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의 위대한 음악 유산을 찾아서! 스메타나 리토미슐 음악 축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7월 11일 9:00 오전

ON THE TRIP

프라하부터 스메타나(1824~1884)의 고향 리토미슐까지

체코의 위대한 음악 유산을 찾아서

스메타나를 기리는 음악제부터 7월 내한 앞둔 지휘자 토마시 네토필과의 현지 인터뷰를 담았다

 

statue of composer bedrich smetana with prague castle and charles bridge behind it.

day 1 프라하

공항을 나선 시간은 저녁 9시. 30여 분 차로 달려 프라하 시내에 도착했다. 천 년이 넘는 역사 동안 이어져온 거대한 프라하 성 아래, 당시 성을 짓기 위해 낮은 신분의 백성들이 모여 살았던 성하촌(城下村)에 위치한 ‘호텔 아리아’(Check Point 1)가 첫 숙소다. 현재는 소지구로 불리는 오래된 동네로, 각종 관광 명소가 운집해 있어 기대하던 프라하의 운치를 한껏 느낄 수 있다.

방을 배정받아 찾아 들어가는 길. 4층은 ‘오페라 층’이다. 로시니, 바그너, 베르디 등의 이름을 지나 비제의 방으로 들어서자 ‘카르멘’의 아리아 ‘투우사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음악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체코에 도착했다는 벅찬 설렘에 긴 비행의 피로가 씻겨 내려간다.

Check Point 1 호텔 아리아

프라하 성이 보이는 호텔 아리아는 음악을 주제로 만들어진 숙소다. 각 방마다 테마가 달라 어떤 방에서 묵을지를 선택하는 것도 새로운 재미. 재즈, 살사 등과 같이 장르를 주제로 한 방이 있고, 클래식 음악에 한해서는 작곡가의 이름으로 방이 지정되어 있다. 방문을 열자마자 해당 작곡가의 작품이 자동으로 재생된다. 가장 좋은 스위트룸은 ‘모차르트’. 방내에 호텔 주인 소유의 오래된 고가구, ‘음악의 여신’이라는 제목의 동상 등이 배치되어 있다.

호텔 아리아의 멋은 단순히 방에만 있지 않다. 호텔 곳곳에 샤갈의 그림, 달리의 조각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자체로 하나의 갤러리다. 루프탑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올라가면 프라하 성은 물론 시내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day 2 프라하 음악 박물관

           리토미슐 성

1848년, 스메타나가 스물넷의 젊은 혈기로 가득하던 그 해에 2월 혁명이 일어나 각 지역엔 민족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혁명이 번졌다. 체코 시위대의 혁명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이 혁명에 참여했던 스메타나의 마음에는 민족의식의 강한 불씨가 남았다. 이후 그는 체코의 자연과 역사를 소재로 한 교향시 ‘나의 조국’, 체코어로 된 오페라 ‘팔려간 신부’ 등 민족 음악의 뿌리가 되는 음악 활동을 이어 나갔다. 체코는 1989년 민주화를 이룩했고, 이듬해 5월 12일 프라하의 봄 음악 축제에서 연주된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은 체코 국민들에게 국가의 정체성을 찾은 강렬한 상징으로 남게 됐다.

도시 곳곳에서 스메타나를 향한 체코인들의 인식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호텔 아리아와 연결된 바로크식 정원인 ‘브르트바 정원’에 언덕에 오르면 프라하 도심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블타바강을 건너 프라하 음악원, 그 옆으로는 체코필하모닉이 상주하고 있는 공연장 ‘루돌피눔’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강을 따라 내려오면 스메타나 박물관이 있다. 규모는 아주 작지만 바로 옆에 있는 스메타나의 동상은 카를교와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소지구 내에서 도보로 방문할 수 있는 프라하 음악 박물관(Check Point 2)에도 스메타나의 피아노가 남아있다. 차를 타고 동쪽으로 1시간 30여 분을 달려 도착한 리토미슐. 스메타나의 탄생지가 있는 곳이자, 스메타나 리토미슐 음악 축제가 열리는 도시다. 넓게 펼쳐진 들판과 한껏 모양을 낸 뭉게구름이 조화를 이룬 풍경에서는 체코의 땅내음이 난다.

매년 6월, 도시 광장의 아기자기한 집들 사이로 ‘스메타나의 리토미슐’(Smetanova Litomyšl) 축제 엠블럼이 펄럭인다. 리토미슐은 인구 1만 여 명이 거주하는 작은 소도시지만 건축과 문학, 음악이 어우러져 깊은 역사를 가진 대표적인 문화도시다. 그중에서도 스메타나 리토미슐 음악 축제가 열리는 주 장소 ‘리토미슐 성’(Check Point 3)은 그 역사적 가치가 무척 뛰어나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이 성은 투어를 신청하면, 무척 근접 거리에서 16세기 귀족의 생활양식을 관찰할 수 있다. 6세의 스메타나가 귀족 앞에서 자신의 연주를 선보였던 피아노도 성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올해는 복구 작업으로 인해 성 중정에서의 공연을 보진 못했지만, 축제 측에서 마련한 메인 홀에서의 개막 공연은 성황리에 진행됐다.

