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SILENCE | 양인모 바이올린 독주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1월 12일 9:00 오전

INSIDE THE STAGE ➊ IN SILENCE

 

양인모

바이올린 독주회 2025.12.3·4

 

긴 호흡의 한 지점에서

위로의 공간에서 건네는 텔레만의 ‘환상곡’, 무반주로 여는 새로운 레퍼토리

 

 

지난해 ‘객석’ 3월호 인터뷰에서 양인모는 “하루의 시작을 텔레만 연습으로 연다”고 말했다. 일상의 루틴처럼 곁에 두고 있는 음악, 그리고 언젠가는 한국에서 전곡으로 연주해보고 싶은 작품이라던 그의 이야기는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실현됐다. 겨울의 초입, 서소문성지(서울시 중구) 콘솔레이션홀의 고요함 속에서 텔레만(1681~1767)의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12개의 환상곡’ 전곡이 무대에 올랐다.

텔레만의 ‘환상곡’은 작곡가의 음악세계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나는 레퍼토리다. 복잡한 건축미와 대위법을 앞세운 바흐의 무반주 작품과 달리, 텔레만의 환상곡은 선율의 매력과 감각적인 흐름에 보다 무게를 둔다. ‘환상곡’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형식 또한 자유롭다. 이탈리아적 선율미와 프랑스 춤곡의 성격, 바로크 후기의 갈랑트 양식이 한 작품 안에서 교차한다.

사실 텔레만의 작품은 무반주 바이올린 레퍼토리에서 자주 연주되는 중심 레퍼토리는 아니다. 대부분의 연주자가 바흐나 이자이의 작품으로 무반주 레퍼토리를 선보이는 데 비하면 이번 선택은 다소 결이 다르다. 양인모는 콩쿠르 우승자라는 이름 뒤에 따라붙는 익숙한 경로 대신, 자신이 지금 집중하고 있는 음악을 택했다. 침묵에 가까운 독백으로 90분을 채운 전곡 연주는 기술의 과시라기보다, 현재의 관심과 방향을 드러내는 무대에 가까웠다.

공연이 끝난 뒤, 그에게 이번 연주를 둘러싼 생각과 텔레만과 함께한 긴 시간에 대해 물었다.

 

바이올린의 입체적인 독백

텔레만 전곡 연주는 지금까지의 레퍼토리 여정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나요?

지난 1년 동안 텔레만을 연습하면서 깊은 평온함을 느꼈습니다. 힘들고 소란스러운 환경 속에 있어도, 이 작품을 대할 때만큼은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웠어요. 그 느낌을 청중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텔레만의 ‘환상곡’은 독백처럼 악기의 본질적인 울림이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이 곡이 무대로 이어지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텔레만의 작품은 연습할수록 다른 바로크 작곡가들과는 확실히 다른 성격이 느껴졌습니다. 기발하면서도 굉장히 맛있는 퓨전 요리를 먹는 기분이랄까요. 누군가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이 음악이라면 충분히 공감대를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 전곡 연주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작품 안에서 이탈리아적 선율, 프랑스적 춤곡, 폴리포니와 갈랑트 양식이 자유롭게 오가는데요. 연습 과정에서 해석의 흐름을 잡는 데 특히 도움이 됐던 지점이나, 마음이 갔던 곡이 있다면요?

텔레만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서곡집 작품들이 해석에 큰 도움을 줬어요. 오케스트라 소리를 염두에 두고 곡을 바라보면 훨씬 분명해지는 지점들이 있고, 음악도 더 입체적으로 다가옵니다. ‘환상곡’에 등장하는 춤곡 형식 역시 서곡집을 통해 캐릭터를 더 선명하게 잡을 수 있었죠. 그런 과정 속에서 처음에는 7번이 가장 좋았는데, 지금은 6번이 유독 마음에 남습니다.

 

공간·마음·악기가 하나로 연결된 순간

양인모 바이올린 독주회(2025.12.3·4) ©Soongan

한 악기로 90분의 음악을 채우는 공연은 연주자에게도, 청중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양인모는 “그만큼 몰입을 끌어낼 수 있는 공간이 중요했다”고 말한다. 자연스럽게 집중을 유도하는 성지의 분위기와 겨울 저녁의 서늘한 공기는 이 긴 독주의 시간을 감당하기에 더없이 적절한 조건이었다.

전체 12곡을 6곡씩 나눈 구성에서, 대위법과 푸가가 중심이 되는 전반부는 날 선 긴장을 유지했고, 갈랑트 양식이 두드러지는 후반부로 갈수록 소리는 점차 부드럽게 풀어졌다. 그 과정에서 공간과 악기, 연주자의 호흡은 자연스럽게 맞물려 갔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호흡과 소리 감각이 달라지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서소문성지라는 공간의 울림도 영향을 줬을 것 같습니다.

아마 바로크식 튜닝 때문에 악기가 공간에 적응하는 시간이 조금 필요했을 겁니다. 대위법이 상대적으로 적은 6번 이후의 곡들이 더 유려하게 들리는 건 맞아요. 콘솔레이션홀 공간의 울림은 꽤 좋아서 화음을 만드는 데는 수월했지만, 오픈형 구조라 제 소리가 어떻게 퍼져 나가는지를 정확히 가늠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 조건들이 자연스럽게 연주의 흐름에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이번 연주에서 1743년 제작된 과르네리 델 제수 ‘카로두스’를 사용했는데요. 악기가 작품 해석에 어떤 역할을 했나요?

이 악기로 연주할수록 울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이전에 사용했던 과다니니가 균형 잡힌 울림을 주는 악기였다면, 지금의 악기는 여러 소리가 동시에 소용돌이치는 느낌이에요. 균형보다는 대비를 추구하고, 무수한 소리의 텍스처를 가진 악기라고 생각합니다.

신년을 맞아, 새로운 계획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새해에도 새로운 음악적 인연을 많이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음악을 통해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조금 더 자유롭게 해보고 싶습니다.

홍예원 기자 사진 프레스토컴퍼니

 

양인모(1995~)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안티에 바이타스 사사로 한스 아이슬러 음대 석사 과정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를 졸업했으며, 2015년 파가니니 콩쿠르, 2022년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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