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모인 예술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11월 4일 9:00 오전

SPECIAL ISSUE

 

영화로 모인 예술

오늘날 가장 대중적이며, 파급 효과가 큰 영화는 예술을 어떻게 담아왔을까?

영화를 통해 만나는 예술가와 작품들 집중 탐구

 

 

PART 1 영화의 역사와 예술

PART 2 장르별 융합 ① 연극이 된 영화

PART 3 장르별 융합 ② 영화가 된 뮤지컬

PART 4 예술을 소재로 한 영화 소개

 


 

01 영화의 역사와 예술

 

순수예술과 과학의 조화

영화는 가장 늦게 태어난 예술이지만, 여러 장르와 교감하며 진화 중이다

 

뤼미에르 형제

우리가 예술이라 부르는 것들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사학자들에 따르면 선사시대부터 미술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음악은 주술의 형태로 수만 년 전부터 존재했으며, 문학은 기원전 3천5백 년 전부터 시의 형태로 시작되었다. 연극은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희극으로 기록되어 있다. 연극에 음악을 융합한 오페라는 르네상스 시대인 1590년대에 등장하였고, 오페라를 음악이 있는 연극으로 변화시킨 뮤지컬은 1892년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문헌 기록상으로 가장 최근에 등장한 장르인 영화는 1895년 12월 28일 뤼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래프를 공개 상영한 것을 시작으로, 활동사진, 흑백 무성영화, 흑백 유성영화, 컬러 영화, 그리고 필름 영화를 거쳐 현재의 디지털 영화로 변화했다. 앞선 공연예술의 다양한 장점들을 흡수하며 빠르게 성장한 영화는 산업과 예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장르가 되었다.

영화의 발명, 그리고 발견

영화는 다른 예술 장르와 달리 근대 과학기술의 발명품이다. 화학적 감광 물질인 필름, 빛의 양과 굴절을 조절하는 렌즈, 필름과 렌즈를 결합한 카메라, 필름을 투사하는 영사기 등은 모두 영화의 탄생에 기여하였다. 당시는 자본주의 생산 체계가 확립되면서 농촌 사람들이 공장으로 이동하고, 그들을 위한 도시가 생기기 시작하던 시절이다. 그래서 뤼미에르가 제작한 최초의 영화에는 열차와 공장 노동자의 모습이 담겨있다.

영화는 모든 예술과 기술의 장점을 흡수하며 성장했지만, 괴물이 되지는 않았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순수예술과 비교하면 영화는 거의 신생아에 가깝지만, 역설적으로 현재 인류에게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파급력이 큰 예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영화는 음악, 연극, 무용, 시각예술, 문학 등의 순수예술과 급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자연스럽게 융합하여 영원한 시각 기록으로 남는 예술 장르가 되었다. 이러한 막내 예술의 영향력은 다시 순수예술의 영역에 자양분 또는 변화의 계기가 되고 있다.

연극과 뮤지컬이 영화에 끼친 영향

➌ 뮤지컬 영화 ‘메리 포핀스’(1964)

영화와 연극은 배우의 연기로 전달되는 이야기, 무대와 씬(Scene)이 만들어내는 미장센, 의상과 분장이 드러내는 인물의 성격과 사회성을 통해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형식이 다르지만 아주 친밀한 형제와 같다. 그래서 여전히 영화와 연극은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가치를 교환하며 함께 성장하고 있다. 음악과 무용 같은 예술과도 쉽게 결합하지만, 오늘날의 영화가 대중에게 가장 친숙하면서도 보편적인 장르로 발전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장르는 뮤지컬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뮤지컬과 영화는 1890년대에 탄생해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며 배우와 음악, 줄거리를 서로 교류하고, 공연장과 영화관 사이의 콘텐츠를 교환하며 성장했다. 초창기 영화는 필름에 사운드를 담을 수 없었기 때문에 스크린에 상영하는 동안 변사(辯士)가 해설을 해주거나, 스크린 뒤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등의 라이브 공연 형태로 진행되었다.

무성영화는 무언의 장르이지만 일종의 필름을 활용한 음악 공연이었다. 영화의 사운드가 대사, 음악, 음향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1927년 워너 브라더스의 최초 유성영화 ‘재즈 싱어’가 뮤지컬 형식을 도입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공연장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장르의 공연예술이 뮤지컬이었다는 점 때문에 영화는 뮤지컬을 가장 적극적으로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들였다.

프레드 애스테어(1899~1987)와 진저 로저스(1911~1995) 커플로 대표되는 뮤지컬 영화가 가장 활발하게 제작되었던 시기는 1960년대이다. 공연장의 뮤지컬과 뮤지컬 영화가 쌍생아처럼 서로를 품었던 시기로, ‘사운드 오브 뮤직’ ‘메리 포핀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마이 페어 레이디’ 등의 작품이 뮤지컬과 뮤지컬 영화로 동시에 만들어졌다. 1980년대 이후 영국 웨스트엔드와 미국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공연예술 분야의 기술이 발전하고, 대규모 공연을 제작할 수 있는 자본과 공연장이 생기면서 오늘날까지도 뮤지컬은 독자적이고, 가장 대중적인 공연예술로 자리매김하였다.

공연 기록을 넘어, 기억하는 영화들

영화 ‘더 웨일’

영화는 때론 잊을 수 없는 역사적 기록이 되기도 한다. 1968년 영화 ‘피니언의 무지개’는 전설적인 뮤지컬 스타 프레드 애스테어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뮤지컬 영화다. 페드로 알모도바르(1949~) 감독의 ‘그녀에게’(2002)에 등장하는 피나 바우쉬(1940~2009)의 공연 영상은 그녀의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의 기록성은 단순한 아카이빙을 넘어서는 기억의 영역이다. 영화는 공연이 지닌 시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고, 공연예술의 현장성을 영상 매체의 힘을 빌려 연출자가 의도하는 바를 예술적으로 기록, 공유할 수 있는 매력적인 기록 장치로 작용한다.

영화는 가장 인접한 예술의 가장 중요한 요소들을 끌어들이고 흡수하면서 끊임없이 진화 중이다. 더욱이 필름에서 벗어난 디지털 발전이 가속화되며 가장 똑똑한 장르로 발전하고 있다. 극장을 위협하는 TV와 OTT의 환경 속에서도 자구책을 마련하면서 여전히 타 장르와 결합하거나, 더 잘할 수 있는 요소들을 강조하며 콘텐츠를 맞교환하기도 하는, 소통에 능한 막내이다.

