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인이라고 전통차만 마십니까? 국악에는 슬픈 노래 밖에 없나요?
카페에 앉아 두어 시간 함께 ‘아이스 로열 밀크티’를 마시던 남상일은
농을 섞지만 진지하게 말했다. 국립창극단과 남상일의 이별은 곧 대중과의 더 큰 만남이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남상일, 그래도 아메리카노는 안 마셨네요.’
지난해 가을 남상일은 별주부 가면을 얼굴에 걸고 “고고천변 일륜홍皐皐天邊 日輪紅 부상扶桑에 높이 떠…” 노래했다. 아힘 프라이어 연출의 ‘수궁가’ 주인공 별주부 역이었다. 별주부가 배를 타고 토끼 간을 찾으러 육지로 가는 장면 ‘고고천변’ 대목에서 그의 소리는 유난히 선명했다. 강단 있고 구성진 소리에서 오늘 일을 예측이나 할 수 있었으랴, 뭣 모르고 나는 글을 썼다. “아힘, 창극은 그게 아니다. 남상일의 고고천변을 들어보길 바란다”라고.
그날 남상일의 소리는 박애리를 비롯한 앙상블과 오묘하게 어울려 여전히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남상일은 2003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10년 동안 막내 단원으로 지낸, 국가대표(?)의 소리꾼. 판소리 다섯 바탕의 창극에 주인공을 도맡았고, 때때로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하며 소리를 제대로 알고 부르는 젊은 소리꾼이었다.
그가 국립창극단을 떠난다. “국립창극단에 입단했을 때가 대학을 졸업하던 2003년 3월이었습니다. 올해 2월은 꽉 찬 십 년이 됩니다. 얼마 전 후배 단원 여섯 명도 들어왔어요.” 남상일이 말했다.
고고천변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대하大河를 다 버리고, 청림벽계 산천수靑林碧溪 山川水,
모래 속에 가만히 엎드러져 천봉만학千峯萬壑을 바라본다
남상일, 대하를 다 버리고, 진정 천봉만학을 보러 가는가?
그의 천봉만학千峯萬壑
국립창극단이라는 좋은 직장 내에서도 판소리를 알릴 수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판소리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나가야 합니다. 나가고 싶습니다. 안에서 고고하게 작품을 할 수 있으려면, 밖에서 자꾸만 알려주는 이가 있어야 해요. 아무도 그것을 하지 않으니 저라도 해야겠습니다. 많은 이들은 오해를 합니다. 네 이름을 알리자고 나가느냐, 그렇게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저라도 알려지면 판소리가 알려지는 것 아닐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할 줄 아는 것이 판소리밖에는 없습니다. 나가서 뭘 하겠습니까. 소리나 하면서 돌아다니겠지요. 이야기 좀 하겠지요. 그러다 사람들이 알아보면, 판소리 들어보지 않겠습니까. 오랜 생각 끝에 내린 결정입니다.
판소리가 뭐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어려서부터 판소리를 좋아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제가 울면 판소리를 틀어주는 것으로 울음을 달래주셨다고 해요. 판소리만 들으면 울음을 그쳤지요. 몸이 반응하도록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기는 어렵죠.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판소리는 우리 것이니 지켜야 하는 무엇입니다. 국립극장 무대 위가 아닌, 밖으로 나가보면 ‘판소리’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민요와 판소리, 가곡의 구분도 못하고, ‘창’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소리조차 구별해내지 못하는 형국에 우리는 하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르는 곳이면 다 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직장과 개인적인 활동을 병행하기가 힘들었나 봅니다.
아무래도 제약이 많았습니다. 직장이고, 공동체 집단이기 때문이죠. 많은 배려를 받으며 직장 생활을 했지만, 이제 온실을 벗어나 밖으로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이 판소리의 본래 성격과도 맞고요.
스승들의 만류는 없습니까?
안숙선 선생님은 걱정하셨지만 2013년은 소리 공부 제대로 해보자 하셨습니다. 저도 그런 마음을 갖고 나가고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신영희 선생님의 격려였습니다. 선생님은 “나도 창극단 있을 때 징계 많이 먹었다” 하시면서 나가보라고 하셨죠. 두 분 다 국악 대중화에 앞장섰던 분들이셨기 때문에 큰 힘이 됩니다.
얼마 전 국립창극단에 신입 단원 여섯 명이 입단했습니다. 시의적절했던 걸까요?
저 때문은 당연히 아닙니다. 제가 입단 한 후 십 년 만에 처음이니,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아주 잘된 일이지요.
남상일 씨의 빈자리를 곧 메우겠네요.
그래야 하고, 또 더 잘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후배들이 무섭지는 않나요?
어렸을 땐 저보다 잘하는 사람이 보이면, 심장이 뛰었습니다(여러 의미로). 그러나 예술은 독보적이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흉내 낼 수 없어야 하는 것이고, 저마다의 색깔을 띨 줄 알아야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더욱 격려할 수 있죠.
그래도 판소리계는 조금 이기적인 것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판소리는 고수가 있기는 하지만 혼자 하는 예술이고,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고 이겨내야 하는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대회를 나가도 앞사람보다 이기려면 청을 높이 잡아 분위기를 압도해서라도 이겨내고 마는 장르입니다. 그러다 맨 마지막 사람은 망하지요. 허허. 일정한 청에 맞춰 노래를 하는 민요는 또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판소리는 이기적인 면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이기를 타인의 싹을 밟는 데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국악계는 ‘남상일 바람’이라는 것이 불었습니다. 남자 소리꾼이 귀한 세대라 더했다고 생각합니다. 매 무대마다 특유의 구성진 소리가 창극이나 판소리 전반에서 안정감을 자아내는 것 같습니다. 본인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특유의 표정과 웃긴 말투로) 편안함?
