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먼 레브레히트 칼럼 |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을 만나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2월 23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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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평론가가 보내온 세계 음악계 동향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을 만나다

인생의 전환점을 지나는 목소리의 거장과 나눈 소소한 이야기

 

 

요나스 카우프만은 녹음용 기기가 좀처럼 작동하지 않자 애를 먹고 있었다. 지난밤 ‘토스카’ 공연으로 인해 헝클어진 머리와 구겨진 보스(Boss) 티셔츠 차림으로 등장한 그는 계속해서 기기를 껐다 켜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다른 가수들이라면 짜증을 터뜨렸을 법한 상황이었지만, 카우프만은 잠시 양해를 구하고 옆방으로 가서 해결책을 찾아 돌아왔다.

과거 ‘토스카’ 공연에서 상대 배우가 제때 등장하지 않자 “Non abbiamo il soprano(소프라노가 없네요)”라고 노래하기도 했던 그는 무대 공연자 중에서도 침착하기로 손꼽힌다. 카우프만을 당황하게 할만한 건 딱히 없어 보인다. 평정을 잃어본 적이 있냐고 묻자, 그는 (4초 정도의 침묵 후) 20대 때 한번 집에서 침대를 발로 찬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그때는 보험 중개인이었던 아버지 쿠르트 카우프만이 그에게 수학을 전공해 제대로 된 직장을 얻으라고 압박하던 힘든 시기였다. 독일의 소도시 레겐스부르크에서 배역을 따냈지만, 그가 가수로 데뷔하기 전 아버지는 의료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카우프만은 그저 이렇게 덧붙였다. “아버지는 제 결정에 언짢아하셨어요. 가수로서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셨죠.”

 

스타가 되기 전, 그는 그늘에 있었다

단역에서 시작해 2006년 전 세계의 러브콜을 받는 테너로 도약하기까지 카우프만은 오랜 시간을 그늘에서 기다렸다. 미국 뉴욕의 ‘니벨룽의 반지’ 시리즈는 그가 맡은 지그문트 역에 맞춰 계획되었다.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성공을 거머쥔 그는 이탈리아의 베르디와 푸치니를 낙으로 삼았고, 프랑스 작곡가 마스네의 ‘베르테르’에서도 뜻밖의 즐거움을 맛본다. 2015년 독일인 최초로 영국 BBC 프롬스의 하이라이트 ‘프롬스의 마지막 밤’ 무대에 선 카우프만은 묘한 미소를 띤 채 ‘지배하라 브리타니아여!’(편집자 주_영국의 군가로 비공식 국가로 쓰인다)를 불렀다.

이제 50대 중반이 된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통과하고 있다. ‘BBC 라디오 3’에 송출될 인터뷰 녹음 도중 카우프만은 다시는 영국 땅에서 오페라를 노래할 계획이 없다는 작은 폭탄 발언을 했다. 카우프만답게 미소를 띠고 말했다. “저는 꽤 외교적입니다.” 본인이 정말 좋은 사람인지 아니면 좋은 사람 흉내를 내고 있는 건지 되묻자, 카우프만이 괴로운 표정으로 항변했다. “아니요, 이게 제 모습이에요. 차라리 우리 집에 한 번 오세요. 그러면 이해가 되겠죠. 어쩔 수가 없잖아요.”

카우프만은 커리어 초기에 독일 자르브뤼켄에서 지냈는데, 아내가 주역을 맡는 동안 자신은 공석이 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자립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노예처럼 제 필요 여부를 확인하느라 오후 2시까지 서성거리며 대기해야만 했어요.” 넋두리가 생생했다. 그러다 2006년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라 트라비아타’,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의 ‘카르멘’이 그의 운명을 뒤바꿔 놓았다. 희극은 물론 극적인 오페라에 능하며 독일어·이탈리아어·프랑스어가 모두 가능한 그는 감독의 뮤즈였다. 카우프만은 지루할지라도 새로운 역할을 계속해서 배워나갔다. “처음 열 번의 공연에서는 하이 C음을 걱정했죠. 그다음 열 번은 이미 많이 해본 상황이라 지루하기만 했고요. 그러다 그다음 열 번에 이르자 새로운 시도가 가능해졌고, 노예처럼 얽매이지 않게 됐어요.”