최근 미국 극작가 사무엘 D. 헌터의 동명 연극을 영화화한 ‘더 웨일’(2023)은 주인공 브렌든 프레이저에게 아카데미상을 안겨주었다. 2007년 개봉한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타인의 삶’은 오는 11월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연극으로 초연될 예정이다. 최근 영화화된 뮤지컬 ‘위키드’는 공연장의 한계를 뛰어넘는 CG 기술로 원작을 더욱 돋보이게 했으며, 11월 국내에서 전 세계 최초 개봉을 앞두고 있다.

지금 당장은 콘텐츠의 교환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이 사라진 후, 과거의 예술을 기억하는 유일무이한 기록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영화는 여전히 공연예술계가 눈여겨 볼 장르이다.

최재훈(영화평론가)

 


 

02 장르별 융합 ➊ 연극이 된 영화

 

연극 ‘타인의 삶’ 각색·연출을 맡은 배우 손상규

영화가 연극이 될 때 마주하는, 또 다른 감동

 

무대와 스크린 간의 공유는 국내에서도 활발하다. 지난해, 웹툰을 원작으로 국립창극단이 제작했던 ‘정년이’는 현재 동명의 드라마로 방영 중이고, 2021년 뮤지컬 영화로 재탄생했던 ‘틱, 틱…붐!’은 11월부터 다시 공연으로 무대에 오를 준비를 마쳤다. 이 사이에는 각색이라는 통역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각색의 열쇠를 쥔 자들의 색깔이 어떻게 더해지는가가, 이야기를 풍성하게 즐기게 해주는 관점이 되기도 한다.

연극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많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흔치 않다. 각색과 연출을 맡은 손상규를 만나 이 작업의 과정에 대한 상세한 질문을 던졌다. “영화와 달리 연극은 시공간적 표현에 제한이 있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오히려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무대를 텅 비우고, 연극적 약속으로 작동되는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볼 생각”이라고 답했다.

오는 11월, 영화 ‘타인의 삶’(국내 개봉 2007년)을 원작으로 동명의 연극이 무대에 오른다. 영화 ‘타인의 삶’은 1984년, 동독 정보기관의 비밀 요원인 ‘비즐러’가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이자 배우인 ‘크리스타’의 집을 도청으로 감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드라이만은 감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사회주의 체제에 적당히 순응하는 예술가였으나, 동료 예술가의 죽음을 계기로 변한다. 비밀리에 독재 정권에 대한 폭로를 이어가는 그의 계획을, 비즐러는 보고하지 않는 것으로 돕는다. 크리스타는 배우로서 활동하기 위해 문화부 장관인 헴프의 성적 만행까지 감내하고 있다. 드라이만을 의심하는 정보기관의 추궁에, 그의 비밀을 털어놓는 것도 그녀다.

그런데 냉혈한 비즐러는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심적 변화를 겪는 인물이다. 예술에 대한 두 사람의 진정성과 깊은 사랑이 비즐러의 가치를 뒤흔든다. 완벽한 타인이었던 이들의 삶이, 체제 속 성실한 근로자 같았던 그의 영혼을 울린다.

 

나와 너의 관계에 대하여

본인이 영화 ‘타인의 삶’을 연극으로 만들면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최근 한 영상을 봤는데, 한 바다 거북이가 뒤집어져서 버둥대는 걸 보고, 다른 거북이가 다가와 열심히 다시 뒤집으려고 노력해주는 모습이었다. 5분… 7분… 10분이 넘어가도록 내내 그 모습만 영상에 나왔다. 그 거북이는 서로 가족이었을까? 아니었다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노력했을까? 어떻게 돼도 상관 없는 존재를 위해, 아무런 이득도 바라지 않은 채 삶을 바꾸려는 노력은 왜 하게 되는 걸까? ‘타인의 삶’에는 이 질문 앞에서 각 인물들이 하는 선택이 모두 다르다. 드라이만이 자신의 커리어가 망가질 수 있는 선택을 한 것은, 이미 죽은 동료를 추모하기 위함도 있겠지만 같은 상황이 또 다른 이들에게 반복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크리스타의 선택도 인간적으로 이해된다. 누가 그 상황에서 정보기관의 추궁에 견디겠는가. 이 모든 선택이 교차하는 것이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시공간의 제약이 있는 연극 무대에서, 영화의 장면을 모두 표현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

영화만큼이나, 연극도 무한하다. 하늘을 쳐다보는 배우의 표정만으로도, 물 한 방울 쓰지 않고 비가 내리게 할 수도 있다. 가끔은 아무 장치도 없는 연습실에서 배우들의 연기만으로도 극이 선명하게 보인다. ‘연극적 약속’이라는 장치도 가능하다. 벽돌을 눕히면 배가 되고, 세우면 벽이 되고, 들면 무기가 된다. 이 약속에 대해 관객이 모두 동감하고 받아들이는 순간은, 연극의 마법 같은 순간이다.

실제 연극 무대에 대한 구상이 궁금하다. 영화 속에서는 비즐러가 헤드폰을 끼고 실제 상황과 다른 보고서를 작성하는 장면이 중요한데, 무대에서도 동일하게 시각화되는지 등.

인물 간의 관계에 집중했기 때문에, 거의 빈 무대가 될 것 같다. 일종의 약속이다. 타자기의 내용은 비즐러가 무전기에 대고 말하는 듯한 소리로 처리된다. 이 내용은 도청하고 있는 비즐러의 입장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사실적이고 일상적인 묘사까지 그려지진 않는다. 비즐러의 공간도 분리되지 않는다. 그는 배우의 바로 옆에서 듣기도, 뒤에 서 있기도 하며 그들의 삶을 듣는다. 이 설정을 이해할 수 있는 연출적 약속 장치도 초반에 배치할 예정이다. 구체적이지 않지만,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야기는 사람을 투영한다

영화를 연극화하는 과정이 궁금하다. 실제로 어떤 순서로 작업했나?

