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신수정, 예술의 토양을 가꾼 이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10월 1일 9:00 오전

ANNIVERSARY

 

예술의 토양을 가꾼 이들

개원 7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예술원의 정체성과 미래 피아니스트·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신수정

 

 

 

신수정(1942~) 서울대 음대 기악과 최연소 교수로 임용, 현재 명예교수다. 독일정부로부터 일등십자공로훈장을 수훈한 바 있다. 2009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입회, 2023년 예술원 역사상 최초로 여성 회장으로 선출됐다.

 

“우리는 위대한 국가의 초석은 위대한 예술의 창조에 있음을 깊이 인식하고 우리 민족의 불행이 예술로 인해서 제거되고 우리 민족의 행복이 예술로 인해서 조성될 것을 믿으며 우리는 예술을 통하여 영혼과 이념과 영광을 창조하는 위대한 과업에 국내외의 모든 예술가들과 협력 공진할 것을 공약 선언하는 바입니다.” – 1954년 예술원 선언문 中

 

 

 

 

 

K-컬처의 전성기다. 음악부터 미술, 문학과 연극, 영화까지…. 오늘날 세계 속 한국은 문화예술의 저력을 가진 국가로 사랑받는다. 그러나 7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예술의 불모지였다.

찬란하게 꽃 피운 지금의 대한민국 예술이 있기까지, 토양이 되길 자처해 아주 작은 씨앗을 심기 시작했던 이들이 있었다. 1954년, 문화보호법 제정에 의해 탄생한 대한민국예술원(이하 예술원)은 그 선구자적 공로를 가진 이들의 모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예술원은 ‘예술창작에 현저한 공적이 있는 예술가를 우대·지원하고 예술창작활동 지원사업을 함으로써 예술발전에 이바지 한다’는 목적(대한민국예술원법 제1조)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올해 개원 70주년을 앞두고, 제41대 회장 신수정을 만나 예술원이 지키고 있는 가치를 돌아보았다.

 

전후, 혼돈의 시대를 넘어

대한민국예술원 70주년 기념식 포스터

1954년 7월 17일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강당에서 문화보호법에 의해 출범한 두 단체, 대한민국학술원과 예술원의 개원식이 있었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기 전에 선포된 이날의 선언문은 예술을 통한 희망에의 다짐이기도 했다.

“예술원은 문화예술 전 분야에서 기초를 닦는 역할을 했습니다. 혼돈의 시대였음에도, 당시 정부가 법을 통해 예술 발전을 도모했고, 예술가들이 이를 위해 뜻을 함께 모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짧은 역사 속에서 예술원의 창설은 좋은 토양이 되기 위한 비료와도 같은 것이었어요.”(이하 신수정)

창립 당시의 회원은 25명. 시인 오상순과 유치환, 소설가 염상섭과 김동리, 연극 연출가 이해랑, 작곡가 현제명, 화가 김환기 등이 당시 창립의 주역이었다. 초대 회장은 화가 고희동이 추대됐다. 그 후 전설적인 예술계의 인사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현재 우리나라 예술계를 총망라하는 대표 기관으로, 1996년 대한민국예술원법 개정 이후 회원의 정원은 100명이다. 30년 이상의 예술 경력으로, 예술 발전에 현저한 공적을 가진 원로 예술인이 회원으로 선정된다. 문학 분과는 시·소설부터 평론까지, 미술 분과는 서양·동양화는 물론 건축과 공예까지 포함된다. 음악 분과도 동·서양을 모두 포함한다. 특별히 올해, 70주년을 맞이하며 한 분과에 속했던 연극·무용·영화가 각각 나뉘어져 총 여섯 개의 분과로 운영하게 됐다. 지난 6월 총회를 통해 극작가 이강백, 연극배우 신구, 영화배우 안성기, 무용수 김긍수 등 9명이 신입회원으로 선출되며 예술원의 회원은 현재 80명이다. 예술원 회원은 총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받아야 선정되며, 종신제다.

“회원들이 면모를 살펴보면, 그들이 평생에 걸쳐 각고의 노력으로 갈고 닦아온 예술에의 헌신이 엿보입니다.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는 회원들도 있고, 연세에 따라 그 활동이 줄어드는 분들이 계신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예술원은 순수 예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온 원로 예술인들에게 정부가 그 기여를 인정하고 필요한 역할을 해주도록 기능하고 있습니다.”

 

예술원이 지켜온 정체성과 원칙

예술원에서는 매년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자를 선정한다. 1955년부터 이어져 온 이 상은, 국내 문화예술계에서 높은 권위로 인정받는다. 외에도 문학 분과는 매년 연간 작품집을 발행하며, 미술 분과와 음악 분과는 미술전과 음악회를 개최한다. 학문적 측면의 국제 교류나 세미나 등도 개최된다. 9권까지 발행된 ‘회원구술총서’ 발행도 주요 사업이다. 예술원 회원의 구술 채록을 통해 우리나라 예술 역사의 주요한 부분들이 기록되고 있다.

