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리스트 신경식, 배움과 성장의 기록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12월 23일 9:00 오전

RISING STAR

 

비올리스트 신경식

배움과 성장의 기록

 

막스 로스탈 콩쿠르 우승까지, 촘촘히 쌓아올린 그의 시간들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의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리던 10살 소년은 공연장을 나오며 결심했다. ‘꼭 저런 비올리스트가 되리라’고. 비올라를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교육원과 서울대학교 음대를 거쳐 베를린 국립예술대학(Udk)에 입학한 그는, 요하네스 브람스 콩쿠르(2021), 안톤 루빈스타인 콩쿠르(2022)에서 우승하고, 프라하의 봄 콩쿠르(2023) 2위에 오르는 등 국제 콩쿠르 수상자 명단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지난 10월, 오랜 시간 준비한 막스 로스탈 콩쿠르 비올라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경연을 마치고 이제 막 베를린에서 서울로 돌아온 신경식을 만났다. 여느 20대 청년답게 쾌활한 말투로 근황을 전했지만, 음악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사뭇 진지한 태도로 대화를 이어갔다.

 

콩쿠르 우승을 축하합니다! 한국인 비올리스트로서 첫 우승인 만큼,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비올라 국제 콩쿠르는 다른 악기에 비해 적은 편이에요. 고등학생 때부터 막스 로스탈 콩쿠르에 나가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품고 있었으니, 약 10년 동안 이 콩쿠르를 위해 달려온 셈이네요. 베를린 국립예술대학에서 3년에 한 번 열리는 이 콩쿠르 때문에 독일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거든요. 베를린에서 공부한 지 4년이 넘었는데, 졸업을 앞둔 이 시점에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되어 더 뜻깊습니다.

콩쿠르를 준비하며 힘든 점은 없었나요?

너무 많았죠!(웃음) 이전까지는 제 성격상 늘 ‘하던 대로, 재밌게 즐기고 나오자’는 생각으로 무대에 올랐어요. 하지만, 막스 로스탈 콩쿠르 같은 경우에는 오랜 기간 준비한 대회이다 보니 아무리 노력해도 그 긴장감이 지워지지 않더라고요. 사실 콩쿠르 모집 요강을 본 이후로 하루도 편히 지낸 적이 없어요. 마치 외줄타기 서커스를 하는 기분이었죠. 그래도 긴장을 놓지 않고 준비한 덕분에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네요.

2라운드에서 폴란드 출신의 작곡가 프셰므스와브 푸야넥의 콩쿠르 위촉곡(‘Dentro’)을 연주했습니다.

이 곡은 2015년에 세상을 떠난 아르테미스 콰르텟의 비올리스트 프리드만 바이글레(1962~2015)를 추모하기 위해 작곡된 작품이에요. 연주와 함께 영문 시를 낭송해야 하는 곡이죠. 시 낭송이라니! 처음에는 무척 낯간지럽고 어색했어요. 하지만, 희생과 위로의 메시지가 담긴 시구에 집중하다 보니 점차 떨림이 잦아들었고, 되려 제가 시의 화자가 되어 그 감정에 몰입하게 되었어요. 늘 연주를 통해 관객에게 위로와 따뜻함을 전하고 싶었는데, 이번 콩쿠르 무대에서 제 진심이 전달된 것 같아요.

최근 몇 년간 여러 콩쿠르에서 꾸준히 좋은 결과를 내고 있습니다. 본인에게 콩쿠르는 어떤 의미인가요?

콩쿠르에서 경쟁을 거치며 스스로를 돌아보니, 어느 순간, 제가 좋아하는 음악보다 청중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저는 연주자이고, 관객에게 음악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잖아요. 고민 끝에 ‘관객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콩쿠르를 통해 조금씩 무대와 객석을 아우르는 음악가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물론 아직도 고민이 많아요.(웃음)

 

지금의 ‘나’를 만든 시간들

독일 유학 전, 서울대에서 보낸 시간은 그의 음악적 감수성을 한층 풍부하게 했다. 음악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들, 함께 연주하며 아낌없는 조언을 전하는 교수님. 이들은 그가 앞으로 나아갈 길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서울대에서 최은식 교수를 사사했습니다. 스승과의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나요?

콩쿠르 본선에서 연주했던 버르토크의 비올라 협주곡 Sz.120을 최은식 교수님께 배웠어요. 당시 교내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선생님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며 작품에 대한 여러 아이디어를 얻었죠. 비올라 협주곡을 연주할 기회가 흔치 않은데, 경연 전에 본선 곡을 미리 연주해 본 경험이 콩쿠르에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솔리스트, 실내악 주자, 오케스트라 단원 등 비올리스트로서 성장할 수 있는 여러 방향이 있을 텐데요. 본인에게 가장 잘 맞는 장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세 장르 모두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실내악 연주가 제일 재미있어요. 다른 연주자들과 의견을 나누며 음악을 발전시키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제 가치관이 완전히 깨지기도 하죠. 특히, 각자의 소리가 하나의 음악으로 녹아든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제가 좋아하는 브람스의 현악 5중주 작품을 최은식 교수님과 함께 연주한 적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하나의 음악을 만드는 방법과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해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브람스를 좋아하는군요.

브람스의 작품에는 갈망하고, 사랑하지만, 결국 행복에 도달하지 못하는 감정이 담겨 있어요. 그의 음악은 항상 가슴 아린 상태로 끝이 나죠. 슈만의 작품도 그렇고요. 가슴 조이는 상태로 끝맺는, 그런 음악을 좋아해요.

앞으로 국내 관객과 만날 기회가 있을까요?

그럼요! 오는 12월, KBS 클래식FM의 ‘KBS 음악실’에서 두 차례 연주를 앞두고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꼭 연주해보고 싶었던 슈만의 ‘시인의 사랑’과 따뜻하고 멜랑콜리한 비올라의 매력이 담긴 레퍼토리들을 준비했으니, 기대해 주세요!

홍예원 기자

 

신경식(1998~)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교육원을 거쳐 서울대 음대(최은식 사사)를 졸업했다. 베를린 국립예술대학교(Udk)에서 하르트무트 로데 사사로 솔리스트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현재 동대학원 최고연주자과정에 재학 중이다. 프라하의 봄 콩쿠르에서 2위에 올랐으며, 지난 10월에 열린 막스 로스탈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ZOOM IN

International Max Rostal Competition

막스 로스탈 콩쿠르란?

막스 로스탈 콩쿠르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막스 로스탈(1905~1991)을 기리기 위해 1991년 창설됐다. 창설 당시에는 스위스 베른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 부문을 번갈아 가며 개최했지만, 2009년부터 베를린 국립예술대학으로 개최지를 옮겨 4년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부문을 동시에 개최하고 있다. 2019년 이후, 팬데믹으로 취소되었다가 올해 재개됐다. 비올라 부문의 역대 한국인 수상자로는 김사라(2015년, 2위)와 김세준(2015년, 3위)이 있으며, 바이올린 부문에는 이마리솔(2009년, 1위), 조가현(2012년, 1위), 박규민(2019년, 1위 없는 2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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