번역이 먼저다. 원어가 무슨 말이었는지를 아는 것은 내용의 뉘앙스를 정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이 작업 후에는 머릿속으로 연극 장면을 먼저 만들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서 잘 작동할 장면을 그린 후에, 그에 맞게 대본을 재배치했다. 당연히 원작 영화에서 빠진 부분도, 새롭게 삽입한 장면도 있다. 두세 개의 장면이 합쳐지기도 한다.

각색과 연출을 모두 맡았기에 가능했던 방식인 것 같다.

맞다. 사실 각색 작업을 하다가 한참 동안 대본을 안 봤다. 연습을 시작한 요즘은 다른 제작진, 배우들과 다시 객관적으로 대본을 보고 있다. 나 혼자 너무 오랫동안 이 작품에 몰입해 왔던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나도 모르게 방어적이 되게 마련이다. 어느 정도 떨어져서, 다시 보는 중이다.

영상 예술에서 무대 예술로, 장르를 변경함을 통해 발생하는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선, 장르의 차이를 짚기 전에 ‘누구에게 이 이야기가 투영되느냐’의 차이를 말하고 싶다. 가요 ‘너의 의미’를 김창완이 부르고, 아이유도 부르는 것처럼. ‘타인의 삶’ 시나리오가 가진 이야기가 당시 영화 제작팀에 투영된 결과와, 연극 프로덕션에 투영된 결과는 다르다. 결국, ‘누구를 거치느냐’가 의미의 다름을 만든다. 동시에 연극은 실제로 눈앞에서 한 사람의 생을 동시에 마주한다는 점에서 오는 엄청난 에너지가 있다. 예를 들어 경기장에 가서 축구를 관람하면 예상보다 경기 장면들이 잘 안 보인다. 중계에서 듣던 해설이나 골 장면의 슬로우 비디오도 없다. 하지만 내 눈앞에서 생생히 뛰어 움직이는 몸들과 공존하는 생동감이 있다.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는 그 긴장감은, 극장이 가진 영원한 매력이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고 연극을 보러 올 관객에게, 혹은 영화를 모르고 연극을 볼 관객에게 각각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말 좋은 작품을 보면 여러 방면으로 즐기고 싶게 마련이다. 등장한 배우가 나온 다른 작품을 찾아본다거나, 영화 리뷰 영상을 보기도 하고 원작이 있다면 읽기도 하고. 한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보는 것은, 관객을 풍성하게 하는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연극을 재밌게 본 관객이 영화도 관람하고, 이 인터뷰도 찾아 읽어보고 있길 바란다. 부디 영화를 보고 온 관객들에게는 원작과의 비교가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각각의 장르는 그 자체로 온전히 완성된 이야기니, 메시지에 대한 유용한 관점을 추가하는 데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허서현 기자 사진 프로젝트그룹일다

 

손상규(1978~) 창작집단 ‘양손프로젝트’ 멤버로 배우이자 작가, 연출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 방식을 이어왔다. 2017년 동아연극상 유인촌신인연기상을 받은 바 있으며, 최근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오셀로’ ‘벚꽃동산’ 등에 출연했다.

 

Performance information

연극 ‘타인의 삶’

11월 27일~2025년 1월 19일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

원작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각색·연출 손상규/

윤나무·이동휘(비즐러 역), 정승길·김준한(드라이만 역), 최희서(크리스타 역) 외

 


 

03 장르별 융합 ➋ 영화가 된 뮤지컬

 

뮤지컬 영화 ‘위키드’

11. 20 개봉 감독 존 M. 추

출연 신시아 이리보, 아리아나 그란데, 양자경 외

 

생각이 달라도, 같은 ‘선’을 추구할 수 있다

 

“뭔가가 달라졌어. 내 안의 무언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들어본 사람은 없는 넘버 ‘중력을 벗어나(Defying Gravity)’는 2003년 10월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후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뮤지컬 ‘위키드’의 1막을 장식하는 넘버다. 도시에 감춰졌던 진실을 알게 된 후, 내면의 인식 세계가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가사로 운을 떼, 앞선 모든 과거와 뒤에 따라올 미래를 분리해 내는 노래. 극의 두 주연이었던 엘파바와 글린다 역시 이 노래를 기점으로 서로의 행복을 기원하며 갈라서고, 엘파바는 자신이 진실이라 믿었던 허황을 등지며 ‘서쪽 마녀’로 거듭나게 된다.

뮤지컬 ‘위키드’는 라이먼 프랭크 바움의 1900년 소설 ‘오즈의 마법사’와 빅터 플레밍 감독의 1939년 영화 ‘오즈의 마법사’,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1995년 소설 ‘위키드’의 요소를 모두 담아 극작가 위니 홀츠만이 완성한 작품이다. 작품의 시간 배경은 도로시가 캔자스에서 허리케인을 만나기 전이니, ‘오즈의 마법사’의 프리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뮤지컬이 참고한 작품이 많기에 이야기 속 모든 요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사전 지식이 많지만, 두 인물의 우정을 다룬 서사가 주 내용이라 원작을 잘 몰라도 내용 이해에 무리는 없다. 그리고 이 뮤지컬이 영화 ‘위키드’로 제작되어 11월 20일 국내 최초 개봉을 시작으로 전 세계 극장을 방문한다.

용기·우정·화해·사랑을 모두 담기 위해

앞선 ‘중력을 벗어나’ 넘버가 가진 전환의 효과가 얼마나 거대한지! 영화 ‘위키드’는 이 의미 가득한 전환을 중심으로 영화를 둘로 나누었다. 즉, 뮤지컬 1막의 내용은 이달 개봉하는 1편에, 2막의 내용은 내년 11월에 개봉하는 2편에 담길 예정. 이 뮤지컬의 음악을 작곡하고 영화에서도 음악을 담당한 작곡가 스티븐 슈워츠는 “‘중력을 벗어나’는 커튼을 내리기 위해 만들어진 음악이고, 이는 영화마저 거스를 수가 없었다”고 영화를 두 편으로 나눈 이유를 설명했다. 관객 역시 깨달음을 얻은 후 인물이 변화하는 시간적 흐름을 후속편을 기다릴 현실의 1년으로 느낄 수 있으니, 영리한 방안이다. 첫 영화가 흥행해야 한다는 부담만 빼면 말이다.