 

연주자들이 겪는 부당한 처사

카우프만은 연주자와 수년 전에 성사하는 사전 계약 체계에 의존하는 공연계 방식에 넌더리를 냈다. “예술가의 삶과는 정반대의 체계죠.” 그가 덧붙였다. “화가에게 향후 5년간 그릴 주제를 선택해 보라 하면 웃고 말 겁니다. 당장 석 달 뒤에 무엇을 할지도 모를 텐데. 화가에게는 창작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우리 업계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건 꽤 어렵고 제한적입니다. 저는 더 이상 제한에 순응할 필요가 없어요. 5년 후의 공연에 대한 계약에는 사인하지 않을 겁니다.”

카우프만은 어떻게 체계를 바꿀까? 그는 한숨과 함께 말을 이어갔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좋은 때도 있었습니다. 루돌프 빙(총감독)은 초연 후에 가수들과 공연장 건너편에 둘러앉아 다음 시즌에 뭘 하고 싶은지 논의했죠. 가수들도 모두 참여했고요. 다 함께 만들어 간다는 짜릿함이 있었어요. 그때는 중도 하차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시절은 이제 과거가 되었고, 카우프만은 더 이상 그곳에 가지 않는다. “팬데믹 시기에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매우 실망했습니다. 음악가들은 급여를 받지 못해서 뉴욕 외곽으로 이사하거나 부모님 집으로 돌아가야 했어요. 실황 중계 공연에서 제가 청취자들에게 기부해달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그마저도 잘되지 않았고요.”

 

애증의 관계인 영국의 오페라계

코번트 가든에 서지 않겠다는 결심은 갑작스레 찾아왔다. 독일 뮌헨과 오스트리아 빈에서 큰 호응을 얻은 ‘피터 그라임스’의 런던 무대에 설 계획은 없냐고 묻자 간결한 답이 돌아왔다. “런던에서 그 무대에 설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카우프만은 한때 안토니오 파파노와의 협업을 좋아했으나 “파파노가 코번트 가든을 떠난 뒤 출연작이 확실히 적어졌다”라며, 관계 때문이 아니라 급여가 원인이라 말했다. “런던의 터무니없이 비싼 주거비용과 요금을 보면 어떻게 생활이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런던이란 도시는 돈을 지급해야만 돌아가는 하나의 프로젝트 같아요.”

이 말은 경종을 울린다. 런던이 생활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인기 스타들은 카우프만 말고도 더 있고, 시즌은 거듭될수록 생기를 잃어 가는 듯하다. “예술가들이 제대로 된 보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조용히 덧붙였다. “제 말의 행간을 읽으셨겠죠?” 어쨌든 지금 카우프만의 일정 속에 영국이 존재하지 않는다.

‘피터 그라임스’가 그를 벤저민 브리튼의 음악으로 이끌었기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카우프만은 “앞으로 ‘빌리 버드’(편집자 주_브리튼 작, 억울하게 반란죄와 살인죄로 기소된 후 자살하는 해병 이야기)에 참여할 예정입니다”라며 소식을 전하고 재빠르게 덧붙였다. “제 연기가 굉장히 사실적이라서 아내는 우리 아들이 절대 그 공연을 보면 안 된다고 하더군요.” ‘빌리 버드’는 전원 남성 출연진으로 구성된 바다와 폭력의 서사시이다. 짐작건대 그는 초연 당시 피터 피어스가 분했던 선장 배역을 맡을 테니,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겠다.

