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수집을 취미로 즐기는 이에게 음반 발매가 줄어들고 있는 요즘은 아쉬운 시절이다. 지금보다 더 많은 음반이 쏟아졌던 20년 전에는 금전이 부족해 아쉬웠는데 말이다.
현악 연주 음반을 즐겨 듣는 요즘과는 달리, 십여 년 전에는 성악 음반에 푹 빠져 지내곤 했다. 당시 성당의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면서 사람의 목소리에 관한 매력을 깊이 느꼈던 시절이던 탓인 듯싶다. 여러 성악가 중에서도 특히 리타 슈트라이히의 목소리에 ‘뻑 가는’ 바람에 음반을 구하려 부단히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국내 음반 판매점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두세 종에 불과했다. 궁여지책으로 오디오 동호회 회원이 갖고 있던 리타 슈트라이히의 LP 몇 개를 대여했고, 일요일에 CD로 만드는 작업을 온종일 한 끝에 다양한 곡을 들을 수 있었다. 귀한 LP를 흔쾌히 빌려준 온라인 동호회 회원과 CD 만드는 작업을 도와준 지인에게 고마운 마음도 컸지만, 무엇보다 어렵사리 작업한 음반이었기에 감상하는 기분은 더 말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면서 리타 슈트라이히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목소리에 대한 흠모는 점점 깊어졌다. 그녀의 다양한 음반을 구하고 싶은 욕구도 점점 커져 급기야 이베이를 통해 유럽과 미국에서 LP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주문한 LP가 2~3주 만에 도착할 때는 그야말로 소주 한 잔을 마시지 않고도 한 병쯤 마신 것 같은 즐거움을 만끽했다. 그렇게 구입한 대여섯 개의 LP 중 슈베르트의 가곡집은 도착하기까지 40일이 걸리는 바람에 포기 상태에 다다랐던 나에게 반전의 기쁨을 선사했다.
리타 슈트라이히의 슈베르트 가곡집에는 ‘바위 위의 목동’이 1면 마지막 곡으로 장식되어 있다. 12분 정도의 길이로, 목동의 외로움을 표현한 듯 클라리넷의 구슬픈 시작 부분과 목동이 연인을 그리워하다 산을 내려가 연인을 만날 때의 기쁨을 표현한 듯한 후반부가 특히 인상적이다. 그 매력에, 어느 날은 서너 번씩 반복해 들으면서 목가적인 아름다움에 빠지곤 했다. 이 음반은 그동안 수집한 2천여 장의 음반 중 가장 아껴 듣는 음반이 됐다.
일상 속에서 스트레스가 쌓일 무렵 듣는 리타 슈트라이히의 목소리는 모든 근심이 사라지게 하고, 오로지 기쁨으로 충족시켜주는 일등공신이다! 한 치의 오차 없는 정확한 음정과 깨끗한 음색,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높은 고음역에, 꾸밈없는 자연스러움까지…. 예쁜 목소리를 가진 성악가로 엘리 아멜링·캐슬린 배틀·바버라 보니 등이 손꼽히지만, 자연스러운 발성은 리타 스트라이히에 미치지 못한다고 나의 귀는 내게 수없이 이야기한다.
요즘도 가끔씩 우리 집에서 그녀가 노래를 들려준다. 고인이 된 그녀에게 언제나 고마울 따름이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흠모가 너무 활짝 폈는지, 아내가 그녀의 목소리를 약간 질투한다는 것이 굳이 꼽는 애로사항이다.
‘동그라미를 꺼내다’에서는 ‘내 생애 잊지 못할 음반’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 모두에게 열려 있으며, 이번 호에는 포스코휴먼스 사무지원팀장으로 근무 중인 진민장 씨의 동그라미를 나눴습니다.