Check Point 2 프라하 악기 박물관

1700년대에 지어진 수도원 건물을 재건해 사용하는 음악 박물관. 680여 개의 악기가 르네상스·바로크·고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말 그대로 악기의 발전 역사를 알 수 있게 전시되어 있다. 생소한 악기들의 소리를 전부 들어볼 수 있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유용하다. 특별한 점은, 모차르트가 프라하에서 ‘피가로의 결혼’을 대성하고 ‘돈 조반니’를 초연했을 당시 극장에서 사용했던 피아노를 만나볼 수 있다는 것. 스메타나가 플젠에서 거주할 당시 사용했던 피아노도 전시되어 있다.

 

Check Point 3 리토미슐 성

History castle in the Czech republic. His name is Litomysl. /리토미슐 성

16세기에 세워진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 페른슈타인(1530~1582) 백작이 먼 곳에서 시집을 온 이탈리아 부인을 위해 이탈리아 건축가를 초빙해 착공했다. 건물의 벽면은 ‘스그라피토’ 기법으로 처리되어 있다. 벽면에 석회를 바른 다음 마르기 전에 긁어내면서 바탕색을 드러내게 하는 것으로 건물 전체에 다양한 모양으로 새겨져있다. 공연이 진행되는 중정 외에, 성 내부에는 당시 귀족들이 살았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몇몇 물건들은 당시 사용했던 실제의 것들이다. 이 성은 총 네 명의 귀족이 소유했었고, 이후 고전주의 요소가 추가된 형태로 유지된다. 성 안에는 18세기 말 바로크 양식의 극장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이곳을 포함해 바로크 극장의 모습이 남아 있는 곳의 유럽 통틀어 5개가 전부다.

리토미슐 성 안 바로크 극장

Check Point 4 스메타나 생가

스메타나의 생가는 리토미슐 성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스메타나의 아버지가 양조장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당시 양조권은 성주에게 있었고, 도시 내에서 유일하게 한 사람만이 이 권한을 받았다. 성 바로 옆에서 스메타나가 탄생하게 된 이유다.

스메타나 피아노

스메타나의 어린 시절은 부유했다. 현악 4중주를 연주할 정도로 음악에 관심 있었던 아버지 밑에서, 스메타나는 일찍 음악을 접했다. 생가를 안내해 준 가이드에 따르면, 공부에는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고. 연필을 숨기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될 줄 알았던 스메타나가 숨긴 몽땅 연필이 생가 한쪽에 진열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스메타나가 사용했던 피아노를 직접 연주해볼 수 있다. 보면대에는 친절하게 쉬운 버전의 ‘나의 조국’ 중 제2곡 ‘블타바’가 놓여있다.

글 허서현 기자 사진 스메타나 리토미슐 음악축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성에서 열리는

제65회 스메타나 리토미슐 음악 축제 6.15 – 7.2

매년 6월이 되면, 리토미슐은 도시 전체가 음악으로 가득하다. 메인 축제 장소인 리토미슐 성을 비롯해, 성 십자가 성당, 성당 정원 등에서 공연이 이어진다. 올해는 아쉽게도 리토미슐 성의 복구공사로 인해 성 중정에서의 연주를 볼 수는 없었지만, 축제 측에서 마련한 페스티벌 홀에서 주요 공연이 진행됐다. 1990년대부터 페스티벌과 함께 일해 온 예술감독 보이테흐 스트리테스키(1961~)는 리토미슐 성에서의 연주를 듣지 못한 것이 아쉽지 않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고 전했다.

프라하의 봄 음악 축제 다음으로 체코에서 큰 규모를 가지고 있는 만큼, 점차 축제를 방문하는 아시아인의 비중도 늘어가고 있다. 그간의 축제 포스터가 걸려있는 사무실 한편에는 2011년 이곳을 방문한 소프라노 조수미의 반가운 얼굴도 발견할 수 있었다. 스트리테스키 예술감독은 “그 해에 조수미의 연주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마지막 공연을 맡았는데, 정말 팡파르를 터뜨리는 것 같았다. 그가 훌륭한 성악가임은 물론, 엄청난 재능을 가진 배우이자 스타라는 것을 실감했다”라고 회상했다.

올해로 65회를 맞이한 축제의 시작은 스메타나의 작품이었다. 시작 당시에는 오로지 그의 오페라 작품에 집중했고, 8개의 오페라를 모두 공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1989년부터 점차 다루는 작품의 범위가 넓어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인간의 목소리, 즉 성악에 대한 비중을 중요시하는 것은 여전하다. “인간의 영혼을 맑게 할 수 있는 음악으로 선정한다”는 것이 예술 감독이 강조한 이 축제의 주요 정체성이다.