한편으론, 뮤지컬 2막을 후속작으로 살짝 밀어둔 것에 다행과 기대를 느낀다. 뮤지컬 ‘위키드’는 국내에서도 한 차례 오리지널 내한 공연(2012)과 세 번의 라이선스 공연(2013·2016·2021)이 성사될 정도의 인기작이지만, 2막이 가지고 있는 급격한 전개와 아쉬운 결말은 뮤지컬 ‘위키드’에 꾸준히 제시되는 문제점이었다. 1막에서 은유로 표현한 소수자 혐오, 인종차별, 외모 지상주의 등은 2막에서 말끔하게 타파되지 못하고, 이를 위해 싸웠던 엘파바는 사악한 마녀로 낙인찍혀, 사랑을 잃고, 다시는 친구를 만나지 못하게 되니 말이다. 자신에게 한계는 없다던 1막의 메시지를 묵살하는 2막의 전개는 기껏 고양된 관객의 열정마저 섭섭하게 만든다.

그러니 만약 영화가 적극적으로 뮤지컬을 각색하여 2막의 서사를 보강한다면, 영화 ‘위키드’는 갖가지 혐오와 소통의 단절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이야기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 다른 성격, 외모, 사상을 가진 두 주인공 엘파바와 글린다도 마침 다양한 양극화가 더욱 거세진 현시대에 필요한 인물들이다. 뮤지컬 ‘위키드’에서 두 인물은 같은 부조리를 깨달았을 때, 한 명은 체제 전복, 다른 한 명은 체제 순응이라는 정반대의 선택을 보인다. 그러나 극의 마지막에 둘은 ‘영원한 우정’을 기약한다는 점에서 너무나 다른 이들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동행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배울 수 있다. 이 동행이 ‘너로 인하여(For good)’ 가능했다는 응원의 노래와 함께 말이다.

이의정 기자

 

Focus

오리지널을 변화시키는 스크린의 ‘힘’

영화 ‘위키드’의 감독 존 M. 추

 

존 M. 추 ©ryan Dale_BuzzFeed

영화 ‘위키드’의 1편과 2편은 모두 동양계 미국인 영화감독 존 추(1979~)가 메가폰을 잡았다. 그가 지금까지 감독한 영화 목록에는 ‘스텝 업’(2008·2010)과 ‘나우 유 씨 미2’(2016),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2018)이 있는데, 이러한 커리어 이후에 ‘위키드’를 맡게 됐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군무와 독무를 위한 ‘스텝 업’의 카메라 동선, 마법 같은 마술을 위한 ‘나우 유 씨 미’의 긴장감 있는 롱 테이크, 거대한 도시와 막대한 부를 전달하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연출까지 ‘위키드’에 필요한 모든 장면을 그는 이미 선보인 바 있다.

나아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할리우드에서 보기 드문 오직 아시안계 배우들로만 이루어진 영화였는데,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3주 연속 1위라는 큰 흥행을 달성하며 북미에 ‘아시안 돌풍’을 일으켰다. 이 영화에서 조연을 맡았던 양자경 역시 마찬가지로 아시안계 배우가 주역으로 등장하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통해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말레이시아인 최초 아카데미 수상, 아시아인 최초 여우주연상 수상을 달성했으니 존 추 감독의 나비효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양자경은 영화 ‘위키드’에서도 마담 모블린 역으로 출연한다.

“주방의 뒤쪽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제 영웅이었습니다.” 존 추 감독은 레스토랑 노동자였던 미국 이민자 아버지를 떠올리며 본인의 삶에서 중요한 인물이 어디에 위치해 왔는지 이야기했다. 영화 ‘위키드’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 ‘백인’과 ‘서양’이라는 주류에서 벗어났던 인물을 주연으로 택한 것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주류를 벗어난 주인공이 등장한다. 존 추가 잘 빚어낸 이 인물이 우리 사회 문제의 중압감을 벗는, ‘중력을 벗어나’는 완결에 다다르기를 기대해 본다.

 


 

04 예술을 소재로 한 영화

 

예술을 소재로 한 영화

클래식 음악부터 대중음악, 연극과 미술까지. 올 한 해 극장과 OTT에서 개봉한 예술을 다룬 영화들을 주제별로 모았다.

거실이든, 극장이든 어디든 좋다. 깊어가는 가을, 영화와 함께 예술에 한걸음 다가가 보는 보는 건 어떨까?

 

 

음악가의 아내들

초상화 속 유명 예술가의 아내. 그들은 그릇된 관계에서 탄생한 희생자들일까?

 

차이콥스키의 아내 5.1

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출연 알리오나 미하일로바, 오딘 런드 바이런

동성애자인 차이콥스키의 옆에서, 그의 유일한 아내로 살아간 안토니나 밀류코바(알리오나 미하일로바 분)는 실존 인물이다. 자신을 비참하게 한 이 남성을 먼저 사랑한 것은 안토니나였다. 영화는 이 여성의 사랑에 주목한다. 그 사랑은 감독의 영화 어법에 의해 과장된다. 제정 말 러시아의 각박한 시대상 속에서, 안토니나는 ‘욕망을 가진 한 명의 사람’이었기에 광기에 다다르게 된다. 차이콥스키의 성적 지향성과 천재성보다는, 그의 음악을 알아보고 동경할 줄만 알았던 안토니나의 짓밟힌 삶이 선명하게 부각된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우리나라에서 배우 유태오가 출연한 ‘레토’(2018)로 알려져 있다. ‘레토’ 또한 러시아의 레닌그라드 시절,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록스타 빅토르 최를 다룬 음악가 실화 기반의 영화다.

감독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 속에 있는 예술가의 이미지보다는, 주변의 인물과 관계를 통한 이야기를 그려낸다. 특히 ‘차이콥스키의 아내’는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장면이 다수 배치된다. 심지어 안토니나가 미쳐가는 과정을 마치 무용 공연처럼 극적으로 그려냈다. 그의 낯선 연출 방식은 예술가를 입체적으로 이해해 보고자 영화를 선택한 관객에게 미장센에 대한 만족감까지 선사한다.

 

프리실라 6.19

감독 소피아 코폴라

출연 케일리 스패니, 제이콥 엘로디

2년 전 개봉한 영화 ‘엘비스’가 그의 음악적 매력을 재현했다면, 엘비스의 아내를 제목으로 한 ‘프리실라’에서 엘비스의 노래 장면은 단지 뒷모습으로만 등장할 뿐이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마리 앙투아네트’를 만든 감독 소피아 코폴라는 이렇듯 철저히 프리실라(케일리 스패니 분)의 시선을 따라간다.

