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자, 나의 삶, 나의 숙명 오페라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11월 18일 9:00 오전

음악이 내게로 온 순간_10

음악가들이 알려주는 ‘추억의 플레이리스트’

 

메조소프라노 강화자

나의 삶, 나의 숙명 오페라

 

 

강화자 숙명여대와 맨해튼 음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0년 김자경오페라단 ‘아이다’의 암네리스 역으로 데뷔한 이래 국립오페라단에서 활동하고, 김자경오페라단의 단장을 지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오페라 연출가로서 ‘마술피리’ ‘카르멘’ ‘라 트라비아타’ 등을 연출했다. 현재 베세토오페라단 단장 및 예술총감독이다.

 

소녀의 노래

#슈베르트 #‘아베 마리아’ #어린 시절

마리안 앤더슨(콘트랄토), 코스티 베하넨(피아노)

감상 포인트

어린 소녀의 기도 같은, 경건하면서도 간절한 선율의 노래

 

고등학교 시절, 음악 선생님에게 음대 진학을 권유받고 이탈리아 가곡, 독일 가곡, 한국 가곡, 흑인 영가 등을 연습하며 아름다운 선율에 눈물을 흘렸던 기억은 지금까지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를 독일어로 외워 부르다가 가사가 뒤엉켜 진땀을 흘렸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콘트랄토 마리안 앤더슨(1897~1993)의 음성으로 처음 ‘아베 마리아’를 듣고 느낀 전율은 오랫동안 그의 노래에 빠져들게 했습니다.

마리안 앤더슨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신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서 노래한 20세기 최고의 콘트랄토입니다.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그녀의 목소리를 두고 ‘백 년에 한 번 나올 만한 목소리’라고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깊고 풍부한 중저음의 음성과 영혼을 파고드는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아베 마리아’의 가사는 우리의 기도를 연상케 하는 매우 간절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베 마리아 성모여. 방황하는 내 마음 그대 앞에 꿇어앉아 기도하오니 들어주소서. 어린 소녀의 기도를 성모여 돌보아 주소서.’ 경건하면서도 간절한 선율의 이 노래는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애창되고 있습니다.

 

메트 오페라 극장에서 키운 꿈

#비제 #오페라 ‘카르멘’ 중 ‘꽃노래’ #연출가의 꿈

루치아노 파바로티(테너), 레오네 마지에라/빈 폴크스오퍼 오케스트라

감상 포인트

파바로티의 밝고 특유한 발성으로 듣는 카르멘에게 바치는 아리아

 

맨해튼 음대 근처에 위치한 메트 오페라 극장은 제게 친절한 선생님이자 공부방이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서너 번 학교에서 제공하는 티켓으로 공연을 보고, 티켓이 없는 날에는 무대가 바로 내려다 보이는 6층의 ‘스코어 데스크 좌석’ 티켓을 구입해 책을 펼쳐놓고 공부하곤 했습니다.

지휘자의 표정부터 무대 위 성악가들의 표정, 동선 등이 모두 내려다 보이는 그곳이야말로 메트 오페라 극장의 명당이었지요.

‘토스카’ ‘카르멘’ ‘삼손과 델릴라’ ‘돈 카를로’ ‘사랑의 묘약’ ‘마술피리’ 등 얼마나 많은 오페라 스코어를 공부했던지! 그렇게 자연스럽게 오페라에 대한 지식을 쌓았고, 제 안에서 오페라 연출가의 꿈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 1983년 서울오페라단의 ‘마술피리’ 연출을 맡으며 국내 첫 여성 오페라 연출가라는 꿈을 이뤘습니다.

맨해튼 음대 재학 당시 메트 오페라 극장에서 본 ‘카르멘’은 저를 완전히 매료시켰습니다. 특히, 메조소프라노 옐레나 오브라초바가 연기한 깊은 울림의 카르멘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여러 아리아 중 루치아노 파바로티(1935~2007)가 부른 카르멘에게 바치는 ‘꽃노래(La fleure que tu m’avais jetée)’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파바로티는 1968년 메트 오페라에 데뷔 후, 많은 오페라와 가곡, 오라토리오에서 밝고 특유한 발성과 음악성으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영원불멸의 테너입니다.

시대가 변하며 무대 장치와 연출의 기법도 새롭게 변화하고 있지만, 제가 처음 보았던 오페라 작품이자, 유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선사해 준 ‘카르멘’의 아리아를 여러분께 추천해 드립니다.

 

디바의 아리아

#생상스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 중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유학 시절

셜리 버렛(메조소프라노)

감상 포인트

짙은 우수에 찬 셜리 버렛의 풍부한 음색으로 듣는 델릴라의 아리아

 

그토록 바라던 오페라 데뷔 무대가 제게 찾아왔습니다. 독학으로 숙명여대에 입학한 뒤, 1970년 김자경오페라단의 ‘아이다’에서 암네리스 역을 맡게 된 것이었죠. 당시 연출을 맡았던 오현명(1924~2009) 선생님과 김자경(1917~1999)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아 5일의 공연 중 두 차례 무대에 오르며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치렀습니다. 이후,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와 ‘춘희’(‘라 트라비아타’는 당시 이 명칭으로 불렸다) 공연을 마치고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맨해튼 음대에서 공부하며, 장학금 외에도 근로장학생으로서 음악 도서실의 손상된 레코드의 겉표지를 스카치테이프로 복구하는 일을 했습니다. 세계적인 대가들의 음반을 들으며 공부할 수 있었으니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었지요. 그중 가장 닮고 싶은 가수는 아프리카계 디바 셜리 버렛(1931~2010)이었습니다. 미국 뉴올리언스 출신의 셜리 버렛은 짙은 우수에 찬 풍부한 음색과 깊이 있는 해석, 섬세한 감정 표현, 그리고 뛰어난 연기로 관객의 마음을 깊이 사로잡는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가 소개하고 싶은 곡은 생상스의 ‘삼손과 델릴라’ 중 델릴라의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입니다. ‘삼손과 델릴라’는 본래 오라토리오지만, 오페라의 극적인 요소와 아름다운 음악이 조화를 이루어 사랑과 유혹, 배신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명작입니다.

작품은 구약 성경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의 영웅 삼손은 여사제 델릴라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의 유혹으로 힘의 원천인 머리카락과 눈을 잃어 포로가 되지만, 다시 힘을 되찾아 팔레스타인을 무찌르는 감동적인 서사를 갖고 있습니다. 셜리 버렛의 풍부한 감성이 담긴 아리아를 통해 오페라의 감동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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