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 테이크 투,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는 노력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12월 23일 9:00 오전

PLAY GAME&MUSIC_21

게임을 듣다

 

잇 테이크 투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는 노력

 

 

어느 평범한 가정집, 어린 소녀 ‘로즈’의 아버지 ‘코디’와 어머니 ‘메이’는 서로에게 거친 말을 내뱉습니다. 창문 너머로 싸우며 부부 사이의 파국을 목격한 로즈는 불안에 휩싸였죠. 그 불안은 곧 현실이 됩니다. 어색한 분위기만 감도는 식사 시간, 둘은 로즈에게 조심스레 이혼을 예고합니다.

로즈는 태연한 척 자리를 떠나지만, 실은 큰 상실을 느낍니다. 창고로 달려가 양친을 본뜬 나무 인형을 손에 꼭 쥔 채로, 학교 근처 쓰레기통에서 주운 ‘사랑에 관한 책’을 펼쳤죠. 책에는 다음의 구절이 적혀 있습니다. “사랑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로즈는 엄마, 아빠가 다시 친해질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빌었고, 그의 눈가에선 눈물이 떨어져 손에 쥔 나무 인형에 닿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신비한 일이 벌어집니다.

기막힌 아이디어의 향연

©Hazelight Studios

긴 잠에서 깨어난 코디와 메이는 자신이 로즈의 나무 인형으로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혼란에 빠진 둘 앞에 ‘사랑에 관한 책’의 저자, ‘하킴 박사’가 등장하여 망가진 둘의 관계를 회복해 주겠노라 선언하죠. 둘은 책이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한다며 이를 뒤로 한 채, 혼자 있을 어린 로즈를 걱정합니다. 결국 코디와 메이는 로즈가 있을 집 안을 향해 창고에서 본채까지 모험을 떠나기로 합니다.

“손뼉도 부딪혀야 소리가 난다(It Takes Two)”라는 희한한 제목의 이 게임을 하려면 반드시 두 명이 함께 해야 합니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화면이 양쪽으로 분할되고, 두 명의 플레이어가 합심하여 각 스테이지를 완수해야 하죠. 꼬일 대로 꼬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두 명의 플레이어는 각각 코디와 메이가 되어 공동의 적과 시련을 한마음으로 헤쳐 나가야 합니다. 독특한 요소는 참여 인원뿐만이 아닙니다. 현실이라면 겪지 않을 수많은 일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하기 때문이죠. 창고에서 청소기와 공구함과 싸워야 한다거나, 마당에서 다람쥐와 말벌이 벌이는 처절한 전쟁에 휘말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참신한 아이디어가 폭발하는 장소는 바로 ‘로즈의 방’입니다. 아이들의 장난감이 가지각색의 콘셉트를 갖고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코끼리 인형, 공룡 모형, 장난감 성, 우주선처럼 말입니다. 온갖 장난감들이 즐비한 로즈의 방에서는 시시각각 게임 속 콘셉트 비주얼이 변화하고 심지어 게임의 장르까지 수시로 넘나듭니다.

그러나 플레이어 입장에서 아이디어의 향연은 전혀 산만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하나의 시퀀스처럼 다가옵니다. ‘잇 테이크 투’의 음악이 이 여러 순간을 연결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죠. 이 게임의 음악은 여러 스테이지 속에 파편화된 수많은 요소를 유기적으로 봉합해 줍니다. 세상의 많은 게임음악은 그저 3~4분 정도 길이의 한 곡의 재생이 끝나면 동일한 곡을 반복하는, 이른바 루프(loop)의 방식을 취합니다. 게다가 그 하나의 사운드트랙이 같은 선율을 두 번 반복하는 형식을 가졌을 때도 많죠.

그러나 ‘잇 테이크 투’의 음악은 루프를 사용하면서도 거의 끊어지지 않고, 플레이어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마다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서서히 변화합니다. 사운드트랙의 길이도 5~9분이며, 음악의 형식은 마치 교향시처럼 반복 없어 다양한 음악적 아이디어가 연속해서 등장하는 구조를 보입니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이 게임에서 마치 한 가지의 거대한 음악이 게임 전체에 흐르고 있다는 인상을 얻게 됩니다.

