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드 칼럼 | 모차르트가 보낸 소리의 여신, 나탈리 드세이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11월 10일 9:00 오전

RECORD COLUMN

음반에 담긴 이야기

모차르트가 보낸 소리의 여신, 나탈리 드세이

11월, 마지막 고별 투어를 앞두고

 

 

❶ EMI 2417508

성악과 신입생 시절, 한 친구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말했다. “진짜 대박인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나왔어!” 여간해서는 흥분한 기색을 보이지 않던, 진중한 친구였기에 의외였다. “그래서 그게 누군데?” 시큰둥하게 대꾸하는 내게 친구는 정성껏 대답했다.

“‘나탈리 드세이’라는 소프라노야.”

그날 이후, 그녀의 이름은 내 귀에 오래 남았다. 얼마 지나지 않은 1998년, 드세이의 첫 솔로 음반 ‘보칼리제’(1998)(EMI)❶가 발매되었고 나는 단번에 사로잡혔다.

 

나이팅게일의 재현

가사 없이 오로지 모음으로만 노래하는 ‘보칼리제’는 새처럼 노래하는 그녀에게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유명한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는 평범한 소프라노에게는 기악적인 난도가 지나칠 만큼 높아, 타고난 목소리만이 소화할 수 있는 곡이다. 그러나 드세이에게 이 곡은 그저 초대장에 불과했다. 그녀는 이 음반에서 라벨 ‘보칼리제(Vocalise en forme de Habanera)’부터 글리에르의 ‘나이팅게일’까지 아우르며, 일명 보칼리제풍의 곡들로 성찬을 펼쳐 보인다. 그녀는 말 그대로 ‘새’를 노래하는데, 생상스의 ‘나이팅게일과 장미’에서는 안개 낀 정원 속에서 아련히 울고, 스페인 작곡가 엔리케 그라나도스의 아리아 ‘나이팅게일이 왜 그림자 속에 있지?’에서는 카탈루냐 정취를 머금은 새소리를 들려준다.

그 후로 새 음반이 나올 때마다, 소박한 용돈을 그녀에게 바쳤다. 듣고, 또 듣고 다시 들었다. 그리고 드세이 특유의 ‘소리 반, 공기 반’ 음색을 무수히 흉내 냈다. 신음과 두성이 오묘한 비율로 섞여 발화하는 듯한, 그 독특한 발성이란! 힘을 탁 풀어놓는 듯하면서도, 바로 그 이완 속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공간을 진동시키는 그녀의 고음!

그 시절 가장 즐거운 놀이는 그녀의 음반을 1번 트랙부터 재생하며, 되든 안 되든 무작정 따라 부르는 일이었다. 어쩌면 놀이보다는 일종의 리투알(편집자 주_노래로 들어가기 위한 문을 여는 작은 의례)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당장은 그 테크닉을 이해할 수도, 가질 수도 없었지만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그녀의 목소리 속 우주의 기운을 무의식적으로라도 체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강한 염원 같은 것 말이다.

모차르트의 날개를 달다

❷ ERATO 5454472 erato

드세이의 노래를 들으면 잘 훈련된 영재였을 것이라 짐작하지만, 사실 그녀가 성악가의 길에 들어선 것은 꽤 늦은 편이다. 어린 시절의 드세이는 발레리나나 배우를 꿈꾸던 소녀였다. 스무 살 무렵, 연기 수업 중 우연히 성악의 재능을 발견했고, 이후 보르도 음악원에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졸업 후에도 툴루즈 극장의 합창단원으로 일했으니,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와는 꽤 거리가 먼 셈이다. 그러나 일단 프로의 세계에 발을 디딘 이후, 드세이의 상승세는 가팔랐다. 서른 살이 되기 전, 이미 빈·파리·뉴욕의 주요 오페라 무대에서 데뷔할 정도로.

