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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스미노 하야토
자유로운 발상으로 음악의 경계를 허물다
고전과 현대, 공학과 예술, 편곡과 작곡을 아우르는 독특한 세계의 소유자
건축가 안도 다다오, 작곡가 다케미쓰 도루, 영화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해당 분야의 전통적인 교육과정을 밟지 않았음에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해 성공을 이뤘다는 점이다. 이 공통점을 가진 또 한 명의 인물이 등장했다. 바로 스미노 하야토(1995~)다.
스미노 하야토의 이력은 흥미롭다.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어머니에게 3살 때부터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고, 9살 무렵에는 일본의 한 방송에서 신동으로 소개되었다. 음악뿐 아니라 수학에도 열정이 넘쳤던 소년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공학도의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음악을 멈출 수 없었던 그는 도쿄대 공대와 동 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면서도 여러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2021년 쇼팽 콩쿠르의 준결승 무대에 오른 최초의 비전공자 참가자로 주목받았고, 이제는 피아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스미노 하야토는 자신의 세계를 클래식 음악에만 국한하지 않았다. 클래식 음악을 기반으로 재즈와 록 음악 등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오히려 공학을 전공함으로써 더 실험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고, 그 자유로운 시도가 담긴 그의 유튜브 채널 ‘카틴’에 140만 명의 구독자가 모였다(2024년 10월 기준). 작년 내한 독주회에서 이진법을 활용해 작품번호를 소개하며, “음악과 과학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그의 철학을 무대 위로 펼쳐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올가을 다시 한국을 찾는다. 스미노 하야토가 이번에는 어떤 신선한 아이디어를 보여줄까. 궁금한 점들을 담아 이메일로 질문을 보냈더니,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루만 더 고민해도 되겠느냐는 정중한 연락을 보내왔다. 기다림 끝에 받은 그의 답장은 친절하고 상세했다. 문장마다 스미노 하야토가 지닌 작은 우주가 담겨 있었다.
음악과 수학은 결국 하나다
컴퓨터 공학은 당신의 음악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좋아했지만, 피아노가 제 인생의 유일한 길이라는 확신을 갖기까진 망설였습니다.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며 음악과 과학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과정은 제 음악적 사고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음악의 구조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더 깊이 있는 해석을 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이러한 경험들이 결국 저만의 독특한 음악적 색깔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며 기억에 남았던 무대를 꼽는다면요?
올해 런던 로열 알버트홀 데뷔 무대에서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를 연주했을 때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 곡을 연주할 때면 항상 저만의 카덴차를 연주하는데, 그 순간 객석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어요. 저는 그 벨소리에 맞춰 즉흥연주를 했고요.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관객 모두가 그 순간을 즐거워했습니다.
하야토가 품은 우주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 구성이 독특하다. 작곡 활동을 겸하는 연주자라면 종종 자기 작품을 연주회에서 선보이곤 하지만, 스미노 하야토는 클래식 음악과 자신의 작·편곡 작품을 한두 곡씩 번갈아 배치했다. 1부는 바흐 프렐류드와 푸가 BWV870으로 시작해, 하야토의 ‘태동’과 ‘야상곡 I’,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1번, 그의 ‘터키행진곡 변주곡’으로 이어진다. 2부는 하야토의 ‘야상곡 II’로 시작해 바흐의 이탈리안 콘체르토와 드뷔시의 ‘달빛’, 그의 ‘인간의 우주’와 ‘야상곡 III’, 라벨의 ‘볼레로’(하야토 편곡)로 마무리된다.
클래식 음악 사이사이에 자작곡을 배치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바흐·모차르트·드뷔시·라벨을 통해 클래식 음악을 느끼고, 제가 작곡한 곡들을 통해 현대적인 감성과 실험적인 요소를 체험할 수 있도록 조화롭게 엮었습니다. 각 곡이 가진 시대적 배경과 음악적 스타일의 차이점을 감상하면서도, 그 속에서 공통된 음악적 언어를 발견하는 것이 이번 독주회의 감상 포인트예요!
마지막 연주곡 ‘볼레로’는 이번 프로그램의 유일한 편곡 작품인데, 원곡과 새로운 해석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았나요?
사실 재작곡과 편곡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어요. 그 경계가 때로 모호하기도 하지만, 편곡 작품(‘볼레로’)은 작곡가의 의도와 원곡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재작곡 작품(‘태동’ ‘터키행진곡 변주곡’)은 원곡을 활용해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물론 원곡에 대한 존경심과 그 작품을 사용하는 확실한 이유가 있어야 하지만요. 이번 공연에서는 업라이트 피아노와 그랜드 피아노를 사용하는데요, 라벨의 ‘볼레로’를 연주할 때 원곡이 지닌 오케스트레이션의 묘미를 두 피아노의 음색 차이로 표현하려고 해요.
음반 ‘인간의 우주(Human Universe)’ 발매를 앞두고 있습니다.
‘인간의 우주’는 음반 제목이자 제가 작곡한 곡의 제목이에요. ‘우주 안의 인간’과 ‘인간 안의 우주’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았습니다. 우주의 광대함과 내면의 작은 우주를 함께 표현합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우주 전체가 음악을 연주한다고 믿었어요. 여기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음반에는 우주와 관련된 작품을 수록했습니다. 업라이트 피아노와 그랜드 피아노, 두 대를 사용해 녹음했고요. 업라이트 피아노의 소리는 마치 오래된 추억의 상자처럼, 아늑한 느낌을 만들어주거든요.
음반의 수록곡 중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곡이 있다면요?
‘야상곡’은 총 3곡으로, 1·2·3번엔 각각 순서대로 해 질 녘, 해돋이, 자정의 하늘을 담았습니다. 특히 1번 ‘비가 내리기 전(Pre Rain)’은 한국 북촌의 한옥마을에서 눈 내리기 직전의 하늘을 바라보며 영감을 받았습니다. 한국 관객분들에게 이 곡을 들려드릴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끝으로,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나요?
시대를 초월하는 음악을 창작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 음악을 특정한 장르로 정의하지 않아요. 클래식 음악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적인 요소를 결합해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경계를 넘어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음악을요. 또한, 다양한 장르와의 융합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음악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항상 새로운 도전에 열려있고, 지속적인 성장과 변화를 통해 더욱 풍부한 음악적 세계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글 김강민 기자 사진 마스트미디어
스미노 하야토(1995~) 2018년 도쿄대학원 재학 중 일본 PNTA(전일본교육자협회) 피아노 콩쿠르에서 특급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음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비전공자 최초로 2019년 리옹 피아노 콩쿠르 3위, 2021년 쇼팽 콩쿠르 준결승에 올랐다. 유튜브 채널 ‘카틴(Cateen)’을 운영하며, 다양한 작·편곡 활동도 하고 있다.
PERFORMANCE INFORMATION
스미노 하야토 피아노 독주회
11월 26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1월 28일 오후 7시 30분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
11월 29일 오후 8시 현대예술관 대공연장(울산)
바흐 프렐류드와 푸가 BWV870,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1번, 스미노 하야토 ‘인간의 우주’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