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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추천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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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인베르크 오페라 ‘승객’
쉐밀리아 카이저(리사)/나드자 스테파노프(마르타)/
외롤란트 클루티히(지휘)/그라츠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 외
Naxos NBD0144V(Blu-ray)
바인베르크(1919~1996)가 1968년에 발표한 ‘승객’은 홀로코스트를 다룬 오페라다. 생존자의 증언을 토대로 한 작품으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브라질로 가는 배에서 만난 두 여인(아우슈비츠 경비원과 수감자)의 불편한 관계를 바탕으로 역사를 풀어낸다. 2021년 오스트리아 그라츠 오페라극장 실황으로, 현대음악 스페셜리스트 클루티히가 지휘를 맡았다. 이 작품은 생전의 쇼스타코비치가 악보를 보고 “아름다움과 위대함”이라 칭송한 바 있다.
카탈라니 오페라 ‘라 왈리’
이자벨라 마툴라(왈리)/
안드레스 오로스코 에스트라다(지휘)/
빈 심포니/아르놀트 쇤베르크 합창단 외
Unitel Editions 806308(DVD), 806404(Blu-ray)
‘라 왈리’는 푸치니와 동시대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인 카탈라니(1854~1893) 최후의 걸작이다. 알프스 고산 지역인 티롤의 요들송 같은 민속 음악이 등장하며, 아리아 ‘잘 있거라, 고향 집으로’로 잘 알려진 작품. 마지막의 산사태를 묘사하는 연출이 쉽지 않아 실연이 어려운데, 2021년 테아터 안 데르 빈에서의 연출가 욜리는 무대 위 영상을 통해 이를 현대식으로 표현해낸다. 왈리 역의 소프라노 마툴라가 호평을 받아 이름을 알린 공연이다.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
새뮤얼 래미(돈 조반니)/
도나 토모와 신토우(돈나 안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빈 필 외
C Major 761404(Blu-ray)
1987년은 카라얀과 빈 필에게 조금 특별한 해였다. 빈 필의 신년음악회를 지휘했으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선 빈 필과 함께 모차르트 ‘돈 조반니’를 선보이며 역대 명작을 남겼다. 1987년 ‘돈 조반니’ 실황을 담은 레이저디스크(Sony)와 음반(DG)가 발매되기도 했지만, 매체의 변화로 전설로만 남은 영상물이 됐다. 이번 영상물은 블루레이로 재발매 되어 음질이 보강되고 한국어 자막을 갖췄다. 바리톤 새뮤얼 래미가 돈 조바니 역을 맡았다.
베르디 오페라 ‘팔스타프’
니콜라 알라이모(팔스타프)/존 엘리엇 가디너(지휘)/
마지오 무지칼레 플로렌티노 오케스트라 외
Dynamic 37951(DVD), 57951(Blu-ray)
베르디의 오페라 중 유일한 희극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윈저의 즐거운 부인들’을 가지고 쓴 3막 오페라로, 뚱뚱하고 늙은 기사 팔스타프는 두 명의 유부녀에게 온갖 추파를 던지다가 망신만 당한다. 작곡가 생애 마지막으로 완성된 오페라답게, 숙련되고 세련된 음악이 호평을 받은 수작이다. 희극 오페라 지휘와 시대연주로 정평이 난 가디너가 지휘하는 만큼 음악은 배로 탁월해진다. 베흐톨프의 예스러운 연출을 얹으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반 베이눔 데카·필립스 전집
에두아르드 반 베이눔(지휘) 외
Decca 4851387(43CD)
지휘자 반 베이눔(1900~1959)이 활동한 시기는 나치가 유럽에 악몽을 심어준 시기와 맞물린다. 1943년 나치를 위한 자선 음악회를 요구받은 사실이 이를 더욱 선명하게 한다. 1929년을 시작으로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와 인연을 맺은 그는 자선 행사를 해야 한다면 공동지휘자직을 사임하겠다고 밝힐 정도로 명예롭다. 올곧은 정신이 음악에 나타나니, 바흐·헨델·베토벤·브루크너·브람스 등의 해석에 ‘정통성’이란 수식어가 붙은 듯하다.
존 애덤스 작품 모음
존 애덤스(작곡·지휘) 외
Nonesuch 7559793229(40CD)
미국 작곡가 존 애덤스(1947~)의 중요 작품이 40개의 CD에 담기니, 20세기 후반 미니멀리즘의 요약본이 따로 없다. ‘아르모니엘레르’ ‘중국의 닉슨’ ‘클링호퍼의 죽음’ ‘꽃피는 나무’ ‘닥터 아토믹’ ‘체어맨 댄스’ ‘아메리칸 엘레지’ ‘하모니움’ 등 큰 호평을 받은 작품들은 모두 만나 볼 수 있다. 2001년 9·11테러 희생자를 위한 추모곡을 작곡하여 2002년 퓰리처상을 받은 바 있는 그는 세상을 꾸준히 음악으로 조명하는 생동하는 작곡가이다.