한 걸음씩 찾아가는 잃어버린 과거

©Hazelight Studios

음악학자 미하엘 리베는 비디오 게임과 그 음악의 관계에 대해 “게임에서 음악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그 어떠한 매체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그야말로 전례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게임과 그 음악도 그렇습니다. 계속 살펴보죠. 험난한 길을 떠나 마침내 로즈에게 도착한 코디와 메이였지만, 그들은 다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대신 하킴 박사가 나타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네 개의 스테이지를 제시하죠.

네 개의 스테이지에서 부부는 서로가 보낸 시간을 돌아보고, 과거에 서로에게 느꼈던 매력을 되찾고, 각자가 품고 있었던 꿈을 이뤄야 합니다. 그렇게 부부는 다시금 모험을 떠나 각박한 현실에서 잃어버렸던 과거를 하나씩 되찾아가죠. 그리고 이 스테이지에 게임음악만이 할 수 있는 음악적 상호작용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상대의 매력을 되찾는 ‘스노 글로브’ 스테이지를 살펴보죠. 코디와 메이가 결혼을 약속한 스키장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이 스테이지에서 둘은 얼어붙은 주민들을 깨우고 마을의 활기를 되찾아야 합니다. 이때 제작진은 한 걸음씩 주민들을 깨울 때마다 배경음악의 레이어가 점점 추가되어 음악이 점차 풍성해지는 효과를 게임에 넣었습니다. 게임의 진행도와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배경음악이 반응하여 변화하는 것이죠. 미하엘 리베가 언급한 게임이라는 매체만이 선사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닐지요.

메이가 가수라는 자신의 꿈을 돌아보는 ‘다락방’ 스테이지는 세상의 모든 음악 프로듀서와 작곡가를 위한 헌사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주크박스, 런치패드, 클래식 악기, 전자악기, 오디오 인터페이스, 사운드 믹서 등 수많은 음악 관련 장비와 더불어 블루스, 메탈, 클래식, 디스코, 테크노, EDM 등으로 작곡된 음악이 등장하죠.

게다가 이 스테이지에서 메이는 노래로 각종 퍼즐을 풀어야 합니다. 이때 메이가 부르는 노래는 배경음악과 분리되지 않고, 오히려 변하는 배경음악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선율을 그 위에 쌓습니다. 즉, 배경음악이었던 반주 위로 무궁무진한 즉흥 노래를 더하는 것이죠. 그렇게 콘서트 무대로 변한 턴테이블 위에서 메이는 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다락방’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합니다. 지금까지 여러 난관에 맞서 마음을 맞춰 온 남편 코디와의 진한 입맞춤과 함께 말이죠.

사랑을 위해서

서로의 관계를 완전히 회복한 그 순간, 부부는 원래의 몸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집 안 어디에서도 딸 로즈가 보이지 않습니다. 로즈는 코디와 메이가 이혼하는 원인이 자신이라 책망했고, 영영 둘에게서 사라지려고 했던 것이죠. 둘은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로즈에게 부리나케 달려가 아이에게 언제나 함께하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따뜻한 가족의 포옹으로 게임은 마무리되죠.

“아이에게는 엄마와 아빠, 둘 다 필요합니다(It takes two)”가 이 게임의 주제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연인, 그리고 가족의 관계에는 하킴 박사의 말처럼 사랑과 노력, 둘 다 필요합니다. 사랑이 없이는 노력도, 노력이 없이는 사랑도 이루어지기 어려울 테니까요.

 

이창성 서울대학교 작곡과 이론 전공을 졸업 후 동대학원 석사과정에서 게임과 음악의 관계에 관심을 두어 게임음악학 연구를 진행 중이다. KBS 1FM의 작가 및 PD로 근무했다.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