이 영화는 실제 프리실라의 자서전 ‘엘비스와 나’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엘비스(1935~1977)와 프리실라(1945~)가 남긴 유명한 사진들은 영화 속에 그대로 고증되어 등장해 이를 비교해 가며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영화는 프리실라와 엘비스의 만남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열 살도 넘게 차이가 나는 엘비스와 사랑에 빠졌고, 미성년자일 때부터 엘비스의 집에서 살게 된다. 평범한 소녀에서 모든 여성이 꿈꾸는 남성의 아내가 되었지만, 엘비스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녀를 통제했다.

영화는 애써 프리실라에게 새로운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 실제와 똑같이, 그녀는 그 속에서 저항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 사건 자체가 아닌, 그로 인해 프리실라가 겪었을 긴 고독과 허무를 묵묵히 그려낸다. 그렇기에 영화의 마지막, 홀로 운전하며 독립을 다짐하는 프리실라를 더욱 또렷이 남기며 마무리된다.

허서현 기자

 

 

예술에 도전하는 여성들

예술가들의 아름다운 성장 과정.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장면은 덤!

 

라이즈 1.17

감독 세드릭 클라피쉬

출연 마리옹 바르보, 메디 바키, 프랑수아 시빌 외

발레리나 엘리즈의 삶은 탄탄대로다. 어린 시절부터 발레에 매진해 파리 오페라 발레에 입단했고, 26세의 젊은 나이에 ‘라 바야데르’의 주연으로 발탁됐다. 그러나 공연 직전 남자 친구의 바람을 목격하고, 무대 위에서는 발목을 접질리고 만다. 그의 부상은 생각보다 더 심각해서 발레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

삶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불안감, 발레를 접어야 한다는 좌절을 안고 브르타뉴로 떠난 엘리즈는 그곳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나며 더 큰 세상을 마주한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현대무용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영화 초반의 발레 장면과 후반의 현대무용 장면은 엘리즈의 변화와 발돋움을 더욱 깊이 있게 전달한다. 무엇보다 주인공 엘리즈를 연기한 마리옹 바르부(1991~)는 파리 오페라 발레 프르미에 당쇠즈(제1무용수) 출신으로, 그의 유려한 몸짓이 영화 감상을 더욱 즐겁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시련을 겪으며 성장한다는 영화의 메시지는 새로운 시작을 앞둔 이들에게 큰 용기가 된다.

 

디베르티멘토 8.7

감독 마리카스티유 망시옹샤르

출연 울라야 아마라, 리나 엘아라비, 닐스 아르스트럽 외

1995년, 파리의 교외. 이민 가정의 한 소녀가 지휘자를 꿈꾸며 파리의 명문 음악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것은 이민자와 여성을 향한 차별이다.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그는 이런 사회적 편견에 굴하지 않고, 모두가 잠든 밤에도 랜턴을 켜 악보를 펼치며 공부를 이어간다. 그리고 1998년, 성별·출신·인종에 구애받지 않는 다양한 단원으로 구성된 자신만의 악단 ‘디베르티멘토’를 창단한다.

지휘자 자히아 지우아니(1978~)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가 더욱 감동적인 이유는 그의 이야기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자히아 지우아니는 2024년 파리 올림픽 폐막 공연에 올랐을 뿐 아니라, 1998년에 설립한 디베르티멘토 오케스트라(Orchestre Divertimento)를 통해 매년 2만 명이 넘는 청년들에게 음악을 전하고 있다. 영화는 자히아 지우아니의 활약을 바라보며, 주인공이 어떤 도전을 마주하고 어떻게 현실로 이뤄낼지 기대하게 한다. 지휘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만큼, 영화의 중요한 장면마다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 라벨의 ‘볼레로’, 프로코피예프의 ‘기사의 춤’, 생상스의 ‘바카날’ 등 대중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을 오케스트라 연주로 감상할 수 있다.

김강민 기자

 

 

실존한 그들의 삶을 돌아보다

남다른 시각과 기법으로 그린 유명 예술가의 삶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2023.9.2

감독 브래들리 쿠퍼

출연 브래들리 쿠퍼, 케리 멀리건 외

작년 겨울 클래식 음악계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은 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의 생애를 다룬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그가 이룬 음악적 성취가 아닌 그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인간’ 번스타인이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의 흐름도 그의 아내인 펠리시아 몬테알레그레(1922~1978)와의 만남부터 그녀가 사망하는 때까지를 다룬다. 영화 초반의 장면이 흑백으로 진행되어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도 든다. 말러의 교향곡을 비롯해 영화에 삽입된 여러 음악은 야닉 네제 세겡(지휘)과 런던 심포니가 담당했다. 사운드트랙(DG)에는 영화 속 대사가 섞여 있어, 영화를 감상한 뒤 사운드트랙만 감상하여도 영화의 장면이 흐르게 된다.

 

러빙 빈센트 9.5(재개봉)

감독 도로타 코비엘라·휴 웰치먼

출연 로베르트 굴라직 외

2017년 개봉했던 ‘러빙 빈센트’가 올해 9월 재개봉으로 돌아왔다. 영화는 고흐(1853~1890)의 자살에 의문을 품어, 그의 죽음을 추적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첫 개봉 당시 화제가 된 점은 줄거리보다 제작 기법이었다. 125명의 화가가 고흐의 화풍에 따라 65,000장의 유화를 그려 95분의 애니메이션으로 완성했으며, 이를 모두 그려내는 데는 10년이 걸렸다. 영화 제작이 조금만 늦게 시작됐더라면 그 방식은 전혀 다르게 이루어졌을지 모른다.

고흐처럼 고유한 화풍을 가진 화가는 최근 생성되는 그림 AI의 좋은 참고 자료이며, 실제로 사진이나 그림을 고흐의 화풍으로 바꾸어 주는 AI와 사진 필터는 오늘날 손쉽게 찾을 수 있다. ‘대 AI 시대’에 다시 마주하는 아날로그 애니메이션이 주는 운치만으로도, 지금 감상할 가치가 있는 작품.

