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극단 ‘장화홍련’

반(反) 창극으로서의 가치

우수 컨텐츠 잡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월 1일 12:00 오전

정반합(正反合)은 무엇인가? 정반합은 바르다고 여기는 판단(正)과 그것에 모순된다고 여기는 판단(反), 그리고 이 두 개의 판단을 종합한 보다 높은 판단(合)에 이르는 변증법적 논리이다. 세상에는 대립되는 둘이 있어야 하고, 그래야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하나가 만들어진다. 창극에 있어서 정반합의 논리를 적용해보자. 2012년 11월 27~30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글 윤중강(음악평론가) 사진 국립극장

창극에서 ‘바르다고 여기는’ 요소는 무엇일까? 그것에 해당하는 것은 바로 ‘전통’이요, 곧 ‘소리’다. 전통과 소리를 바탕으로 한 것을 우리는 ‘정통(正統)’으로 여겼다. 창극에는 지금까지 ‘정(正)’이 되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있어왔다. 바로 ‘북’. 판소리에서 북은 빠질 수 없고, 창극에서도 북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판소리 명창이 종종 국악관현악이나 서양악기와 협연하기도 한다. 만약 명창이 관현악기로만 협연을 한다면 무대에 오르기를 주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편성 속에서도 북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북을 의지 삼아서 무대에서 소리를 한다. 비록 소리북이 여러 악기에 묻혀 있다 하더라도, 소리꾼의 귀는 북에 집중해 소리를 한다.
‘일고수이명창’이라는 용어가 이 땅에 존재한다. 명창은 언제나 고수(鼓手)를 부추겨 세운다. ‘북’이 판소리와 창극에 있어서 ‘도그마’와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창극이 정반합의 논리로 성장하려면 북을 없애야 한다고 진작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무대가 처음으로 탄생했다. 창극 백 년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북이 있는 판소리는 어떤 판소리인가? 장단이 있는 판소리다. 장단이 있는 판소리는 어떤 소리인가? 좋게 말하자면 소리와 장단이 어우러지는 것이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소리가 장단의 질서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스릴러창극 ‘장화홍련’이 갖는 창극적 의미는 여러 가지이다. 그중에서 대서특필해야 할 사항은 바로 백 년이 넘는 창극의 역사에서 ‘최초로 북, 곧 장단에 의지하지 않는 창극’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창극이 있었지만 창극의 작창(作唱)은 모두 진양조부터 휘모리에 이르는 장단의 질서 속에서 노래를 만들어냈다. 대개 대사 부분과 노래 부분이 엄밀하게 구분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번 창극의 작창(왕기석)은 달랐다. ‘말(대사)’을 하다가 그것이 자연스럽게 ‘음(소리)’로 이어졌다. 일본의 전통예술과 비교한다면, 과거의 방식이 가부키(歌舞技)라면 이번의 창극은 노(能)와 비교될 수 있다.
스릴러창극 ‘장화 홍련’을 두고 연극인가, 창극인가란 설왕설래가 있다. 내게 이것은 무의미하다. ‘장화 홍련’은 새로운 창극의 방식을 만들어냈다. 홍정의(작곡)와 억스(AUX, 연주)는 음악에 있어서도 정반합을 지향하고 있었다. 바로 피리와 아쟁이 갖고 있는 고유의 소리(正)와 이를 기계장치를 통해 왜곡시키는 방식(反)이다. 이러한 방식이 합쳐지면서 공포 분위기와 현대적 분위기를 동시에 만족시켰다.
새삼 창극배우의 역량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가장 주목을 끈 배우는 김금미(허씨). 그녀는 의붓딸과 친아들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연기와 소리로 극명하게 그려냈다. 아들이 의붓누나를 죽이고 시체를 유기하는 장면에서 앞모습과 뒷모습을 보여줄 때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못지않았다. ‘장화’에 딱 어울리는 김미진이 있음을 발견하는 것도 희망이었다. 50대로서 ‘홍련’이 된 김차경이 공연 전부터 화제가 됐다. 연출가의 계산된 의도가 엿보인다. 기존 창극에서 좀처럼 존재하지 않는 소년 캐릭터를 연기한 고등학생 윤재원(배장수)을 통해서 ‘창극아이돌’도 나올 수 있음을 예상해본다.
세상에 ‘정’만 있다면 얼마나 재미없는가? ‘반’을 통해서 ‘정’의 가치도 발견할 수 있다. 창극에서도 ‘반(反) 창극’이 필요하다. 스릴러창극 ‘장화홍련’은 창극계의 고정관념과 불문율에 도전한 창극이었다. 이번 공연을 통해 국립창극단의 가능성을 새롭게 확인하는 자체가 또 하나의 ‘스릴’이다.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