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드 칼럼 | 쇼스타코비치 탄생 120주년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2월 13일 9:00 오전

RECORD COLUMN

 

쇼스타코비치 탄생 120주년

삶을 따라 읽는 그의 음악과 음반

 

쇼스타코비치가 1906년에 태어나던 때의 러시아는 더 이상 찬란한 차르의 나라가 아니라 입헌군주제의 불안한 나라였다. 성인이 되어 맞이한 세상은 더 이상 러시아가 아니라 스탈린의 소련이었다. 이러한 격변의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그래도 학교의 품속에서 작곡한 교향곡 1번은 순수한 열정을 담은 절대음악으로서의 교향곡이었다.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926년 초연된 직후 독일과 미국에서 연주되며 신예 작곡가로 주목을 받은 것 또한 음악가라는 순수한 시각에서였다.

 

삶이 담긴 15개의 교향곡

쇼스타코비치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이후 약 30년간의 음악 활동은 체제 내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고, 음악은 기본적인 삶을 위한 보고서였다. 1926년 교향곡 1번이 초연된 뒤, 다음 해에 10월 혁명 10주년 기념작을 위촉받아 두 번째 교향곡 ‘10월’(1927)을 내놓았고, 2년 후에는 위촉이 없었음에도 레닌의 사망 6주기를 위해 세 번째 교향곡 ‘5월 1일’(메이데이)을 완성해 1930년에 초연했다. 합창이 있는 이 두 교향곡은 작품성에 대한 비판과 가사의 내용 탓에 오늘날 거의 무대에서 연주되지 않지만, 당시 쇼스타코비치는 소련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명확히 했다.

하지만 1936년,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에 대한 공연 평에서 “음악이 아니라 혼돈”이라는 프라우다의 사설은 소련 체제에서의 삶을 각성시켰다. 같은 해에 작곡된 네 번째 교향곡(1936)을 철회해야 했고, 곧바로 새로운 교향곡에 착수, 비장한 교향곡 5번(1937)으로 명예 회복에 성공했다. 비교적 무게감을 덜어낸 6번(1939)은 주목의 범위 밖에 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 학살에 가까웠던 레닌그라드 포위 속에서 울려 퍼진 장렬한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1941)는 그를 전설로 만들었다.

그런데 뜻밖에 비극적인 8번(1943)과 전쟁 후 발표된 냉소적인 9번(1945)으로 다시 위기를 자초했고, 1948년 즈다노프 독트린(소련의 문화 정책)으로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1953년 스탈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해빙을 기대했지만, 기대 후 실망은 고통을 증폭시킬 뿐이다.

감각적인 교향곡 10번(1953)과 ‘피의 일요일’을 그린 교향곡 11번(1957)으로 다시 사회에 손을 내밀었고, 1960년에 공산당에 가입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듬해 러시아 혁명을 기념하는 교향곡 12번(1961)으로 평온한 말년을 꾀했다.

하지만 예술가는 자신의 본심을 감출 수 없는 법이다. 유대인의 시에 붙인 13번째 교향곡 ‘바비 야르’(1962), 죽음을 찬미한 유럽 상징주의 시에 붙인 14번째 교향곡(1969), 그리고 냉소적인 마지막 15번째 교향곡(1971)은 그의, 그리고 소련에서의 이중적인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대와 국적에 따라 다른 해석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그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다 보니 소련에서의 삶을 전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곤 한다. 이러한 관점은 음악에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했고, 그 의미는 현대 사회의 현실과 어우러져 이해와 공감을 일으켰다. 동시대 작품으로서 고도로 조직된 현대적 음향보다는 고전적인 음향을 들려주는 점도 새로운 음악을 찾는 관현악단들에게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되었다.

하지만 소련 붕괴 35주년을 맞는 지금, 그의 음악에 대한 감상자들의 감흥은 분명 냉전 당시와 달라졌을 것이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쇼스타코비치는 1980년대에 실질적인 해금을 맞이하면서 그의 이름 자체가 남다른 감회를 주었지만, 약 40년이 지난 지금은 분명히 그때와 다르다. 작품 해설에는 작곡 당시 소련의 상황과 작곡가의 삶을 언급해야겠지만, 오늘날의 감상자들이 수용하는 이 곡의 의미는 당시의 다큐멘터리보다 음악 자체가 들려주는 드라마와 그 표현일 것이다. 혹은 다시 고조되는 세계의 긴장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삶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수용의 변화는 연주에도 반영되어있다. 소련에서의 삶을 경험했던 므라빈스키·로즈데스트벤스키·콘드라신·스베틀라노프·로스트로포비치·막심 쇼스타코비치 등이 거칠고 강렬한 표현으로 메시지를 호소한다면, 서방 세계에서 소련을 바라본 번스타인·하이팅크·카라얀 등은 극적인 전개로 감성적 수용을 극대화한다. 공산 치하를 경험한 동구권 지휘자인 마주어·노이만·얀손스·예르비 등은 극적인 전개 속에서 감성보다는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중도에 있다. 냉전 이후에 성인이 된 넬손스·쿠렌치스 등은 대체로 고전 음악으로서 매끄러운 음색과 음향적 조화, 구성적 전개 등 음악적 측면을 세심하게 다룬다.

