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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필리프 조르당
과장되지 않는 권위
서울시향과 함께, 메가톤급 레퍼토리로 신년을 공략할 지휘자가 온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들이 노년에 접어들고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신예들이 빠르게 소비되는 요즘, 그 사이에서 전통과 개성을 균형 있게 잇는 중간 세대들의 진중한 활약이 돋보이고 있다. 스위스 취리히 출신의 지휘자 필리프 조르당(1974~)은 그중 한 명으로, 오늘날 그의 세대에서 가장 탄탄한 저변과 국제적 신뢰를 동시에 확보한 마에스트로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아버지의 지휘봉을 이어받은 소년
필리프 조르당은 스위스의 전설적 지휘자 아르멩 조르당(1932~2006)의 아들로, 음악이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자랐다. 6세에 피아노를 시작했고, 8세에 취리히 소년합창단에 입단했으며, 11세에 바이올린을 배웠다. 16세에는 취리히 음악원에 입학해 피아노 교육 디플롬을 우수한 성적으로 취득했다. “아버지처럼 지휘자가 되고 싶다”던 단순한 바람은, 학업을 마칠 무렵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제프리 테이트의 어시스턴트로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제작에 참여하면서 조르당은 자연스럽게 오페라 지휘의 길로 들어섰다.
본격적인 커리어의 출발은 1994/95 시즌이었다. 독일 남부 울름 시립극장에서 제1카펠마이스터이자 어시스턴트로 임명되었고, 1995년에 브뤼셀의 라 모네 왕립극장에서 지휘자로 데뷔하는 기회를 얻었다. 이어 1998년부터 2001년 6월까지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다니엘 바렌보임의 어시스턴트이자 카펠마이스터로 일하며 빠르게 음악계의 중심부로 진입했다. 2001/02 시즌에는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에서 생상스 ‘삼손과 델릴라’로 미국 무대에 데뷔했고, 글라인드본 페스티벌 오페라에서 비제 ‘카르멘’으로 영국에도 데뷔하는 등, 활동 반경을 빠르게 확장했다.
2001년 9월, 아직 27세가 되기 전 그는 오스트리아 그라츠 오페라와 그라츠 필하모닉의 수석지휘자로 발탁된다. 2004년 6월까지 이 자리를 유지하며 오페라와 콘서트 양쪽에서 레퍼토리를 넓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는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와 슈타츠오퍼에서 수석 객원지휘자를 지냈다.
이 시기는 국제 무대 경험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뉴욕·런던·뮌헨·파리 바스티유와 샤틀레·잘츠부르크·제네바·빈·드레스덴·엑상프로방스 등 유럽 주요 극장과 페스티벌이 그의 활동 무대가 됐다. 특히 2012년 여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바그너 ‘파르지팔’을 지휘하며 주목을 받았고, 2017년 이후에는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를 여러 시즌 지휘하면서, 조르당은 바그너 지휘자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다.
파리에서 빈으로, 메이저로의 등극

서울시향
조르당의 중요한 커리어 중 하나는 파리 오페라 음악감독이었다. 2009/10 시즌부터 시작된 임기는 2021년까지 여러 차례 연장을 거쳐, 총 12년간 이 극장의 음악을 이끌었다. 그는 다수의 굵직한 프로덕션을 지휘했으며, 특히 마지막 시즌에는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를 콘서트 형식으로 연주하는 대형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그는 파리에서도 바그너 전문가로서의 모습을 확고히 보여주면서 독일-오스트리아의 정통 레퍼토리에 집중했고, 프랑스 레퍼토리는 특히 베를리오즈에 무게추를 두었다.