소설을 음악에 녹이다
카프카 단편
안나 프로하스카(소프라노)/
이자벨 파우스트(바이올린)
Harmonia Mundi HMM902359
보바리 부인의 음악
다비드 카두쉬(피아노)
Mirare MIR532
문학과 음악, 두 예술의 상호작용은 오랜 기간 이어져왔다. 베토벤은 실러의 시 ‘환희에 부쳐’를 토대로 교향곡 9번 ‘합창’의 4악장을 완성했다. 괴테는 음악가와의 교류를 통해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 ‘파우스트’ 등 대작을 남겼다. 현대에도 문학과 음악이 일궈내는 조화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카프카 단편’은 작곡가 쿠르탁(1926~)이 소설가 카프카(1883~1924)의 일기와 편지의 텍스트를 토대로 40개의 짧은 악장들을 구성한 작품이다. 이 음반에선 소프라노 안나 프로하스카와 바이올리니스트 이자벨 파우스트의 이색적인 만남이 눈길을 끈다. 파우스트는 대담하고 밝은 표현, 짧은 각각의 작품 속에 카프카의 외침, 독백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다. 안나 프로하스카는 일찍이 고전·낭만주의 작품은 물론 현대음악 전문가로도 활약한다. 이 작품에선 바이올린에 절묘하게 녹아드는 목소리로 격렬하고 절실한 독백을 표현해낸다. 한편 소설가 구스타브 플로베르(1821~1880)가 발표한 프랑스 사실주의의 걸작 ‘마담 보바리’를 모티브로 한 음반도 발매되어 이목을 모은다. 다양한 예술에 관심이 많은 피아니스트 다비드 카두쉬는 문학과 음악의 절묘한 연결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 엠마가 짧은 생애 동안 들었을 법한 음악을 상상하며 플로베르 동시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선곡하여 리코딩했다.
장혜선
하이든 실내악의 모든 것
하이든 시대악기에 의한 현악 4중주 전집
페스타티치 콰르텟
Arcana A207(19CD)
하이든 피아노 트리오
제롬 앙타이(포르테피아노)/
마르크 앙타이(플루트)/
알렉상드르 모치아(바이올린)/
알릭스 베르치어(첼로)
Mirare MIR636
에스테르하지 궁전의 성실한 근로자 하이든은 다작한 작곡가였다. 다수의 교향곡을 쓴 그는 오케스트라 단원을 위해서도 작품을 써주는 마음씨 좋은 상사였다. 그렇게 남긴 현악 4중주곡 70여 곡과 피아노 3중주 40여 곡. 이는 음악사에서도 실내악 형식의 기틀을 마련한 굵직한 사건이다. 이 역사를 서로 다른 국가의 시대 악기 연주자들이 자세히 그려냈다. 두 음반의 표지 모두 화가 베르나르도 벨로토가 그린 18세기 벨베데레 궁전에서의 빈 풍경이다. 페스타티치 콰르텟은 1985년 시작한 헝가리 팀이다. 1993년부터 2006년까지 시대 악기 최초로 하이든의 현악 4중주 전곡을 녹음해냈다. 발매 당시 “톤과 균형, 음의 섞임이 완벽하다”는 호평을 들으며 디아파종 황금상 등을 휩쓸었다. 원본 및 악기 배치까지 고려한 이 녹음은 2014년 전집이 절판되었다가 이번에 다시 세상에 나왔다. 피아노 3중주를 위해서는 프랑스 연주자들이 뭉쳤다.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이자 포르테 피아노 연주자인 제롬 앙타이와 그의 형제인 플루티스트 마르크 앙타이가 참여했다. 필립 헤레베헤가 이끄는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악장 알릭스 베르치어가 바이올린을, 1979년 창단된 프랑스의 시대악기 앙상블 레자르 플로리상의 알렉상드르 모치아가 첼로를 맡았다. 음반에는 플루트·첼로·피아노를 위한 트리오와 바이올린·첼로·피아노를 위한 트리오가 각각 두 곡씩 실렸다.