❶ DG E4775193

이 중에서 올해 국내에서 연주되는 작품을 중심으로 음반을 꼽아보자면, 우선 국립심포니가 2월에 연주하는 교향곡 1번은 번스타인/이스라엘 필하모닉의 연주(DG)❶가 항상 언급된다. 이 곡은 풍자적인 특징이 있어서 음악적 제스처를 특징적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음량 대비를 지나치게 설정하면 실연과 달리 녹음에서는 청취에 문제가 발생한다. 번스타인의 녹음은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결점을 제시한다.

대구시향이 9월에 계획하고 있는 교향곡 5번은 삶에 대한 갈등이 짙게 녹아있는 작품인 만큼, 곁에서 그를 지켜보았던 므라빈스키/레닌그라드 필하모닉(Altus)❷의 연주가 기준으로 여겨진다. 음질이 좋은 1973년 도쿄 실황 녹음은 가정의 오디오에서도 훌륭한 음향으로 소련에서의 가혹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광주시향(4월)과 대전시향(10월)이 준비 중인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는 특징적인 스토리와 명확한 표현을 지닌 작품으로, 전쟁이라는 주제를 진지하게 다루면서 거대한 음향을 세심하게 표현하고 녹음도 훌륭한 하이팅크/런던 필하모닉(Decca)❸에 손이 간다.

❹ DG E4297162

수원시향이 3월에 들려줄 교향곡 10번은 DSCH 동기(이름의 첫 글자인 Д(D)와 성의 첫 글자인 Ш(Sch)를 연결해 만든 것)가 선명하게 드러나 개인적 메시지도 읽히는 곡으로, 각 악장의 대비가 크고 매우 드라마틱하다. 그런 만큼 균형 있는 해석을 고민하게 되는데, 카라얀/베를린 필하모닉(DG)❹의 연주가 믿음직한 레퍼런스가 되고 있다.

KBS교향악단이 2월에 선보일 교향곡 13번 ‘바비 야르’는 독창과 합창이 있는 교향곡인 만큼 표현의 방향성이 뚜렷하고 직설적이다. 그래서 남다른 의미를 담은 음반을 선택하게 되는데, ‘바비 야르’를 쓴 시인 예프투셴코의 낭송이 수록된 마주어/뉴욕 필하모닉(Warner Classics)❺의 연주는 기념비적이다. 베이스바리톤 레이페르쿠스의 힘이 있으면서도 옥타비스트(베이스보다 한 옥타브 아래의 저음역대)를 연상시키는 굵은 음성으로 이 곡의 무게감을 더한다.

 

협주곡·실내악에 담긴 정서

교향곡이 삶의 외면과 상호작용을 했다면,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소통 채널은 현악 4중주곡이 맡았다. 첫 현악 4중주곡을 완성했던 때는 1938년으로, 그의 대표작인 교향곡 5번이 이미 작곡된 후였다. 이는 쇼스타코비치가 프라우다의 사설 이후 삶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음악 때문에 모든 것이 잘못될 수 있음을 크게 깨달은 것이다. 악기의 수가 네 개라는 사실만 다를 뿐, 현악 4중주는 교향곡과 등을 맞대고 다른 곳을 바라보는 이면의 장르였다.

❻ Doremi DHR7911-15

쇼스타코비치와 함께 호흡했던 베토벤 콰르텟(Doremi)❻의 전곡(15곡) 연주와 보로딘 콰르텟(Melodiya)❼의 전곡 연주는 레퍼런스가 되고 있다. 쇼스타코비치를 만날 수 없는 후대의 연주자들은 오히려 그의 심상을 대리 표현하는 데서 벗어나 악보에 기록된 음표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감성을 표현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훌륭한 음향적 조화와 과감한 다이내믹, 폭발하는 감정과 도도한 냉철함이 공존하는 파시피카 콰르텟(ÇEDILLE)❽의 연주는 그중 하나다. 이 음반은 프로코피예프·시닛케 등 동료와 후배들의 작품도 한 곡씩 포함한 장점도 있다.

