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thing Different
캔들라이트 콘서트 기획자 안드레아 로페스
음악 옆에, 촛불 하나 놓을 때
100여 개 도시에서 러브콜을 받는 캔들라이트 콘서트의 실체, 재미있는 뒷이야기
지휘자 크리스토퍼 호그우드(1941~2014)는 “연주회장의 질식할 것 같은 산소 결핍 상태에서 모두를 해방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음악회가 ‘전통’이라는 미명 아래 너무 경직되어있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로 처음 클래식 음악회장을 찾은 관객이라면 복잡한 의식과 엄숙한 분위기 때문에 괴리감을 느낄 수 있다. “나와는 안 맞다”라는 식의. 사실 정해진 등·퇴장 순서, 조명이 비친 무대, 눈치 게임과 같은 악장 사이 박수 등에 시달린 기자의 지인도 공연 보는 동안 숨이 막혔노라 고백한 적이 있다.
현재 피버(Fever)사의 글로벌 캔들라이트 콘텐츠 팀을 이끌고 있는 안드레아 로페스는 인턴 시절부터 이러한 경직된 분위기로부터 청중을 끌어내는 시도를 해왔다. 그는 우선 음악은 사적인 경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클래식 음악은 ‘동떨어진 것’에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변모해야 했다. 객석과 무대가 분리되어 무대만 조명하는 공연이 아닌 보다 친밀한 공연. 결국 그가 기안해낸 첫 탈출구는 바로 ‘촛불’이었다.
캔들라이트 콘서트(이하 캔들라이트)는 백여 개의 촛불이 자아내는 따듯한 분위기 속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전통 공연장이 아닌 야경이 펼쳐진 루프 탑부터, 고풍스러운 성당과 정원 등 다양한 장소에서 공연이 펼쳐진다. 객석과 무대가 가까운 것도 공연의 매력이다. 일부 도시에서는 발레와 오페라도 선보이고 있다. 클래식 음악도 좋지만, 팝이나 록 음악이 현악 4중주나 피아노의 음색으로 연주될 때 대중의 반응이 가장 폭발적이라고. 안드레아는 “촛불의 아늑한 분위기가 관객들이 음악과 더욱 연결되고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도시의 아름다운 공간을 새로운 방식으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캔들라이트는 현재 100여 개 도시에서 성황리에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9월, 세빛섬에서 처음 선보인 이후 정동길에 위치한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공연이 열리고 있다.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안드레아 로페스를 이메일로 만났다. 그는 현재 전 세계에서 공연되고 있는 캔들라이트의 총책임자이다.
젊은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힘
캔들라이트의 첫 선을 보인 곳은 2019년 스페인의 마드리드였다. 3년 만에 100여 개 도시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니, 빠른 성장이다.
당시 기존과 전혀 다른 새로운 공연이라는 점에 사람들이 놀라워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후 북남미·유럽·아시아·오세아니아 등 전 세계 100개 이상의 도시에서 수천 회의 공연을 열었고, 3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찾아 주고 있다. 이렇게나 성장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처음 촛불을 공연장에 도입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내가 속한 피버(Fever)사는 문화예술 대중화를 목표로 다양한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스페인에서 공연을 선보이기 1년 전, 유럽의 몇몇 전통문화기관과 소통하며 여러 콘셉트의 공연을 기획했다. 그러면서 어떠한 공연에 관객이 호감을 느끼는지 탐색했다. 그것이 캔들라이트의 시초였다.
공연을 기획할 때 가장 우선시한 것은 무엇이었나?
‘어떻게 하면 젊은 관객들을 공연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였고, 내세운 전략은 ‘친밀한 것’과 ‘사적인 것’이다. 촛불이라는 매개체는 대중에게 익숙하고, 어두운 공간에서 촛불에 둘러싸여 공연을 보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또한 관객과 연주자의 간격을 좁혀 관객석이 연주자를 둘러싼 구조의 공연이 많다. 이때 관객은 지근한 거리에서 연주자와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음악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된다.
히사이시 조의 애니메이션 음악이나 대중음악처럼 테마가 명확한 공연 외에 베토벤, 쇼팽과 같이 작품의 수가 많은 공연의 경우, 프로그램 선정을 연주자에게 맡기는 편인가?
음악 큐레이션 팀의 피드백과 전 세계 공연 통계·수치에 대한 자료 조사를 한다. 그 조사를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구상한 뒤, 관객과 연주자의 피드백을 고려하여 탄생하게 된다.
