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2
지휘자 산투 마티아스 루발리
설원의 리듬을 타고
북방의 색채를 알리는 지휘계의 신성이 들려주는 음악

산투 마티아스 루발리(1985~)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이며, 스웨덴 예테보리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했고, 탐페레 필하모닉 명예지휘자다. 그간 뮌헨필·베를린필·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등 유수의 악단을 지휘했다. 북미에서 뉴욕필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이번 시즌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오슬로 필하모닉·빈 심포니 등과 무대에 설 예정이다.
헝클어진 중단발의 곱슬머리, 헐렁한 흰 티셔츠 위에 대충 걸친 검정 조끼와 재킷. 지휘대 위, 산투 마티아스 루발리의 흔한 차림새다. 첫인상부터 자유분방한 그의 성격이 여실히 드러난다. 리듬을 직관적으로 따르는 지휘, 긴 공연 주간이 끝나면 핀란드의 집으로 돌아와 낚시와 사냥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까지. 그의 삶 전반에는 꾸밈없는 자연스러움이 흐른다.
이 젊은 지휘자는 특유의 천진난만함으로 이미 세계 여러 악단을 매료시켰다. 탐페레 필하모닉(2013~2023)과 스웨덴 예테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2017~2025)의 수석지휘자로 두각을 드러냈으며, 2021/22 시즌부터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를 맡고 있다. 동시에 베를린필, 뉴욕필,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등의 거듭된 러브콜을 소화하는 중이다.
오는 12월, 루발리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처음 내한한다. 프로그램은 시벨리우스의 교향시 ‘전설’과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이 협연하는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스트라빈스키 ‘불새’ 모음곡. 루발리가 숨 쉬듯 들여 마신 자국의 대표 작곡가 시벨리우스와 루발리의 타고난 리듬감이 빛을 발할 스트라빈스키는 그가 내미는 반가운 명함과도 같다.
필 더 리듬! 롤모델은 번스타인!
루발리를 음악으로 이끈 건 타악기였다. 그의 지휘가 리듬을 주요 핵심 동력으로 삼는 이유다. 루발리의 부모가 라티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단원이었던 탓에, 어린 그에게 오케스트라 리허설장은 자연스러운 놀이터였다. 그중 그의 관심을 독차지한 건 제스처가 큰 팀파니스트와 오케스트라를 통솔하는 지휘자였다. 팀파니스트 무릎 위에 앉아 악기의 울림을 직접 느낀 첫 순간은 훗날의 루발리를 있게 한 시발점이 됐다.
시벨리우스 음악원에서 타악을 공부하던 그는,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놓을 인물을 만났다. 핀란드가 낳은 또 한 명의 명지휘자 한누 린투(1967~)다. 린투가 지휘하던 오케스트라에서 퍼커셔니스트로 활동한 루발리는 다시 한번 지휘자의 거대한 존재감을 느꼈다. “음악을 주관하는 것, 그게 제가 하고 싶은 것이었어요. 타악기 주자로 트라이앵글을 연주하면서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죠”.
커리어의 방향을 지휘로 돌리는 과정도 루발리는 단순하고, 직관적이었다. “드럼을 연주하던 손의 움직임이 박자를 나누는 지휘 제스처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어요!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한누 린투는 루발리의 선택을 적극 지지했다. 린투를 통해 루발리는 시벨리우스 음악원 지휘 클래스에서 핀란드 지휘계의 대부로 불리는 요르마 파눌라(1930~)와 라이프 세게르스탐(1944~ 2024)을 사사하며 지휘자의 자질을 익혔다.
그의 재능을 알릴 첫 번째 기회는 일찍 찾아왔다. 스물두 살이던 해에 핀란드 방송교향악단의 대체 지휘자로 선 것. 준비된 자의 면모를 입증한 데뷔 무대 이후, 산투 마티아스 루발리는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루발리의 지휘는 음악의 원초적인 즐거움을 가감 없이 전한다. 예테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시벨리우스 교향시 ‘전설’과,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선보인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불새’ 모음곡 ‘페트루슈카’ 음반들에서 루발리의 타고난 리듬 감각과 반짝이는 색채를 엿볼 수 있다.
루발리의 지휘 제스처는 리듬을 따라 스윙을 추는 듯 큰 편인데, 그의 스승인 파눌라는 이를 지독히도 싫어했고, 에사 페카 살로넨은 퍼커셔니스트였던 배경을 고려할 때 자연스럽고도 진정성 있는 것으로 봤다. 타인의 평가가 어떠하든, 루발리는 자신의 롤모델로 여전히 ‘가끔 지나치기도 했지만 활기가 넘친’ 번스타인을 꼽는다. 물론 경험과 관록이 쌓이면서 지나친 에너지는 살짝 누그러졌다. 자신의 과거 지휘 영상을 보면서 루발리는 유쾌하게 말한다. “당시 지금보다 땀을 10배는 더 흘린 이유가 있었군요!”
핀란드 지휘 명가의 계보를 이은 신성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Mark Allan
루발리는 북유럽 클래식 음악의 전령이기도 하다. 2024년 가을에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북유럽 사운드스케이프’ 시리즈를 이끌며 그리그·마리아 시그푸스도티르·하자마 미호 등 다채로운 북구의 음악을 소개하는 데 앞장섰다.
동시에 그는 요르마 파눌라, 에사 페카 살로넨, 한누 린투, 오스모 벤스케 등을 이어 ‘지휘 강국’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핀란드가 이 타이틀을 쥐게 된 이유에 대해 루발리는 그만의 가설을 세웠다. 클래식 음악 역사가 길지 않은 핀란드 출신의 지휘자는 기존 관습에 매이지 않고 새로운 관점으로 작품을 보는 동시에, 자기 생각을 관철하는 카리스마와 용기를 지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루발리의 존재는 그 두 요소를 모두 설명한다.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 임명됐을 때도 악단의 ‘생기를 되살리는’ 데 초점을 두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 포부처럼 ‘지루하게 연주될 수 있는’ 고전음악을 젊은 사운드로 풀어냈고, 예테보리 심포니와 녹음한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 사이클에서도 그가 가장 잘 아는 작곡가의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뒀다.
루발리는 관객이 음악을 감상할 때도 자기 내면을 따를 것을 권한다.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발매한 슈트라우스 ‘알프스 교향곡’을 소개하면서 “작곡가가 알프스를 거닐며 봤던 것을 관객도 똑같이 볼 필요는 없다. 음악이 이끄는 그 어느 풍경이든, 자기 앞에 펼쳐지는 여정에 집중하면 된다. 나는 핀란드의 자연을 누볐던 내 일상을 떠올린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가장 바쁜 차세대 지휘자 중 한 명으로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지만, 그가 언젠가 지구 반대편 관객을 찾는 일을 멈추더라도 너무 놀라지 말자. 루발리는 ‘잦은 여행’을 지휘자라는 직업의 단점으로 단호하게 꼽곤 했다. 음악가가 되지 않았다면 농부가 되었을 거라는 그의 말도 빈말이 아니다. 직접 재배한 채소와 낚시, 사냥으로 거둔 재료들을 능숙하게 손질해 요리해 먹는 핀란드 라티 출신의 이 지휘자는 분명 세계 지휘계에 없었던 기인임은 분명하다.
글 박찬미(독일 통신원) 사진 빈체로
PERFORMANCE INFORMATION
산투 마티아스 루발리/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협연 클라라 주미 강)
12월 7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시벨리우스 교향시 ‘전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스트라빈스키 ‘불새’ 모음곡(19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