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내게로 온 순간 | 내 삶의 발자취를 따라온 음악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4월 24일 10:00 오전

음악이 내게로 온 순간_27

음악가들이 알려주는 ‘추억의 플레이리스트’

 

피아니스트 강충모

내 삶의 발자취를 따라온 음악

 

 

강충모 서울대 음대 졸업 후, 샌프란시스코 음악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피바디 음악원에서 최고연주자 과정을 졸업했다. 쇼팽 콩쿠르·클리블랜드 피아노 콩쿠르 등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줄리아드 음악원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를 역임했다.

 

 

# 01

희미한 기억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Op.35 #기억 속 첫 클래식 음악

앙드레 프레빈/런던 심포니(협연 정경화)

감상 포인트 화려함 속에 감춰진 서정성

 

언제 클래식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저에게 음악은 아침을 알리는 소리였고, 아침 식사를 마칠 때까지 아버지와 함께 듣던 일상의 소리였습니다. 당시에는 정확히 어떤 곡인지도 몰랐고, 연주자나 작곡가에게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만 그 신비스러운 소리 자체에 매력을 느껴 악기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제 관심을 알아차리신 아버지는 저와 함께 악기 이름을 맞히는 게임을 시작하셨습니다. 음악 사전에 나온 사진을 보고 이름을 맞히거나, 음반에서 흘러나오는 악기 소리가 무엇인지 알아맞히는 놀이였습니다. 아버지의 칭찬을 듣고 싶은 마음에 저는 열심히 음악 사전을 들여다보았고, 그 관심은 자연스럽게 작곡가로 이어졌습니다.

이탈리아 테너 엔리코 카루소(1873~1921), 베니아미노 질리(1890~1957), 마리오 델 모나코(1915~1982), 주세페 디 스테파노(1921~2008) 같은 옛 SP·LP 시대의 성악가들과도 친숙해졌습니다. 뜻도 모르는 가곡의 가사를 외우며, “남 몰래 흐르는 눈물은 역시 질리의 목소리가 어울려”라고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흉내를 내기도 했습니다.

음악과 친해지고, 자연스레 피아노를 배우게 된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집에 쌓여 있던 음반 중 정경화가 연주한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처음 듣고 그만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신비롭게만 생각했던 바이올린 소리가 선율에 따라 각기 다른 표정을 지으며 저에게 호소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충격을 받은 그 순간부터, 음악은 평생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1악장의 귀족적이고 장중한 도입부에서 느껴지는 진취적인 기상과 웅장함은 아픔이 서린 바이올린과 플루트가 애틋하게 선율을 주고받는 2악장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고, 마침내 화려하고 날렵한 기교를 뽐내는 3악장의 바이올린 솔로는, 마치 슬라브 민속춤을 추며 무대를 완전히 휘어잡는 듯한 전율을 선사합니다.

 

# 02

나의 음악적 길잡이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음악 공부에 지침이 된 곡

조지 셀/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협연 레온 플라이셔)

감상 포인트 열정적 에너지,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감내하는 슬픔

 

미국 유학 시절에 접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연주는, 제가 음악 공부를 하는 동안 거의 성경과도 같은 지침이 되어주었습니다. “음악은 나와 우주를 잇는 생명의 젖줄이다”라고 말한 레온 플라이셔(1928~2020)는 자신의 연주를 통해 그 문장의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했습니다. 결코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로 리듬을 살려내는 플라이셔의 연주는, 마치 다른 해석은 존재하지 않는 듯, 아니 이 방식만이 이 곡을 연주하는 유일한 길인 듯한 압도적인 정통성과 위엄을 느끼게 합니다.

브람스의 음악 기저에 흐르는 광활한 위엄과 자기연민에 매몰되지 않는 고결함은 이 곡에도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하나의 인생철학을 배우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1악장과 3악장이 단조(d단조)임에도 불구하고 2악장(D장조)보다 덜 슬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역동적인 리듬이 지닌 강인한 생명력 때문일 것입니다. 반면, 장조로 쓰인 2악장이 오히려 더 애절하게 다가오는 것은 느리고 유연하게 흐르는 부드러운 선율 때문이겠지요. 눈물은 고여 있으나 이를 묵묵히 감내하는 듯한 절제된 슬픔의 표현은, 소리 내어 우는 통곡보다 훨씬 더 사무치게 가슴을 파고듭니다.

 

 

# 03

미지의 세계를 바라보며

#R.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 #아끼고 사랑하는 인생의 명곡

쿠르트 마주어/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협연 제시 노먼)

감상 포인트 생명의 존엄함과 미지의 세계를 향한 간절한 염원

 

다음으로 제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인생의 명곡은 R. 슈트라우스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입니다. 그중에서도 세 번째 곡인 ‘잠이 들면서’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잇는 위대한 가교와도 같은 작품입니다. 전반부 세 곡은 헤르만 헤세(1877~1962)의 시를, 마지막 네 번째 곡은 아이헨도르프(1788~1857)의 시를 가사로 삼았는데,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슈트라우스가 생을 마감하기 불과 1년 전에 완성한 만년의 역작입니다.

세 번째 곡 ‘잠이 들면서’의 가사를 음미해 봅니다.

낮은 나를 피곤하게 했으니, / 이제 간절한 내 마음은 / 지친 아이처럼 / 졸음 가득한 밤을 반기려 하네. // 손아, 하던 일을 멈추어라, / 머리야, 모든 생각을 잊어라, / 이제 나의 모든 감각은 / 잠 속에 빠져들고 싶구나. // 그리고 영혼은 파수꾼이 없는 틈을 타 / 자유로운 날개짓으로 날아올라, / 밤의 마법 같은 세상 속에서 / 깊고도 푸르게 살아가려 하네. – 헤르만 헤세

이 시에 담긴 ‘잠’은 단순한 휴식을 넘어, 죽음을 앞둔 평온한 안식과 영혼의 자유를 상징합니다. 또한 ‘밤’은 사후의 세계를 의미하며, 그 안에서 영혼이 구속 없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2절과 3절 사이에 흐르는 바이올린 독주를 들을 때면, 저도 모르게 수도 없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생명의 존엄함과 미지의 세계를 향한 간절한 염원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 이 곡의 마지막 선율과 함께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지상에서 누리는 마지막 축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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