촛불이 자아내는 음악과의 친밀함
캔들라이트를 처음 선보였던 2019년 이후 클래식 음악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조금은 바뀌었다고 느끼는가?
지난 몇 년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소비 패턴이 변화하고 있다. 이를 인지하고, 청각뿐 아니라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는 몰입도 높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이러한 공연 기획의 중요한 열쇠이다. 캔들라이트를 찾는 70퍼센트의 관객 연령층이 20·30대이다. 유럽 내 클래식 음악 관객 연령층이 한국에 비해 높은 것을 생각할 때, 많은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현악 4중주와 같은 실내악은 대중에게 어려운 장르이다. 현악 4중주로 재즈·록·팝 곡을 연주하는 ‘헌정(Tribute)’ 프로그램의 도입으로 어렵게만 느꼈던 실내악의 매력을 알아간 것 같다.
공연에 대한 반응이 가장 뜨거운 곳은 어디인가?
캔들라이트는 각 도시의 관객이 흥미를 느낄 만한, 맞춤형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그렇기에 특정 도시를 꼽기 어려울 정도로 반응이 다양하다. 나라별 아이돌 음악을 촛불 아래에서 연주할 때, 현지 관객의 뜨거운 반응은 정말 매번 흥미롭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인들은 록밴드 모네스킨, 가수 피노 다니엘레 등의 음악에 열광하고, 미국인들은 비욘세, 테일러 스위프트, 리한나와 같은 팝 음악에 열광한다.
나라별로 촛불의 분위기를 받아들이는 청중의 반응도 제각각이었을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는가?
많은 관객이 진짜 촛불을 기대하고 공연장을 찾지만, 캔들라이트는 안전을 위해 전구로 된 인공초를 사용한다. 언젠가 마드리드에서 공연했을 때 누군가 실제 양초로 공연장을 불태울 것이라고 신고를 해 경찰이 찾아온 적도 있다.(웃음)
잊을 수 없는 음악을 선사하기 위해
공연 장소로 특별하고,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을 선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장소를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관객과 친밀한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는 독특한 장소를 탐색하는 것이 매니저들이 공을 들이는 부분이다. 프랑스 파리 에펠탑 1층의 구스타브 에펠 살롱, 싱가포르의 S.E.A 아쿠아리움 등에서의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9월 세빛섬에서 처음 공연을 선보였는데, 장소 선정을 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지난해 8월 말 태풍 힌남노로 공연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난감했다. 공연장 계획을 막판에 조정했고, 이 때문에 관객들의 항의도 있었다.
애니메이션 공연, 베토벤, 쇼팽, BTS 등으로 구성된 콘셉트의 총 8개의 공연이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연은 무엇인가?
8개 공연에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었다. 감사할 따름이다. 그중 하나를 꼽자면 첫 공연 때부터 오늘날까지 비발디의 ‘사계’가 한국 관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공연이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캔들라이트를 통해 도시의 독특한 장소를 발굴하고, 현지 예술가들을 발굴하는 것, 또한 클래식 음악의 접근성을 높이는 공연을 계속해서 만들어갈 것이다. 현재 케이팝을 비롯해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를 반영해 시장 내 새로운 기획도 논의 중이다.
글 임원빈 기자 사진 피알원·피버
Performance information
비발디 ‘사계’(리수스 콰르텟)
5월 5일 정동1928 아트센터
엔니오 모리코네(리수스 콰르텟)
5월 6일 정동1928 아트센터
‘시네마 천국’ ‘황야의 무법자’ ‘인생은 아름다워’ 등 영화음악 외
파리에서 온 명곡(피아니스트 정다현)
5월 20일 정동1928 아트센터
에릭 사티 ‘짐노페디’, 드뷔시 ‘달빛’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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➊ 싱가포르 S.E.A 아쿠아리움 ➋ 마드리드 아테네오 문화센터 ➌ 싱가포르 빅토리아 극장 ➍ 제네바 빅토리아홀 ➎ 샌디에이고 그릭 앰피씨어터 ➏ 휴스턴 론스타 비행박물관 ➐ 싱가포르 빅토리아 극장 ➑ 포르투갈 아테네우 코메르시알 두 포르토 ➒ 뉴욕 세인트 앤 홀리 트리니티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