“예술계에 기여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면 언제나 환영이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죠. 그러나 예술원의 역할은 눈에 보이는 사업에 치중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술계를 뒷받침하는 위치에서 순수 예술 단체로서의 정체성을 휘둘리지 않고 잘 지켜나가야 합니다.”

예술원 회원 선출 방식과 회원 수당 지급 등 시대의 변화에 따라 대한민국예술원의 역할에 문제 제기가 있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 2021년에는 법 개정 여론이 일기도 했다. 다수의 원로 예술인이 모여 있는 만큼, 예술계에 적극적인 활동과 개입을 바라는 바람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여러 예술계 현안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은 말이 왜 없겠어요.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예술원의 독립성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 각합니다. 현안에 따로 성명을 표하는 원로 단체들이 있을 수 있죠. 하지만 그만큼 정치적 사항에 휩쓸릴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예술의 근간을 이루는 틀을 만들었다는 정의에서 멀어진다면 예술원의 순수성이 훼손됩니다. 중립적이면서도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예술을 위한 단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완벽한 단체란 없다. 대한민국 예술계에 기여한 분들의 업적을 잘 인정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는 것이 지금 예술원의 숙제다. 독선적 혹은 폐쇄적인 단체가 되지 않기 위한 자정의 노력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어떤 선거도 완벽하진 않죠. 모든 분이 납득할 예술가가 회원으로 선출될 수 있도록하는 방법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다만 예술원 외부의 입김이 작용된다면 자칫 이 또한 독립성을 헤칠 수 있습니다. 공정하면서도 독립적인 예술원을 위한 보안 방법을 찾고자 노력 중입니다.”

2022년 신설된 젊은 예술가상은 그 노력 중 하나다. 5년 이상의 작품 활동에 성과가 있어 장래가 촉망되는 예술인에게 수여한다.

“대한민국예술원상의 예산 절반을 덜어내어 신설했죠. 예술원이 원로 예술인들만을 위한 곳은 아니니까요. 젊은 예술인들에 대한 장려에 모든 분과가 뜻을 합해주었습니다. 상을 주고 싶은 사람들 정말 많아요.(웃음) 저희가 예술을 시작할 때는 상상도 못 할 성과를 내는 이들이죠. 아직은 너도나도 지원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앞으로 이 젊은 예술가상이 잘 이어져서 능력 있는 예술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70주년을 기념하는 ‘향연’이 열린다

한편, 70주년을 맞이한 예술원은 예년에 비해 분주하다. 2023년부터 회장직을 맡게 된 피아니스트 신수정은 “부회장(연출가 손진책)과 제가 아무래도 일복이 많은 게 분명하다”며 미소를 띤다. 오는 10월 4일,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개최되는 개원 70주년 기념식 및 심포지엄은 오후 1시 30분부터 6시까지 진행된다.

“60주년 기념식이 보다 학문적이었다면, 올해는 조금 더 특별한 순서들이 준비된 것 같아요. 현업에 있는 손진책 연출가가 기념식을 도맡아 주고 있어요. 예술원이 포용하고 있는 다양성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향연-포스트 휴먼과 예술’을 주제로 하는 이번 기념식에는 주제에 대한 발제 및 토론은 물론이고, 6개 분과가 주제에 맞춘 공연도 선보인다. 유명 시인들의 자작시 낭송부터 미디어아트 공연까지 준비되어 있다. 회원인 신구·이호재·박정자·손숙 등이 출연하는 연극 ‘스페이스 리어’도 축하 공연 중 하나다. 신수정은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볼거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10년에 한 번 있는 예술원의 기념식에서 모든 분과의 예술을 경험할 흔치 않은 기회”라고 덧붙였다. 기념식은 누구나 와서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향연이라는 제목은 플라톤의 ‘심포시온(향연)’을 인용한 것입니다. 예술의 시작점을 그리스 문화로 보고, 그 기원에서부터 현재의 예술원에 이르기까지를 반추하는 의미죠. 손진책 연출이 그런 흐름을 잘 짚어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포스터는 유희영 화백의 그림이 활용됐습니다. 뒤를 돌아보면서 동시에 앞으로 나갈 방향을 제시하는 뜻을 담아 각 분야의 능동적인 공연을 준비했으니 많은 분이 오셔서 즐거움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허서현 기자 사진 대한민국예술원

 

Performance information

대한민국예술원 개원 70주년 기념식 및 심포지엄

10월 4일 오후 1시 30분 국립극장 해오름

전시 ‘대한민국예술원 개원 70년: 지금, 잇다’

9월 12일~10월 13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1·2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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