 

스텔라 5.22

감독 킬리언 리트호프

출연 파울라 비어·야니스 니뵈너 외

앞선 두 작품이 역사에 길이 남을 거장의 전기 영화라면, ‘스텔라’는 전혀 다른 항목에 분류될 전기 영화이다. 지휘자이자 작곡가로 활동한 아버지, 가수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재즈 가수를 꿈꿨던 그의 모습이 영화의 초반에 담겨 있기에, 예술을 소재로 한 이번 특집에서 함께 소개해본다. 스텔라 골트슐락(1922~1994)은 나치에 협력했던 유대인으로, 베를린에 숨어 살고 있는 유대인을 게슈타포에 밀고하는 일을 했다. 그를 통해 잡힌 유대인은 600~3,000명으로 추산되는데, 수치의 범위가 넓다는 점에서 그의 범죄가 비교적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나치는 스텔라에게 협력하지 않으면 그의 부모님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겠다며 협박했고, 이는 스텔라가 범죄를 시작한 이유가 된다. 나치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그의 부모님은 물론 남편까지 종국에는 수용소로 끌려가 사망했다.

이의정 기자

 

 

땅이 머금은 역사

잘 몰랐던 예술과 역사가 스며든 땅 위의 여성들

 

땅에 쓰는 시 4.17

감독 정다운

출연 정영선

선유도 공원, 예술의전당, 광릉수목원,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제주 오설록 티뮤지엄…. 정영선(1942~)의 손길이 닿은 곳은 평범한 장소도 치유의 공간으로 거듭난다. “조경은 땅에 쓰는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고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라고 말하는 한국 1세대 조경가 정영선의 공간과 땅을 향한 진심이 담긴 다큐멘터리다. 정영선은 올해 4월부터 9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라는 전시를 선보이기도 했다.

다큐멘터리는 선유도 공원 곳곳을 즐겁게 뛰어다니는 아이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아이의 웃음 소리는 공원이 단순한 공공시설을 넘어, 어린이들에게도 특별한 놀이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에는 정영선이 매만진 아름다운 공간들이 영상으로 고스란히 담겼다. 그가 직접 밝히는 의도와 전문가들의 해설이 더해진 장면들을 통해 무심코 지나쳤던 조경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있는지 깨닫고,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재현해 낸 그의 상상력에 감탄하게 된다.

정영선은 자신을 ‘연결사’라고 표현한다. 그에게 조경은 자연과 삶의 터전을 연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든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직접 색연필로 설계도를 그리고, 어린 손주에게 꽃과 풀을 가르치는 모습에서 조경을 향한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다.

 

하와이 연가 10.30

감독 이진영

출연 리처드 용재 오닐, 김지연, 케올라 비머, 예수정

121년 하와이 이민의 역사를 한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의 아름다운 연주와 함께 살필 수 있는 다큐멘터리다. 2005년 하와이로 이주해 기자와 앵커로 활동한 이진영 감독이 잊지 말아야 할 우리 역사의 소중한 순간들을 영화에 섬세하게 담아냈다. 하와이 현지 촬영과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하와이의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이전에 공개된 적 없는 역사적 사진 자료들도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영화는 초기 미주 한인 이민사와 관련된 세 개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풀어낸다. 한인 이민사 중 중요한 사건들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그들의 발자취’, 사진 신부였던 임옥순의 실화를 바탕으로 이민 여성의 삶을 조명하는 ‘할머니의 놋그릇’, 하와이의 소록도라 불리는 칼라우파파에서 격리된 채 세상을 떠난 선조를 기리는 ‘칼라우파파의 눈물’이다. 특히 열일곱살 임옥순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할머니의 놋그릇’은 그녀의 친손자이자 유명 작가인 게리 박(1952~)이 직접 각본을 맡아 울림을 더했다. 임옥순으로 분한 배우 예수정의 연기와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의 연주가 감동을 더한다.

김강민 기자

 

 

영화의 상상력을 입다

연극과 영화로 옮겨질 정도로 궁금한 대학자들의 무의식 세계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8.21

감독 맷 브라운

출연 앤서니 홉킨스, 매튜 구드

연극 ‘라스트 세션’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연극은 하버드 대학의 정신과 교수 아맨드 니콜라이의 저서 ‘루이스 vs 프로이트’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실제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자 무신론자인 프로이트(1856~1939)와 20세기 유신론의 대표자인 C.S. 루이스(1898~1963)가 만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치관을 가진 이들의 가상 대화는 시대를 거쳐 여러 창작자에게 영감을 준 듯하다.

때문에 이 작품의 백미는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에 있다. 연극은 밀도 높은 대화의 치열함이 매력적인 2인극으로 진행된다. 미국의 소설가 톨킨부터 이탈리아의 철학자 아퀴나스, 영국의 시집 ‘실낙원’까지 이들의 대화가 넘나드는 지성의 범위는 방대하다.

영상으로 매체를 옮기며, 감독은 지적 욕구가 충만한 이 대화를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다. 영화 상영 시간 내내 2인극처럼 두 사람만 등장할 수 없으니, 플래시백 장면이 유용하게 사용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작업을 거치며 두 사람의 주장은 힘을 잃는다. 그들의 삶 또한 무신론 혹은 유신론만으로는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문제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루이스는 전쟁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영화적 상상을 추가하자, 이들의 무의식을 지배한 장면들이 무엇인지 관객은 정확하게 목도한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때문에 절대적인 가치의 선봉처럼 치부되는 두 사람도 사실은 생이라는 고통 속에서 단지 끊임없이 질문한 존재들이었을 뿐임을.

영화 속 프로이트는 앤서니 홉킨스의 명연기가 이 모든 전제를 제치고 가장 돋보인다. 앤서니 홉킨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 관람에 필요한 만족감이 채워질 정도. 연극에는 등장하지 않는 수화기 너머의 막내딸 안나 프로이트는, 영화에선 메시지를 강화하는 강력한 한 축이 된다. 심리학 박사였음에도 아버지의 그늘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한 그는 아버지와의 애착 관계로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 그가 자신의 동성 애인을 아버지에게 소개하는 것으로 영화 속 프로이트의 서사가 마무리된다.

