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STIVAL FOCUS
파안 박영희 음악제 예술감독 임헌정
고향으로 돌아온 음악
청주 출신 작곡가 박영희의 작품들을
‘음악유산’으로 전환시킬 축제가 시작된다

지역을 대표하는 예술가를 어떻게 기억하고, 그 기억을 어떻게 현재의 문화적 자산으로 만들어갈 것인가. 청주 출신 재독 작곡가 박영희(1945~)를 중심으로 출범한 파안 박영희 음악제(이하 음악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한 사람의 예술적 생애를 어떻게 그의 고향과 다시 연결할 것인가. 10월 15일부터 18일까지 나흘간 청주예술의전당·청주아트홀·아트센터 올리브에서 열리는 이번 파안 박영희 음악제의 부제는 ‘고향으로’다. 이 두 단어는 올해 음악제의 성격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예술감독 임헌정(1953~)이 있다.
윤이상과는 또 다른 개성의 재독 음악가
음악제의 메인콘서트는 10월 16일 청주아트홀에서 열린다. 임헌정이 이끄는 청주박영희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를 연주하며, 바이올리니스트 장유진이 협연자로 나선다. 여기에 박영희의 ‘별빛 속에서(Im Sternenlicht)’가 새로운 모습으로 무대에 오른다.
원래 ‘별빛 속에서’는 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바이올린·비올라·첼로를 위한 6중주곡이다. 이번 음악제에서는 이를 관현악 버전으로 선보이는데, 편곡과 지휘를 임헌정이 직접 맡았다는 점은 이번 연주의 의미를 더욱 각별하게 만든다.
“박영희의 작품은 같은 독일 무대에서 활동한 윤이상과는 달리 전통 궁중음악에 기반을 두지도 않았고, 이영조나 이병욱처럼 서민들의 삶과 서정성과도 연결되지 않은, 표현론적·절대론적 관점에서의 경지입니다. 박영희의 음악 세계가 비교적 선명하게 응축된 작품을 찾던 중 ‘별빛 속에서’를 관현악으로 확장하는 방식을 택했지요.” 이 선택은 단순한 편곡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지난해 충북도립교향악단 단원들의 실내악 연주로 무대에 오른 작품을 올해 관현악이라는 보다 큰 음향적 공간으로 옮겨놓음으로써 관객은 같은 작품이 악기 편성과 음향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다른 얼굴을 갖게 되는지를 비교해 들을 수 있게 됐다. 작곡가의 원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음향적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박영희의 작품을 ‘과거의 유산’으로 고정하지 않은 채 현재의 연주자와 지휘자의 언어를 통해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 이번 ‘별빛 속에서’의 관현악 버전은 바로 그 지점에서 파안 박영희 음악제의 존재 이유를 보여준다.
청주 출신 연주자들이 모인 오케스트라
“고향이라는 공통분모 위에서, 청주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음악인들로 청주박영희페스티벌오케스트라라는 단체를 구성해 출향 예술인들을 고향으로 달려오도록 했다”라고 임헌정은 설명한다. ‘고향으로’는 박영희를 청주로 불러들이는 일이면서 동시에 청주 출신 음악인들을 다시 청주로 불러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박영희라는 한 명의 작곡가가 일종의 구심점이 되어, 청주에서 태어나거나 청주와 인연을 맺은 음악인들이 하나의 음악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청주시립교향악단 악장을 역임하고 충북도립교향악단 제3대 예술감독 겸 지휘자를 지낸 바이올리니스트 양승돈을 주축으로, 충북도립교향악단 악장 고성헌과 숙명여자대학교 교수인 첼리스트 채희철도 이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협연자 장유진 역시 청주가 배출한 바이올리니스트로 현재 미국 이스트만 음악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아트센터 올리브에서 작품 발표를 갖는 신지수 역시 청주 출신이다.
임헌정이 만드는 또 하나의 음악적 상징
임헌정이 자신의 음악적 뿌리와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고향을 자주 이야기해 왔다는 사실은 올해 음악제의 방향과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서 임헌정이라는 이름은 말러와 브루크너를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이끌며 1999년부터 2003년까지 국내 최초로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에 이어 2007년부터 2013년까지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시리즈를 완주한 그의 작업은 한국 오케스트라 문화에서 하나의 이정표로 평가받아 왔다. 한때 포디움 위에서 말러와 브루크너를 지휘하던 그의 모습을 보며 음악인의 꿈을 키운 후학의 입장에서, 언젠가 다시 임헌정의 브루크너와 말러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아바도가 병마를 이겨내고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말러를 연주했던 것처럼, 첼리비다케가 말년에 뮌헨 필하모닉과 브루크너의 세계를 완성해 갔던 것처럼, 임헌정 역시 자신의 음악적 여정에서 다시 한번 말러와 브루크너의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이에 대해 임헌정은 신앙인답게 짧고도 겸손하게 답했다. “신이 허락한다면.”
그 한마디에는 음악가로서의 긴 여정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가 담겨 있다. 음악적 성취를 자신의 의지만으로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음악의 시간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이번 파안 박영희 음악제 역시 단순히 한 해에 그치는 행사에 머물지 않고 청주의 새로운 음악적 상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다. 10월 16일 청주아트홀에서 울려 퍼질 ‘별빛 속에서’는 지난해의 별빛을 다시 비추는 연주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별빛 아래에는 박영희와 임헌정, 그리고 청주에서 태어나 세계로 나아간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음악인들이 함께 서게 된다.
글 성용원(작곡가) 사진 청주문화재단
임헌정(1953~) 서울대 음대 작곡과를 졸업한 후, 매네스·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작곡 및 지휘를 전공했다. 제14회 동아음악콩쿠르 작곡 부문으로는 최초로 대상을 수상했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역임했으며, 부천필과의 브루크너 교향곡 음반으로 2017년 브루크너 소사이어티 아메리카가 선정한 ‘올해의 음반상’을 받았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역임했고, 현재 충북도립교향악단 예술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파안 박영희 음악제
10월 15일 특별연주회(청주예술의전당 대공연장)
박영희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10월 16일 메인콘서트(청주아트홀)
박영희 ‘별빛 속에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협연 장유진),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10월 17일 기획연주회 I(아트센터 올리브)
박영희 ‘만남’ ‘Stuff #2A’ ‘이면의 궤적’ 외
10월 18일 기획연주회 II(청주예술의전당 소공연장)
박영희 ‘기다려라’ ‘타령 3’ ‘길 위의 천국’ ‘파문’
작곡가 파안 박영희