도약의 계기는 모차르트였다. 1989년 프랑스 텔레콤이 주최한 콩쿠르 ‘새로운 목소리’에서 2등을 차지한 뒤, 그는 모차르트 오페라 ‘목자의 왕’의 엘리자 역으로 파리 오페라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이어 1993년, 빈 국립오페라가 주최한 모차르트 콩쿠르에서 1위를 거머쥐며 솔리스트로 발탁되었고, 이는 본격적인 도약의 발판이 되었다.

드세이는 이후 두 장의 모차르트 아리아 음반을 남겼다. 하나는 2000년에 발매한 ‘모차르트 히로인’(ERATO)❷이며, 다른 하나는 2005년에 발매한 모차르트 콘서트 아리아 음반(EMI)❸이다. 단언컨대 1996년에 발매된 조수미의 ‘디어 아마데우스’(ERATO) 음반과 비교 감상하며 두 가수의 장점을 하나라도 더 닮고자 고군분투했던 성악도는 아마 나 하나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두 가수의 모차르트 음반에는 상당 부분 겹치는 아리아가 등장한다. ‘신이여, 설명하고 싶어요’(K418)나 오페라 ‘후궁 탈출’의 ‘그 어떤 고문을 당한다 해도’ 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극강의 기교를 요구하는 이 아리아들은, ‘밤의 여왕’으로 이름을 알린 두 소프라노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물론 누가 더 낫다고 단정 짓는 일은 부질없다. 어제는 보르도 와인이 당겼지만, 오늘은 토스카나 와인을 고르고 싶은 마음인 그저 취향과 기호의 차이다.

❹ ERATO 3633322

아, 모차르트 이야기 하나만 더 하고 가야 할 것 같다. 많은 레제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들이 짧고 빠른 파장의 바이브레이션을 구사하는 반면, 드세이의 파장은 놀라울 만큼 안정적이다. 때로는 ‘나른하다’고 표현하고 싶을 만큼 유연한 이 파장은, 어쩌면 그녀의 목소리를 오래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 그녀만의 음색을 잘 보여주는 곡이 모차르트의 c단조 대미사 K427 중 소프라노 아리아 ‘그리고 성육신 하셨으며(Et incarnatus est)’다. 루이 랑그레/계몽시대 오케스트라와 연주한 2006년 음반 ‘목소리의 기적’(ERATO)❹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성령의 비둘기처럼 천천히 피어오른다. 그 나른함 속에는 절제된 호흡과 깊은 경건함이 공존한다.

드세이는 프랑스의 자랑이었다. 프랑스 성악가로서 최초로 오스트리아 궁정가수의 지위에 올랐고, 오랫동안 불러주는 이가 없어 잠들어 있던 프랑스 콜로라투라 레퍼토리(ERATO)❺를 되살려냈다.

도니체티(1797~1848)의 프랑스 오페라 ‘연대의 딸’ 공연을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가 연거푸 하이C를 내지르며 앙코르를 해도, 결국 무대의 진정한 승자는 말괄량이 마리였다는 것을. 드세이의 매력은 녹음보다 실황 무대에서 더욱 빛난다. 그것은 단지 그녀의 놀라운 가창력 때문만이 아니라, 드세이 자신이 타고난 배우이기 때문이다. 드세이가 토마의 오페라 ‘햄릿’에서 보여주는 오필리아의 처연한 광기와 자해 장면은 충격 그 자체였다.

2021년 에라토 레이블은 드세이 전집(ERATO)❻을 발매했다. 무려 33장의 CD와 19장의 DVD로 구성된 초대형 구성이다. 그녀의 눈부신 여정을 담은 이 기록물 중에는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의 안토니아,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의 체르비네타, ‘마농’을 비롯해 앞서 언급한 앞서 언급한 마리와 ‘햄릿’의 오필리아까지! 드세이의 눈부신 여정이 이 방대한 기록물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렇게 허영심이 없는 디바는 거의 없다”

그러나 그녀는 너무도 빨리 목소리를 잃었다. 2001년부터 미세한 이상 징후가 포착되었고, 이듬해 결국 성대결절 수술을 받았다. 지나친 혹사였을까? 오페라 가수 초창기 때, 다른 소프라노들보다 두드러지는 면은 단연 극고음이었다.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에서 ‘인형의 아리아’를 부를 때, 마지막 카덴차에서 악보상 하이E♭이라고 적혀있지만, 그녀는 그보다 3도를 높인 하이G를 가뿐히 들려주곤 했다.

