죽음을 다루는 신념과 철학
역사적으로 여러 작곡가가 레퀴엠을 작곡해 자신의 음악성을 자랑했다.
나는 가톨릭 신자다. 가톨릭에서는 레퀴엠의 음악적 가치보다 기도문과 전례가 훨씬 중요하다. 레퀴엠을 작곡한 무수한 작곡가들의 작품에는 기도가 기반이 되어 있다.
레퀴엠을 작곡할 때에 꼭 담아야 하는 신념과 요소가 있어야 할까.
레퀴엠은 본질적으로 죽은 자들을 위한 진혼의 제례다. 그들의 고통과 분노, 아픔을 이해하며, 절대자에게 그들의 혼령을 맡기며 평안한 안식을 바라는 것이다. 작곡가가 위로하고 싶은 누군가가 없이는 레퀴엠은 존재할 수 없다.
매년 6월이 오면, 한국에서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여러 레퀴엠이 연주되곤 한다. 기회가 된다면 국내에서 꼭 들어보고 싶은 레퀴엠이 있나.
팔레스트리나의 ‘죽은 이를 위한 미사’를 듣고 싶다.
스승인 펜데레츠키 역시 ‘폴란드 레퀴엠’이나 ‘히로시마 희생자에게 바치는 애가’ 등 여러 추모곡을 작곡한 바 있다. 그가 진혼곡에 대한 본인의 신념을 얘기한 적이 있는지.
‘폴란드 레퀴엠’은 철의 장막과 구소련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한 폴란드의 희생자를 위해 작곡됐다. 레퀴엠 그대로의 전례를 따르고 있으며, 두 시간이 넘는 대작이다. 스승은 생전에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꼭 이 곡을 언급하셨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전 세계 음악계에서도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피아니스트 지메르만은 이번 내한에서 앙코르 곡으로 우크라이나 국가를 연주해 주목을 받았다. 오스모 벤스케/서울시향도 지난 4월 정기연주회에서 예정에 없던 우크라이나 국가를 연주해 화제를 모았다.
음악가들은 누구라도 전쟁을 반대할 것이다. 음악은 하모니를 노래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폴란드에 다녀왔다. 폴란드에 피난 온 우크라이나인들이 2백만 명이 넘는다고 하더라. 인류의 비극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데 있다. 이럴 때일수록 끊임없이 비극을 멈추자고 호소해야 한다.
꼭 전형적인 레퀴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연주하기에 좋다고 생각하는 작품이 있다면.
말러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그리고 구레츠키의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가 떠오른다.
교향곡 1번 외에도, 누군가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은 다른 작품이 있나.
마림바 협주곡(2015)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서 쓰였다. 초연 당시 희생자 학생들의 가족을 초대했던 것이 기억난다.
앞으로 또 레퀴엠을 작곡하고 싶은 생각이 드나.
사실 내가 작곡한 것은 교향곡이었기 때문에 레퀴엠을 작곡할 가능성은 있다.
신포니아 다 레퀴엠 외
Naxos 8570599
2009년 낙소스를 통해 발매된 음반에는 폴란드 베토벤 부활철 축제의 개막작으로 초연돼 기립박수를 받은 ‘신포니아 다 레퀴엠’과 2006년 바이올리니스트 김소옥에 의해 폴란드 바르샤바 음악제에서 첫 선을 보인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등 류재준의 대표작 두 곡이 실렸다.
류재준(1970~) 서울대 음대와 폴란드 크라코프 음악원을 졸업했다. 작곡가 강석희와 크시스토프 펜데레츠키를 사사했다. 2009년부터 서울국제음악제, 앙상블오푸스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