조르당은 오페라로 데뷔하여 줄곧 오페라를 지휘했지만, 관현악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파리 오페라 시절에는 R. 슈트라우스 ‘알프스 교향곡’과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전곡,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 라벨 ‘다프니스와 클로에’,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등을 녹음했으며, 그 이전에도 여러 관현악단과 음반을 발매하는 등, 그 열정은 오페라 못지않았다. 이러한 흐름은 2014/15 시즌, 빈 심포니 수석지휘자 취임으로 이어졌다. 그의 계약은 이후 2020/21 시즌까지 연장되었고, 이 시기는 조르당의 교향악단 지휘 경력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로 평가받는다. 슈베르트 교향곡 전곡과 베토벤 교향곡 전곡, 바흐의 주요 미사곡과 오라토리오를 아우르는 대형 시리즈는 호평을 이끌어냈다. 특히 빈 심포니와 함께 녹음한 베토벤 교향곡 전집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브루크너 프로젝트’에서 브루크너의 마지막 세 교향곡과 함께 쿠르탁·리게티·셸시 등 20세기 작품을 연주하여 관객들의 감상 지평을 크게 넓혔다. 베토벤이 지휘했던 전설적인 ‘1808년 12월 22일 대연주회’를 현대적으로 복원하여 파리와 빈에서 공연하는 특별한 기획 공연도 이끌었다. 이러한 빈 심포니와의 밀월뿐만 아니라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등 유럽과 미국의 주요 관현악단 연주는 콘서트 지휘자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명예와 절망을 안긴 빈을 떠나 파리로!
빈에서 대활약을 펼치던 2017년 7월, 빈 슈타츠오퍼는 조르당을 2020/21 시즌부터 차기 음악감독으로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극장과 콘서트 양쪽에서 이미 입지를 다져온 그에게, 빈 슈타츠오퍼는 커리어의 정점으로 여겨질 만한 자리였다.
재임기간 동안, 그는 빈 슈타츠오퍼에서 모차르트 ‘다 폰테 3부작’(피가로의 결혼·돈 조반니·코지 판 투테)을 새 프로덕션으로 완성하는 ‘뉴 다 폰테’ 사이클을 선보이고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사이클을 다시 올리는 등, 모차르트·바그너·베르디 등 독일-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레퍼토리에 집중하며 기대에 부응하는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이 여정은 끝까지 순탄하지는 않았다. 2022년 10월, 조르당은 2025년 6월을 끝으로 빈 슈타츠오퍼 음악감독직을 마무리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무대와 음악의 ‘진정한 협력’을 실현하고자 했지만, 그런 이상이 구조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다시는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직을 맡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놓았다. 이에 빈 슈타츠오퍼는 후임을 선임하지 않고, 음악감독직 자체를 폐지하는 방식으로 응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갈등이 최대로 치달았을 때인 2022년, 오스트리아 음악극 시상식에서 조르당은 빈 슈타츠오퍼에서의 활동으로 ‘최고 음악적 성취’ 부문을 수상했다. 첨예한 갈등 속에서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그가 음악에 몰두하게 된 결과가 아니었을까.
이제 영예와 절망을 안긴 빈을 떠나 다시 파리로 향한다. 2024년 11월, 프랑스 국립오케스트라는 2027/28 시즌부터 조르당을 새로운 음악감독으로 발표했다. 파리 오페라에서 보낸 시절을 통해 이미 프랑스 음악계와 인연을 맺어온 그는, 이번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관현악단과 함께 파리를 다시 활동의 중심지로 삼게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일정에는 빈틈이 없다. 프랑스와 미국,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등 여러 나라를 방문할 예정이며, 한국도 포함되어있다. 한국에서는 1월 29일과 30일,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함께 R. 슈트라우스 ‘메타모르포젠’과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연주하며 그가 가장 무게를 두고 있는 독일-오스트리아 정통 작곡가의 작품들을 펼칠 예정이다. 특히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빈 심포니와 함께 연주하여 주목받은 레퍼토리로, 파리 오케스트라와의 인터뷰에서 “아름다운 천국의 빛”에 비유한 바 있다. 그동안 콘서트 지휘자로서 들려준 안정된 템포와 과하지 않은 다이내믹을 바탕으로 정성껏 만들었던 섬세한 음향, 우아한 음색과 연결되는 표현이다. 그 ‘빛’을 곧 서울에서 듣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서울시향
필리프 조르당(1974~) 스위스 태생의 지휘자로, 파리 오페라·빈 슈타츠오퍼 음악감독을 역임했다. 2027/28 시즌부터 프랑스 국립오케스트라의 새로운 음악감독으로 부임한다.
PERFORMANCE INFORMATION
필리프 조르당/서울시향
1월 29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1월 30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R. 슈트라우스 ‘메타모르포젠’, 브루크너 교향곡 9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