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이경숙, 모차르트로 시작해 모차르트로 귀결하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10월 13일 9:00 오전

NEVER ENDING NOTE

 

피아니스트 이경숙

 

모차르트로 시작해 모차르트로 귀결하다

스물다섯 명의 제자들과 다시 써내려가는 ‘전곡’ 완주의 역사

 

 

“내 나이가 이제 팔십입니다. 휘어진 손가락이 세월을 말해주죠. 인생이 저물어가는 이 순간, 음악 인생의 마무리는 역시 시작한 것으로 끝내야 하지 않겠어요?”

곱디 고운 얼굴에 희고 휘어진 손가락을 눈앞에 좌악 펼쳐내며, 모차르트 프로젝트를 열심히 설명하는 이경숙의 두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팔순이라고 당신이 단단히 강조하셔도 여전히 장대한 기백 속, 음악의 열정이 묻어나온다. 하늘이 퍼렇게 시린 어느 여름날 오후, 고요한 반포심산아트홀에서 이경숙을 만났다. 제자들과 함께 이어나갈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곡 시리즈에 대해 묻자, 운을 떼는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27개의 작품, 대장정의 시작

서초문화재단(대표이사 강은경)이 상주예술단체인 서초교향악단(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배종훈)과 함께 10월부터 내년 8월까지 2년 여에 걸쳐 진행되는 프로젝트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곡(27곡) 시리즈’를 시작한다. 앞서 배종훈 지휘자와 서초교향악단이 성공적으로 선보인 ‘하이든 교향곡 전곡 시리즈’에 이은 두 번째 전곡 연주 프로젝트다. 동일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만들어가는 연속성 속에서, 이번 프로젝트에는 이경숙과 그의 제자들이 함께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음악원장과 연세대 음대 학장을 지내며 수많은 제자를 성심성의껏 길러낸 그는, ‘전곡 연주’의 개척자였다. 1987년 베토벤 협주곡 전곡을 시작으로, 1988년 국내 최초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완주했다. 이어 모차르트·프로코피예프 소나타와 차이콥스키 협주곡, 바버 등 전곡 시리즈를 이어가며 이경숙은 국내 전문 연주자 시대를 열고 동료들에게 도전의 메시지를 던졌다.

이번 무대에 서는 피아니스트는 총 25명. 12살 초등학생부터 60대 주부 등 제자들의 연령대도 다양하며, 현역 대학 강사와 교수는 물론, 육아와 가정을 병행하면서도 꾸준히 공부를 이어온 ‘엄마 피아니스트’들도 무대에 오른다. 10월 21일, 이 방대한 시리즈의 첫선을 끊는 것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연주하는 피아노계의 대모(大母) 이경숙이다.

 

제자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순수하게 제자들과 함께 연주한다는 것 자체가 뜻깊습니다. 천재는 많아요. 이름이 널리 알려진 피아니스트도 있고, 묵묵히 피아노를 꾸준히 공부해 온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은 무대가 많지 않잖아요. 특히 중년 연주자들에게는 협연 기회가 거의 없지요. 평생 피아노에 정성을 다 쏟아도 협연 한 번 못해본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늘 안타까웠어요. 이번 프로젝트가 제자들이 모차르트 음악의 아름다움을 맛보며 음악 활동을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자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는 편인가요?

결국 본인이 느끼고 자기 안에서 나와야 해요. 본인의 음악이 있거든요. 가장 어렵지만 동시에 가장 소중한 겁니다. 저는 다만 ‘네가 생각하는 대로 연주해봐라’ 하고 등을 떠밀어줄 뿐입니다. 그렇게 하기까지의 배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제 역할이고요.

여러 피아니스트가 함께하는 무대의 특별함은 무엇일까요?

모차르트 소나타·협주곡을 연주하다 보면 대화가 들리고, 생활이 보이고, 삶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모차르트는 삶을 반영하는 작곡가예요. 이번 무대에 서는 제자들의 평균 연령이 40세 전후인데, 각자의 삶이 다르니 연주에 녹아드는 이야기도 다를 겁니다. 어린아이가 연주하는 모차르트와 60세 연주자의 모차르트는 다를 수밖에 없지요. 바로 그 차이에 집중해 보세요. 각자가 살아온 길이 다르고, 나름대로 쌓아온 가치관이 있으니 저마다의 음악에 배어 나올 거거든요.

 

‘전곡 연주’의 대모가 되다

1980년대 베토벤에서 모차르트, 프로코피예프와 차이콥스키 작품까지 전곡을 완주했던 여정은 피아니스트로서 하나의 ‘역사’입니다. 그 긴 도전을 가능하게 한 힘은 무엇이었나요?

솔직히 얘기하면 제가 이 곡들을 다 자신 있게 연주할 수가 있어서 완주를 한 건 아니에요. 귀국하면서 든 가장 커다란 걱정이 뭐였냐면, ‘한국에 와서 너무 편안해져서 공부를 안하면 어떻게 하나’였어요. 저는 연세대에 어린 나이에 교수로 부임했어요. 하지만 늘 생각했지요. 그 많은 작품들을 전부 제대로 다뤄보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가르치나’하고요.

