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GOING
피아니스트 김정원
건반에 그리는 반세기의 삶
소중했던 시간을 대변하는 곡으로, 음악 일기장을 들춰보다
매일 아침 9시, CBS 음악FM 라디오 ‘아름다운 당신에게’를 틀면 감미로운 목소리의 피아니스트가 흥미로운 음악들을 소개한다. 만약 당신이 피아노를 전공했거나, 그 음악에 관심이 있었다면 낯선 목소리가 아닐 것이다. 그는 수많은 무대에서, 또는 방송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울려온 연주자이기 때문이다. 목적은 순수하다. 좋아하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과 나누기 위하여.
김정원은 활동 초기부터 ‘김정원과 친구들’과 같은 공연명으로 가수 김동률, 음악가 정재일 등 음악의 다른 장르, 또는 장르의 경계에 있는 이들과 협업해 왔다. 네이버에서 진행하는 ‘V살롱콘서트’, 여타 음악 축제처럼 야외에서 감상하는 ‘달성 100대 피아노’, 최근에는 유튜브에서 ‘김가든의 클래식 붐은 와요’까지 이어진다.
당시 이런 행보를 보이는 클래식 음악가는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에, 이는 평가절하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김정원은 본인이 상처받을지언정, 이 길이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가 올라선 길은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연주 외에 방송, 인터넷 등을 통해 보다 많은 대중과 만나왔다.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걸까?
‘새로운 프로세스를 안고 음악에 혁명을 일으키자’ 같은 큰마음이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성격도 되지 못하고. 젊은 시절부터 해왔던 다양한 활동에 ‘나의 구원’이던 음악 대신 다른 욕심이 있던 순간은 없다. 그저 사람을 무척 좋아하다 보니 대중을 더 만나는 길을 걷게 됐다.
음악을 ‘나의 구원’이라 표현하는 이유는?
인생을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구원이 아닌가. 나의 삶을 지탱해 주는 두 가지를 고르자면, 그것이 음악과 사람이더라. 사람한테 받지 못하는 위로는 음악에게, 반대로 음악이 주지 못하는 위로는 사람에게 받았다.
음악과 사람이라니. 2년 넘게 진행해 온 라디오 DJ가 본인에게 잘 맞았을 것 같다.
글쎄, 살면서 라디오를 진행할 거라고 꿈에도 생각 못 했다!(웃음) 덕분에 ‘이 음악이 생계에 바쁜 이들에게도 공감의 음악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어떻게 보면 나 자신도 계속 던지던 질문의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다. 평생 클래식 음악을 듣지 않던 분이 트럭 운전 중 눈물이 시야를 가렸다는 사연, 30층 건물의 계단 청소를 하시는 분이 2시간 넘게 라디오를 감상하며 일을 하니 10층처럼 느껴졌다는 사연을 보면 이 일의 소중한 가치를 느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면 사람들이 여러 가요와 함께 자연스럽게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 ‘클래식의 대중화’가 가능할까?
그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분명 클래식 음악도 어떤 시대에는 대중음악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즐기는 장르라고 말하기 어렵다. 나는 조금 다른 양상을 기대한다. 이제는 전혀 쓸모없을 것 같던 LP도 어느 순간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그 문화를 즐겼던 사람들이 향수에 젖어서 찾는 줄 알았다. 근데 알고 보니 그 문화를 접해보지 못한 세대가 그 가치를 알아보고 찾는 것이더라. 클래식 음악도 그런 기류가 가능하지 않겠나.
어떤 이들이 클래식 음악을 찾으리라 생각하는가?
지인들과 ‘커피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와인을 담보할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어떤 향과 맛을 아는 사람에게는 비슷한 감각의 다른 장르를 소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장르의 음악이든 음악 감상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면 그 사람에게는 클래식 음악을 전파할 자신이 있다.
나를 표하는 공연
‘Dear Myself: 자화상’을 공연명으로 독주회를 준비 중이다. 40대의 마지막 시간에 자신을 돌아보고자 이 제목을 붙였다고.
50세를 맞이하기 전 인생에 마침표를 한 번 찍고 넘어가 보자는 생각이었다. 엄마, 아빠를 앉혀다 무엇을 연주해도 박수를 받던 시절부터 청춘을 지나 이제는 죽음도 어렴풋이 생각해 보는 시기까지, 폭넓게 담아보고 싶었다.
공연 첫 곡인 ‘내 마음이 허전해서’ 주제에 의한 6개의 변주곡(베토벤)은 동요 같은 선율이 특징인데,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선택했나?
공식적인 콩쿠르에서 처음 연주했던 작품이다. 그 어린 시절 연주하고 단 한 번도 연주할 일이 없던 작품인데, 이렇게 집어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또한 베토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벗어난 작품을 고르고자 했다. 베토벤이라 하면 보통 고뇌에 차 있는 심오한 작곡가를 떠올리지만, 그 역시 순수한 어린 시절 같은 작품을 가진 작곡가이다.
이후의 프로그램도 성장의 순서를 연상하여 준비한 것일까?
맞다. 다음 곡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7번 ‘폭풍’에서는 청춘의 피가 끓어오르는 이미지를 주고 싶었다. 두 곡 모두 기존 베토벤의 이미지와 비교하여 의외성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후는 베토벤과 연결 고리가 있는 리스트로 연결했다.
리스트의 작품도 의외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리스트는 초기 작품이 더 부각된 작곡가이다. 그러나 말년에 종교와 철학에 심취하여 깊이 있는 작품을 여럿 작곡했다. 초절기교 연습곡 중 11번을 먼저 연주하고, b단조 소나타로 연결된다. 연습곡 11번의 도입은 ‘초절기교’로 시작하지 않기 때문에 재미를 준다.
리스트 b단조 소나타의 경우 이전 독주회 무대에서도 연주한 경험이 많은 작품이다.
17세 때 처음 연주한 곡이다. 20대까지도 이 곡을 자주 연주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당시에는 교수님들이 이 작품이 참 어렵다고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체력이 많이 필요한 작품이란 것을 절감한다. 그러나 곡의 해석이 크게 변한 것은 아니다. 같은 시기의 작곡가인 쇼팽의 후기 작품을 연주할 때면 해석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는데, 이 작품은 전보다 감상할 때는 다른 이해가 생겨도 그것이 실질적으로 연주에 다르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이 마침표를 찍고 넘어가면 새로운 시간이 또 찾아온다. 어떤 계획을 그리고 있는가?
눈앞에 닥친 독주회 같은 단기 계획은 성실히 이행하지만, 장기 계획을 짜는 데는 영 소질이 없다.(웃음) 내년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상상이 안 되지만, 언제나처럼 이리저리 떠밀리다 보면 분명 더 성장할 수 있는 좋은 일이 생길 것이란, 맹목적인 긍정의 기대를 하고 있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크라이스클래식
김정원(1975~) 동아음악콩쿠르 1위, 뵈젠도르퍼 피아노 콩쿠르 1위에 입상했으며, 런던 심포니, 빈 심포니 등과 협연한 바 있다. DG에서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EMI에서 라흐마니노프·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등을 발매했다. 2022년부터 CBS 음악FM 라디오‘아름다운 당신에게’를 진행하고 있다
Performance information
김정원 피아노 독주회
12월 4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베토벤 6개의 변주곡 WoO70, 소나타 17번 ‘폭풍’ Op.31-2,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중 11번, 피아노 소나타 b단조 S.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