 

그리고 축제 예술감독으로서의 고민

안나 네트렙코

코로나19 시기에 카우프만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거처를 옮기고 시민권을 얻었다. 그는 현재 오스트리아 티롤 지역에서 연간 2회 개최되는 에를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한때는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서 연줄을 동원하고 부탁을 해야 했습니다. 일단 금액이 금액인지라… 모두를 만족시키는 최상을 선보여야만 하죠.”

카우프만이 줄곧 능숙하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라고 답하기에, 친절한 예술가에서 계산적인 페스티벌 감독으로 변모하고 있는 건 아니냐며 농담을 건넸다. 요즘 그는 러시아인 가수들과 까다로운 계약을 두고 씨름하는 중이었다. “문제가 될 여권을 소지한 것은 그들 잘못도 아니고, 시간이 없어요.” 그가 덧붙였다. “5년간 성대를 안 쓸 수는 없지 않습니까? 과거에야 예술가에게 중립을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지만, 이번 전쟁에서는 누구 하나 빠짐없이 어느 쪽에 설 지를 선택해야 하죠.”

카우프만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안나 네트렙코(1971~), 그리고 최근 푸틴 대통령에게 직접 러시아 인민예술가상을 받은 크렘린궁 고문이자 떠오르는 베이스 일다르 압드라자코프(1976~)이다. “네트렙코는 초청할 겁니다.” 그녀는 이미 모스크바와 연이 끊어졌다고 주장하며 그가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실수를 좀 했을지는 몰라도 네트렙코는 분명 진영을 선택했고, 그것도 이미 수년 전의 일입니다. 일다르 또한 선택을 했고요. 저는 그를 잘 알고 왜 그쪽을 선택했는지도 압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에요. 푸틴과 너무 가까워졌으니까요.”

카우프만은 현시대가 가수들의 황금기 그 끝자락이라고 생각한다. 임금은 동결되고 음반은 팔리지 않는다. “다음 세대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죠. 젊은 음악가에게는 정말 간절한 경우에만 음악을 하라고 말합니다. 생계를 유지할 기회는 1,000분의 1 확률에 그치니까요.”

번역 evener

 


 

노먼 레브레히트 칼럼의 영어 원문을 함께 제공합니다.

본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Jonas Kaufmann can’t get his machine to work as back-up for our recording. His hair is unkempt from last night’s Tosca and he’s wearing a rumpled T-shirt marked “Boss”. He switches the device on, off and on again. But where other singers might throw a wobbly, Kaufmann excuses himself for a moment, goes into the next room and returns with a tech solution.

He is the calmest of stage performers, the one who sang “Non abbiamo il soprano” (we have no soprano) when his Tosca co-star failed to enter on cue. Nothing seems to faze him. When I ask if he has ever lost his cool he recalls (after a four-beat pause) that once, in his twenties, he kicked the leg off a bed at home.

This was in his crisis years when his insurance broker father Kurt was pressuring him to study maths and get a proper job. Jonas landed a smalltown role in Regensburg. Before he could make his debut, Kurt died after a medical accident. “My father was not very happy with my decision,” is all Kaufmann will say. “He didn’t see a future in it for me.”

He had a long wait in the shadows before he soared from also-sang to the world’s most sought-after tenor in 2006. A New York Ring cycle was planned around his Siegmund. He triumphed at Bayreuth. Verdi and Puccini were his meat and drink, Massenet an unexpected delight. In 2015 he became the first German to top the Last Night of the Proms, singing Rule, Britannia! with a wry grin.

Now, mid-fifties, he is at a turning point. And in our interview, to be broadcast on Radio 3, he drops a small bombshell, saying he has no plans to sing opera ever again in this country. Being Kaufmann, he smiles as he says it: “I am very diplomatic.” I push back: is he really a nice guy or is he just playing a role? Kaufmann puts on a pained look. “No, this is me,” he protests. “Come to my home: you’ll see this is me, what can I say? I can’t help it.”