“세상에서 고음이 제일 쉬웠어요!”

그녀의 말처럼, 하늘을 찌르는 고음은 언제나 경이로웠다. 그러나 어쩌면 그 극고음이, 그녀를 극한으로 몰아넣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후에 드세이는 거침없이 말했다. “제 극고음은 사라졌어요.” 두 번의 성대 수술과 재활을 거치며 그녀의 레퍼토리는 점차 리릭 쪽으로 내려왔다. 나이 든 소프라노가 자연스레 걷게 되는 길이기도 하지만, 드세이의 행보는 그 이상으로 과감했다. 2013년, 툴루즈에서 ‘마농’을 끝으로 오페라 무대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그녀의 성대에 따라 열렬한 찬사와 맹렬한 비난이 오갔던 여론을 생각하면 진저리가 났을 법도 하다.

“이렇게 허영심이 없는 디바는 거의 없다”(프랑크푸르트 룬트샤우), “우리의 안티 디바”(디아파종). 심지어 노먼 레브레히트는 ‘괴짜 오페라 디바’라고도 불렀다. 오페라 가수로서 그녀가 예상할 수 없는 연기를 보여줬듯이 은퇴 이후의 행보도 마찬가지였다. 드세이에게는 애초에 내리막길이라는 전제가 통하지 않았다. 자신을 원하는 무대가 있다면 장르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샹송, 재즈, 뮤지컬, 그리고 연극까지 드세이는 장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여전히 무대를 삶의 중심에 두었다.

현재 드세이는 두 명의 ‘카사르’와 함께 하고 있다. 한 명은 피아니스트 필립 카사르(1962~)다. 현재 드세이와 함께 고별 연주 투어를 동행 중이다. 드세이-카사르 듀오는 2011년부터 호흡을 맞춰 두 장의 음반을 남겼으며, 오는 11월에는 서울 무대에 올라 KBS교향악단과 함께 마지막 인사를 건넬 예정이다. 소프라노와 피아노, 관현악이 함께하는 이 드문 편성에서, 드세이와 카사르의 오랜 호흡이 돋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 드세이는 더 이상 콘서트의 무게를 홀로 짊어지는 디바가 아니다. 아주 든든하고 막강한 멤버들이 함께 할 예정. 남편이자 바리톤인 로랑 나우리, 촉망받는 뮤지컬 배우이자 두 사람의 딸인 네이마 나우리가 그 주인공이다. 오는 12월,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넘버를 중심으로 한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출연진은 드세이 가족, 그리고 두 번째 ‘카사르’인 음악감독 이반 카사르.

앞으로 ’우리의 안티 디바’가 영화든 시트콤이든, 아니 그 어떤 상상치 못한 장르에 등장할지라도 미소로 응원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한때 그녀가 즐겨 불렀던 번스타인의 아리아 ‘찬란하고 즐거운(Glitter and be gay)’일이니까.

오주영(성악가·독일 통신원)

 

 

PERFORMANCE INFORMATION

KBS교향악단 X 나탈리 드세이(은퇴 고별공연)

11월 13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나탈리 드세이(소프라노), 필립 카사르(피아노), 지중배(지휘)/KBS교향악단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서곡 K492·아리아 ‘그대를 잊으라니요?’, 사무엘 바버 ‘녹스빌: 1915년의 여름’, 앙드레 프레빈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중 아리아 ‘난 마법을 원해요’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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