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혁명의 불길로 잿더미가 된다 하더라도 이 작품은 목숨을 걸고 구해내야 한다.”
1948년,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공연에 처음으로 참석한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미하일 바쿠닌은 감격하여 벌떡 일어나 부르짖었다. 실로 그러하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은 원대한 예언적 메시지로 충일한 프로메테우스의 영원불멸한 횃불이다. 워낙 해석의 다양성이 광활한 곡이라 연주적 측면에서 끊임없이 진화했다. 그 변천상을 시대순으로 되짚어보기로 한다.
20세기 초만 해도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연주는 1876년 개최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개막 기념 콘서트에서 이 대작을 무대에 올린 리하르트 바그너의 영향권에 속해 있었다. 즉 연주 효과를 높이기 위해 무수한 문제를 안고 있는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 출판사의 구 전집판 악보에 이런저런 첨삭을 가한 것이다. 극단적인 가속과 감속을 통해 살아 유동하는 유기체로서의 음악을 설계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나 빌럼 멩엘베르흐는 물론이요, 객관을 기치로 내세운 펠릭스 바인가르트너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도 예외는 아니었다. 효과적으로 들린다면 스코어를 고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심지어 한 세대 뒤의 거장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도 푸르트벵글러처럼 1악장 발전부에서 팀파니를 두 대로 보강했다.
그렇다고 모든 지휘자가 오케스트레이션을 손보는 데 열을 올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음악 한가운데 위치한 핵심을 추적하고자 합니다.”
헤르만 셰르헨은 주어진 소재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1951년에서 1954년 사이 녹음한 베토벤 교향곡 전집(Westminster)에 포함된 빈 국립극장 관현악단을 지휘한 교향곡 9번 ‘합창’ 1953년 스튜디오반이나 스위스 이탈리아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한 교향곡 9번 ‘합창’ 1965년 라이브 레코딩(Platz)에서 그는 신즉물주의에 입각한 냉철한 베토벤 상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3악장을 11분 57초에 주파하는 후자의 연주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이러한 접근 스타일은 같은 12음 음악의 사도 르네 라이보비츠가 로열 필하모닉을 지휘한 1961년 녹음(Chesky)이나 미하엘 길렌이 바덴바덴 프라이부르크 남서독일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한 디스크 및 필름(Intercord·EuroArts)과 직결된다.
1980년대를 전후로 해서 작곡가 생전에 쓰인 오케스트라 악기들을 사용한 이른바 당대악기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연주와 레코드들이 새로운 붐을 이루기 시작했다. 1986년에서 1988년 사이 런던 클래시컬 플레이어스와 교향곡 전곡을 녹음한 로저 노링턴이 그 효시라면, 1983년에서 1988년 사이 아카데미 오브 에인션트 뮤직과 교향곡 전곡을 녹음한 크리스토퍼 호그우드도 주목할 만하다. 노링턴은 내추럴 트럼펫과 관 내경이 가는 트럼본을 채용하여 2002년 슈투트가르트 방송교향악단과 교향곡 9번 ‘합창’ 외 베토벤 교향곡 사이클에 재도전했다. 고음악의 거인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또한 1991년,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혈기왕성한 베토벤 9번 ‘합창’을 레코딩하며 지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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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한 예언적 메시지가 담긴
베토벤 교향곡 ‘합창?은 광활하고도 다양한 해석으로 변모해왔다
“베렌라이터 에디션 등장으로 인한 혁명적 전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진정한 연주 혁명은 1996년 영국의 음악학자 겸 지휘자인 조너선 델 마가 베를린·본·파리 등지에 분산되어 있는 자필보의 음형과 메트로놈 지시를 세세하게 복구한 베렌라이터 출판사 간행본이 정식으로 등장한 때부터다. 정식 출판되기 전 베렌라이터 에디션 중 일부를 취한 존 엘리엇 가드너/혁명과 낭만 오케스트라의 1992년 레코딩(Archiv)이 발매되어 일약 각광을 받았다. 찰스 매커러스의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 1991년 스튜디오 레코딩(EMI)이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2006년 에든버러 페스티벌 라이브(Hyperion)도 동일한 맥락의 호연이다. 데이비드 진먼은 1997년에서 1998년 사이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와 현대악기에 의한 첫 번째 베렌라이터 신전집판 베토벤 사이클을 녹음하여 돌풍을 일으켰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어프로치를 옹호하는 지휘자들이 호락호락 밀려나지는 않았다. 사이먼 래틀과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원본을 지지하는 반면, 다니엘 바렌보임은 이를 완고히 무시했다. 그는 1999년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와 함께, 2011년에는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와 두 차례에 걸쳐 올드 패턴의 중후하면서도 강건한 베토벤 사이클을 녹음하여 자신의 가치관을 확고하게 주장했다. 교향곡 9번 ‘합창’(Teldec·Decca) 역시 스케일이 웅장하다. 2008년에서 2009년 사이 크리스티안 틸레만은 빈 필하모닉을 지휘한 블루레이 및 DVD 영상으로 베토벤 교향곡 전집(Unitel)을 내놓아 찬반 양론의 주인공이 되었다. 억센 악센트를 초지일관 끈덕지게 고수하고 있는 교향곡 ‘합창’도 헤비급 연주다.
최근 특별히 화제를 모은 ‘합창’은 신세대 명장으로 한창 인기몰이 중에 있는 파보 예르비의 디스크와 영상일 것이다. 2005~2008년 도이치 카머필하모니 브레멘을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전집(RCA)은 낱장 앨범으로 하나하나 출시될 때마다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소편성 오케스트라라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만큼 폭발적인 에너지와 카를로스 클라이버를 방불케 하는 펄떡펄떡 뛰는 듯 생동감 넘치는 리듬, 치밀한 다이내믹으로 청자를 매료시키는 데 성공했다. 2009년 9월 9~12일 사이 독일 본에서 열린 베토벤 음악제 콘서트 실황을 촬영한 DVD 세트에서도 교향곡 9번 ‘합창’의 연주 수준은 참으로 걸출했다. 한편으로 리카르도 샤이가 2007~2009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전집(Decca)은 음악학자 페터 귈케가 편집한 페터스 음악출판사 에디션을 베이스로 한 절충판을 채택한 사이클로 시원스레 쾌속 질주하는 교향곡 9번 ‘합창’이 발군이었다.
최근에 레코딩된 베토벤 교향곡 전집은 마리스 얀손스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한 2012년 실황(BR-Kassik)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네 곡을 공연하여 애호가로부터 격찬을 받았던 사이클로 2012년 10~11월 뮌헨 헤르쿨레스홀과 도쿄 산토리홀에서 가진 연주회를 실황으로 담은 것이다. 안정적이면서도 열정으로 가득한 세트로 교향곡 9번 ‘합창’은 로마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위한 2007년 바티칸 홀 라이브(BR-Kassik)가 별도로 발매되어 있다.
글 이영진(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