등장인물이 늘어남에 따라 프로이트와 루이스 간에 치밀하게 쌓아 올리던 관계적 긴장감은 낮아졌지만, 인물의 인과관계와 설정을 추가하며 현실과 맞닿은 서사를 완성했다. 그들 또한 나 같았기에 고민하고 씨름했다는 메시지가, 일부의 관객에게는 지적 욕구 충족보다는 필요한 위로가 되어줄지도.

허서현 기자

 

 

20세기 팝 음악을 추억하며

세계적인 스타의 등장과 음악 시장의 형성 과정을 돌아본 전기물

 

밥 말리: 원 러브 2.14

감독 레이날도 마커스 그린

출연 킹즐리 벤어디어, 라샤나 린치 외

‘밥 말리: 원 러브’는 자메이카 출신의 레게 음악의 선두 주자이자, 대표 아티스트인 밥 말리(1945~1981)의 삶과 음악에 관해 다룬 전기 영화이다. 밥 말리의 실제 유족이 영화 제작에 참여하고 출연한 것으로도 화제를 모았고, 자메이카의 여러 아티스트가 참여하면서 밥 말리가 가진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다.

배우의 연기와 장면의 연출 역시 실존 인물과 당대의 모습을 잘 고증했다고 평가받았다. 밥 말리로 분한 킹즐리 벤어디어는 이 영화 촬영 전에는 기타 연주법도 알지 못했지만, 밥 말리의 특유의 기타 주법까지 흉내 낼 정도로 연기에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영화 속 장소는 실제 사건이 일어난 곳을 직접 찾아가 촬영한 것이 많다. 나아가 이름의 인지도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삶을 서술한 것도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밥 말리는 자메이카가 영국 연방에서 자치 독립을 이룬 1962년 이전에 탄생했고, 이로 인해 그는 얼굴도 잘 모르는 백인 아버지와 자메이카 어머니 사이에서 혼혈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은 학교도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했지만, 17세부터 작곡을 시작, 곧바로 밴드 ‘더 웨일러스’에서 활동하며 자메이카 내에서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그룹이 된다. 영국과 자메이카를 오가며 이어지는 그의 음악 활동과 시간, 아내와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그가 어떻게 평화와 사랑, 혁명의 이미지를 가지게 됐는지는 영화 속에서 확인해 보자.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 5.1

감독 안톤 코르빈

출연 폴 매카트니, 노엘 갤러거, 데이비드 길모어 외

런던에 본거지를 둔 디자인 회사 ‘힙노시스’는 1968년부터 1983년까지 존재했던 회사로, 20세기 전 세계 가요계를 이끌었던 아티스트의 LP 커버 디자인을 담당했다.

핑크 플로이드·레드 제플린·AC/DC·폴 매카트니 등이 이들과 함께했다.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은 이 여러 커버를 살피며 20세기에 어떻게 그렇게 혁신적인 사진을 촬영하고 디자인할 수 있었는지 설명하는 다큐멘터리다. 힙노시스의 창립자들을 비롯하여,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 핑크 플로이드의 데이비드 길모어와 로저 워터스 등이 등장하여 그들에게 ‘힙노시스’의 디자인이 어떤 의미였는지 설명한다.

다큐멘터리 속의 인터뷰는 모두 흑백으로 촬영됐는데, 이는 흑백으로 찍힌 과거 사진과 조화를 고려한 것. 인터뷰는 가수들이 당시 어떤 이미지가 필요했는지 설명하면, 제작자들이 이를 위해 활용했던 아이디어와 참여한 화가들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끝에 등장하는 최종 완성물. 추상적인 설명 끝에 구체적인 실체를 마주하는 감각적인 편집은 당시 아티스트가 느꼈을 짜릿함을 전달하는 듯하다. 게다가 음악을 다루는 영화이기에 재미있는 음향효과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이의정 기자

 

 

한폭의 그림이 된 삶

미술가들의 세계를 담은 9편의 영화도 릴레이 개봉 중이다!

 

라파엘로. 예술의 군주 5.29

감독 루카 비오토

출연 플라비오 파렌티, 엔리코 코베르소 외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함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불리는 라파엘로 산치오 다 우르비노(1483~1520)의 예술세계를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다.

라파엘로의 서거 5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만큼, 바티칸 박물관의 ‘라파엘로의 방’과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바티칸 시국 사도 궁전 내부의 ‘라파엘로의 로지아’ 등을 독점 촬영해 선보였다.

영화는 라파엘로의 어린 시절부터 화가로서 삶의 정점을 찍은 로마에서의 영광스러운 시기까지, 미술사가들의 논평과 재현을 통해 그의 행적을 되짚어 내려간다. 라파엘로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아테네 학당’은 바티칸 사도 궁전 내부, 교황의 개인 서재인 ‘서명의 방’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프레스코화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부터 르네상스에 이르는 주요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 묘사되어 있다. 가로 7.7m, 세로 5m의 초대형 프레스코화를 스크린에 담아, 작품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는 초대형 영상 도록의 역할을 한다.

 

보티첼리. 피렌체와 메디치 4.24

감독 마르코 피아니자니

출연 에밀리오 푸조니, 케이트 브라이언트 외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1445~1510)의 대표작인 ‘봄’과 ‘비너스의 탄생’을 중심으로 그의 예술세계를 다룬다.

본명은 알레산드로 디 마리아노 필리페피지만, ‘작은 술통’이라는 뜻을 지닌 보티첼리라는 이름으로 익히 알려진 그는 르네상스가 태동한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으며 역사, 신화, 종교, 인물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로렌초 데 메디치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예술과 권력의 긴밀한 관계는 당시 경제, 정치, 사회 전반에 뿌리내렸으며, 이는 회화와 프레스코화, 궁전, 성당 등의 미술 작품으로 도드라졌다. 일례로 보티첼리의 ‘동방박사의 경배’ 속 세 명의 동방박사의 얼굴은 실제 메디치 가문 사람들의 초상화로, 이는 당시 메디치 가문의 지위를 확인시켜 주는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영화는 메디치 가문을 둘러싼 권력 암투 등 역사적 순간을 재현해 이해도를 높이고, 평론가와 미술사가들의 해석을 더해 그의 예술세계를 조명한다. 더욱이 4K 영상으로 작품의 부분을 클로즈업해, 마치 보티첼리의 작품들이 전시된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에 온 듯 생생한 감동을 선사한다.