ⓒKBS
약력
◐ 1945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1가 181에서 출생
◐ 청주중앙초·청주여중·청주여고·서울대 작곡과 및 동대학원 졸업
◐ 1974년 독일 프라이부르크 음대 입학
◐ 1978년 제5회 스위스 보스빌 작곡 콩쿠르 1위(창작곡 ‘만남’)
◐ 1979년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작곡콩쿠르 1위
◐ 1980년 도나우에싱엔 현대음악제 위촉·초연(오케스트라를 위한 ‘소리’)
◐ 1991년 오스트리아 그라츠 음대 초빙교수
◐ 1992년 독일 칼스루에 음대 초빙교수
◐ 1994~2011년 독일 브레멘 음대 작곡과 주임교수, 부총장
◐ 1995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여성예술인상(동양인 최초 수상)
◐ 2009년 독일 베를린 예술원 회원 위촉
◐ 2016년 제1회 국제 박영희 작곡상 제정(주독일한국문화원)
◐ 2017년 제1회 파안 생명나무작곡가 작곡상 제정(한국작곡가협회)

©KBS
수상내역
난파음악상(1979), ‘자랑스러운 서울대인’(2006), 국민훈장 석류장(2007), KBS 해외동포상(2008), 브레멘시 예술 및 학술 공로상(2011), 한양대학교 백남상 음악부문(2013), 1호 명예통합청주시민(2014), 대원음악상(2017), 독일작곡가협회 FEM-Nadel상(2018), 베를린 예술대상(2020), 독일정부 ‘연방공로십자훈장 1등급’(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