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IST
피아니스트 샤를 리샤르 아믈랭
쇼팽에 머물며, 쇼팽에서 벗어나며
쇼팽의 명작 왈츠와 함께, 음악의 새 영역을 탐닉하다
특정 작곡가의 작품을 자주 연주하고, 특별한 애정을 드러내는 연주자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작곡가와 그의 작품을 대변하는 ‘스페셜리스트’라는 별명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했던 그도 마찬가지다. 종종 쇼팽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연주자가 한동안 쇼팽 레퍼토리를 다루지 않는 것과 달리, 아믈랭은 늘 쇼팽과 함께였다. “쇼팽은 오랜 친구 같다. 쇼팽 작품을 연주할 때면 위안을 받고 마음이 편안하다”라는 대답에서, 그의 이름 앞에 ‘쇼팽 스페셜리스트’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 내한 공연에도 쇼팽 작품과 함께한다. 당신에게 무척 특별한 작곡가인 것 같다.
나는 쇼팽의 ‘소리 세계’ 안에서 항상 편안함을 느낀다. 쇼팽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이고, 나는 여전히 쇼팽의 작품을 새롭게 배우고 연주하고 싶다. 언젠가는 쇼팽의 모든 레퍼토리를 연주할 것이다!
작품을 해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무엇인가?
쇼팽의 말을 인용해 대답해도 될까. “간결함이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야만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목표다. 그 간결함은 엄청난 양의 음표,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음표를 연주한 후에야, 예술에 대한 최고의 보상으로 나타난다.”
우연이 만들어 준 특별한 프로그램
그는 2018년 쇼팽 작품으로 채운 첫 내한 독주회를 시작으로, 이후에도 쇼팽의 곡을 빼놓지 않았다. 2020년에는 베토벤·멘델스존·쇼팽 작품을 선보이고자 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취소되었다. 2022년엔 라벨과 쇼팽을 연주했다. 그리고 올해, 스페인 작곡가 그라나도스·알베니즈, 쇼팽으로 돌아왔다.
이번 무대는 지난 공연보다 더 흥미롭다. 프로그램 전체에 춤곡이 흐르고, 1부와 2부가 한 쌍을 이루기 때문이다. 1부는 ①그라나도스의 ‘연주회용 알레그로’ Op.46과 ②‘시적인 왈츠’, ③알베니즈의 ‘라 베가’다. 2부는 전부 쇼팽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④쇼팽의 ‘연주회용 알레그로’ Op.46과 ⑤8곡의 왈츠를 연주한다. 프로그램의 의도를 묻자, 그는 진중하면서도 친절한 답을 들려주었다.
1부와 2부의 ‘닮은꼴’ 프로그램(①·④)이 독특하다. 구상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나는 오랫동안 쇼팽의 연주회용 알레그로 Op.46(④)을 연주하고 싶었다. 이 곡은 매우 교향적이고, 기교적이며, 규모가 큰 작품인데, 안타깝게도 거의 연주되지 않는다. 이 작품을 공부하던 중 그라나도스가 작곡한 연주회용 알레그로 Op.46(①)을 발견했다. 쇼팽의 작품과 동일한 제목과 작품 번호를 가진 작품이라니, 정말 신기한 우연이었다! 이 작품을 들으며 그라나도스의 ‘시적인 왈츠’도 알게 됐다. 그라나도스와 쇼팽의 대규모 작품 및 소품들을 ‘왈츠’라는 코드로 묶어, 1부와 2부가 거울처럼 비추고, 닮은꼴로 만들고자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1부의 그라나도스와 2부의 쇼팽, 두 작곡가의 작품 스타일을 비교 감상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독주회를 준비하며 알게 된 그라나도스만의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그라나도스는 쇼팽과 마찬가지로 훌륭한 피아니스트였다. 작곡가로서 그는 진정성이 느껴지는 감미로운 음악을 작곡했는데, 무척 감동적이다. 그라나도스는 선율을 만드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이번에 연주하는 두 작품(①·②)에도 아름답고 기억에 남는 주제 선율이 등장한다. 청중도 분명 그라나도스와 쇼팽 사이의 유사성과 각 작곡가의 개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부 마지막 곡으로 ‘라 베가’를 연주한다. 어떤 곡인가?
‘라 베가’는 환상적이고 분위기 있는 작품이다. 19세기 후반에 작곡된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진보적인 화성이 사용됐다. 스페인 민속 음악의 음계와 리듬이 특징적이며, 연주하기에도 매우 까다롭다. 지금까지 공연에서 스페인 작품을 연주한 적이 없는 만큼, 이번 공연에서 그라나도스와 알베니즈를 함께 소개하면 좋을 것 같았다.
쇼팽의 왈츠는 총 19곡인데, 그중 8곡을 선택한 기준이 있었나?
내가 좋아하는 8곡을 선택해 ‘시적인 왈츠’(그라나도스)에 속한 8개의 왈츠와의 연결성을 부여하고, 조성 관계와 성격적 대비가 극대화되도록 순서를 배치했다. 쇼팽의 왈츠는 ‘연주회용 알레그로’에 비해 질감이 훨씬 가볍고, 독주회에서 연주할 다른 곡에 비해 청중에게 매우 친숙한 곡이기에, 왈츠를 통해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균형을 맞췄다.
쇼팽 왈츠의 매력은 무엇인가?
세련되면서도 특색이 가득한 작은 보석이다! 예를 들어 왈츠 Op.34-2를 비롯해 몇몇 곡은 쇼팽의 그 어떤 작품보다도 심오하다.
지금, 그리고 미래
그간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있거나, 추구하게 된 음색이 있나?
20대 중반 이후 내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정말 감사하다. 그 경험들로 특정 작품을 보는 방식이 바뀌었지만, 나의 이상향은 여전히 같다. 특별히 추구하는 한 가지 음색은 없다. 다만, 긴 프레이즈를 연결할 수 있는 관대하면서도 따뜻한 소리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요즘 주력하고 있는 작곡가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작품을 연주했다. 특히 에네스쿠(1881~ 1955), 메트너(1880~1951), 바바자니안(1921~1983), 쇼송(1855~1899) 등 자주 다뤄지지 않는 작곡가들을 소개하는 일이 즐거웠다. 앞으로는 슈베르트를 좀 더 많이 연주하고 싶다.
대중이 당신을 어떤 연주자로 기억하길 바라는가?
당연히, 진정성 있는 피아니스트!
그는 지난 몇 년간 쇼팽과 더불어 독일·프랑스 작품을 많이 연주했으며, 이들의 음반도 발매했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쇼팽을 가장 사랑하는 것은 맞지만, 쇼팽에만 머무는 연주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에서 그가 앞으로 연주할 여러 작품이 떠올랐다. 다음 연주는 누구와 함께할까.
글 김강민 기자 사진 더브릿지컴퍼니
샤를 리샤르 아믈랭(1989~) 캐나다 태생으로,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2위를 비롯해 몬트리올 콩쿠르·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 입상했다. 9장의 음반을 발매했으며, 펠릭스·디아파종·BBC 뮤직 매거진 상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Performance information
샤를 리샤르 아믈랭 피아노 독주회
5월 31일 오후 7시 30분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웅부홀
6월 1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그라나도스 연주회용 알레그로·시적인 왈츠, 알베니즈 ‘라 베가’, 쇼팽 연주회용 알레그로·왈츠 Op.34-2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