허서현
다시 숨 쉬는 바로크의 숨결
18세기 바이올린 협주곡
제피라 발로바(바이올린·지휘)/
일 포모 도로
Aparté AP291
보논치니 첼로 소나타
마르코 체카토(첼로·지휘)/
아카데미아 오토보니
Alpha 826
고전주의의 문이 아직 활짝 열리기 전인 1750년, 음악은 바로크의 자유로움과 고전주의의 엄격함 속 새로운 옷을 입었다. 바로크 앙상블 일 포모 도로와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제피라 발로바는 그 과도기에 있던 작곡가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담았다. 경쾌함으로 음반의 첫 시작을 여는 프란츠 벤다(1709~1786)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바로크의 장식음과 하프시코드의 화려함이 돋보인다. 그 외 수록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아프리카계 작곡가 조제프 볼로뉴(1745~1799)와 바이올리니스트 타르티니의 제자이자 이탈리아 여성 작곡가 마달레나 라우라 시르멘(1745~1818)의 작품은 화려한 궁정과 시대의 황금기를 음악으로 그려낸다. 발로바는 헬싱키 바로크 오케스트라, 유럽 연합 바로크 오케스트라 등에서 단원과 악장으로 활동한 바 있으며, 2015년부터는 일 포모 도로의 악장을 맡아오고 있다. 조반니 바티스타(1670~1747)와 안토니오 마리아(1677~1726)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작곡가이자 첼리스트 형제이다. 그의 아버지 또한 바이올리니스트로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이들의 활약은 당대 첼로 연주의 폭을 확장 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도 이들이 남긴 첼로 곡은 오늘날 잘 연주되지 않는다. 첼리스트 마르코 체카토와 아카데미아 오토보니는 두 형제-조반니 바티스타·안토니오 마리아-의 첼로 소나타와 신포니아 등을 음반에 담았다.
임원빈
건축·미술·철학과 만나
다시 태어난 음악
다큐멘터리·음반 ‘메타노이아’
시몬 메제네스(지휘)/앙상블 K/
안토니오 파파노·미쉘 트리에겔 등(인터뷰)/
파울 스메츠니(감독)
Accentus Music
ACC20550(DVD), ACC30567(CD)
“변화는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요. 우리의 모든 관계에 당연히 영향이 가요. 이런 음악적 만남, 앙상블 퍼포먼스, 장소를 옮겨가며 함께 연주하는 것, 사람들과 서로 만나는 것, 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 공통의 가치가 있음을 깨닫는 것. 이 모든 것이 긴밀한 인간적 조화를 이루게 해요.”(지휘자 시몬 메제네스의 인터뷰 중)
조금 특별한 영상물이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이 쉽지 않은 지금, 이 다큐멘터리는 이탈리아의 고적으로 음악과 함께 우리를 안내한다. 고풍스런 장소에서 영감을 받고, 그곳에서 연주하기 적합할 음악을 탐색하고, 앙상블 단원들과 음악을 만들면서 예술의 위대함을 깨달아나가는 여성 지휘자 시몬 메제네스(1977~)의 철학이 담긴 음악 다큐멘터리다.
함께 음악을 만들고 선보이는 ‘앙상블 K’도 특별하다. 시몬 메제네스가 2020년에 창단한 그룹으로 15명 내외의 연주자들로 구성되었다. ‘K’는 Klassic, Kosmopolitan, Kontemporary, Kreative, Konnected를 두루 꿰는 코드와도 같다. 그들은 클래식 음악으로 세계로 나아가고, 동시대성을 지향하며, 창조하고 접속한다. 그 과정 속에서 음악도 예술도 공간도 새롭게 태어난다.
파울 스메츠니가 감독을 맡고 카르티에가 제작한 이 다큐멘터리의 제목 ‘메타노이아(Metanoia)’는 ‘생각 너머’를 의미한다. 영상 속에서 시몬은 여행하고, 자신의 음악관에 영향을 주는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여 예술가와 교분을 나누며 영감을 받는다. 이 영감은 앙상블 K에게로 향하거나 역으로 앙상블 K가 음악으로 장소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탈리아 피렌체, 사비오네타 등 다양한 장소에서 안토니오 파파노 같은 저명한 음악가는 물론 미술가, 건축가들과 만나고, 푸치니·바흐·빌라 로보스·패르트·보로딘 등의 작품을 풀어낸다. 예술의 경계 ‘너머’로 이동하고 사유하는 시몬의 여정은 참으로 귀하고 인상적이다.
시몬의 인터뷰가 많은 정보와 지식을 준다면, 앙상블 K의 연주는 음악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을 선사한다. 푸치니의 미사(키리에·글로리아), 패르트의 ‘미래에’(In spe), 보로딘의 ‘플로베츠인의 춤’, 바흐의 바이올린 파르티타 중 ‘사라방드’, 빌라 로보스의 ‘브라질풍의 바흐’ 4번, 모리코네의 ‘미션’ 등이 고풍스러운 공간을 배경으로 연주된다.
이 영상물은 위의 음악들을 담은 음반(ACC30567)과 함께 출시됐다. ‘BBC 뮤직 매거진’은 “우아하게 노래하고, 절제된 힘을 보여주며, 헌신적인 친밀감으로 연주하는 놀라움을 보여준다”라고 평했다. 음반은 로마 메디치 빌라에서 진행된 공연을 담고 있으며, 이 프로젝트는 카르티에가 주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