반면에 협주곡들은 비교적 음악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피아노 협주곡은 작곡자 자신의 연주(쇼스타코비치는 1927년 제1회 쇼팽 콩쿠르 참가자였다)가 음반으로 발매됐지만 그다지 언급되지 않고, 바이올린 협주곡은 오이스트라흐, 첼로 협주곡은 로스트로포비치가 레퍼런스가 되었으나 곧 독주자 각자의 음악적 표현으로 ‘살아있는’ 음악이 되었다.

바이올린 협주곡은 수많은 거장들의 호연을 들 수 있지만, 요즘은 바이바 스크리데(1981~)가 주목된다. 미코 프랑크가 지휘하는 뮌헨 필하모닉과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녹음(Sony)한 바 있는 스크리데는 거의 20년 후에 넬손스/보스턴 심포니의 쇼스타코비치 전곡 음반(DG)❾에서 1·2번을 녹음하며 한 차원 자유로워진 음악적 해석을 들려준다. 때로는 건조하게 때로는 폭발하는 폭넓은 표현은 즈다노프 체제에서 바이올린 협주곡 1번(1948)을 쇼스타코비치 스스로 출판 철회한 이유를 생각하게 하면서도 음악적 시나리오에 심취하게 한다.

❿ Philips E4757575

첼로 협주곡도 연주자마다 가지각색인데, 막심 쇼스타코비치/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협연한 하인리히 쉬프(Philips)❿의 연주는 템포와 다이나믹, 제스처 등 모든 것이 적절하게 조절되어있다. 첼로 협주곡 1번(1959)은 시작부터 DSCH 모티프가 사용되어 자전적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그들의 손에서 냉철하게 음악적으로 다져진다. 피아노 협주곡 또한 거장들의 향연으로 가득하다. 1번과 2번을 아울러 선택한다면 알렉산더 토라제(Pan Classcis)⓫의 녹음이 먼저 떠오른다. 파보 예르비/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의 협연으로, 느릴 때는 가장 진지하게, 빠를 때는 여한 없이 희롱하는 과감한 연주는 두 협주곡이 가진 개성과 음악적 시나리오를 폭넓게 관조한다.

 

현실에 대한 도전, 오페라

쇼스타코비치가 관심이 많았던 또 다른 장르는 오페라였다. 10대 중반부터 오페라를 쓰기 시작해 아홉 개의 오페라(개작인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 제외)를 작업했을 정도로 열의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완성된 작품은 ‘코’(1928)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1934) ‘체리요무슈키’(1958) 뿐이다. ‘코’는 풍자극에 가깝고 ‘체리요무슈키’는 뮤지컬에 가깝다는 점에서 오로지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에 무게 중심이 놓여있다.

⓬ Opus Arte oabd7031d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은 폭력, 불륜, 살인, 부패 등 사회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집약하여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현실에 대한 긍정을 강조하는 사회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이 곡은 프라우다의 사설 이후 무대에 오르지 못했고, 쇼스타코비치는 후에 작품을 축소하고 개정하여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1963)로 재발표했다. 하지만 국외에서는 정치적 관점을 떠나 현실 고발의 성격이 강한 작품으로서 원작이 주로 연주되었고, 러시아 무대에는 2000년이 되어서야 오를 수 있었다.

2002년 리세우 대극장 실황(EMI)은 전통적인 연출로서 안정감이 있으며, 2006년 네덜란드 오페라(Opus Arte)⓬ 실황은 현대적인 무대와 실감 나는 연기가 돋보인다. 특히 한글 자막과 다큐멘터리 영상은 큰 장점이다. 2008년 피렌체 마지오 무지칼레 피오렌티노 극장(Arthaus)⓭은 사실적인 거대한 세트와 객석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카메라워크가 흥미를 더한다.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PERFORMANCE INFORMATION

로베르토 아바도/국립심포니(협연 니콜라스 알트슈태트)
2월 11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프로코피예프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Op.125,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번 외

엘리아후 인발/KBS교향악단(협연 그리고리 슈카루파)
2월 28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라흐마니노프 ‘죽음의 섬’,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3번 ‘바비 야르’

최희준/수원시향
3월 27일 오후 7시 30분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 외

이병욱/광주시향
4월 10일 오후 7시 30분 광주예술의전당 대극장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외

백진현/대구시향(협연 김한)
9월 15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K 622,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이승원/대전시향(협연 김영욱·이승원)
10월 16일 오후 7시 30분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모차르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K 364,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테오도르 쿠렌치스/유토피아 오케스트라 (협연 다니엘 로자코비치·알렉산더 멜니코프)
11.17·18일 롯데콘서트홀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피아노 협주곡 2번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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