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청출어람’

판소리, 학습의 너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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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2월 1일 12:00 오전

‘청출어람(靑出於藍)’은 박찬욱·박찬경 감독이 이끄는 파킹찬스(PARKing CHANce)가 만든 영화다. 파킹찬스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주차를 하며, 상업영화가 아닌 정말로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한 형제의 영화 브랜드다. 스포츠의류사인 모기업의 창사 40주년 기념작인 이 영화의 주제는 ‘청출어람(靑出於藍)’, 소재는 ‘판소리’다. 2012년 12월 28일 개봉(www.kolonsport.com에서 감상 가능).
글 정우정 기자(wjj@) 사진 모그인터렉티브

영화는 커다란 능(陵)에서 시작한다. 주변이 화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왕이나 왕비의 무덤 같지는 않으나, 크기로 봐선 한 시대 문인 정도 지냈을 법한 소박한 거인의 무덤이다. 스승과 제자가 무덤 사이로 나왔다. “사람이 없는 정상에 올라가 연습을 하자”는 스승의 말에 제자는 “이렇게 매일 사람이 없는 곳에 가서 노래를 부르니, 사람 많은 대회를 나가서 3등을 했다”며 우는 것으로 대화는 시작된다.
시작부터 끝까지 단 두 명이 끌어가는 독립영화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소재는 ‘판소리’다. 배우 송강호와 열네 살의 어린 국악학도 전효정이 스승과 제자 역을 맡았다. 박찬욱·박찬경 감독이 맡은 세 번째 단편영화라는 점에서도 이목을 끌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반가웠던 이유는 ‘서편제’(임권택 감독, 1993년), ‘휘모리’(이일목 감독, 1994년) 이후 판소리를 소재로 한 영화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단순한 서사에 우리는 당황스러움을 경험해야 한다. 그러나 이내 19분의 영화가 끝나면 마음에는 묘한 잔상이 남는다. 영화 전반을 둘러싼 고(故) 이동백의 소리 때문이리라.
영화 ‘청출어람’에는 1950년에 작고한 조선 말기의 소리꾼 이동백의 소리가 등장한다. 즉흥성의 대가로 손꼽히는 이동백은 생전 ‘새타령’을 즐겨 불렀고, 많은 이들이 그가 부르는 ‘새타령’을 좋아했다. 이동백과 관련해 국악계에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바로 ‘저 뻐꾹이가 울어’라는 가사에 얽힌 이야기인데, 이동백이 뻐꾸기 울음소리를 내면 꼭 뻐꾸기가 화답한다는 이야기다. 송강호의 소리에도 두견이가 화답했다. 1920년대 유성기 음반에 녹음된 이동백의 육성을 그대로 사용한 이번 영화는 판소리가 가지고 있는 이미 단단한 서사로 영화 전체를 끌어간다. 특히 그것은 제자가 부르는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에서 절정을 이룬다. 뫼천에 펼쳐진 산수의 영상으로 판소리가 안고 있는 격정을 담아냈다. 지동 치는 내면의 변화가 자연과 어우러져 경이를 자아내는 순간이었다.
영화는 내내 판소리 학습의 과정을 깊숙하게 담아냈다. 물론 최근 국악의 학습 방법과는 거리가 멀다(그러나 또 없는 이야기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주고받는 명징한 눈빛만은 틀린 것이 없다.
어린 제자가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을 부르는 사이, 스승은 죽고 말았다. 아마도 제자는 스승의 북소리가 멈출 때 이미 그 죽음을 알아챘던 모양이다. 어쩌면 어린 제자는 마지막 “물에가 풍”이라는 가사를 입 밖으로 꺼내면서 마음을 가다듬었을지도 모른다. 북 위로 몸의 기운을 다 빼버린 스승에게 제자는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주고 노래를 하며 산을 내려온다. 이제 진정 ‘사철가’에서 봄을 보낼 때는 정말 봄이 갈 수 있도록 봄을 놔주고, ‘새타령’에 새는 정말 새가 울 듯이 노래하라던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인간의 장사(葬事)는 어쩌면 이데올로기에 의한 의식의 산물임을, 인간을 땅에 묻는다고 해서 그것만이 자신을 길러낸 ‘쪽(藍)’에 대한 예우의 표명이 아님을. 어쩌면 인간은 자신의 그릇된 도리에 대하여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능(陵)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름을 감독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스승의 죽음 후에 일어나는 배움의 구현은 청출어람(靑出於藍). ‘푸른색은 쪽(藍)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라는 사전의 의미를 다시, ‘푸른색은 쪽(藍)에서 나왔고, 쪽빛을 겪고 더욱 푸르다’로 읽고 싶어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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