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는 보이지 않는다. 손으로 잡을 수도 없다. 때로는 귓가에 닿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누군가의 마음을 이끄는 울림 역시 ‘소리’이고, 그 자신이 지니고 또한 보여야 할 것 역시 ‘소리’의 한 모양이라는 것을 말이다. 배우 김다현에게 무대는 ‘소리’를 따라 걷는 인생길이다. 길 위에서 그는 언제나 새로움을 마주했고, 진정성을 길어 올렸다. 소리를 찾아서, 소리가 이끄는 대로 자유로이 걸어가는 김다현의 길은 그래서 늘 아름답다.
뮤지컬 무대에 선 지 10년. 처음 김다현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그룹 야다의 리드보컬’이라는 수식어와 함께였다. 음악 공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가수 활동. 소리에 대한 호기심이 그를 이끈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어릴 적부터 꿈꿔온 뮤지컬 배우에 대한 열망을 한 번도 놓은 적이 없다. 계원예고 연극과·단국대 연극영화학과 동창들과 자주 만났고, 늘 그들의 공연을 보러 갈 때면 뮤지컬 무대에 대한 갈증이 샘솟곤 했다.
2003년, 김다현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역으로 뮤지컬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베르테르 역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그를 무대 위에 세웠다. 그리고 9년 뒤인 2012년, 그는 다시 베르테르의 순수한 열정으로 무대를 빛내고 있었다. “베르테르의 마음으로 사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감수성의 색채도 비슷하죠. 다만 표현력이 달라졌어요. 지금은 여러 작품을 통해서 쌓은 노하우 덕분에 스스로도 표현의 깊이가 더 깊어졌다고 느끼고 있죠.” 걸음걸이나 표정, 눈빛 하나까지 세세하게 신경 쓰는 그의 모습은 무대 위 깊은 흡입력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통해 성공적으로 데뷔한 김다현은 2004년 창작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소나기’ 무대에 연달아 오르며, 창작뮤지컬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맞서는 성격이에요. 성공이든 실패든, 득이든 실이든 따지기보단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는 편이죠. 당시 두 작품은 저 스스로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어요. 그리고 한국인이 갖고 있는 감성을 가장 잘 표현해내는 창작뮤지컬의 매력을 깨닫는 계기였죠.”
같은 해 그는 ‘페임’의 닉 역으로 무대에 올랐다. 예술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작품에서 그는 연극반 반장을 지냈던 계원예고 학생 시절을 회상하며, 열정과 도전정신 가득한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제 모습과 비슷한 부분이 많았어요. 실제로 고등학생 때 ‘페임’의 넘버들을 즐겨 듣기도 했고요. 연기에 대한 순진하고 진지한 열정을 되새기며 임했죠.” 맡은 자리를 묵묵히 지켜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그에게 큰 힘이 되어준 순간이다.
2006년 미국식 복고 코미디가 인상적인 ‘프로듀서스’에서 레오 역으로 캐스팅된 김다현. 당시 공연계에는 미국식 코미디 코드가 국내에서 통할 것인가를 두고 우려의 말들이 많았다. “생각해보면 관객이 받아들이기엔 좀 이른 작품이 아니었나 싶어요. 한국식으로 바꾸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저를 비롯해 함께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대로 하는 것이 옳다는 데 뜻을 모았죠. 작품을 시작하고 나서는 ‘재밌게 놀자’라는 주문을 걸고 무대 위를 활보했어요. 무엇보다 외국 스태프들이 소품 하나, 동선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지켜보며 탄복할 수밖에 없었죠.” 무대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야를 만들어준 ‘프로듀서스’는 그가 다시 한 번 서고 싶은 작품이기도 하다. 같은 해 ‘폴 인 러브’에서 바람둥이 재영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김다현은 제12회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신인상을 수상하며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자신 안에 내재된 가능성을 믿고 다양한 캐릭터를 치열하게 다듬어낸 이에게 주어진 칭찬과 격려였다. “뮤지컬 배우가 꿈이었는데, 신인상을 받아 그 꿈을 이룬 것 같다고 수상 소감을 말했던 기억이 나요. 이제는 다음 꿈을 이루기 위해 전진해야겠죠. 작품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는 배우가 되는 게 목표에요.”