다가오는 2024년은 이 축제에게 의미가 큰 해다. 스메타나가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기 때문. 이를 기념하여 스메타나의 8개 오페라 전부를 한 해에 연주할 예정이다. 스트리테스키 예술감독는 한국의 관객들에게 “오랜 역사를 가진 리토미슐은 예술과 문화, 특히 음악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도시다”라며, “1만 명의 인구가 뿜어내는 예술적인 열기를 느끼기 위해 꼭 한 번 방문해 보시길 권한다”라고 강조했다.

축제에 참여한 체코 대통령 내외의 모습

유려함과 개성,

여유가 어우러진 개막 무대

개막 공연이 열리는 저녁 8시 15분. 페스티벌 홀에 들어서자 좌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이 눈에 띈다. 체코필하모닉과 수석객원지휘자 토마시 네토필(1975~)이 선사할 스메타나의 ‘축제 교향곡’을 듣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데, 지휘자가 입장하고 흘러나온 선율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관객의 웅성거림도 잠시, 하나둘씩 기립하는 이들을 따라 일어서보니 체코의 대통령이 영부인과 함께 입장하고 있었다. 축제 역사상 첫 대통령 방문이다. 이들이 처음 연주한 그 전혀 다른 선율은 대통령이 입장할 때 연주된다는 스메타나의 오페라 ‘리부셰’ 서곡이었다.

대통령의 입장이 끝나자, 관객이 모두 자리에 앉고 첫 곡이 시작되었다. 가슴 한편에는 하얀 부토니에를 꼽은 체코필하모닉 단원들과 지휘자가 주고 받는 표정이 유독 밝았다. 구조물 안에 있긴 하지만, 완전히 실내가 아닌 탓에 들려오는 숲 속의 지저귐과 바람 소리가 야외 음악회 특유의 들뜬 분위기를 조성했다. 무엇보다 마치 블타바강처럼 유려하게 흘러가는 현의 움직임과 화려하진 않지만 개성을 가진 목금관의 조화가 안정을 이룬 연주였다. 토마시 네토필의 지휘는 이 모든 유려함과 개성을 아우르는 여유가 느껴졌다. 특히, 특유의 리듬감으로 음색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이는 피아니스트 키릴 게르슈타인(1979~)과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도 두드러졌는데, 게르슈타인이 가진 특징적인 프레이징 방식을 무리 없이 받아냈다. 마지막 작품은 드보르자크의 슬라브 광시곡 Op.45. 슬라브 특유의 분위기가 세련되게 녹아져있는 이 작품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오랜 호흡이 빛을 발했다.

공연이 끝난 다음날, 지휘자 토마시 네토필과 인터뷰를 나누었다. 오는 7월, 한국에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공연도 앞두고 있는 그는 축제에 대한 애정, 그리고 자신에게 보물과 같은 체코 작곡가의 음악을 한국에서 선보일 것에 대한 기대감을 전했다.

글 허서현 기자 사진 스메타나 리토미슐 음악 축제

 

 

INTERVIEW

체코필하모닉 수석객원지휘자

토마시 네토필

음악의 전통이

전세계와 공유되기를!

 

스메타나 리토미슐 음악 축제에 처음 참가한 때는 언제인가?

2004년이 처음이다. 그 이후로 천천히 내 삶에 스며들어온 축제다. 이제는 이곳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분위기를 늘 기대하고 있다. 특별히 올해는 개막 공연 연주를 맡았을 뿐 아니라, 여러 아름다운 프로그램이 연주되며, 모든 공연이 체코 공영방송을 통해 실황 중계된다는 점이 참 벅차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문화유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역사와 음악, 건축이 잘 어우러진 도시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가치를 알아볼 수 있길 바란다.

프라하 국립극장의 음악 감독을 역임한 바 있고, 체코필하모닉과도 오랜 시간 함께 해왔다. 2017년에는 체코 국제음악아카데미를 만든 바 있다. 체코음악계에 헌신한 여러 음악가, 지휘자들의 행보가 떠오르기도 한다. 본인에게 체코의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

내게 보물 같은 것이다. 체코의 많은 작곡가와 예술가들이 이 전통을 지켜왔다. 내 삶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 음악의 전통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서울에서 선보일 연주도 기대가 된다.

국립심포니와는 스메타나의 ‘팔려간 신부’ 서곡과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6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교향곡 6번은 한국에서 자주 연주되지는 않는 곡인데.

그래서 교향곡 6번 연주가 더욱 기대된다. 드보르자크의 작품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며, 체코 음악의 특징을 잘 담아낸 곡이라고도 생각한다. 체코의 춤과 선율, 특징들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곡이다. 이 작품에 빠져들고 싶다면 7월 공연에 오셔서 들어보길 추천한다!

 

Performance information
토마시 네토필/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협연 윤홍천)

7월 11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드보르자크 교향곡 6번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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