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냐코프 연출 ‘돈 조반니’ 2010년 엑상프로방스 실황

작은 서재에 응집된 추악함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2월 1일 12:00 오전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의 중심은 대주교가 사용하던 궁전 안뜰에 자리 잡은 아담한 야외극장인 유서 깊은 라르슈베셰 극장이다. 그러나 무대도 작고 백 스테이지가 없어서 세트를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니 공연 내내 같은 세트에서 펼쳐지는 실험적 연극 스타일로 오페라 한 편을 봐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2007년 프로방스 대극장이 준공되었지만 아직도 엑상프로방스를 찾는 관객들은 라르슈베셰에서 오페라를 보고 싶어 하기 때문에 여전히 페스티벌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2010년 실황인 ‘돈 조반니’는 러시아 최고의 극장 연출가로 각광받고 있는 드미트리 체르냐코프 프로덕션이다. 무대가 시종 부잣집 서재로 한정되어 있으므로 엑상프로방스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무대 전환이 가능한 레알 마드리드 극장, 볼쇼이 극장 등의 공동 프로덕션인 것을 보면 의도적으로 공간을 제한한 체르냐코프의 야심작이라 할 것이다.
체르냐코프는 돈 조반니가 2천 명이 넘는 여인을 정복했다는 레포렐로의 ‘카탈로그의 노래’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대신 성범죄의 다수가 친족 혹은 지인 사이에 벌어진다는 암울한 사실을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낸다. 서곡이 연주되는 동안 대저택의 서재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하인들이 꽃단장을 하는 가운데 기사장이 자리를 잡고 앉으면 돈나 안나가 돈 오타비오를 데리고 오는데, 그녀는 원래대로 기사장의 딸이지만 나이는 이미 중년이다. 돈 오타비오는 그녀가 재혼하려는 남자다. 돈나 엘비라가 남편 돈 조반니를 데리고 온다. 엘비라가 돈나 안나의 사촌이라는 설정은 연출가의 아이디어지만 돈 조반니가 남편이라는 것은 원래 대본에 나오는 이야기다. 돈 조반니가 혼인을 빙자하여 엘비라를 유혹했고, 이 때문에 엘비라는 돈 조반니를 남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체를리나가 약혼자인 마제토와 함께 등장한다. 최근 연출 경향과 달리 체를리나는 철이 덜 들고 남자의 유혹에 잘 넘어가는 어린 처녀이며, 돈나 안나가 첫 결혼에서 얻은 딸로 설명된다. 그렇다면 돈 조반니는 아내의 숙부 집에서 그 집 딸과 손녀를 어떻게 해보려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사장이 살해당하고, 엘비라와는 헤어지고, 돈나 안나의 의심이 시작된 후에도 돈 조반니가 이 집 서재를 들락거린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이 모순은 레포렐로가 기사장의 친척으로 이 집에 기거한다는 설정으로 해결한다. 돈 조반니를 숭배하는 젊은이이기에 그를 수시로 집안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돈나 안나가 남자다운 돈 조반니에게 끌린다는 것은 이미 다른 연출에서도 자주 시도된 바니 별로 참신할 것이 없다. 그러나 돈 조반니가 1막부터 기사장의 유령을 본 듯한 환영에 시달리는 것은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효과가 크다. 기사장의 유령은 2막 말미에 돈 조반니가 초대한 만찬에 환한 조명을 받는 가운데 나타나 탁자의 주인석에 당당하게 자리를 잡는다. 그 앞에 일가친척들이 한자리씩 차지한다. 돈 조반니의 최후, 그리고 현실의 인물로 다시 나타난 기사장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스포일러가 될 것 같다. 화려한 출연진의 혼신의 열연과 가창이 인상적이며, 체르냐코프의 연출은 칼릭스토 비에이토·마르틴 쿠셰이·클라우스 구트에 견줄 만한 충격적인 프로덕션으로 기억할 만하다.

글 유형종(음악 칼럼니스트)


▲ 스코우후스(돈 조반니)/케텔슨(레포렐로)/페테르젠(돈나 안나)/오폴라이스(돈나 엘비라)/아베모(체를리나)/루이스 랑그레(지휘)/프라이부르크 바로크오케스트라
BelAir BAC 080 (16:9/5.1 Dolby Digital/183분/2 DV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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