 

제프 쿤스. 그 은밀한 초상 7.31

감독 파피 코르시카토

출연 제프 쿤스, 스텔라 맥카트니 외

‘풍선 개’로 널리 알려진 제프 쿤스(1955~)의 또 다른 작품 ‘풍선 꽃’의 경매가는 무려 300억 원이다. 현존하는 예술가 중 가장 비싼 예술 작품을 보유한 제프 쿤스는 지극히 평범한 대상을 주제로, 매끈한 표면의 스테인리스 스틸 풍선 등의 작품을 제작하는 미국의 설치 미술가다. 대표작인 ‘랍스터’ 역시 알루미늄 소재의 금속 재질로 이뤄져 있으며, 가재의 수염은 살바도르 달리의 수염을 상징한 것이다. 이렇듯 대중적이면서도 독특한 그의 작품은 자신을 현시대 가장 인기 있고, 논란이 많은 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영화는 ‘은밀한 초상’이라는 제목처럼, 인간·예술가·브랜드로서의 제프 쿤스 뒤 숨겨진 면모를 기록한다. 더불어, 지금의 제프 쿤스를 있게 한 그의 가족사를 다루며 위인(偉人)이 된 범인(凡人)의 스토리를 펼쳐 보인다. 논란의 중심에 선 예술가이자 기인(奇人)의 삶이 궁금하다면, 카메라 앞에서 직접 전하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뭉크. 사랑, 영혼, 그리고 뱀파이어 여인 8.28

감독 미켈레 말리

출연 잉그리드 볼소 베르달 외

‘절규’의 화가로 잘 알려진 노르웨이 출신의 에드바르 뭉크(1863~1944)는 유년 시절 경험한 질병과 광기, 죽음의 형상들을 왜곡된 형태와 격렬한 색채에 담아 표현했다. 영화는 노르웨이의 대자연과 근대화의 소용돌이, 첫사랑의 실연과 여성 편력 등 그의 캔버스 위에 얹어진 강렬한 색채와 거친 표현만큼이나 파란만장했던 뭉크의 삶을 그린다.

그뿐만 아니라,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1849 ~1912), 한스 예거(1854~1916) 등 당시 노르웨이의 보헤미안적인 지식인,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독창적인 그림 세계를 완성한 뭉크의 학술적인 면도 엿볼 수 있다. 노르웨이 출신의 배우 잉그리드 볼소 베르달의 내레이션과 환상 속 동화 같은 연출은 당시 뭉크가 느꼈을 혼란스러운 감정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홍예원 기자

위 9편의 영화가 담긴 ‘세기의 천재 미술가, 세계의 미술관’ 시리즈는 오는 12월까지 이어지며, ‘프리다. 삶이여, 영원하라’(10월 중), ‘보로미니와 베르니니. 완벽을 위한 경쟁’(11월 중), ‘성 베드로 대성당과 로마의 교황청 대성당들’(12월 중)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애니메이션 속 청춘의 한 장면

10대 소년·소녀들의 밴드 결성! 예술 속 성장기를 담은 영화

 

블루 자이언트 10.18(재개봉)

감독 타치카와 유즈루

출연 야마다 유키, 마미야 쇼타로, 오카야마 아마네 외

지난해 제19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폐막작으로 초청되어 국내 재즈 팬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블루 자이언트’가 1년 만에 재개봉 소식을 알렸다.

이시즈카 신이치(1971~)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재즈로 세계 최고가 되겠다”며 강가에서 홀로 색소폰을 부는 고등학생 다이와, 재즈 클럽에서 우연히 만난 천재 피아니스트 유키노리, 그리고 다이의 고등학교 동창인 초보 드러머 슌지가 모여 결성한 밴드 ‘JASS 재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들의 목표는 스무 살이 되기 전, 최고의 재즈 클럽인 ‘쏘블루’ 무대에 서는 것. 불꽃은 파랗게 타오를 때 가장 뜨겁다. 재즈에 대한 집념으로 가득한 이들의 치열한 연주를 따라가다 보면, 잊고 살았던 뜨거운 열정이 가슴 속에 불타오르는 것을 느끼게 된다.

‘블루 자이언트’는 재즈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라이브 연주과 음악에 특별히 공을 들였다.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우에하라 히로미가 직접 OST의 작곡 및 연주를 맡아 만화 속 재즈를 실제 음악으로 구현해 냈다. ‘감정의 음악, 재즈’의 매력과 청춘의 열정을 느껴보고 싶다면 올가을, 가까운 극장(가능하다면, 전문 음향 시설을 갖춘 극장)을 방문해 보자.

 

너의 색 10.12

감독 야마다 나오코

출연 스즈카와 사유, 타카이시 아카리, 키도 타이세이, 아라가키 유이 외

다시 오지 않을 학창 시절, 그 풋풋하고 청량한 감성을 음악과 함께 담았다. ‘목소리의 형태’의 야마다 나오코 감독과 ‘고양이의 보은’ 각본가로 알려진 요시다 레이코가 신작 ‘너의 색’으로 돌아왔다.

영화는 사람의 감정을 색으로 느끼는 토츠코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름다운 색을 지닌 같은 반 친구 키미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여기에 작은 중고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루이가 합세하며 이들은 ‘밴드’라는 하나의 공동체로 묶인다. 남들과 다른 것을 보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토츠코, 학교를 그만둔 사실을 할머니에게 말하지 못하는 키미, 음악을 좋아하지만 부모에게 꿈을 털어놓을 수 없는 루이까지. 영화는 각기 다른 고민과 색을 지닌 세 친구가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다채로운 음악과 색채를 통해 따듯하게 그려낸다. 올해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국내에 첫선을 보인 작품은 개봉 전 상영회에서 매진을 기록하며 이목을 끌었다.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GV(Guest Visit)를 통해 “색과 소리, 대사의 레이어를 겹겹이 쌓아 표현할 수 있는 장르가 애니메이션이다. 이러한 ‘색’과 ‘소리’로 감수성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작품을 제작해 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각각의 색이 등장할 때마다 흐르는 OST의 제목은 10진법의 RGB 코드로 구성되어 있어, 각 코드값의 색을 확인해 보는 것도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색다른 재미 요소가 될 것이다.

홍예원 기자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