중학교 시절에는 조소녀, 한국예술종합학교 입학 이후에는 안숙선 명창을 만나 소리 공부를 했습니다. 여류 명창들에게 배웠지만 남상일 씨의 소리는 단단하고 굵직한 통성이 매력입니다. 개인적인 다른 연구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제 소리가 여성적이라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연구라면, 국립창극단에서의 경험들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창극은 각각의 배역을 맡아서 연기를 해야 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캐릭터에 대한 연구가 필수죠.
(그가 아주 짧게 소리를 했다. 심봉사와 이도령 토막 소리.)
지난해는 한국방송대상 문화예술인상, KBS국악대상 판소리상 수상, 상도 많이 받으셨어요.
운이 좋았던 한 해였습니다.
남상일이 본격적으로 방송에 국악을 전하기 시작했다.
TV조선 국악락락 진행(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방송)
KBS 2TV ‘남자의 자격-남자, 국악의 참견’(1월 20일부터 4주간 방송)
외 다수 패널 출연
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에서 창극을 가르친다고요.
네,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 팀원들에게 원래 2주 동안 창극을 가르치기로 했는데, 4주로 늘어났습니다. 김태원 씨가 그러더라고요. 판소리가 이렇게 멋있는 줄 처음 알았다고요. 뮤지컬이나 오페라가 따라올 수 없겠다고요.
소리를 던지면 그들은 잘 따라옵니까?
그게 어디 그리 쉽나요. 창극은 대학에 가서 전공생들을 가르쳐도 잘하기가 힘듭니다. 십 년을 판소리 공부를 해도 소리와 연기가 될까 말까 하는 게 창극입니다. 그래도 즐겁게 하고 있어요. 1월 29일에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 오릅니다. 아마도 설 즈음에 방송이 될 거고요. 와서 한번 보세요. 아직 본격적인 연습 전인데 어떻게 공연이 될지 저도 궁금합니다.
객석이 다 차겠습니까, 관객의 반응이 어떨까요?
아는 사람이 소리를 하면 다르겠지요. 뭐, 우리소리라는 게 완벽하게 구사를 한다고 해서만 맛이 나는 것은 아니니까요. 중요한 것은 그만큼 관객들에게 판소리를 보여주고, 함께 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예인이면, 공인들이 소리를 배우는 거죠. 그건 곧 시청자들인 대중이 함께 배우는 것이 되지 않겠어요?
바로 그겁니다. 한편 고민도 많이 했어요. 우리음악은 동선이 그리 크지가 않잖아요. 그런데 현대인들이 원하는 것은 조금 더, 조금 더 자극적인 것들입니다. 현장에서 때때로 요구받을 때도 있어요. 판소리요, 정적인 상태로 모든 감정 표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어떻게 보면 대단한 거예요.
일인극에 해당하는 판소리로 소리꾼들은 학습을 받아오니 더욱 그렇겠지요. 그래도 남상일 씨만큼의 동적인 사람도 없지 않습니까, 국악계에서요. 사실 작가들은 잘 모릅니다. 알려주는 것에도 의의가 있잖아요.
잘 모르는 것도 괜찮습니다. 맞춰가는 것이 좋아요. 언제나 국악이라고 해서 고집만 하면서 살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돗자리에 병풍, 방석이 없다고 연주를 안 하는 연주자도 있어요.
정통성을 잃지 않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겠지만, 그것은 어떻게 보면 아집이지요. 현대가 그렇지가 않은데, 어떻게 구미를 다 맞출 수가 있겠어요. 그러나 ‘밑천’이라고 하죠. 가지고 있는 ‘밑천’이 있다면 부수적인 형식은 필요 없습니다. 오늘 촬영만 해도 봐요. 우린 부채 하나만 썼을 뿐인데, 내가 판소리를 안 하는 사람으로 전혀 비쳐지지 않잖아요. 나는 판소리 하는 사람이니까요. 그것만 있어도 되요.
네, 그래도 아까 한복은 다리셨지요?
준비는 철저하게 하죠. 그러나 내가 그것을 준비했다고 해서 그걸 꼭 고집하지는 않아요. 상황에 따라 맞추다 보면 더 좋은 것이 늘 나오는 법이니까.
(사진 촬영 전 남상일과 함께 온 일행은 스튜디오에서 한복을 걸어 다림질을 하고 있었다. 기자와 사진작가가 의논 후, 남상일에게 양장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좋겠다고 하자, 그는 일언반구 없이 “그럼 집에 갈 때 입고 가죠 뭐” 하며 부채 하나 들고 나왔다.)
참, 진정한 남자의 자격이네요. 요즘 뭐가 재밌으세요?
다 재밌지요.
가장 버거운 건요.
다 버겁고요. 뭐든 안 하던 걸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결국 별주부는 토끼를 데려온다. 남상일 그가 진정 보고 싶은 천봉만학이 ‘시대 속에 사는 판소리’요, 데려오고 싶은 토끼는 ‘대중’이던가. 사람들이 판소리가 무엇인지 모른다며 만상을 찌푸리고 이야기하는 그의 열정에 토끼는 분명 간을 내어주리라고 믿는다. 남상일의 ‘고고천변’에 우리 모두 박수를 보내자. 그리고 토끼여, 남상일을 믿고 부디 간을 내어주오. 이곳 어지럽고, 캄캄한 용궁에서 그대들의 간은 진정한 명약이라오.
글 정우정 기자(wjj@) 사진 박진호(Studio B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