그 부담이 바로 전곡 시리즈를 하게 된 이유였군요.

스스로 공부를 해야만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되지요. 그래서 ‘발표’를 한다고 했지, ‘연주’라는 표현은 쓰고 싶지 않았어요. 그 당시 언론들이 다 ‘연주’라고 썼지만. 그래서 끝까지 공부했고, 그것이 제 것이 되었지요. 우리 세대는 모두가 하나 같이 다 귀한 공부를 했어요. 매일 같이 피아노를 붙잡고 씨름하며, 그 시절의 열정으로 지금까지 버텨온 거죠.

앞서 중견 피아니스트들의 무대 부재를 잠깐 언급했어요.

지금은 20~30대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강세입니다. 하지만 30~40년 후에 그들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 사이에 40~50대 연주자들이 무대에서 대부분 빠져버렸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그 세대 피아니스트들에게 무대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10월에는 하슬라국제예술제의 개막을 열고, 11월의 독주회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강릉 하슬라국제예술제(10.18~26)에 참여해요. 김민 음악감독이 이끄는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KCO)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연주하죠. 11월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리는 독주회는 제 인생을 관통하는 조각들이 모인 자리예요. 그중 프로코피예프 ‘전쟁 소나타’는 아주 개인적인 곡이에요. 저는 6.25 전쟁의 세대입니다. 효자동에 살면서 총성이 울리면 방공호에 숨어들기도 했지요. 폭탄이 떨어지고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을 눈앞에서 보며 자랐습니다. 그 전쟁의 공포는 결국 제 인생의 밑바닥에 침전된 채 평생을 따라다녔지요. 연주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어떻게 해서든 지켜야 할 평화에 대해 전하고 싶습니다.

유내리 기자 사진 프레스토컴퍼니

 

이경숙(1944~) 서울예고 재학 중 도미해 커티스 음악원에서 호르초프스키와 루돌프 제르킨을 사사했다. 1967년 제네바 콩쿠르 입상 및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옥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음악원장 및 연세대 음악대학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연세대 음악대학 명예교수이자, 서울사이버대학 피아노과 석좌교수다.

 

PERFORMANCE INFORMATION

하슬라국제예술제

10월 18일 오후 5시 강릉아트센터 사임당홀

(이경숙(피아노),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10월 19일 오후 3시 강릉아트센터 소공연장

(이경숙·조재혁(피아노),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이경숙 피아노 독주회

11월 20일 오후 19시 30분 금호아트홀 연세

베토벤 론도 Op.51-1, 슈베르트 악흥의 순간 D780, 바버 ‘유람’,

프로코피예프 소나타 8번 ‘전쟁 소나타‘

 


전곡 시리즈 이끄는 지휘자 배종훈

이번 시리즈는 2020년 시작하여 진행 중인 하이든 교향곡 전곡(107곡)의 지휘자 배종훈(1963~)과 함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선보인다. 배종훈은 빈 국립음대에서 작곡과 지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오페라와 음악원에서 오케스트라와 발레 지휘를 공부하였으며, 미국 UCLA에서 석·박사과정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지휘를 지도했다. 국군교향악단을 창단해 초대 음악감독을 지냈으며, 현재 서초교향악단 예술감독 및 상임지휘자로 재임 중이다.

배종훈은 모차르트의 음악에 대해 “하이든이 땅에서 스스로 일궈낸 사람이라면, 모차르트는 맑은 영혼을 타고 내려온 인물”이라며, “그의 작품에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 속에,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어요. 멀리서 들으면 유희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인간사의 깊은 비극과 기쁨이 함께 녹아 있어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시리즈는 10월 21일 21번(이경숙), 2번(최지안), 26번(한우리)을 시작으로 2026년 8월 8번(김상영), 19번(심근수), 7번(이경숙·강우성·김강호)의 협연으로 막을 내린다.

유내리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곡 시리즈(27곡)

배종훈/서초교향악단 | 장소 : 반포심산아트홀

 

2025년 연주곡목(협연자)

10.21 21번(이경숙), 2번(최지안), 26번(한우리)

12.18 3번(강우성), 25번(이주은), 1번(채주연)

 

2026년 연주곡목(협연자)

2월 중 11번(이예진), 9번(심윤선), 10번(이경숙·김규연)

3월 중 22번(소현정), 18번(이희승), 17번(이재완)

4월 중 23번(이혜은), 5번(문정원), 13번(김강호)

5월 중 12번(손은정), 15번(정민경), 6번(박려원)

6월 중 27번(심지후), 14번(이민영), 16번(정지영)

7월 중 4번(강지은), 20번(윤혜은), 24번(유혜영)

8월 중 8번(김상영), 19번(심근수), 7번(나정혜·이경숙·김강호)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