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
테마가 있는 추천 음반
개성의 고음악 앙상블
‘여성의 목소리’ 레 캅스베르걸
Alpha ALPHA1098
‘오페라 비바’ 라포테오제, 루시아 카이우엘라(메조소프라노)
IBS Classics IBS222024
개성 넘치는 고음악 앙상블 음반이 귀를 사로잡는다. 수백 년 전 음악이 여전히 새 영감의 샘물이 될 수 있음을, 이들이 증명한다. 단체명과 레퍼토리에는 매력적인 이들 고유의 정체성이 담겼다.
레 캅스베르걸(Les Kapsber’girls)은 2015년에 결성됐다. 17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조반니 캅스베르거(1580~1651)의 이름에 ‘걸즈(Girls)’를 붙였다. 앨리스 튜포트-페르시에(소프라노)·악셀 베르너(메조소프라노)·가랑스 보이조(비올라 다 감바)·알반 임스(류트)로, 네 젊은 여성 음악가들이다. 이번 음반은 바로크 여성 작곡가들의 레퍼토리다. 프란체스카 카치니(1587~1641), 프란체스카 캄파나(1615~1665) 등 다수의 작품을 들을 수 있다. 응집력과 재치를 갖춘 ‘소녀들’이 들려주는 이 음반에서, 바로크 음악의 참맛이 느껴진다.
라포테오제(L’apothéose)는 스페인의 대표 바로크 앙상블로 떠오르는 단체다. 로라 케사다(플루트)를 중심으로, 빅토르 마르티네스(바이올린)·카를라 산펠릭스(첼로)·아시스 마르케스(건반)가 주축 멤버이며, 2018년에 발매한 첫 음반 ‘스페인 국립도서관의 음악보물들’ 등으로 호평 받았다. 이번 음반에는 지난해 테아트르 레알에 데뷔한 메조소프라노 루시아 카우이엘라와 함께 헨델의 오페라 기악곡과 아리아를 담아냈다. ‘라포테오제’는 쿠프랭의 작품 ‘륄리에 대한 라포테오제(예찬)’에서 따왔다. 허서현
특별한 음향의 세계
표준 정지 장치
서드 코스트 퍼커션·자키르 후세인·무세키와 칭고자(타악기)/
티그랑 하마시안·제시 몽고메리·자키르 후세인·제릴리 패튼·무세키와 칭고자(작곡)
Cedille CDR 90000 236
피터 그렉슨
피터 그렉슨(첼로·신시사이저) 외
Decca 7542935
예측 못 한 음색이 예측 못 한 박자에 터져 나오는 음악은 마치 귀로 듣는 촉각 놀이 같다. 헤드셋을 착용하자. 스테레오를 통한 소리의 방향마저 리듬의 요소로 사용하는 음반들이다.
미국의 앙상블 ‘서드 코스트 퍼커션’(숀 코너스·로버트 딜런·피터 마틴·데이비드 스키드모어)은 그래미상을 받은 최초의 타악기 그룹으로 2004년부터 활동해 왔다. ‘표준 정지 장치’는 그들의 20주년 기념 음반으로 마르셀 뒤샹의 ‘세 개의 표준 정지 장치’의 작품명을 오마주 했다. 무작위로 떨어뜨린 실의 모양을 기록해 놓은 원작을 작가가 ‘우연 통조림’이라고 부른 것처럼, 타악기·인성의 즉흥 연주를 녹음하여 순간을 음반에 보관했다. 음반 속 작곡가 하마시안(1987~), 몽고메리(1981~), 후세인(1951~2024), 패튼(Jlin/1987~), 칭고자(1970~)는 모두 우리 시대 중요한 음악인이다.
첼리스트이자 작곡가인 피터 그렉슨(1987~)은 자신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첫 음반을 발매했다. 즉, 작곡가의 가장 본인다운 개성을 드러내는 작업물이다. 수록곡의 제목은 ‘구(球)’ ‘프리즘’ ‘의식’ ‘별자리’와 같이 한 단어로 적어, 청각 정보를 시각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힌트로 작용한다. 첼로의 선율은 신시사이저 위에 대조적으로 놓여 자연스럽게 흐르다가도, 신시사이저를 따라 갑자기 음을 비틀거나 전자적으로 돌변하여 재미를 준다. 이의정
푸치니 : 토스카
대니얼 하딩(지휘)/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오케스트라/
엘레오노라 부라토(토스카), 조너선 테텔먼(카바라도시), 루도빅 테지에(스카르피아) 외
DG 4866997(2CDs)
안토니오 파파노의 뒤를 이어, 2023/24 시즌부터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오케스트라의 새 음악감독으로 부임한 대니얼 하딩(1975~)의 첫 공연 실황 음반. 지난해 서거 100주년을 맞은 푸치니의 ‘토스카’를 콘서트 오페라 버전으로 올려 호평을 받았다. “지금 시대 최고의 캐스팅을 자랑하는 음반”(그라모폰)으로 인정받을 만큼 성악가 라인업이 훌륭하다. 로마에서의 새출발을 알리는 영국 지휘자의 솜씨를 엿볼 수 있는 음반.