작품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전하려는 그의 마음은 ‘헤드윅’에서 이미 짙게 나타나고 있었다. 2004·2005·2007·2008년 무대에 오르며 ‘다드윅’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니는 동안 김다현은 인간의 심연 그 깊숙한 곳까지 내려갔다. “지금까지도 ‘헤드윅’ 넘버를 들으면서 옛날 감성을 떠올리곤 해요. 제가 정말 사랑하는 작품이죠. 첫 시즌 때는 ‘헤드윅’을 알아가는 과정이었어요. 두 번째는 ‘헤드윅’에 확신을 가졌고요. 그런데 세 번째부터는 내가 알고 있는 것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헤드윅’에는 한 인간의 밑바닥부터 극한 상황까지의 희로애락이 담겨져 있잖아요. 자신의 콤플렉스, 토미에 대한 집착, 음악으로의 승화, 이게 끝은 아닐 것 같더라고요. 무대에 서면서 그걸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정답은 간단하더라고요. 헤드윅이 말하는 ‘내 이야기를 시작해볼게, 잘 들어봐’라는 대사가 단서였죠.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들려주는 것. 음악과 대사와 온몸으로 그 인생을 전하는 것이 제가 헤드윅을 통해 만나고, 또 관객에게 전해야 할 이야기더라고요.” 마음을 울리는 소리, 마음이 이끄는 소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기에 그는 비로소 무대 위에서 진정성이라는 열쇠를 손에 쥘 수 있었다.
2008년 국내 첫 무비컬 작품인 ‘라디오 스타’에서 그는 한물 간 스타 가수 최곤 역을 맡았다. 그룹 ‘야다’의 보컬로 활동했던 이력이 캐스팅에 영향을 미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매니저와 함께 영화를 보며 뮤지컬로 만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실제로 작품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놀랬죠. ‘라디오 스타’는 가수로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연습할 때의 느낌도 확실히 달랐던 것 같아요. 옛날 생각이 많이 나서 좀 더 편하게 임할 수 있었죠.”
2009년 ‘돈 주앙’은 득남과 동시에 군 입대가 미뤄지면서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 작품이다. 노래로만 스토리를 이어가야하는 ‘동 주앙’에서 다양하게 변하는 돈 주앙의 감정들을 세세하게 표현해낸 김다현은 한층 깊어진 연기를 선보이며 호평을 이끌어냈다. 이후 군 입대 기간 중에도 그는 국방부가 제작한 ‘생명의 항해’에 출연하며 뮤지컬 배우로서 자리를 꾸준히 지켜왔다. 당시 2년 여의 기간은 그동안 달려온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다가올 10년의 방향을 세우는 기회이기도 했다.
군복무를 마친 뒤 2012년, 그의 복귀작은 ‘서편제’였다. “한 무대에서 판소리부터 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 장르를 소화하고, 다양한 나이 폭을 소화해야 하는 동호 역을 탐내지 않는 배우는 없었을 거예요. 지금 안 하면 후회하겠다 싶었죠.” 동호 역을 맡으며 그는 처음으로 북을 잡았다. 그리고 ‘서편제’ 마지막 장면에서 소리꾼과 고수로 송화와 마주해 ‘심청가’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동안 그는 남자, 동호가 되어 있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김다현은 ‘라카지’에서 아들을 장가보내기 위해 애쓰는 게이 엄마 앨빈 역으로 관객을 만났다. 이미 ‘헤드윅’에서 연출가 이지나와 함께 여장호흡(?)을 맞춘 바 있는 그는 더블 캐스팅된 배우 정성화와 달리 예쁘고, 모성애까지 갖춘 엄마로 변신했다. “처음엔 40대나 되어야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연습을 하면서 나만의 앨빈을 만들자고 다짐했죠. 정말로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가 되자고요. 집에 있는 아들을 떠올리며 몰입한 것이 큰 도움이 됐어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슬프고 고마운 무대였죠.”
‘라카지’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그는 원효대사의 이야기를 다룬 ‘쌍화별곡’ 무대에 연이어 올랐다. 마음의 울림을 쫓은 선택이었다. “이 작품을 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무모하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하지만 전 이 작품에서 정말 큰 것을 얻었죠. 기쁨·슬픔·고통·즐거움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깨달음이에요.” 그리고 겨울, 김다현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락오브에이지’(2월 3일까지, 우리금융아트홀) 무대에 올랐다. 가수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뮤지컬 배우로 뮤지컬 배우에서 다시 가수로, 게다가 이제는 록 가수를 연기하며 각기 다른 장르의 노래를 소화하고 있는 그는 기분 좋게 하는 음악 숙제, 소리 공부라 여기며 지금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캐릭터에 걸맞은 소리를 만드는 일을 평생에 걸쳐 해낼 것”이라고 말하는 배우 김다현. 소리를 찾아서, 소리가 이끄는 대로 자유로이 발을 내딛을 수 있기에 그의 무대는 언제나 선명하고 풍요로울 것이다.
글 김선영 기자(sykim@) 사진 박진호(Studio B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