He says he learnt to fend for himself early on at provincial Saarbrücken, where his wife was given lead roles and he was kept waiting for cancellations. “I had to hang around until 2pm like a slave to see if I was needed or not,” he complains. A 2006 production of La traviata at the Metropolitan Opera and a Covent Garden Carmen transformed his fortunes. He was a director’s dream — adept at comic and dramatic opera, German, Italian and French. He kept learning new roles, tedious as that might be. “The first ten shows you are worried about not getting the high C. The next ten you are completely bored because you have done it so many times. What’s great is that in the third set of shows you can actually try things and not be a slave.”

He now hates the system that relies on booking artists years in advance. “It is against the idea of being an artist,” he says. “Ask a painter to choose his themes for five years’ time and he is going to laugh because he doesn’t even know what he’ll do in three months. He needs that creative process. In our business creativity is very difficult and limited. I don’t have [to accept that] any more. I refuse to accept contracts five years ahead.”

How would he change the system? “In the good old times at the Met,” he says with a sigh, “Rudolf Bing would gather singers across the street after opening night and discuss what they’d like to do next season. The singers were involved. There was a thrill that you created things together. It was very unlikely anyone in that cast would pull out.”

The Met is now history: he won’t go there again. “I felt very bad about how they treated the chorus and orchestra in the pandemic. They didn’t get paid at all. Musicians had to move out of New York or move in with their parents. I did a live-streamed concert and asked listeners to donate. That didn’t go down well.”

His Covent Garden decision comes out of the blue. I ask about a Peter Grimes he sang to great effect in Munich and Vienna. Will he sing it here? “No one in London has made that call,” he says tersely. He once loved working with Antonio Pappano but “after Tony left Covent Garden my active work is definitely less”. It’s not about the relationship, he says, it’s the pay. “In London you see the fees and you see the outrageous cost of renting an apartment, I don’t know how you do it. In London it’s a project where you have to bring the money.”

This ought to ring fire bells. Kaufmann is not the only box-office draw who finds London non-viable. Each season looks less starry than the last. “I feel we have to be paid for what we do,” he says, sotto voce. “Do you hear what I am saying between the lines?” As things stand, he has no further UK roles in his diary.

Which is a pity since Grimes made him embrace the music of Benjamin Britten. “Next step will be to take part in Billy Budd,” he reveals, adding quickly: “My wife said, our son should never see that because I always do things so realistically.” Budd is an all-male saga of violence at sea. Kaufmann would presumably take the captain’s role, first intended for Peter Pears. Looks like we are going to miss that.

During Covid he moved to Salzburg, taking Austrian citizenship. He is now artistic director at Erl, a twice-yearly Tyrolean festival. “I had to pull strings and ask favours to get people to come — once. As soon as they see the fees … we have to offer a quality that pleases everyone.”

He has taken to answering me with “yes — and no” so I tease him that he’s morphing from open-hearted artist to calculating festival manager. Right now he is wrestling with the tricky issue of hiring Russian singers. “It’s not their fault they have the wrong passport, and time is ticking,” he says. “You cannot freeze your vocal cords for five years. In former times artists had the privilege to be neutral. With this war everyone needs to take a side.”

His main headaches are Anna Netrebko and the imposing bass Ildar Abdrazakov, a Kremlin adviser recently awarded People’s Artist of Russia by Putin himself. “I would invite Anna,” he says firmly, arguing that she has detached herself from Moscow. “She has made some mistakes but she definitely has chosen sides, some years ago now. Ildar has also chosen. I know him well and I know why he chose that side but he has burnt his bridges. He’s way too close to Putin.”

Kaufmann believes we are at the end of a golden age for singers. Fees are frozen and records don’t sell. “I feel so sorry for next generation,” he says. “I tell young musicians: only do it if you are burning for it. It’s a one-in-a-thousand chance to make a living.

 

 

노먼 레브레히트

영국의 음악·문화 평론가이자 소설가. ‘텔레그래프’지, ‘스탠더즈’지 등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블로그(www.slippedisc.com)를 통해 음악계 뉴스를 발 빠르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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