오르프 : 카르미나 부라나
파보 예르비(지휘)/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합창단/ 막스 엠마누엘 첸치치(카운터테너), 알리나 분덜린(소프라노) 외
Alpha ALPHA1031
독일 작곡가 카를 오르프(1895~1982)의 대표작 ‘카르미나 부라나’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어린이 합창단까지 가세하는 대규모 칸타타다. 2019년부터 취리히 톤할레의 음악감독인 파보 예르비(1962~) 특유의 통솔력이 빛을 발하는 음반. 파보 예르비는 이 작품을 “중세 텍스트와 오케스트라가 합쳐져, 시간을 초월한 음악”이라고 언급했다. 취리히 톤할레 소속 합창단인 ‘취리히 징 아카데미’와 취리히 소년합창단이 음반에 참여했다.
모차르트 : 피아노 소나타 13·17번
미츠코 우치다(피아노)
MELODIYA/OBSESSION SMGAL3084
우리 시대의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를 꼽는다면 미츠코 우치다(1948~)가 견고한 영역을 차지한다. 그의 젊은 시절, 그러니까 1970년 쇼팽 콩쿠르 2위로 일본을 놀라게 하고, 1973년 하스킬 콩쿠르에서 우승한 다음 해인 1974년의 음반이 다시 발매됐다. 그 후로 미츠코 우치다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와 협주곡 전곡 음반을 여러 차례 남기는 세월을 쌓아왔다. 그 역사를 반추하며 들어보는 거장의 젊은 찰나.
브루크너: 교향곡 9번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지휘)/밤베르크 심포니
Accentus Music ACC20661(DVD), ACC10661(Blu-ray)
지휘자 블롬슈테트(1927~)의 97번째 생일이었던 2024년 7월 11일 성 플로리안 수도원 대성당 실황. 2024년은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이기도 했다. 밤베르크 심포니의 명예지휘자인 블롬슈테트는 그들과 독일에서만 200회, 해외에서 20회 이상의 공연을 함께했다. 브루크너는 현악군 배치를 왼쪽부터 제1바이올린-첼로-비올라-제2바이올린으로 두었는데, 블롬슈테트는 이를 충실히 따르는 브루크너의 수호자이다.
비발디 ‘일 바야제’
페데리코 마리아 사르델리(지휘)/ 라 페니체 극장 오케스트라/
레나토 돌치니(바야제), 소니아 프리나(타메를라노) 외/ 파비오 체레사(연출)
Dynamic 38056(2DVD), 58056(Blu-ray)
비발디의 오페라는 그의 사후 악보 대부분 소실되었다가 20세기 중반부터 발굴되기 시작했다. ‘일 바야제’는 15세기의 실존 인물인 오스만 제국의 황제 바야제(바예지드 1세)와 타타르의 황제 타메를라노(티무르)에 관한 이야기지만, 줄거리는 실제 역사와는 무관하다. 연출은 파비오 체레사가 맡았는데, 게임 ‘슈퍼마리오’의 캐릭터로 분한 연기자를 등장시키거나, 동서양은 물론 현대와 과거의 복식을 교차시켜 화려한 볼거리를 꾸몄다.
차이콥스키 ‘예브게니 오네긴’
알랭 알티놀뤼(지휘)/라 모네 심포니 오케스트라·합창단/ 스테판 드구(오네긴), 샐리 매슈스(타티아나) 외/
로랑 펠리(연출) Naxos 2110777(DVD), NBD0185V(Blu-ray)
2023년 벨기에 브뤼셀의 라 모네 극장 실황. 차이콥스키는 이 작품을 작은 공연장을 위해 썼기에 이 프로덕션 역시 무대를 매우 간소하게 꾸몄지만, 모든 성악가의 뛰어난 노래와 호연을 보여 화려함이 부족하지는 않다. 푸시킨(1799~1837) 원작의 3막 오페라로 19세기 초반 러시아의 거만한 남성 오네긴이 겪는 사랑, 우정, 결투, 후회가 담긴 이야기이다. 어리석은 남성과 아름다운 음악은 묘한 대비를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